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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의 종교와 사상-제1부 중국철학이란 무엇인가?

수호천사1 2011. 7. 9. 17:58

중국의 종교와 사상

 

제 1 부 중국철학이란 무엇인가?

제 1 장 중국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민족은 오랜 옛날 산서성에서 황하유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자리 잡고, 따뜻하면서 비가 많은 기후를 배경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이러한 지리적 배경과 기후 환경은 중국민족을 대륙․집약형 농업민족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중국문화는 가족 단위의 집약적 소생산 농업에 기반하여 생겨났으며, 현실을 중시하고, 실용을 강조하며, 경험을 높이고, 인간사에 주목하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또한 중국의 전통적인 경제구조는 가족 단위의 집약적인 방식 때문에 물질생산 수준이 낮았으며, 따라서 물질생산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지식생산 수준 또한 그 발전 속도가 느렸다. 그 위에 생산의 필수 요소인 인구의 재생산 구조까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시대마다 다른 양상을 나타내었다. 때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발전을 이루기도 하였지만, 송대 이후에는 소농 생산과 지주경제가 강하게 자리 잡으면서 근대로 넘어가기 위한 필수 과정인 상품경제의 발전을 더디게 하였다.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구조는 첫째, ‘씨족제’를 기반으로 국가와 가족이 혼합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하여 가부장권을 중심으로 형 성된 ‘효’의 윤리범주가 ‘충’이라는 국가 정치윤리범주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러한 모습이 ‘삼강오륜’으로 나타나게 된다. 둘째, 종법제를 핵심으로 하는 독특한 관료제가 정착하면서 사대부라 불리는 지식인 관료 집단을 낳았다. 이들은 지식 생산의 주체이 자 통치 행위의 주체였으며, 이데올로기의 직접적인 생산자이자 수호자로서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 셋째, 중앙집권적인 군주전제주의를 들 수 있다. 중국은 진시황이 춘추전국의 혼란을 통일 한 뒤부터 독특한 윤리규범과 관료제를 바탕으로 천자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군주 전제주의를 확립하였다.

중국 종교와 사상의 흐름은 크게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인 중국문화 잉태기는 은주(殷周)시대로서 중국문화의 기본 틀이 되는 하늘에 대한 관념과 음양오행설이 시작된 시기이다. 2단계인 중국문화 정초기는 춘추전국시대로서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 전개를 통해 중국문화의 원천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3단계인 중국문화 발전기는 한당시대로서 중국문화의 색깔이 분명해지고, 외부로부터 들어온 불교사상을 융합한 시기이다. 4단계인 중국문화 강화기는 송, 명, 청 시대로서 성리학이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는 시기이다. 5단계인 중국 문화 전환기는 근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이며, 모택동사상을 비롯하여 현대신유가 같은 다양한 사상적 모색이 나온 시기이다.

제2장 중국 종교․사상의 갈래와 흐름

중국 종교와 사상은 크게 현실의 지배 이데올로기이며 개인과 사회의 생활윤리를 제공해 준 유교, 인도에서 들어와 중국문명에 큰 충격을 주면서 추상적인 종교적 사색의 영역을 열어 준 불교, 자연과 하나가 될 것을 주장하면서 자연스러운 삶을 통해 예술적 세계를 열어나간 도교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유교의 첫 번째 특징은 하늘과 땅, 사람의 삼재(三才) 가운데 인간의 수양과 완성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이다. 두 번째 특징은 사람다움 을 달성하기 위한 윤리 도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이다. 세 번째 특징은 신이나 초현실적 존재를 거부하면서 현실세계를 중시하는 강한 사회성에 있다.

다음으로 도교의 첫 번째 특징은 유가와 달리 자연을 중시하고 인본주의를 부정한다. 두 번째 특징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덕성을 강력히 부정한다. 세 번째 특징은 모든 존재들이 평등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교의 인간 영장론을 부정한다. 네 번째 특징은 전체주의를 부정하 고 개인주의를 지향하며, 현세적이기보다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불교의 첫 번째 특징은 모든 존재가 관계망 속에 있다는 연기(緣起)적 세계관이다. 두 번째 특징은 자기 내면의 힘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능동성을 강조한 주체적 인간관이다. 세 번째 특징은 모든 사람이 해탈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평등적 세계관이다.

유,불,도 삼교는 시대마다 여러 사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하였지만 제일 먼저 사상 모색이 활발했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이다. 제자백가 라 불리는 다양한 학파와 사상가들이 춘추전국의 혼란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를 두고 갖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 속에는 도가와 유가, 명 가와 도가처럼 서로 대결의식을 보이기도 하고, 순자의 사상 속에 노장적 요소가 보이거나 묵가의 사상 속에 유가적 요소가 들어 있는 것처 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법가사상을 바탕으로 춘추전국의 혼란을 통일한 진시황은 법가 이외의 모든 사상을 통제함으로써 사상 통일을 이루려고 하였다. 하지만 진나라가 망하자마자 법가의 전제정치에 대한 반발이 한나라 초기에 도가계열의 황노사 상을 유행시켰고, 그 뒤 무제는 동중서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교 독존의 시대를 만들었다. 5경을 중심으로 한 학문 풍토는 경전 정리 작업 과정에서 경학 논쟁을 일으켜 훈고학을 불러왔지만, 한나라 말기에는 유교가 역할을 상실하면서 도교와 불교가 큰 틀로 자리 잡는다. 도교 는 고대부터 내려온 민간신앙과 통속화한 도가, 유가, 묵가, 불교 등을 받아들여 체계화시킨 민간종교인데, 특히 노자를 교조로 내세웠다. 이 무렵 불교도 일반 서민들에게 크게 받아들여졌으며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토착화하였다.

불교가 토착화하는 초기에는 다양한 전통사상을 빌려다가 불교를 이해하려는 의탁불교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서 도가사상을 중심으로 비 슷한 개념을 불교 용어와 짝을 맞춤으로써 정해진 틀 속에서 이해하려는 격의불교가 나타났다. 또 한편에서는 유교의 침체와 함께 위진현학 이 크게 유행하였다.

도교와 불교의 융성은 수당 시기에도 이어졌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오랜 기간 고통을 겪어온 민중을 무마하기 위해 민중들이 믿고 따르는 불교를 받아들였으며, 지식인들 또한 적극적으로 불교를 이해하려 함으로써 부파불교기를 거치면서 이론불교와 실천불교 양쪽에서 다양한 중국화가 시도되었다. 특히 6세기 전반에 들어 온 선종(禪宗)은 7세기 말 남종과 북종으로 나누어졌지만, 남종을 일으킨 혜능(慧能)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선종은 경전을 존중하는 교종과 달리 개별 주체의 자각적 깨달음을 강조하면서 중국불교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 다.

송나라에 이르면 유․불․도 삼교가 교섭한 결과로 성리학이 나온다. 성리학의 성립은 외적으로는 송나라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내적으로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이 컸다. 대표자인 주희는 주돈이․소옹․장재․정호․정이의 사상을 종합하여 중세 동아시아 모든 지역 의 보편적 사유체계를 이룩하였다. 그 뒤 성리학은 원나라에서 관학의 지위를 얻었고, 원나라의 학문 경향은 주희와 대립하던 육구연의 학 문과 주자학을 절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자학이 명대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교조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면서 리학에서 심학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특히 왕수인의 양명학은 인간 주체에 대한 강조를 기반으로 명대 서민문화에 상응하는 사상으 로 발전하였다.

명말청초에는 양명학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학문 경향이 등장한다. 경세사상을 제시한 황종희, 고증학적 방 법론을 제시한 고염무, 기철학적 세계관을 제시한 왕부지 등이 대표자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들어 서양 문물의 충격과 함께 근대로의 전 환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봉건제를 유지하면서 서구의 우월한 과학기술만 받아들이려는 양무파와 정치․경제의 개혁까지를 주장한 변법파가 대립하였다.

그 뒤 5.4.신문화 운동기를 통해서 사회진화론을 거쳐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근대 중국 사상가들은 중국의 진로를 놓고 끊임없이 논쟁하 였다. 프래그머티즘의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 ‘문제와 주의 논쟁’, 사회주의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 ‘사회주의 논쟁 ’, 무정부주의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 ‘무정부주의 논쟁’ 등이 그러하다. 또한 1923년에는 과학주의와 관념론 사이에 ‘과학과 인생관(현학) 논전’이 일어났으며, 1차대전 이후는 양 세계의 문화를 중국적 입장에서 다룬 ‘동서문화 논전’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1928년부터는 중국혁명을 둘러싼 역사 인식의 대립을 보여준 ‘중국사회사논전’이 진행되었다. 이 같은 흐름은 문화대혁명을 거쳐 1980년 대 전개된 ‘문화열 논쟁’과 대만과 해외 학자들이 중심이 된 현대신유가사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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