☆찬양이란 무엇인가? - 고백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어떤 일을 하시는가? 고백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성품과 하시는 일을 고백하는 것!) 하나님의 성품과 하시는 일에 대한 우리의 놀라움을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을 높이는 것(예 : 김일성과 기쁨조 공연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그러므로 찬양의 출발점은 우리의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장애인, 기분이 안 좋다, 병자 등등의 조건이 무효함)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신뢰이다 상황과 조건을 넘어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서 찬양은 시작된다.
- 칭찬하다. 존경을 표현하다. 영광을 돌리다. 경배하다. 높여드리다.
- 하나님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
- 하나님께 기쁨이나 감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의 노래나 음악을 연주하는 일.
☆찬양의 성경적 자료
찬양이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노래를 뜻하는 말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사야 43장 21)
찬양이란 시편 9장 1절에서 2절에서처럼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의 말씀으로 귀결된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입을 가지고 주를 찬송하며 전파하기 위하여(시 51:15) 지음을 받았다는 고백이다.(시 34:1, 119:171)
찬양이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감격을 표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적인 행위를 말한다. 인간의 전 육체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도록 되어 있다. 찬양은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의 훌륭한 점을 드러내어 그를 높이는 일체의 표현이다. (꼭 노래로 만이 아닌, 박수. 춤. 시. 악기. 방언. 외침)
시편 134편 2절에는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라고 했으며 찬양은 인간이 숨을 쉬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런 찬양은 우리의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며(시 150:6) 호흡이 다하는 순간까지 있어야할 인간의 과제이다.(시 63:4)
☆What 무엇을 찬양하는가?
1.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때 우리의 믿음은 방향성있게 자라고 우리의 찬양은 풍성 하게 된다
2. 하나님의 성품들
거룩 : 구별되었다 → 시 22:3, 계15:4, 신32:4, 히7:26, 출31:13, 계7:14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사랑 : 우리의 구원의 근거이다. → 요3:16, 요일 3:1, 롬5:8, 요일4:10, 렘31:3, 아4:9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인자, 자비하심 :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우리삶의 시련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함 으로 회복될수 있다.
→ 대상16:34, 대하7:3-6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자비로운 성품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전지 전능하심 : 모든 것을 아시고, 행하시는 하나님
→ 찬35:11-12, 딤6:15-16, 출3:7-8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신 성품'에 대해 생 각해 봅시다.
아름다움 : 하나님, 그분이 계신곳, 그분의 하시는 일 모두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 해 세상이 아름답게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 시27:4, 시8:1, 아5:16, 전3:11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신실하시다 : 진실함과 신의를 포함하는 성품이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일들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 다.
→ 시119:75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Why 찬양은 왜 하여야 하는가?
1. 왜 찬양하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다.
-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음악의 가치관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을 찬양함이다.
- 찬송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신 10:21)
2. 왜 찬양하는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사 43:21) 시 148:5 / 느 9:6 /
-우주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 사 43:21 - 시 148:1-5
3. 왜 찬양하는가? 우리는 말씀을 통해 명령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 할렐루야의 의미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어이다. 시편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 찬송을 명령하시는 하나님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 할지어다 할렐루야" 시150장 6절
시 106:48 / 시148:1-5 / 사 62:9 / 계 19:5
- "그를 찬양할지어다"(시 150: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양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으셨다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왕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합니다!
- 당신은 "왜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이 필요하신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부를 좋아하는 자기 우월주의에 빠지신 분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찬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에 찬양 속에 힘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 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출 15:11) 출15:11 / 시 22:3, 30:4, 99:9 / 사 24:14
인간이 찬양을 해야 하는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해야 할 당위성을 갖는다.
오늘날 아주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성취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결코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완전한 성취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찬양은 익히기 어렵고 벅찬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찬양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가장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창조자 아버지께서 목적을 갖고 우리의 성품 속에 놓아두신 정상적인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런 일 중의 하나입니다!
☆찬양치유
1) 자신의 전인치유를 위해 필요하다.
고대 바벨론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있었다. 그는 바벨론 온 도를 통치하는 왕으로서 매우 지도력이 있는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의 역량을 앞세웠다. 느부갓네살은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4:30)라고 말했다. 바로 그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位)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단4:31-32)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져 느부갓네살 왕은 정신병 환자가 된다. 그러자 사람들은 느부갓네살 왕을 내 쫓았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들에게서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고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되었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어 생활하게 되었다.(단4:33-34) 한 마디로 짐승 같은 생활을 하게된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짐승 같은 마음(정신병자)으로 일곱 때(7년? 3년 6개월?)를 지내고 나서
느부갓네살 왕은 하늘의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우러러 보았더니 정신병이 치료가 되었다.(단4:34-37) 찬양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도록 만든다. 이 말은 찬양이 전인(全人) 치유의 필수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전인 치유를 위해서는 찬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속적인 음악치유는 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찬양은 영, 혼, 육체의 문제를 모두 자극한다. 그리하여 온전한 치유를 얻도록 만든다. 왜 그럴까?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의 선두 주자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필요하다.
[예배-교회가 잃어버린 보석 Worship:the Missing Jewel of the Evangelical Church]라는 소책자를 지은 [토우저 A.W. Tozer]는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만들어졌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프를 하나 주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나는 네게 가장 큰 하프를 주었다. 또 네 악기에는 더 많은 줄을 달아 주었고,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 준 것보다 더 폭넓은 음역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다른 피조물들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예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여 그 악기를 진흙탕물 속에 내던져버린 이래, 그것은 녹슬고 깨어졌으며, 줄이 풀어진 채로 오랜 세월 동안 파묻혀버렸다. 그 결과 그는 천사들처럼 하프를 켜거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 자기 중심적이 되어 자기만을 생각하며 토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맹세하고 웃고 노래도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기쁨과 예배가 결여되어 있다.”고 하였다.(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p.247ff에서 인용, 서울 요단출판사 1995)
하나님은 우리가 찬송할 때에 우리 중에 거하신다.(시22:3) 우리 중에 거하신다는 말씀은 우리와 만나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찬양의 문을 열 때부터 시작된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들어오시게 하는 초청장이다. 우리는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실제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 밖에 없지만 회복된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엔 찬양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찬양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회복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알게 한다.
(3)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나님과 내가 찬양을 통해 길이 열려지면 자연스레 인간과의 관계도 회복된다.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부드럽게 하는 데는 찬양보다 더 좋은 게 없다. 그리스도인들끼리도 예배로 모일 때 세상 속에 살다가 예배의 현장에 나와서 인지 왠지 모를 서먹서먹함이 있다. 이 때 찬양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끈이 된다.
찬양을 계속 부르다보면 영의 일깨움을 얻고 영은 다시 혼과 육체를 깨워 하나님 앞에 세운다. 하나님 앞에 세워진 우리는 혈통, 지연(地緣), 학연, 국가를 초월하여 하늘 나라 가족으로서의 공유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게 찬양의 신비다. 찬양은 사람들을 연합한다. 찬양은 사람들의 억압된 감정을 부드럽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이 한 목적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곳으로 쏠리게 한다.
찬양하는 사람들은 많은 유익을 얻는다. 유다처럼 명성을 얻기도 하고(창49:8-10), 여호사밧처럼 예배를 위해 잘 준비된 사람이 되어 전쟁에서 승리를 얻기도 한다.(대하20:20-23) 찬양하는 사람은 유다처럼 축복을 얻는다.(신33:7) 찬양하는 사람들은 유다처럼 승리하는 사람이 된다.(삿1:10-20) 유다를 자꾸 거론하는 것은 “유다”란 이름의 뜻이 “찬송함”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 그대로 그는 광야에서의 행군의 맨 앞에 섰고, 인구도 가장 많았고, 가나안 정복도 가장 능력 있게 감당하였다. 찬양하는 사람의 형통함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특히 왜곡된 핵심신념의 소유자들은 찬양이 절대 필요하다. 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은 찬양을 통해 교정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말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으나 어떻게 바꾸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어떤 대중가요 가수도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가고만 있어 어느 누굴 믿어 어찌 믿어 더는 못 믿어 누가 누굴 욕하는거야 그러는 넌 깨끗해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속의 속물들이야, 워-- 바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바꿔 바꿔 바꿔 사람도 다 바꿔 바꿔 바꿔 바꿔 거짓은 다 바꿔 바꿔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라고 미친 듯이 노래했지만 정작 무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길을 제시하지 않았으니 바꾸기는 다 틀렸다. 그러나 찬양은 문제와 상처와 죄악을 지적하면서도 그 문제를 바꾸고, 상처를 치유하고 죄악을 씻는 길을 모두 제시한다.
찬송가 195장 3절 가사를 보자.
“아버지를 멀리 떠나 바른 길을 저버리고
여러 가지 죄악으로 주홍같이 되었으니
물 같은 것 가지고는 씻을 수가 아주 없네
주여 귀한 보배피로 날 정결케 하옵소서
(후렴) 흰눈보다 더 흰눈보다 더
주의 흘리신 보혈로 희게 씻어주옵소서”
찬송가는 세상 노래와 확실히 다르다. 찬양에는 우리의 문제와 죄 그리고 상처를 지적하면서도 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키(Key)가 제시되었다. 찬송가 195장에서는 주의 보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찬송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찬양은 우리의 문제와 상처와 죄악을 통찰하게 하는 동시에, 문제는 해결하고, 상처는 치료하고, 죄악은 사함 받는 길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되면 우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사람과도 화목하여 하늘나라 한 가족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 When 언제 찬양해야 하나?
먼저, 우리는 우리가 찬양하고 싶을 때 찬양해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또한, 찬양하고 싶지 않을 때도 찬양합니다(시 42:5참조).
- 찬양은 우리의 감정과 상관없이 우리의 주도권을 요구하는 일종의 훈련입니다. 감상주의란 우리가 찬양하고 싶을 때에는 겉으로 나타나지만 찬양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이 찬양의 수준을 지배하는 것이 감상주의입니다. 진정한 찬양은 감상주의와 반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원하지 않든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찬양이 감상주의는 아니지만 감정적이라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감상적으로 찬양하는 것은 참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창조하셨고 찬양은 우리의 감정을 풀어놓는 가장 고상한 방법입니다. 마리아의 송가(Magnificat)에서 마리아는 말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눅 1:46-47). '혼적인(내 마음이)' 찬양과 '영적인(내 영혼이)' 찬양 모두가 올바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때 마음과 영혼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생각해 볼 점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좋은 때는 지금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끔 찬양이 부족한 것을 이런 식으로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 지난 주일에 제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칭송한 것을 아십니다. 지난주에는 정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몹시 피곤하다는 것도 주님께서 아십니다. 정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합니다. 지난 주일에 진심으로 찬양을 드렸으니까 오늘은 좀 편히 쉬어도 별로 상관 안 하실 줄 믿습니다."
자, 우리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일주일치 찬양을 하루에 다 해버려도 된다고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찬양을 저축해 둘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때입니다.
시편 42편 기자는 '지난주일 증후군"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시 42:4-5).
사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지난 주일에 저는 멋지게 찬양 드렸습니다. 노래하고 크게 외치고 소고 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찬양으로 인도했습니다. 주님. 지난 주 예배는 참 영광스런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는 어찌 된 일입니까?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고 무질서해졌지요?"
혹시 하나님을 체험하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다가 감정의 깊은 계곡으로 떨어져 본 경험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경험을 의지함으로 '나는 지난 주 내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시편 기자와 같이 "오히려 나는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라고 말할 때입니다.
같은 시편에서 기자는 말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 42:2).
당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하나님을 불러 보았는데 하나님이 저만치 멀리 계신 것 같은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형제님이 이것을 "하나님의 도처은폐(Omnihiddence: 어디에나 숨어 계시다)"라도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Omnipresence: 어디나 계시다)하시지만 또 도처은폐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부터 피하실 수도 있고 나타내실 수도 있습니다. 시편 19편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연인에게는 자신을 숨기시고 또 원하시면 임의대로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넷째, 성경은 하나님을 송축하기 위하여 일찍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8). 성경은 또한 늦은 밤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찬양)하리이다"(시 119:62). (히브리어 '야다'는 감사하다' 또는 '찬양하다'로 모두 번역 할 수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은 '감사'로 번역하였다.-역주)
다윗 왕 시절의 레위인들은 하루 24시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 음악인들은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대상 9:33)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찬양드리기 위해 한밤중에도 당번을 정해서 찬양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보십시오! 그들은 어떤 자극이 없어도 하나님 찬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약의 제사장으로서 "항상 찬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부르셨습니다(히 13:15). 이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주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시 34:1). 하루 중 어느 때든지 또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모든 일이 뒤틀려 있는 힘든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일이 잘 안 풀릴 때의 처방을 다음과 같이 내렸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아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이 말씀을 현대식으로 고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제가 흔들리고 실직이 늘어나며
공산주의가 팽창하고 테러가 난무하며
차가 고장나서 아내가 시내 한복판에 묶여 있으며
의료 보험이 지금 막 끝났는데 아이의 팔이 부러졌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가식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이때가 바로 우리가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올바른 시기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감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 모든 시간이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시간이다.
1) 항상 (히 13:15)
2) 아침에 (시 59:16)
3) 종일토록 (시 35:28)
4) 계속 (시 34:1)
5) 내 평생 (시 146:2)
6) 이제부터 영원까지 (시 113:2)
7) 영원부터 영원까지 (시 41:13)
8) 즐거울 때 (약 5:13)
9) 집에서 봉사할 때, 성소에서 (시 134:1 )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옥중에서도 찬양하였다. 주님을 찬양하고 싶을 때는 물론이고 찬양하고 싶지 않을 때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분과 상관없이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다. 결국 우리는 항상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Where 찬양은 '어디서' 하는가?
▶ 시 18:1 :
▶ 시 22:22 :
⇒ 어느 곳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이다.
우리가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면 당연히 어느 장소에서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편 149:5은 집에서 누워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편 113:3을 봅시다. "해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해는 동에서 떠서 서로 지기 때문에 이 구절은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는 전지역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동쪽이나 서쪽을 넘은 그 어디까지 여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땅을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모임에서 일어나는 찬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중 가운데서 찬양할 때 기뻐하십니다. 많은 시편의 구절들이 이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대회 중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시 22:22, 25).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나(시 26:8, 12).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35:18).
-하나님이여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 소고 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따르나이다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서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시 68:24-26).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시 107:32).
우리가 회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에게는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회중 경배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모두 좋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통일성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똑같은 멜로디와 똑같은 가사로 동시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회중 찬양과 경배에는 표현의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항상 함께 일어서고, 함께 앉고, 함께 손을 들고, 함께 손뼉치고, 함께 말하고, 함께 노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행동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통일성을 유도하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종종 다양한 찬양과 경배의 표현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나라들 앞에서입니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시 96: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 40:3). 이런 구절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오직 성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만민에게 전달되고 하나님의 영화로운 찬송이 불려지며 하나님의 찬송이 불신자들과 온 세상에 선포되기를 항상 원하십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찬양들과 맞부딪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위에서 보았습니다. 그들은 '보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의지'할 것입니다!
☆찬양 사역의 성서적 배경.
1) 출 15: 1-3, 19-21 -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
하나님이 이집트 군대를 홍해에 빠뜨린 후 승리하게 하신 것을 찬양했다.
2) 대상 15:16-22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찬양 하도록 명령 했다.
3) 대하 20:20-23
여호사밧이 모압 그리고 암몬과 싸우러 나갈 때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찬양함 .
4) 행 16:25 바울과 실라가 밤에 옥중에서 찬양함.
5) 엡 5:19 에베소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
☆성경속의 음악과 찬양
최초의 노래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음악가와 음악에 관한 기록이 창세기 4장에 기록되어있다. 21절에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자의 조상이 되었으며"라고 기록된데로 최초의 음악가는 유발이다. 그는 아담의 7대손이다. 그 당시에 벌써 수금과 퉁소가 있었고 이에 맞추어 노래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볼 때 사람들은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음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과 사랑과 아름다움 등을 노래(음악)로 표현하고 위로를 받고 만족을 얻고있다. 또한 23-24절에 보면 최초의 노래가 기록되어있다. 원래 성경에는 시로 기록되어 있지만 고대 히브리어의 시는 운율이 잇었기 때문에 시들은 모두 노래로 불려졌다. 이 노래의 내용은 라멕이 사람을 죽인 후 나를 해치면 가인을 죽이는 것보다 벌이 10배나 더하리라는 잔악하고도 교만함을 노래한 내용이다.
인류의 최초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이 시의 내용이 유감스럽게도 사람을 죽이고 의기양양하게 읊은 내용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온 인류는 이 죄악의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살인, 또 그 후예들은 갈수록 그 죄악의 양상이 흉악해지고 더욱더 잔인한 방법들을 쓰고 잇으며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한번에 죽일 수 있는 무기들을 쌓고 있다.
최초의 찬송, 최후의 찬송
출애굽기 13:1-21 에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후에 모세와 이스라엘자손이 기쁨으로 찬양하는 모습이 나온다. 신약에서 최초의 찬양모습은 누가복음1:46-55 에 나타난 마리아의 찬양이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온 백성이 기다리던 구세주가 바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난다는 말을 듣고 세레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앞에서 부른 찬송이다. 그 내용은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 같은 비천한자를 통하여 잉태케 하여 복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구약과 신약 최초의 찬송은 모두 구원에 관한것이다. 구약에서는 집단적으로 찬양을 했고 신약에서는 개인적으로 찬양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구원의주 에수그리스도의 잉태함의 소식을 듣고 찬양하였다.
찬양의 동기는 바로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어야한다. 상황을 바꾸어 개인적으로 이것을 적용해보면 죄로인해 죽엇던 나를위해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나의죄를 대신지시고 돌아가셔서 나를 구원하여 주신 그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알아야 할것은 그 사랑과 은헤를 찬송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특히 젊은층에서 너무 체험적인 내용의 성가들이 많이 불려왔었다.
이것은 자칫하면 궁극적으로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을 빼버리고 내가 받은 은혜와 감격에 파묻혀 일종의 자기만족과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정도의 얄팍한 수준의 노래밖에 되지 못하는 경우가 된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노래가 새롭게 큰 힘을 가지고 한국 교회에 도전을 주고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기억해야 할 것은 구원의 기쁨과 감격과 사랑도 함께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에 보면 땅과 바다와 충만한 것, 해, 달, 별, 온 우주만물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호흡이 있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기록되어있다.
사실상 피조물이 자기 위치에서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 그자체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게 운행하며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든지 엄청난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캐년의 모습을 볼 때 자연 그 자체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온 우주만물이 곳곳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보다 어린양의 피로 주고 사신 당신의 구원받은 자녀들을 통해 부르는 찬양을 들으시기를 원하신다. 신약의 마지막 부분인 요한계시록에서도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이 세세무궁토록 부르는 찬양의 주제도 구원의 하나님과 어린양에게로(계 7:9-10)기록 되어있다.
출15:1-18, 출15:20-21 - 미리암과 모세가 애굽백성의 수장됨을 보고서 승리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삿5:2 -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왕 " 야빈"을 진멸한 후에 (4:1-4,23 참조)
룻4:14 -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잉태 됨을 기뻐하는 주변 여인들의 찬양
삼상2:1 - 한나가 그렇게 바라던 자식을 얻고 서원대로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린 후에
눅1:46 -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고 자신의 복 됨을 인하여
욥1:21 - 고난
< 시28:6; 시66:20; 시118:21 - 기도응답
시31:21, 57:10, 63:3, 66:20, 101:1 - 사랑
눅5:25-26 - 중풍병자의 치유를 보고 사람들이
눅13:13 - 귀신들린 여자의 치유를 인하여,
눅17:15 - 열명의 문둥병자 중 한 명이 돌아와서,
눅18:43 - 눈 먼자의 치유
행3:8-9 - 앉은뱅이의 일어섬을 인해, 시103:3
시98:2; 사61:10; 욘2:9 - 구원
약5:13 - 기쁨
시34:1, 71:6 - 항상찬양,
시35:28 - 종일토록, 고전14:26 - 모일때
시148, 150:6 -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
☆Who 누가 찬양하는가?
당신을 찬양자로 삼으신 하나님께 찬양 하라. 찬양은 누가 하는가? 누가 찬양에 부름을 받고 있는가?
-화려한 미사 어구를 사용하기에 능숙한 수사가인가?
-아니면 음악가인가?
그러나 찬양에 초청되고 있는 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진토와 같은 자에서부터 부한 자와 군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초청되고 있다. 이는 찬양의 조건이나 찬양에 초청될 자격이 소유나 명예나 권력에 의하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1) 토기장이 하나님께서 진토와 같은 자를 찬양에 부르심.
시편 113편은 해 돋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의 이름이 찬양 받아야 할 것
을 선포하면서 낮의 해가 내리 쬐는 그 아래 먼지와 같이 살아가는 가난한 자
거름더미와 같이 살아가는 궁핍한 자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과 같은 자들의
삶을 고치셔서 찬양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고 있다.
2)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찬양에 부르심 (시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라"
3) 하나님께서 권능 있는 자들을 찬양에 부르심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시 29:1)
(신의 자손, 영웅의 자손, 강한 자의 자손들을 말한다)
4) 하나님께서 피할 자를 찬양에 부르심(잠언 18:10)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해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즐거이 부르자"(시95:1-7)
5)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충만한 것들을 찬양에 부르심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 찌로다"(시 96:1~12)
6)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집에서 수고하는 자들을 찬양에 부르심
"여호와의 종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정에 섰는
너희야 여호와를 찬송하라" (시편 134, 135편)
7)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종들을 찬양에 부르심 (시 113: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 하라"
8) 하나님께서 주의 군사를 찬양에 부르심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기를 세우리니..." (시 20:5)
9) 하나님께서 만민을 찬양에 부르심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시 47:1~2)
시편 150편은 가장 광대하게 찬양의 종들을 부르는 장이다.
여기에는 사람만 초청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유가 찬양에
초청 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찬양해야 한다.
☆How 어떻게 찬송 할까?
1) 입과 목소리(노래)를 사용해서
-계19:1; 히13:15; 욘2:9; 시119:171-172; 시89:1; 시63:3-4; 시66:1-2; 시35:28;
시126:2; 엡5:19; 대하15:14; 시145:21
-새 노래로 - 시40:3; 시96:1-3; 시98:1; 시144:9; 시149:1
2) 악기를 사용해서
코넷(Cornets) - 삼하15:28; 대하15:14; 시98:6(나팔로 번역)
심벌즈(Symbals) - 삼하6:5; 대상13:8; 15:16,19; 16:5,42; 시150:5
하프(Harps) - 창4:21; 왕상10:21; 대상25:1; 시43:4; 71:22; 147:7; 149:3; 시150:3
오르간(Organ) - 창4:21; 욥30:31(수금으로 번역)
현악기(Ten-string lyre) - 시33:2
작은 북(Tabretis) - 사30:32(소고-탬버린으로 번역)
탬버린(Tambourines) - 출15:20; 시149:3; 시150:4(소고)
트럼펫(Trumpets) - 삼하6:15; 시47:5; 시150:3; 계18:22(나팔)
여러악기, 모든악기 - 삼하6:5; 대하5:13
손뼉을 치면서 - 시47:1
춤을 추면서 - 출15:20; 삼하6:14,16; 시30:11; 시149:3; 시150:4
3) 지혜로 찬양하라 (시 41:7)
4) 영과 마음으로 찬양하라 (시 103:1)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14장 15절) 시 103:1, 108;1
5) 전심으로 찬양하라 (시 86:12, 시 9:1)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대상 1:8) 시 9:1-2, 86-12-13, 138:1
6) 기쁨으로 (시 63:3)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시 9:2)
시 28:7, 28:7, 63:5, 100:2, 149:5 / 렘 31:7
7) 삶으로(항상) 찬양하라 (시 71:6)
8) 그 이름에 합당하게
합당하게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권위에 꼭 맞는 찬송과 헌신을 하라는 뜻이다.
9) 감사함으로
-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들인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갖추어야할 자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시 100:4
-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시 92:1) 시 147:7 / 대하 31:2 / 롬 15:9
10) 손을 들고. 손뼉을 치며. 악기로. 무릎을 꿇고. 춤과 함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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