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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의 종교와 사상-제2부 중국 철학의 태동기 ― 제자백가

수호천사1 2011. 7. 9. 17:58

중국의 종교와 사상

 

 

제 2 부 중국 철학의 태동기 ― 제자백가

주나라가 도읍을 낙읍(洛邑)으로 옮긴 때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기원 전 221년까지가 춘추전국시대이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분기 점은 진(晉)나라의 세 대부가 진나라를 한(韓), 조(趙), 위(魏) 세 나라로 나눈 기원전 403년이었다. 춘추전국은 정치적으로는 가장 혼란했 지만 학문적으로는 가장 자유로운 시기였다. 제자백가는 그 혼란 속에서 학파별로 특색 있는 사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동아시아의 사상적 뿌 리를 이루었다. 사마천은 ???사기???에 자신의 아버지 사마담이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명가, 묵가로 나누어 설명한 것을 실었고, 반고 는 ???한서??? ?예문지?에서 제자백가를 9개 학파로 나누었다.

제 1 장 유가사상의 원류, 공자

공자는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태어나 고대 문화의 집대성자이자 역사가이며 교육자로서 인(仁)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그의 사상이 담겨진 ???논어??? 20편은 근대까지 동아시아 지역 모든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다. 공자의 핵심사상인 인(仁)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안으로는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밖으로는 남과의 관계에서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공자가 6경과 6예로 제자를 가르쳤다. 6경과 6예는 공자 이전까지 귀족이 갖추어야 할 교양이었지만 공자의 평등교육을 통해 사람다움을 이 루는 보편 교양으로 넓혀졌다. 또한 ‘군자’는 공자 이전까지 귀족으로 관직에 있던 사람을 가리키던 용어였지만 그에 의해서 ‘덕을 지닌 사람’이나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의 의미로 바뀌어 쓰이게 되었다. 공자는 교육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감성에 바탕을 둔 덕성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런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이상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공자는 주나라 문물제도를 회복하려고 하였고, 그 방법으로 혈연 집단의 가족 윤리를 사회의 통치 원리와 결합시킨 정치사상을 제기하였다. 그 핵심은 덕과 예로 다스리는 덕치와 예치였다. 덕치는 혈연적 토대 위에 선 이상적인 정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각 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도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정치이다. 공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정명사상을 제시하였다.

공자의 중요 업적 가운데 하나는 고전인 6경의 정리 작업이었다. 이 일은 고대문화의 집대성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공자는 이 작업을 하면 서 옛 것을 좋아하고 숭상하는 자세와 새로운 창작보다 옛 고전을 해설하는 ‘술이부작’의 정신으로 일관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온고이 지신’의 전통을 만들었다.

제 2 장 유가사상의 전개, 맹자와 순자

맹자는 공자 사후 100여 년 뒤에 태어난 사상가이다. 그는 성선설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를 주장하였다. 그의 성선설은 선의 기준을 인간 내 면의 주관적 측면에 두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사단’을 잘 기르면 인?의?예?지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와 같은 도덕적인 마음 작용의 궁극적 근거를 하늘에 두고, 이것이 인간 내면의 ‘양지양능’이며 이를 ‘호연지기 ’로 펼쳐나간다고 보았다. 그의 왕도정치론 역시 도덕 근원인 하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인 동시에 인간의 착한 본성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천명’사상을 ‘민본’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제나라 직하학파에서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던 순자의 핵심사상은 성악설이다. 순자는 맹자와 달리 선의 기준을 외부의 객관적인 사회 상황 에서 찾았고, 인간의 자연적이고 생리적인 욕구를 본성으로 주목하여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인 사상을 전개하였다. 또한 하늘을 인간을 낳아 준 존재이거나 도덕 행위의 원천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늘로부터 분리된 사람이 하늘?땅과 대등하게 만물의 변화에 참여하는 존재 라는 ‘능참’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 같은 사상은 운명론에 대한 부정이었으며 인문정신의 극치였다. 순자는 악한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고 질서 잡힌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인간의 의지적인 행위를 제도화하자는 ‘예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구체적인 예의 제도는 성인이 만든 것 으로서 변화하는 현실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가 중요한 기준이라고 보았다. 기존의 예의 제도가 맞지 않을 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타고난 악한 본성을 극복한 후대의 임금이라고 봄으로써 현실의 군주들을 긍정하는 ‘후왕사상’을 주장하였다.

제 3 장 도가사상의 전개, 노자와 장자

노자는 ‘도’ 개념을 통하여 천지만물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하고, 인간도 그 도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유가식의 주재자로 서의 천과 인격신 관념을 부정한 것이다. 이 도를 ‘무’라고도 한다. 또한 도는 고정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운동한다. 그리고 사 물은 서로 상반되는 방향으로 운동 발전하면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도를 인식하기 위해서 인간 언어와 감각의 오류와 한계를 자각하고, 그것을 탈피하기 위하여 특유의 부정과 역설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유가의 성인과 달리 도가의 성인은 자연에 따르는 행위인 ‘무위’를 행한다. 대자연은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자생’하고 ‘자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위에는 필연에 대한 인식도 포함되며, 이런 점 에서 ‘무위자연’이라고 말한다.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은 상대주의적 세계관이 그 바탕을 이룬다.

장자는 전국시대 약소국 송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현실 사회의 모순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소요’하라고 주장한다. 현실 속에서 온 전한 삶을 유지하는 ‘양생’, 외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의 재계’와 ‘앉아서 잊어버림’은 소요정신의 바탕이 된다. 장자는 ?제물론? 편에서는 귀천도 없고 시비도 없으며 피차의 구별도 없는 만물제동의 절대평등론을 말한다. 이는 만물의 개체성과 특수성을 그대로 인정하 면서 큰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 4 장 묵가와 법가

묵자는 하층민 출신으로 처음에는 유학을 배웠지만 나중에 유가를 반대하고 새로운 주장을 세웠다. 그의 사상이 담긴 ???묵자???에는 과학 기술과 논리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집단을 이루었으며, 묵자집단은 강력한 결속력과 규율을 갖추고 일생동안 남을 위해 일하였다. 묵자사상의 핵심은 겸애와 교리이다. 겸애는 차별적 사랑인 별애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을 무차별로 사랑하라는 뜻을 지닌 정치적 평등에 대한 요구였다. 그리고 교리는 이익을 함께 나누라는 뜻으로서 경제적 평등에 대한 요구였다. 묵자는 겸애의 기준으로 ‘삼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하늘과 귀신을 끌어왔다. 그리고 ‘상동론’을 제기하여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 므로 가장 현명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삼고 그가 가진 기준을 따르면 혼란이 없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겸애사상은 장례제도?음악?운명론 같 은 유가 비판으로 나타났으며, 한 편으로는 강대국의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평화론으로 나타났다.

법가사상은 관중에서 시작하여 신도와 신불해와 상앙 세 사람에 의해서 발전하였다. 신도는 권세나 세력을 의미하는 ‘세’를 강조하고, 신 불해는 신하를 제압하는 정치적 책략을 의미하는 ‘술’을 강조하였다. 상앙은 법치주의를 의미하는 ‘법’을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책을 주 장하였다. 이 세 사람의 주장을 종합하여 법가사상을 완성한 사람이 한비자이다. 한비자의 사상은 첫째, 순자의 성악설에 바탕을 둔 인간관 을 가지고 있다. 둘째, 군주는 도덕이 아니라 ‘법’과 ‘세’와 ‘술’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옛 성인을 기준 삼을 것이 아니 라 현실의 효용성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은 입장에서 법질서의 확립과 사상 통일을 중시하면서 실용성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 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들이 주장한 법에는 군주의 무한 권력에 의존한 통치술의 의미가 담겨 있었으며, 합법적으로 독재를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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