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구약의 단기선교

수호천사1 2011. 2. 9. 11:30

구약의 단기선교

 

 

먼저 선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장기선교와 단기선교를 구분하는 것이 사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진정한 장기선교사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삶의 터전을 옮겨 타지역에 뿌리내리고 살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의 능력을 계시하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 에스더, 다니엘, 요셉등과 같이 평생을 이방의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이야 말로 장기선교사의 모델이다. 반면에 단기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 자신의 삶의 환경을 떠나 제한된 시간 제한된 사역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이루어 가는 단편적인 사역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삶을 기간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정의되고 수 많은 사역자들이 참여하는 단기선교의 성경적인 모델을 굳이 찾는 이유는 성경을 통해 오늘날 단기선교의 이해와 실제적인 사역방법에 대한 교훈을 도출하고 적용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가장 귀중한 시간을 사용하여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πορευθεντε? ουν μαθητευσαντε  παντα τα εθνη)는 사명을 주는데 사용하셨다 (마 28:19). 땅위에 있는 교회와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주님의 이 지상명령(Great Mandate)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 전임선교사 (Full time missionary)로 혹은 장기선교사로서 자기들의 전 생애를 바치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준행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Park 1999b).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소명을 통해 사역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적인 관점에서 단기선교의 초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전생애에 걸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함으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구약의 단기선교 (Short-Term Missions in the Old Testament)


오랫동안 학자들은 구약성경에서도 신약의 선교와 동일한 선교를 명령하고 있는가를 고민해 왔다. 그리고 몇몇 선교학자들은 구약의 본문에서 훌륭하게 선교의 명령을 도출해 내었다. 피터스(George W. Peters)는 성경전반에 걸쳐서 선교의 원리를 지상교회와 연결하여 도출하였으며, 풀러신학교의 글라서(Arthur F. Glasser) 교수는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지상교회의 선교과제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섭렵하여 연구하였다. Larkin과 Williams는 이러한 구약의 선교와 중간기 유대교의 선교, 초대교회의 선교를 토대로 신약성경 각권을 선교에 대한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선교는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로 성경신학적인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다. 필자는 구약의 선교를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간략하게 제안하고자 한다.

선교와 시간 (Time and Mission)


단기선교의 예를 구약성경에서 찾기 앞서 선교와 시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단기선교에 대한 관점의 각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흑암과 혼돈가운데 가장 먼저 시간을 창조하셨다 (Kidner 1967:43). 이 시간 역시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져왔으며 (롬 8:19-20), 인간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스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시간의 제한을 받으며 속박된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키드너(Kidner)의 말대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마지막 순간 (in the end)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마지막 순간이 인간의 타락으로 결정된 것인지 아니면 태초 (In the beginning)에 이미 결정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 마지막 순간은 하나님의 심판과 보상의 날로 결정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선교는 바로 이 마지막 순간을 기쁨과 영광의 순간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역을 그 손으로 직접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사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생각한다면 그것이 장기사역이든 단기사역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역의 영향력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단기간 사용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에서 사역의 시간이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늘 부각되고 있다.

예기치 않은 선교사들 (Unvoluntary Missionaries)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타문화권 장기선교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이방민족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신현(Theophany)을 선포한 사람들이었다. 요셉은 비록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 미디안 상인의 손을 거쳐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지만 그의 고백대로(창 45:7,8)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요셉의 말대로 그의 이주는 이후에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열국 중에 드러나고 그 이름이 선포되기 위한 서곡(prologue)이었언 것이다.  

나아만 장군의 집에 팔려 갔던 이름도 나오지 않는 어린 계집아이 역시 아람의 군대장관이 영적으로 변화하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복음의 메신저였으며, 에스더와 다니엘 역시 평생 이방의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증거한 메신저들이었다. 이처럼 성경 속에 나오는 장기선교사의 개념은 모두 평생을 이방의 민족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교할 민족을 찾아가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이주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여호와의 능력을 선포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교사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대로 선교지에 나아가야 한다. 단기선교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장기든지 단기든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나아간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람들의 삶을 회복하고 놀라운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단기선교사로 나가기에 앞서서 깊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혹은 우리 팀이 어느 곳으로 가기 원하시는지 발견해야 한다. 영적전쟁의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의 명령없이 전장으로 나아가는 군사처럼 어리석은 군사는 없다.

전문인 단기선교 (Professional Missionaries)


둠브렐 (Dumbrell)은 성막이 첫째는 타락한 세상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회복을 세상에 선포하는 ‘계시증거의 도구’라고 하였다 (1990:147-149). 따라서 성막의 건축자체가 하나님을 세상가운데 선포하는 선교사역이었다. 실제로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를 이동하면서 주변의 많은 민족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었다.

필자는 선교로써의 성막건축 과정에서 오홀리압과 브살렐을 주목한다. 이 두 사람은 실제 이스라엘의 이동과정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장막전문가로써, 금속세공 전문가로써 성막건축을 위해 일년간 집중적으로 사역한 사역자들이었다. 그들의 사역이 실제 하나님의 영광 자체를 드러낸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성막의 건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드러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전문인 선교의 틀을 제공한다 말할 수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단기선교가 직접적으로 선교하는 일에 동역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세상가운데 드러내는 ‘계시증거의 도구’로써 아름답게 사용될 수 있다.

한 부류의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이었다. 모세로 대변되는 선지자 그룹들은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목동이나 이방의 술관장, 궁정관리등 전문적인 일을 하면서 특별한 계시의 말씀을 선포한 전문인 단기선지자들이었다.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계시의 말씀이 있기 전까지 자신의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인도하심대로 사역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교사의 자질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전문인 선교사들은 첫째 자신의 직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며 증거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든지 아니면 둘째 직업은 생계의 수단이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었다. 오홀리압과 브살렐은 그들이 가진 재능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이 땅에 드러내는 간접적인 사역을 감당한 반면 바울의 경우 후자로써 장막을 깁는 일을 하며 선교비를 마련하여 단기간 각 도시의 유대인 회당을 방문하여 그곳을 중심으로 직접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였다.

단기선교사 요나 (Jonah, the Short-Termer)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은 아니다. 요나의 경우 타문화권 이방의 니느웨 성에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타의적인 선교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고 다시스로 도망하는 배에서 심한 풍랑으로 회개하고 깊은 물 속으로 던져졌다.

삼일간 물고기의 뱃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소망 없이 우상가운데 죽어가는 자라도 여호와를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욘 2:4,8-9) 니느웨로 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나의 사역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걸어서 삼일길이나 되는 큰 성을 하루동안만 돌며 복음을 선포하였지만(욘 3:4) 좌우를 분간치 못하는 십 이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욘 4:11) !

요나의 사역이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요인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지시대로 사역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선교현장에서 집단개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인협력의 역사일 것이다. 반면에 단기선교가 효과가 없다면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지시대로 사역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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