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회복을 위하여
20세기에 한국에는 소위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품고 성취하기 위한 드리머들이 대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갔다. 21C에 들어서며 중앙 아시아에도 "아메리칸 드림"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코리안 드림"도 있다. 그것을 소망하는 드리머들이 미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건너가고 있다. 그들이 도착한 땅이 비록 그들이 그려왔던 낙원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의 꿈이 성취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중앙 아시아에 "아메리칸 드림, 코리안 드림"을 더욱 불어넣고 있다. 그 드림은 성공과 신분
상승을 열어주는 황금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반면 21C에 들어서며 믿음의 사람들을 더욱 설레게 하는 거대한 드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크로드 드림"이다.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을 약속하는 황금 열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축복과 회복을 의미하는 "약속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의미한다. 실크 로드의 하나님의 나라로의 온전한 회복을 바라는 자들이 21C의 실크로드 드리머들이다. 실크로드를 향한 소망에 불타는 실크로드 드리머들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실크로드로 달려가 땅을 분배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생명의 씨를 뿌려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회복하는 순례의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은 바로 마지막 세기의 하나님의 대대적인 회복을 의미하는, 21C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이다.
오늘도 실크 로드에는 이 드림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들의 땀이 뿌려지고 있다. 분배받은 땅에서 그들이 누리는 기쁨은 씨를 뿌리는 '눈물'을 능히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크로드 드리머의 영광과 기쁨은 이 땅에 있지 않다. 사람들의 찬사나 동의에 전혀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하늘의 시민들이다. 그들은 오직 한 목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회복"의 위대한 목적을 위하여, 각자 부르심 받은 위치에서 성실하고도 용기 있게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실크로드 회복을 위한 분명한 목표
실크로드의 회복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하나님의 교회를 실크로드상의 모든 민족과 도시, 그리고 마을에 가득 개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크로드에 하나님의 교회로 넘치게 할 때 대대적인 실크로드의 회복이 성취되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체계적인 교회 개척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일회성의 대중전도(Mass Evangelism)는 실제로 교회 성장에 효과적으로 기여하지 못하였다고 역사적인 자료로 증언하고 있다. 교회 개척이란 절대적인 미션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21C 실크로드 사역의 관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기도 전도 (Prayer Evangelism)를 통한 교회 개척
에드가르도 실보소는 남미에서의 그의 사역 경험을 통하여 기도와 전도의 효과적인 연합 사역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 한 지역을 설정한 후 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군사적인 중보 기도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다. 지역과 민족을 위하여 주야로 그들은 기도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그들의 활동은 기도와 회개와 화해의 시도들이다. 중심의 기도 센타를 중심으로 도시의 각 지역에 형성된 기도 세포들 (Prayer Cell)에서 전 도시를 향한 전략적인 중보를 통한 회복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에드가르도 실보소는 실제로 한 도시를 회복하기 위하여 600개 이상의 기도 세포를 네트워크 하여 대대적인 사역을 전개하였다. 이런 대대적인 기도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모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활동을 강력하게 전개하는 것이다. 마치 기도와 말씀으로 온 도시를 가득 채우려는 것처럼 열심을 가지고 순회 전도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물론 영적 도해와 영적 전쟁의 개념으로 기도 운동이 전개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의 제안은 실크로드 현지에 충분치 않은 기도 세포들과 전도자들을 어떻게 전 지구촌의 교회 공동체의 자원으로 대체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연합 기도 전도 (United Prayer Evangelism)를 일으킬 수 있는가가 실크로드 회복의 관건임을 제안하고 있다.
2. 토착 교회 (Indigenous Church)의 개척
실크로드 민족이 문화적인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토착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교회 개척 운동을 확산할 수 있는 키(key)이다. 미전도 지역의 하나의 대형 교회가 전체적인 교회 성장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실크로드에 소수의 인위적이고 이질적인 문화의 대형 교회가 아닌 쉽게 개척과 확산이 가능한 토착적이고도 현지인에 의하여 개척되는 토착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미션이다. 바로 탄드르(중앙 아시아의 전통 빵을 굽는 곳)에서 바로 나온 뜨끈뜨끈한 빵을 실크로드 민족에게 주는
것은 그들을 기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우리 식의 쌀밥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가능은 하지만 전체 민족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회 개척 운동을 일으키기 어렵다. 토착적인 민족 교회가 실크로드 현지인에게는 민족연합교회(International Church)보다 접근이 분명히 쉽다. 지배 민족이었던 러시아 문화와 언어로 드리는 예배에 민족의 다수가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 환상에 불과하다.
만일 실크로드 민족의 대대적인 회복을 기대한다면 토착 민족 교회의 확산이 불가피하다. 한국 민족은 이것을 이해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일본말과 문화로 드리는 예배에 한국 사람이 일부는 참여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람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미주 지역 등의 이민 사회에서 한국 사람은 한국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교회를 찾아간다. 문화와 언어는 민족 정서의 고향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민족 토착 교회와 타민족 교회간의 연합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 성숙함과 하나님의 역사로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이고, 실제로 현지에서 실크로드 민족교회와 소수민족 교회의 연합은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3. 교회 개척 운동의 확산
실크로드의 교회 개척은 마치 우물에서 물이 계속 샘솟아 나오듯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운동 개념이다. 전체 그림을 그리며 각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 연합하여 어떻게 하면 새로운 미개척 지역을 공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교회는 교회를 낳고, 그것은 건강한 교회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향하여 사역하셨다. 그는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는 또 다른 마을에 가기 위하여 멈추지 않고 행진하셨다. 그의 교구는 온 이스라엘이었다.
바울은 그의 사역을 안디옥에서 소아시아로,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평생을 통하여 확장해 나갔다. 그는 에베소에서의 2년 사역을 마치고 단언하기를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19:10>고 하였다. 그리고 로마를 향한 선교의 열정을 불태웠다. 교회 개척은 교회가 교회를 낳고, 그 교회가 또 다른 교회를 낳는 영적 출산 운동이며, 계속 솟아오르는 신선한 우물의 샘물 운동이다. 이 목표에 마지막을 맞추고 교회 개척 사역을 지속한다면 마침내 실크로드의 회복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4. 실크로드 사역자의 당면한 목표
실크로드의 회복을 위하여 사역자의 당면한 목표는 실크로드의 믿는 자들의 숫자를 어떻게 폭팔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숙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목자(Pastor)들의 사역이 매우 중요함과 동시에 전도자들의 활발한 활동을 어떻게 배가시킬 수 있느냐가 주요 요지이다. 이를 위하여 더욱 많은 사역자들이 실크로드의 각 지역에 충분히 배치되어야 하고, 단기 사역자들을 통한 임팩트 사역을 더욱 가속화 시켜야 한다. 사역팀들도 이에 맞게 기능에 따른 효과적인 배치로 개발시켜야 한다. 교회 개척팀은 전체 그림을 그리며 기능을 촉진시켜갈 수 있는 팀 리더와 5중 은사의 전문성을 가지고 넓고 깊은 사역을 담당하는 은사적인 사역자들과 마지막으로 교회 개척자들이 신분을 확보하고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우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프로젝트 사역자의 균형 있는 연합이 매우 중요하다.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집중하여 총력전으로 실크로드 지역의 회복을 위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해야 할 때가 왔다.
5. 교회 개척 난제의 극복
각 지역의 사역팀들은 연합과 전략의 개발을 위하여 지속적인 연계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전체 사역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각 나라와 민족에서 온 사역자들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비전을 함께 나누며 우리는 시행 착오를 줄이고 더욱 가속화된 회복을 볼 수 있다. 현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교회 개척의 난제로는 현지 사역자 고용 문제이다. 재정 지원이 현지 교회의 헌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국 사역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그 액수가 일반적인 현지인의 월급보다 훨씬 많다는 데 또 다른 미묘한 문제가 있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리더십은 순수성을 유지할 수 없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를 강하게 전해야 하는 메시지의 투명성을 잃게 된다. 사역을 빠르게 진행할 수는 있지만, 고용된 현지 사역자의 리더십은 전체 민족을 향한 리더십으로 성장하기에 오히려 그 재정 지원은 방해가 된다.
그리고 이런 모델은 제한적인 외국인 사역자와 재정 지원의 틀에 묶여 있기에 대대적인 교회 개척 운동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10명의 현지인이 십일조를 하면 1명의 전임 사역자를 세울 수 있다는 산술적인 계산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고 이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또 하나의 난제는 현지 문화로부터 이탈된 현지인 사역자를 키우는 것이다. 외국인을 동경하는 현지 문화에서 외국인과 함께 사역하는 현지인이 자연스럽게 더 개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적인 문화의 현지 사역자를 키우는 것은 현지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자기 문화를 버린 얄팍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동양의 문화는 물질에 가치를 두지 않고, 그 사람의 내적인 소신과 민족에 대한 존경심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현지 사역자들이 현지 교회와 현지 민족 사회에서 존경받는 리더로서 성장하도록 우리는 깊은 배려와 함께 그들을 도와야 한다.
6.전 지구촌적인 연합 운동
이슬람권의 은밀한 교회 개척 사역은 비성경적이고, 종국적으로 비효과적이며, 실제로 비현실적이다. 사도행전의 사역은 철저히 공개적이며 도전적이다. 고난에 맞서 나아가는 모습이다. 은밀한 사역은 결국 이슬람권의 교회 개척 사역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일정한 지역에서 은밀한 모임이 되는 경우,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 모임의 정체는 드러나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의 한시적인 은밀한 교회 개척 사역을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상화, 공개화 시켜 나갈 것인가? 만일 공개적인 사역으로 올라오지 못하면 실크 로드의 회복은 요원한 것이다. 만일 내부적인 힘으로 공개화, 지상화가 일어나기 힘들다면, 지구촌 교회공동체의 힘으로 함께 정사와 권세의 닫힌 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순환적인 지구촌 교회 구조의 회복이 절실하다. 마지막 세기에 시공간을 초월한 영적 전쟁과 중보의 기름 부으심이 지구촌 교회 공동체 가운데 부어지고 있다. 실크 로드 예수 행진은 바로 굳게 닫힌 빗장을, 전 지구촌 공동체의 연합과 믿음으로 열어 젖히기 위한 메가톤급 임팩트 사역이다. 이런 사역이 과거에는 가능치 않았으나,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말미암아 마지막 세기에 가능하게 되었다. 만일 1세기에 활동했던 사도들이 21C에 사역했다면 이보다 더한 수퍼 메가톤급의 사역을 전개하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온 열방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의 전 지구촌적인 표출이기도 하다.
이상의 실크로드 회복을 위한 전략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전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이 전략을 어떻게 수행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분명한 대의가 있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함에도 이를 수행하는 통로가 온전치 않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음이 또한 분명하다.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외적인 대의에 자기를 치장하는 자들은 진정한 실크로드 회복의 주역이 될 수 없다.
실크로드 회복에 참여한 사역자들을 위한 수칙
거룩한 대로를 가고 있는 21C의 실크로드 드리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수칙들은 과연 무엇인가? 회복의 전략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 실크로드 회복 여정의 좌표를 찍어 봄이 필요하다.
1. 제 1 원리 : 죽음의 원리
모세는 죽었다. <수1: 2> 민족의 범죄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생을 마쳤던 모세의 죽음의 시점은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크다.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는 모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9> 모세의 존재를 제외하고 출애굽과 가나안 땅 정복을 생각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앞에 모세의 죽음은 최대 시련이었다. 모세의 죽음은 바로 이스라엘의 죽음을 의미하였다. 모세를 잃은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하였던 지도자 없이 이제 요단강을 건너가 역사적인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여호수아는 아직 평범한 두령에 불과하였다.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를 보며 이스라엘의 눈은 모세라는 지도자에게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모압 평지에서의 30일간 애곡의 좌절과 절망의 터널을 나온 후 그들은 여호수아를 격려하는 고백으로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믿음과 헌신을 다짐하였다.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수1:17> 이 믿음의 고백으로 이스라엘은 죽음의 터널을 뚫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전쟁을 위하여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죽음은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이다. 죽은 자는 염려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고집스런 자기 의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죽음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가장 직접적인 지름길이다. "죽음"을 아는 자들이 종국적인 실크로드의 드리머가 될 수 있다. 실크로드는 그 발에서 신을 벗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지고 가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거룩한 대로이다.
21C에 들어가며 우리 실크로드 드리머들은 다시 한번 죽어야 한다. 날마다 죽어야 한다. 그 죽음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의 부활만을 기대하는 죽음이다. 세속의 어떤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죽음이며, 삶의 우상인 자아로부터의 완전한 죽음이다. 그리고 모든 외부적인 상황으로부터의 죽음이다. 좌절이나 염려로부터의 죽음이다. 하나님 이외의 의지하는 것이 있는 자는 언제나 불안하고 위태롭다. 위태로운 불안을 갖고 있는 자, 그리고 소망과 기쁨이 없는 자도 다 죽어야 한다. 십자가의 죽음의 터널을
통과한 자만이 진정한 실크 로드의 드리머들이다.
2. 제 2 원리 : 믿음의 원리
모세는 치밀하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도해(Mapping)를 실시하였다. 거민의 강약과 다소, 거하는 땅의 호불호, 성읍이 산성인지 진영인지,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 그 땅의 실과를 12명의 엄선된 각 지파의 족장들이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민13:17-20> 이런 객관적이고 주도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패하였다. 그들의 완벽하고도 정확한 정보 안에 무엇인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는 단지 2명의 무명의 정탐꾼 소년들을 가나안 땅, 특별히 여리고 성을 탐지하도록 파견하였다. <수2:1; 6:23> 여호수아는 모세와 달리 아무 객관적인 조사 항목을 주지 않고 보내는 아직 미완성의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그는 정탐꾼을 보내기 전에 "삼 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수1:11>이라고 공포하였으나, 실제로 요단을 6일이 지나서야 건너게 되는 초기 리더십의 미숙함을 보이기도 하였다.<수3:2> 두 명의 정탐꾼은 여리고 성에 들어가 바로 발각되어 창녀였던 라합의 집에 급히 숨어 들어가게 되었고, 두 정탐꾼은 라합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수2:9>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이것이 정탐꾼이 수집한 유일한 자료였다. 정탐꾼들은 바로 산으로 도망하였다가 사흘을 유한 후 여호수아에게 돌아와 라합의 말을 전해 주었다.
그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는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수2:24>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여리고 성중에서 객관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기생의 증언과 라합의 말만을 가지고 와서 전했던 너무도 불성실한 두 명의 정탐꾼, 그리고 그 부실한 자료를 가지고도 결론을 내리고 확신을 갖게 된, 한 민족의 지도자라고 여기기에는 황당하기조차 한 아직 미완성의 지도자 여호수아 -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이다. 믿음은 객관의 영역 위에 존재한다. 믿음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열린 체계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믿음은 일반적인 법칙과 경험이 때로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무력화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무지에 비하면 이성은 분명 좋은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나 믿음은 그 이상의 최고의 것이며 지고의 존귀한 것이다. 때로는 믿음은 치명적인 미완성과 무지의 결함을 완벽하게 보완해준다. 믿음이 결여된 현실주의자보다 믿음에 차 있는 황당한 드리머가 더 온전하다.
실크로드의 드리머들은 믿음에 가득 차 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며, 사막에 마침내 대로를 평탄케 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 <사40:3> 실크로드 드리머들은 오늘도 골짜기를 돋우며, 산들을 낮게 하고, 고르지 않은 곳을 평탄케 하며, 험한 곳을 평지로 만들어 내고 있다. 때로는 지쳐 주저앉고, 상처 난 손 발을 싸매며, 가야할 멀고 험난한 여정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같이 "곧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사40: 5>고 한 여호와의
말씀에 믿음으로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발은 척박한 광야와 사막에, 그러나 그들의 가슴과 눈은 곧 나타날 여호와의 영광에 깊숙이 박혀 있다.
3. 제 3 원리 : 성결의 원리
여호수아는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고 이스라엘에 명하였다.<수3:5> 그리고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의 말에 그대로 행하였다. <수 5:15> 신을 벗고 거룩하게 구별된 여호수아는 거룩한 여호와의 군대 장관과 함께 여리고 성을 정복하였다. 이스라엘과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졌다. 그러나 여호와께 바친 물건을 훔친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아이 성에서 패배하고 백성의 마음은 물같이 녹아 버렸고,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절망에 빠졌으며, 여호와의 크신 이름은 훼손을 당하셨다. 성결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함께 잃어 버렸다. 이스라엘은 성결을 버림으로 자기를 함께 버렸다. 아간의 범죄를 향한 이스라엘의 분노는 곧 죄를 향한 여호와의 분노였다.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극렬한 분노는 아골 골짜기의 돌무더기를 보며 겨우 가라앉았다. 아이 성을 다시 정복한 후 이스라엘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돌에 율법을 기록하고, 모세의 명한 모든 율법을 온 회중 앞에 낭독하였다. <수8:30-35> 성결의 회복을 위하여 죄를 향한 분노와 화목제의 희생, 말씀의 회복의 수순을 밟아갔다.
실크로드 회복은 가나안 전쟁만큼이나 하나님의 뜻이며,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실크로드 선교가 하나님의 뜻인지를 묻는 것은 참으로 우매한 질문이다. 실크로드 드리머가 되어 순례의 길을 떠남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길이요, 진실로 옳은 길이다. 그러나 실크로드 드리머들은 항상 아이 성 사건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스라엘은 죄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고, 아이 성을 치기 전에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에 그것을 드러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전쟁에 나섰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가나안 정복이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올라갔으나, 그들의 죄는 이스라엘로 어떤 여호와의 긍휼과 도우심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 스스로 죄에 대한 판단자와 심판자가 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신의 죄성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악을 선하다고하고, 선을 악하다고 한다. <사5:20>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죄의 정도를 알려 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이다. 여호와께 있는 것은 의의 태양 앞에 완전히 노출되는 것이다. 우리는 죄의 고백과 점검에 있어서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맡겨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죄라도 감추어지거나 위장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소멸하시는 불이시다. 스스로의 힘으로 통회하는 마음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참된 회개를 놓치게 한다. 진정한 회개는 인위적인 모든 노력을 버리고,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고, 단지 주님께서 할당해 주시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따라서 실크로드 드리머들도 죄를 미워해야 한다.
날마다 자기를 돌아보아 여호와께 성결을 유지함은 실크로드 회복이라는 대의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며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자아는 불결함의 근원이다. 따라서 성결의 유지는 온전한 회개의 삶과 하나님과의 연합을 날마다 구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실크로드는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는 거룩한 길이다. <사35:8>
4. 제 4 원리 : 하나님 임재의 원리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1: 8>
주야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전략 이전에 존재의 목적이다. 존재의 목적을 상실한 자는 거룩한 곳을 범할 수 없다. 실크로드에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것은 곧 실크로드에 하나님의 임재를 성취하는 것이다. 온전함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말씀과 묵상, 기도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항상 우리의 지혜와 상상으로 멀리 날아가는 성향이 강하다. 말씀으로 생각을 잠재워 주님께 조용히 나아가야 한다. 말씀을 읽음으로 생각을 외적인 것으로부터 존재의 깊은 곳으로 돌이켜야 한다.
우리의 존재는 그 깊은 곳, 곧 하나님의 지성소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고요하고 잠잠함이 진정한 안식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로잡으심이 진정한 능력이다. 이외의 어떤 것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구하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마음이 충만할 때, 우리는 순결한 사랑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단지 주님뿐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말씀드리고 삶을 통하여 보여 드려야 한다. 우리의 삶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그의 뜻임을 절대적으로 신뢰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겸손하시다. 그는 외치거나 들레지 않으시며, 상처를 받으시며, 슬픔을 당하신다. 그래도 성령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다 참아내신다. 우리가 그의 임재 앞으로 돌아올 때까지 인내를 가지시고 기다리신다.
그는 우리 안에서 십자가를 지시며 자기 부인을 몸소 보이시고 계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는 여전히 고난의 길을 가고 계시다. 십자가에 달린 자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그를 위로할 수 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주며,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체험하게 된다. 예수님께 포기하고 완전히 맡겨진 삶을 살아가는 경건을 소유한 자들이 실크 로드의 회복의 진정한 주역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어느 누구에게도 주기를 원치 않으시기에, 거룩한 통로를 통하여 실크 로드에 임하실 것이며, 그가 오셔서 보수하시고 회복하실 것이다.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는 실크로드에 채우고 싶어하시는 것이 있다. 골고다 언덕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과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하게 불어닥치는 성령의 바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피를 제단의 위와, 주위와, 밑에, 주변 땅 사면에, 옷에, 그리고 성막 앞에서 7번 뿌리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채찍에 맞으심으로 그의 피를 예루살렘에서 쏟으셨다. 그 상처는 피와 함께 엉켜 붙었던 그의 옷을 벗기는 과정에 피 딱지가 뜯기며 다시 한번 출혈되었다. 뜯긴 상처에 홍포가 입혀졌다. 그리고 모욕을 마친 후 다시 홍포를 벗기고 그의 옷을 입히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상처는 뜯기며 출혈되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거칠게 씌워짐으로 그의 피는 그의 머리를 타고 흘러 내렸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골고다의 여정 중에서도 더운 날씨와 무거운 십자가로 인하여 흘러내리는 땀으로 인하여, 그의 머리와 등에서는 출혈이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으며, 그 피는 온 거리에, 그리고 그와 부딪혔던 자들에게 뿌려졌다.
골고다 언덕에서 그의 두 팔과 두 다리에 박힌 못은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과정에서 그의 팔과 다리의 핏줄을 다시 한번 찢고 터트리며 모든 피를 쏟도록 출혈을 일으켰다. 그의 피는 사정없이 그 제단 주위와 위, 아래, 그리고 사면을 흐르며 흥건히 적셔 내려갔다. 그의 영혼이 떠난 후 마지막 7번째로 옆구리에 창이 박히며 그의 마지막 피가 물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그의 십자가는 그의 피로 완전히 범벅이 되었다. 그의 이마와 등, 양팔과 양다리, 그리고 옆구리로부터 출혈된 피로 말미암아 그의 몸은 피 자체였다. 이렇게 제단과 성막에 흥건히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열방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극렬한 진로를 가라 앉혔다.
우리는 실크로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게 하는 거룩한 통로로 부르심을 받았다. 골고다로부터 실크로드에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이 가득 흐르면, 실크로드를 향한 하나님의 극렬한 진노가 가라앉게 될 것이고, 사단은 더 이상 구류하지 못하고 실크로드를 내놓을 것이다. 그러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땅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흐를 것이다. 그 생명수의 강으로 인하여 실크로드가 소성하면, 성령의 강한 바람과 함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의 나라에 임하신다.
실크로드는 사단의 손에서 다시 원래 주인이셨던 하나님께로 회복되며, 천군 천사의 찬양과 함께 죽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시게 된다. 우리는 임하시는 삼위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실크로드에서 곧 보게 될 것이다.
< InterCoop 강요한 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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