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재건 및 선교전략
김진광 목사
Ⅰ. 서 론
1. 문제 제기
북한 선교와 통일 문제에 대한 진보진영의 교회와 보수진영 교회의 입장차이는 실로 컸다. 1980년대의 통일운동을 주도해 온 진보진영 입장은 북한선교는 곧 통일이라는 논리하 에 선교란 평화와 정의의 실현이며, 남과 북이 화해하여 평화를 이룩하는 분단극복 자체로 보았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통일 우선주의적 입장에 있었다. 반면에 보수진영은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북한선교이며, 북한에 교회를 재건하는 것은 선교의 중심적인 목표로 보았다. 그러나 북한은 극도로 폐쇄되어 있었고, 자유로운 왕래가 막힌 상황에서는 북한에 선교하고 무너진 북한의 교회를 재건한다는 주장은 몽상적이고 비현실주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고,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된 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에 들어서 동구권의 붕괴와 중국과 소련의 개방은 남북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와 경제교류와 남북한 교회간의 만남, 여러 가지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던 것이다. 황장엽 씨 이후 북한주민들의 탈북의 물결과 북한동포돕기운동, 남북적십자사 중심의 이산가족상봉운동, 금강산관광, 나진선봉지구와 의주특구에 이은 개성공단의 개방과 입주, 남북정상간의 만남과 햇볕정책, 4자 및 6자회담 개최 등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감과 준비의 시대적 요청을 한층 더 느끼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남북 기독교 지도자들은 피상적이지만 상호방문 하여 통일과 복음화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한편, 독일통일의 경험에서 통일을 이룩하면 민족화합과 정의와 평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진보주의적 입장의 선교론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통일이 민족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작이라는 시각이 강조되었다.
통일이 우선이냐 북한에 허물어진 교회를 재건하는 선교가 우선이냐 하는 논의는 점차 그 간격이 좁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북한교회를 재건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은 통일에 관계없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라는 것이다. 단지 통일의 변수에 따라 그 방법과 전략은 달라 질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기독교통일정책에 대한 논의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선교와 통일간의 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함께 보조를 취하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과거에 몽상적인 일로만 여겨졌던 북한교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각 교단별로 일어났고,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북한 교회 재건의 논의를 한 곳으로 모으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북한교회재건은 북한동포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과거동양에서 가장 복음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지역, 그러나 지금은 가장 복음의 불모지인 북한에 복음을 전하고 동포를 제자로 삼는 것이다. 북한교회재건이라는 것은 북한지역에 이미 있었던 외형적인 건물과 시설을 재건축한다는 의미에서의 개축 외에도 교인들을 불러 모으고 신앙활동을 재개하며 교회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기능적 복원과 회복을 총괄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재건’이란 있었던 교회를 다시 세우는 것과 동시에 총체적인 복음 전도운동이다. 북한에 있는 동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통일에 관계없이 준비하고 수행해야 할 시대적 요청이라 볼 때, 북한교회 재건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맡기신 책임이자 의무이다.
2. 연구방법 및 범위
이 연구는 이러한 요청 하에 있는 한국교회가 북한교회 재건을 위하여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 것인가 하는 논지 아래 글을 기술하고자 한다. 북한교회재건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북한체제의 특성과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정책을 아는 작업은 필수적인 것이다. 북한이 앞세우고 있는 조선기독교연맹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재 공개적으로 드러난 교회를 진정한 교회로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북한교회를 재건해야 할 대상과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북한교회 재건에 대한 방향과 지금까지의 추진되어온 재건현황을 살펴보고,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제 견해에 대하여 그리고 해결해야 될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겠다. 어려움이 있다면 재건을 주장하는 입장에서의 글은 몇 편이 있으나, 그동안 재건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고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진보주의적 입장에서는 글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에서 본 글은 먼저 2장에서 북한의 기독교실태를 논의하고자 한다. 해방이전 북한 교회의 역사와 해방 이후 북한의 기독교정책을 살펴보고, 3장에서는 북한교회 재건정책에 대해서, 재건의 의미와 시기에 대하여, 또 재건의 주체와 방법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제 4장에서는 각 교단과 선교단체, 그리고 연합기관인 한기총 북한교회재건위원회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북한교회 재건계획과 현황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5장에서는 마지막으로 북한교회 재건을 위하여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와 대안을 중심으로 글을 기술하고자 한다.
Ⅱ. 북한의 기독교 실태
1. 해방이전 북한의 기독교
북한지역은 기독교가 남한지역보다 먼저 전래되었다. 한국 개신교 복음의 수용은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 발을 들여 놓기 전에 한국인에 의해 주체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1884년 정식으로 선교사가 입국하기 그 이전인 1832년에 개신교 최초로 황해도 장산곳에 구출라프가 처음 방문하였고, 윌리암슨에 이어 토마스 목사는 평양 대동강변에서 순교하는등 한국을 향한 선교사들의 헌신도 무시할 수는 없다. 1884년 알렌과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러등 정식으로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에 북한지역에는 이미 성경이 번역되어 일부 보급되어 복음을 받아들여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1882년에 만주에서 로스가 번역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권서들에 의해 의주와 평양, 그리고 황해도에 들어와 있었다. 언더우드가 의주에 갔을 때 세례받기를 원하는 신자 백여 명을 보았다고 했다. 선교사들은 1887년 이후 북부지역을 순회하면서 세례를 베풀고 선교지부의 설치를 준비하였다.
일찍부터 각 교파 사이에는 선교지역 분할과 협력이 논의되었다. 장로교의 각 선교부 사이에서는 물론 장로교와 감리교 사이의 선교지역 분할협정이 1983년부터 논의되었고, 1909년에 장로교 4개 선교부와 감리교 2개 선교부 사이의 공식적인 분할협정을 맺었다.
북한지역의 선교는 1890년 초부터 본격화되었다. 평양에는 1893년부터 선교사 마펫(S.A. Moffett)과 리(G. Lee)가 상주선교사로 활동하였고 북감리교도 같은 해 홀(W. J. Hall)을 상주선교사로 임명하여 의료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발발은 복음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지역에 선교기지를 구축한 각 교파들은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되어 이 지역의 교세는 크게 증가하였다.
일제는 강제 점령 후 그들의 종교정책을 식민통치에 유리한 방향으로 회유, 이용하든가 아니면 탄압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특히 구한말부터 국권회복에 주력했던 기독교는 애국적인 민족적 성향으로 인해 일제의 극심한 탄압과 간섭을 받았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였으며 조직화되었다. 1907년에 독노회를 조직한 장로회는 1912년에 평양에서 총회를 조직하였다. 1918년 조선예수교 장.감 연합협의회도 조직되었다. 자립과 자율을 강조한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한국교회의 기초를 튼튼히 해주었다. 1907년에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은 한국교회에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다 주었다. 이후 5년간 평양지역은 20배의 성장을, 전국의 교인 수는 3배의 성장을 기록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교회수와 신자수도 들어나 통계에 의하면 대략 장로교인 16만 명, 감리교인 3만 명, 여기에 다른 교파까지 합하면 20만이 넘었다.
3․1운동에서 기독교는 다른 어느 종교보다 더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북한지역에서도 역시 그러했다. 평안북도, 함경도 등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의 독립선언식과 시위는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교회는 일제의 주목을 받아 그 핍박과 피해가 실로 컸다.
북한지역에서 기독교의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남지방보다 이북지방이 기독교가 일찍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북지방에는 남쪽 사회와 같은 계급의 구별이 없고 진보적이고 종교적인 면에서도 구속이 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소지주, 자작농, 상공업자들이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었고 교육열이 뜨거웠다. 반면에 자유와 독립의 추구욕은 강하게 일어났으나 정치권에서는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그들의 갈증을 축여주는 역할을 감당하였다는 것이다.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정도로 평양과 선천은 복음이 왕성하였고, 평안남북도 황해도는 남한 어느 지역보다 기독교가 성한 곳이었다. 특히 선천은 인구의 반 이상이 기독교인이었다. 주일날은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으로 애초부터 장이 서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남의주나 용천군 주변은 용천의 양당교회를 중심으로 10마일 안에 총 3000명의 신자를 가진 20여 개 교회가 있었다.
1930년대에 교회가 겪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신사참배 문제였다. 일제는 조직적으로 교회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는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게 되어 신사참배를 가결하게 되었던 것이다. 각 교단과 총회는 일본의 정책에 순응하여 어용화된 기구 노릇을 하였다. 물론 많은 교회의 교인들이 신사참배 허용에 반대하면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수난과 탄압을 당해야만 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킨 주기철, 이기선, 채정민, 최봉석, 김의창, 방계선, 오윤선, 안이숙씨 같은 신앙인들이 북한 지역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
1940년 주미영사 마쉬(Marsh)는 선교사들에게 완전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려 그해 219명의 선교사가 본국으로 귀환했고, 1942년 6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99명의 선교사들이 부산을 떠나게 됨으로 한국교회는 선교사라는 보호막을 잃어버리고 더 극심한 간섭과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7월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교단에 속하지 않은 교역자들은 투옥되거나 강단에서 추방되었다. 일제하에 남아있는 자료에 의하면, 1942년도에 북한지역에 있는 교파별 지역교회 수는 다음과 같다.
북한 지역 개신교 주요 교파별 교회당 분포(1942)
교파 |
황해도 |
평 남 |
평 북 |
함 남 |
함 북 |
소 계 |
전 국 |
교파내비율 |
장로교 |
369 |
404 |
494 |
183 |
98 |
1548 |
3245 |
47.7% |
감리교 |
130 |
106 |
36 |
12 |
4 |
288 |
868 |
33.2% |
성결교 |
9 |
8 |
9 |
21 |
10 |
57 |
200 |
28.5% |
구세군 |
9 |
3 |
1 |
6 |
3 |
22 |
109 |
20.0% |
안식교 |
12 |
41 |
5 |
14 |
7 |
79 |
189 |
41.8% |
동아기독교 |
0 |
0 |
1 |
2 |
7 |
10 |
30 |
33.3% |
합 계 |
529 |
562 |
546 |
238 |
129 |
2004 |
4641 |
43.2% |
전국 비율 |
11.4% |
12.1% |
11.8% |
5.1% |
2.8% |
43.2% |
100% |
|
* 조선총독부, 조선통독부 통계연보, 1942년도
북한지역에 6.25전쟁 이전에 교회와 신자의 수는 어느 정도였는가? 자료와 통계가 부족하여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946년 기독청년면려회는 2천 기독교와 30만 성도, 1947년 5월 기독 청년면려회 서북연합회는 기독교인수를 35만 명으로, 1947년 6월 기독청년 면려회 북조선연합회는 2350교회 2500교역자로 발표하고, 같은 해 재남이북기독교연합회는 기독교인을 30만 명이라고 했다. 한기총 북한재건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 3040의 교회와 소재가 발굴되었다고 주장한다.(한기총 자료) 그러나 아직까지 해방 무렵의 북한교회수와 기독교인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그러므로 계속 발굴하고 보완해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2. 북한의 기독교 정책과 현황
해방 이후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구소련의 지원하에 정권을 수립하고자 했을 때 이를 반대한 인사의 대부분은 기독교인이었다. 북한지역에서의 기독교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으며 이를 처리하지 않으면 공산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기독교단의 단결과 화합을 방해하고 개인의 신앙생활 탄압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기독교정책이 갖는 기본원칙은 기독교의 존립기반 자체를 청산하는데 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기독교인의 제거와 기독교단체의 활동금지가 북한정권의 진정한 의도였다고 할 것이다.
정치기반이 확고히 수립되지 않은 초기에는 기독교 활동을 제한하는 정책을 전개하였다. 먼저 기독교단체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려 제반 활동에 필요한 경제적인 입지여건을 박탈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던 것이다. 1964년의 토지개혁으로 15,195정보를 무상으로 몰수 하였으며 1948년에 단행된 중요산업 국유화정책 시행시에는 종교인과 기독교단체가 운영하는 기업재산 일체를 몰수하여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했던 것이다. 1946년부터는 옥내집회와 예배의식마저 제한하여 방해하고 성직자를 지주계급이나 다른 죄명을 붙여 괴롭혔다.
1960년에 이르러 북한은 기독교 탄압정책을 실시하였다. 기독교 의식이 발견되기만 하면 모조리 체포하고, 기독교 관계서적이 발견되어도 불은문서로 간주하여 직접 연행하는등 탄압하였다. 6. 25동란으로 대부분 교회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남하하여 북한은 교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1955년까지 북한은 기독교를 완전히 말살하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압과 말살정책을 노골적으로 시도하였다. 그 결과 표면상 북한지역에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과 교회가 없는 문자 그대로의 신앙의 불모지대로 만들어 버렸다. 기독교회의 시설물과 교회는 탁아소나 창고등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때부터 지하교회활동이 시작되었다. 북한에서는 엄한 통제의 분위기 속에서도 소규모의 기독교인에 의한 저항운동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 진다.
1958년에서 60년 초까지 진행된 주민들의 성분조사 때는 종교인과 그 가족을 ‘반혁명 계층’으로 분류하여 특수지역에서 거주토록 하고 특별감시대상으로 규정하며 주민들에게 반종교적 선전활동과 기독교의 무용성을 계속 주입시켰다.
북한에서는 지금까지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를 종교적 형태로 까지 끌어올려 신격화 시켰다. 이것이 북한주민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김정일을 교조로 삼고 그의 어록을 경전으로,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찬송가로, 당 간부를 사제로, 김정일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성지로, 인민대학습당을 대 성당으로 하여, 그를 중심으로 수많은 신화와 유사 종교가 주민들에게 강요되어 왔다. 이것이 북한의 유일한 종교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종교활동은 완전히 말살하였음에도 1960년 초까지 형식상의 대회관계를 의식한 나머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존속시켰다. 그 이후 1996년에서 71년 초까지 종교의 활용가치가 없어지자 일체의 종교단체가 잠적하는 양상을 보였다.
70년대에 들어서 국제사회에 긴장이 완화되고 개방화가 이루어 지면서 북한도 그들의 교조만을 고집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대회적인 입장을 고려하여 기독교를 역이용하는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신자들의 예배활동과 교회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북한은 기독교단체를 내세워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용단체를 내세워 지하 기독교인의 색출에 앞장서고, 마치 기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한국 종교인들을 반정부 투쟁에 선동하기 휘한 목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당시 북한의 종교정책은 남한 종교인과의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종교단체의 결성과 활동에 목적을 둔 것으로 종교활동 그 자체에 목적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단체를 이용하여 대남정치 활동을 전개하고 성경을 발간하고 교회대표를 국제종교회의에 참석시키고 평양에 봉수교회, 장충성당, 칠골교회를 건축했다. 그리고 1989년부터 종교행사를 개최하여 부활절을 지키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의 기독교활동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은 그들의 통일 전선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노동당 외곽단체로서 포교활동보다는 대내외 성명서 채택, 국제적인 종교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한 정치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해외교포의 방북과 해외에서의 반한 종교인집회를 통한 통일전선 전략에 치중하는 와중에 교회의 건립과 종교행사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가 종교활동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종교정책을 전개하여 종교를 부분적으로 공개하고 종교의 실체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북한은 기독교연맹을 통하여 해외교포들의 방북을 추진하고 월남한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등 정치성을 띈 활동을 계속 하였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남북기독교 교류와 평화통일 논의는 1984년에 일본 도잔소에서 열린 W.C.C국제회의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북한기독교연맹 5명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단 6명이 초청되어 최초로 교회대표간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1988년 스위스에서 제 2차 글리온 최의가 개최되어 남북교회 대표들은 1995년을 희년으로 함께 선포하고 8.15를 평화통일주일로 정하고 공식 기도문을 채택하였다. 1990년 스위스 글리온에서는 희년 5개년 공동사업계획을 마련하고 남북교회의 대화와 만남을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합의가 이루어 졌다.
1991년 7월, 1992년 10월, 1994년 5월, 1996년 6월에 일본 도쿄에서 열린 남북기도자 모임에서는 남북한기독자의 교류협력과 평화통일에 기여하기로 다짐하였다. 1995년에는 광복 50주년 미주 대회에 남북기독자가 함께 참가하여 십자가 접목식과 평화통일 음악제를 가진바 있다. 1997년 3월 미국 뉴욕에서, 6월에 독일 라이프찌히에서 남북기독교대표들은 계속해서 평화회의를 가진바 있다. 그리고 2002년 8월 15일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민족통일 대회에 북한조선 그리스도 연맹 중앙위원회 강영섭 위원장이 방문 하게 되었다.
지금 북한의 평양에는 교회가 세워지고 가정교회가 공공연히 활동을 하고 기독연맹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통 한옥과 서구식 건축을 조화해서 지은 봉수교회에는 300여 명의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목회자와 직분자를 두고 있다.
북한전역에는 가정교회가 500여 개소가 있는데 평양, 남포, 개성에는 약30개씩, 평안남북도는 60개소, 그 외 도시는 40여 개씩 있다고 한다. 현재 드러난 신자만도 1만여 명이 있다고 선정하고 있는데 아마도 지하교회와 교인을 포함하면 실제는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북한에는 목사가 30명, 교직자 3백여명, 기독교 신자가 1만2천3백43명인 것으로 일본에서 열린 '제7차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남북 기독자회의'에 참석한 강영섭 위원장이 밝혔다. 조선그리스도연맹 강위원장은 북한 교회현황에 대해 이같이 밝히면서 북한
전역에는 예배당 없이 일반 가정에서 예배보는 가정교회가 5백여개 있으며 신자는 대부분 해방전 교회를 다니던 노인신자들이라고 전했다.
또 강 목사는 평양신학원은 지난 72년부터 92년까지 7기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잠시 중단됐다가 지난 99년 9월부터 다시 개원, 현재 13명의 학생들이 목사 양성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했는데 남쪽 목회자들의 설교테이프 등이 이들을 위한 좋은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며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Ⅲ. 북한교회 재건 정책의 방향
1. 재건의 당위성 및 시기
1)북한교회재건의 의미
북한교회 재건을 추진하기 전에 먼저 북한교회 재건의 당위성,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교회 재건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북한지역에 교회를 재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자 지상명령이다. ‘땅끝까지’라는 의미는 거리개념보다는 갈수 없는 마지막 장소의 의미이다. 북한교회 재건의 목적은 북한에 있는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다.
둘째로, 북한교회 재건은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북한교회 재건을 통하여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깊이 이질화되고 골이 파인 사상과 이념과 갈등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길은 진리의 말씀밖에는 없다. 복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만이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로, 북한교회 재건은 한국교회의 갱신운동이다. 해방이후 한국교회의 분열과 분파, 경쟁은 통일조국이 아니라 분단된 조국의 형태로 50년 이상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진정한 회개운동을 통하여 민족이 하나되는,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 북한교회 재건은 한국교회의 일치를 통하여 갱신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2) 재건의 시기
북한교회의 재건은 통일의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통일의 관건은 북한내부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가느냐에 따른 남쪽의 대응 전략과 시기 적절한 대책 마련에 달려 있다.
언제 교회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통일의 과정과 그 방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겠다. 한반도통일 방신에 대해서는 합의 통일방식, 흡수통일 방식, 무력통일 방식 등의 세 가지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고, 통일 시기에 대해서는 조기 통일설, 중기 통일설, 장기 통일설 등의 대표적인 세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통일과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통일에 미치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김중석은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가) 북한의 현 체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거나 제한적으로 개방을 할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북한교회의 재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겠다. 기독교를 하나의 선정도구로 이용하려는 북한의 종교 정책 하에서 교회를 재건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이때는 점진적으로 북한 방문과 교류를 확대하고 조선 기독교연맹과의 우호적인 교류를 통하여 북한교회의 재건을 촉구하고 지원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이 개방을 선포한 나진 선봉지구의 자유무역지대나 신의주, 개성, 금강산등의 특구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신의주 특구는 입법, 행정, 종교, 교육, 종교까지 자유화시키는 특구로 선정하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안이 준비 된다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미리 수립호투오지 아울러 지하교회 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회복하고 가정교회들이 자유롭게 세워지도록 기도하고 촉구해야 할 것이다. 조선기독교연맹의 지도자들이 어용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찬송, 기도,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가 있기에 계속 교류하고 기도하고 변화를 촉구해야 하는 것이다.
나) 북한이 개방하는 경우이다. 국제 환경의 변화와 내부적인 정치, 경제등의 어려움으로 북한이 개방과 개혁의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중국의 모델을 따른다고 볼 때 경제적으로는 개방을 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여기서 경제발전을 통하여 사회주의의 승리를 이루려고 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경제개방과 더불어 숨어 있던 지하교인들이 모이고 교회가 재건되고 부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북한이 개방된다면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신자들이 증가하고 부흥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한계가 있어 많은 신앙의 왜곡과 박해도 뒤따를 것이다.
다) 북한의 현체제가 붕괴되고 민주화가 이루어져 개방되는 경우이다. 북한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북한교회의 재건은 급진전 될 것이다. 그러나 체제가 붕괴 된다하여 통일이 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과도정부가 들어 설수도 있고, 강대국의 지원하에 새로운 체제가 구축될 수도 있다. 이 때를 대비하여 어떤 협상으로 북한을 끌어안아야 할지를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흔들림 없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독일과 같이 흡수 통일이 될 경우에 남한 교회는 물량주의적 교회성장주의적인 측면에서 북한교회를 재건하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남한에서는 이때를 위하여 철저히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식량지원, 전력지원, 남북한 합작 합영법, 교육과 방송, 언론에 관한 법, 화폐교환, 토지법, 가족법, 남북한 왕래법과 통일에 대비한 통일 기금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독일이 통일을 일찍 준비해 두었는데도 갑작스럽게 닥친 통일로 인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였던 현실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2. 재건의 주체와 방법
1) 북한교회재건의 주체
북한교회재건을 누가 감당하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재건의 주체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 북한 내의 지하교인
북한교회 재건의 주체는 북한 내에 있는 신자들 특히 지하교인들이 되어야 한다. 지금 북한 안에는 상당수의 지하교인들이 남아 있다. 이들의 신앙은 가장 고귀한 신앙이며 교회로부터 존중을 받아야 한다. 지하교인들이 북한교회 재건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한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신앙지도를 받지 못하여 개인적이고 다소 신비주의적이라 할지라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재교육하여 주도적인 일꾼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한교회 재건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녘 땅의 남은 자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형태든지 북한 성도들을 만나고 부여잡고 같이 통곡하는 기초적인 신앙공동체를 만들어야만 한다.
나. 국내외의 탈북동포
북한교회 재건은 탈북자나 해외에 거주하는 북한동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탈북자들의 사회적응과 정착을 돕는 것과 동시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을 발판으로 삼아서 북한교회재건의 주역으로 삼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탈북자를 단순히 구호의 대상이나 짊어져야 할 짐으로 간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자로 삼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동참하도록 하여 민족복음화 사업에 쓰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 탈북동포는 그가 예수를 진실로 믿고 헌신만 한다면 누구보다도 적절한 재건 사역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북한을 잘 알고 있다. 북한 현지인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남한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처럼 북한현지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을 때 현지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면 탈북자들의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재 북한을 탈출하여 국내에 있는 탈북동포는 2006년 현재 8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자의 입국현황
구분 |
-89년 |
90년 |
91년 |
92년 |
93년 |
94년 |
95년 |
96년 |
97년 |
인원 |
607 |
9 |
9 |
8 |
8 |
52 |
45 |
56 |
86 |
구분 |
98년 |
99년 |
2000년 |
01년 |
02년 |
03년 |
04년 |
2005년 |
계 |
인원 |
71 |
148 |
312 |
583 |
1139 |
1281 |
1399 |
|
5809 |
* 사망, 이민자수 275명
이들 중 기독교인은 1/4 이 안되는데 이들이 예수를 믿기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한국에 돈, 향락 등등의 유혹거리가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회의 모든 형식이 북한에서 하던 체제를 너무 닮아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 셋째는 남한교회가 탈북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남한교회가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사랑으로 돌볼 때 비로소 저들은 돌아 올 것이다.
탈북동포의 대다수는 중국과 러시아 등 동아시아지역에 있다. 탈북동포의 수는 십여만 명에 달한다. 이들도 교회가 잘 돌보면 북한교회재건의 사역자로 쓰여 질 수 있다.
이들은 북한 땅을 떠난 유학생, 노동자등이다. 이들은 세계 도처에서 복음을 믿고 북한 땅의 복음화를 기도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다. 남한교회 및 해외교회
남한에 있는 교회와 해외의 한인교회가 주체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북한 교회를 재건하는데 있어 개교회, 개교단, 선교단체가 주체가 되기보다는 남한에 있는 정통교파로서 교회 연합체를 구성하여 여기에 참여한 교회가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단을 제외한 건전교단을 대상으로 진보와 보수 모두를 포함하는 초교파적인 기구가 적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산재해 있는 교포교회 가운데 북한교회를 재건하고자 하는 교회도 연합하여 참가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에 있는 세계교회들이 동참할 수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북한 선교를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
북한인만으로는 북한교회재건을 하기가 힘들 것이다. 남한에는 북한에 교회를 두고 내려온 실향민들이 있어 다시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해마다 수만 명의 신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복음화를 위해 미리 예비하신 뜻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최소한 중국형태의 개방이 되어도 북한지역에 남한교회 및 해외한인교회에서 상당한 인력이 투입될 것이다. 남한교회나 해외 한인교회가 북한에 전도하고 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교회나 해외한인교회 자체가 가지는 단점을 이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라. 북한기독교연맹(조그련)
북한 기독교연맹의 실체를 인정하고 통일의 시점에 복음 안에서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단지 남한의 교회는 그들을 인정하고 도와주자는 견해이다. 북한의 조선그리스도 연맹은 1946년 11월에 북한기독교연합회로 출발한 친 정부종교단체로 초대 위원장은 강양욱 목사였다. 1960년대에는 세계종교대회에 참석하고, 김일성이 발기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 포함되어 활동하였고, 1970년대에는 7.4공동성명으로 민족통일문제가 성숙될 때 조그련은 남한교회와 접촉을 요구하였고 평양신학교를 개설하고 교회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83년 강양욱 목사가 사망후 고기준, 김성률, 강영섭 목사가 조그련을 이끌고 있다. 조그련은 체제상 북한기관의 하나로 보이지만, 남한교회가 북한교회를 상대로 할 교회는 조그련 밖에 없기 때문에 상호 협의하고 협력하여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사료된다.
이것은 그들이 현재 재건 단계에 있다고 보는 견해인데 남한 교회는 북한교회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들과 교류하고 협력하여 민족공동체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2) 북한교회재건의 방법
북한지역의 교회 재건방법을 논함에 있어 과정이나 절차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교회를 세우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과열된 해외선교의 경험을 통해서,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에서의 교단과 개교회, 그리고 선교단체들 간의 과다한 상호경쟁, 싸움, 그리고 이단종파의 침입으로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던 것을 보아 북한지역에 교회재건의 방법은 중요한 과제이다. 통일이 된 후에 정책은 부재한 채 열정만으로 교회건물이 지어지면, 교인 각축전이 벌어지고 교인이 없는 교회 공동화현상도 있을 수 있다. 북한 방방곡곡에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는 원칙에는 어떤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교회를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교회답게 세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교회의 재건 방법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 단일교단을 세우는 방안
북한지역을 복음화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교단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방안이다. 단일 교단을 통하여 교회의 혼란을 방지하고 북한 내의 자치적인 교회를 처음부터 운영하고 교회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북한이 복음을 향하여 문을 열게 되면 비상시로 간주하고 하나의 교단을 형성하여 혼란을 방지하며 교회의 연합을 이루자는 방안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종교에 대해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북한도 기독교라는 단일교회를 이해하지, 각 교파는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혼선을 주게 된다. 2차 세계대전중의 비상체제하에 일본은 각 교파의 특성을 포기하고 하나의 ‘일본기독교단’ 이 된 실례가 있다.
가) 장 점 : 첫째로 혼란을 방지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국에 있는 각 교파가 서로 경쟁하며 다투며 불협화음을 내게 될 때 처음에 저들이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호감과 동경이 변하여 반감으로 변할 수 있다. 둘째, 북한 내에 처음부터 자치적인 교회를 운영할 수 있다. 이 방안은 북한 내에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고 인력을 통괄하는 어떤 기구가 북한에 있을 경우 더욱 현실적이다. 북한교회가 자립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셋째, 복음을 북한에 적응시키는데 효과적이다.
나) 단 점 : 첫째,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음화가 제한된다. 창구가 단일화됨으로써 혼란을 방지하기에는 유익하나 제약을 받게 되어 시간이 걸리고 적체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남한교회의 축적된 지원력이 효과적으로 빨리 전달해야 하는데 시간을 끌다 소진시키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 둘째, 신학적인 노선이 염려가 된다. 하나의 교회를 상정해 볼 때 교리의 혼잡성과 함께 자유주의적인 성향의 교회가 되기 쉬울 것이다. 셋째, 남한교회의 합의도출이 어렵다는 점을 수 있다. 한국교회가 북한에 하나의 교회를 설립하는데 단합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나. 교파별로 재건하는 방안
남한에 있는 장로교에도 백여 개의 분파가 난립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분파는 지양하고 북한에는 장로교면 장로교 하나만 세우고, 감리교도 하나의 교파로, 성결교도 하나의 교파, 이런 식으로 세우는 방안이다. 1945년에 있었던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등에 제한하는 방안이다.
가) 장 점 : 첫째, 혼란은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단일 교단보다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으나 분파별로 들어갈 때보다 덜 혼란스럽고 불협화음이 생길 소지도 작다. 둘째, 교파의 신앙적, 신학적 색채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셋째로, 남한교회의 합의적 도출을 이끌어 내는데 비교적 용이하다. 넷째, 남한 교회 내에 통합의 기운을 일으킬 수 있다. 북한재건사업을 통하여 남한 내에 그동안 숙제였던 교회 일치운동이 교파별 차원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나) 단 점 : 첫째, 전제조건이 약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 각 교파의 지도급 인사들의 강력한 지도력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한 상태이다. 둘째, 잠재적 분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남한의 장로교 역시 처음에는 하나의 교단이었으나 점차 지원하는 선교단체에 따라 각기 분열했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의 교파도 지원하는 교회의 영향에 따라 분열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셋째, 범 기독교단의 통합된 힘의 구사가 어렵다는 점이다. 대 정부적, 대 사회적으로 단합된 힘을 발휘해야 할 때 교파별로 나뉘어 있어 단합된 힘을 구사하기가 어렵다. 북한이 상당 기간 동안 국가를 재구성함에 있어 해야 할 역할이 크다고 볼 때, 이점도 중요한 문제이다.
다. 개 교회별로 자유롭게 재건하는 방안
이렇게 하면 온 교회가 총력을 기울여 노력하므로 시간 낭비 없이 각 교파별로도, 그리고 개 교회적으로도 교회를 세우고, 개인적으로도 교회를 세울 수가 있다.
가) 장 점 :
첫째로, 이 방안은 남한교회의 대북지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남한의 교파, 개 교회, 교인의 힘을 극대화하여 단시일 내에 북한전역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로, 북한사회의 변화를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방법은 단시일 내에 사회에 영향을 끼쳐 사회변화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남한교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모양의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는 재건이 남한 교회에 주도적으로 수행되는 경우이다.
나) 단 점 :
첫째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파와 교회 간에 과다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상처를 안기게 될 것이다.
둘째로, 각종 이단의 도발을 견제할 수 없게 된다. 통일을 전제로 내세운 이단들의 도발을 막기가 어렵다.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문호가 전면 개방되기 전에는 수행상의 어려움이 많이 있다. 넷째로, 대정부 대사회 발언의 강도가 약하다. 다섯째로, 북한 신자의 안을 너무 무시하는 안이 될 것이다.
라. 지역할당제를 도입하여 재건하는 방안
이 방법은 어느 한 지역의 중복과 집중을 피하고 그것으로 인한 갈등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해방 이전의 교회당 수로 우선 재건 분할하는 데 주민의 수에 따라 나눈다.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룰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연고권을 주장할 때는 문제가 다소 일어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북한에 어떤 교회를 재건할 것이냐 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는데 먼저 북한교회를 재건하려는 각 교단, 각 선교 단체들 간의 철저한 준비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교단과 각 교회의 확장, 선교단체의 확장의 측면에서 북한교회의 재건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전체 교단과 선교단체들이 참여하는 교회재건협의 기구를 통하여 재건 방법과 원칙들이 도출되어야 한다.
IV. 북한교회재건 준비현황
1. 한기총 북한교회재건위원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는 95년 6월 12일 북한교회재건위원회를 결성하고 북한교회재건운동을 시작하였다. 한기총의 북한교회재건위원회에서는 그동안 옛 북한 지역에 있었던 교회를 발굴하고, 통일 후 교회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1997년에 이르러 북한교회 재건원칙을 수립하였다.
1) 북한교회재건의 원칙
가. 북한에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은 ‘창구를 일원화’ 한다. (연합의 원칙)
나. 북한에는 교파를 지양하고 ‘단일기독교단’을 세운다. (단일의 원칙)
다. 북한교회는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교회’로 세운다. (독립의 원칙)
2) 재건운동의 발전 과정
한기총 북한교회재건위원회는 한국교회의 숙원과제인 무너진 북한교회를 다시 세우는 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1995년 결성된 이후 다음과 같은 재건운동을 실시해 왔다.
가. 제1기 사역(1995-1997년)
1기 사역은 분단 전 북한교회 사료를 연구하고 발굴하는데 힘을 기울여 왔다.
- 1995년 「무너진 제단을 세운다」 발간, 1997년 「북한교회재건백서」 발간
나. 제2기(1997년- 1999년)
2기 사역으로는 북한교회재건사업에 한국교회와 해외한인교회를 동참시켜 재건담당교회를 결연하였다. 1999년 북한의 3040교회 발굴, 2000년 「북한교회화보집」 발간,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워크 샾을 통한 정책수립 및 시행
다. 제3기(2000년- 2005)
북한교회재건의 현재성, 현장성, 미래성을 확보하는 종합사역기간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다. 3기 사역으로는 그동안 북한교회재건운동이 성전건축에만 치중해 왔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성전건축 사역과 함께 반드시 병행해야 할 종합적인북한교회 재건운동을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 재건3원칙 준수 (2001년 6월, 한국교회 전체 교단장 서명), 교회별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북한선교회 조직, 재건기금적립 독려, 북한교회재건 지역별 식량직접지원, 북한지하교회 지도자 양성, 북한교회재건 사역자 양성- 통일선교대학 운영, 북한교회재건교회 귀순동포결연사업,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유산헌납운동, 북한농업 및 사회개발사업 동참.
북한교회재건위원회의 재건운동 방향은 3기 사역을 확장하여 북한교회의 추가발굴과 결연, 재건기금 적립, 탈북동포지원 및 선교, 북한지하교회 지원, 통일전과 통일과정, 통일이후의 북한사회의 농업분야 및 사회개발사업에 기여 등의 종합사역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발전적인 재건운동으로 북한교회재건은 북한성도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현재 탈북동포선교와 북한지하교회 육성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교회의 건축은 사회문화복지관식 건물로 지어져야 한다고 보고 북한교회재건 모델링 조감도와 설계도 40점을 제작하였다. 현재 북한교회재건 문제로 북한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교류와 협상을 계속하고 있고, 북한의 평양을 비롯한 개성경제특구와 금강산관광지구 등에 교회재건을 추진 중에 있으며, 실제적인 정통성을 지닌 북한지하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2.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70년 이북대책위원회의 발족을 시발로 91년 남북한선교협력위원회로 1996년 제81회 총회에서 평화통일연구위원회와 남북한선교협력위원회를 합쳐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동위원회 안에 ‘북한교회복구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향후 10년 동안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100억 원을 모금하기로 헌의하고 한 노회가 각각 1개 지역을 복구하기로 하였다. 이후 한기총 으로부터 600교회를 배정받아 교회를 재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동위원회에서는 북한교회재건을 위하여 매년 6월 넷째주일을 북한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으며 이날 들어온 헌금은 교회재건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그리고 매달 각 지역과 노회를 순회하여 ‘북한교회복구를 위한 순회 헌신예배’를 드리고 있다.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는 현재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의 합의아래 평양시 청류동 평양대극장 앞 대동강변에 40억여 원을 투입해 봉수교회를 공사 중에 있다.
예장통합측의 실시사업은 다음과 같다
1) 평화통일 정책수립을 위한 간담회
2) 통일과 북한선교정책 세미나
3) 조국평화통일과 선교를 위한 남북기독자회의 참석
4) 북한기독교총람 및 해방 전 북한교회 총람 발간 배포
<제 1차> 북한기독교 총람
위원회 창설 25주년과 광복 50주년을 기념, 북한교회복구자료집을 발간
<제 2차> 해방 전 북한교회 총람 발간
해방 전 북한에 있던 1천여 교회의 연혁과 자료를 모아 1999년 3월 20일에 발간
5) 북한선교와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주일 실시 : 매년 6월 넷째주 실시
6) 평화와 통일을 위한 백두산 산상기도회 및 북한, 중국 접경지역 방문
7) 북한교회 및 북한동포 지원
8) 총회 통일선교대학 개강
9) 평화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한 통합, 합동 연합기도회 (2차)
3.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의 북한선교와 북한교회재건에 대한 정책은 한기총의 정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교회를 재건하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의 기본 틀로 이미 오래전에 세워져 있었다. 이를 위한 일차적인 사업은 해방 전 북한에 있었던 3,040개의 교회 중 교단에 분담된 610개의 교회를 재건하는 것으로 향후 재건될 북한교회를 위해 필요한 사역자양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선교대학을 설립 운영하고, 총회산하 신학교에서 통일선교학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탈북자선교를 통해 북한선교의 중요한 일꾼으로 양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중국의 지하교회를 통해 선교사를 양성하고, 북한의 지하교회를 적극 육성하고 도우려하고 있다.
4. 기독교 대한감리회 서부연회
감리교의 북한교회재건운동은 감리교 서부연회가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민족과 교회의 최우선 과제는 한민족 평화통일과 북한 선교로 하고 있다. 과거북녘 땅에 있었던 388교회, 15개 선교기관을 기억하면서 이를 재건하고 복원하는 일을 1998년도 주력사업을 채택하였다. 도한 1개 특별시와 2개 직할시 그리고 12개도로 구분된 현 행정구역에 따라 모두 570여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일에 동참하는 교회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북한교회재건 및 설립 협력교회 현판식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또한 서부연회는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북한 동포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감리교회의 참여 아래 한 사람 한 생명운동과 엘리야 운동 등을 통한 직접적인 지원과 나눔사업을 펴나가고 있다.
1)직접선교사업: 북한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공식파트너로 하여 남북교회 교류 및 협력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북한방문 사업(남북교회교류 및 협력 사업, 대북지원 사업, 한사람 한생명운동, 평양신학원(연구원) 재개원 및 운영 지원 사업
2)인재양성사업 (디모데 프로젝트): 북한선교 및 통일일꾼 양성을 위한 통일교육 프로그램, 평화통일 및 북한선교 강좌 운영, 통일교육 지도자과정 운영
3) 선한 사마리아 사업: 탈북 귀순자 1명과 감리교회 자매결연, 사마리아인 세미나,
선한 사마리아인 자매결연 예배
4)북한교회 재건 협력 담당 현판식 사업: 침략과 이식선교가 아닌 협력선교, 민족교회 재건이라는 원칙 아래 한국감리교회의 북한교회 재건 협력 담당 현판식 사업
5) 우회선교: 조-중 접경 선교지 답사를 통한 현장 선교 전략 수립
6) 인식의 전환사업: 민족 평화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한 인식의 전환 및 확산을 위한 사업
교회, 기관, 지방별 북한선교 세미나, 각종 출판 인쇄물을 통한 홍보출판사
7) 기금조성사업: 북한선교 기금조성을 위한 감리교신한비자카드, 통일통장 갖기 운동
5.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평화통일운동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1981년부터 1988년 “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까지 이며, 제2기는1988년부터 통일희년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했던 1995년까지 이며, 제3기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북한동포의 어려움을 도와서 민족화해를 이루어 가는 시기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평화통일운동의 저변확대, 의식의 변화, 변화된 생활,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 군축 평화협정, 주변국가와의 연대, 미국 바로알기, 북한과 북한교회 바로알기, 남북교회의 교류와 협력, 북한동포돕기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있다.
첫째, 통일운동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대중운동이 되기 위하여 교조적 반공주의를 벗어 버려야 한다.
둘째, 통일운동은 교파주의와 개 교회주의를 넘는 자기개혁과정이어야 한다.
셋째, 한국교회는 북한지역에 옛 교회를 회복하려는 일방적인 선교의 포기를 선언해야 하여야 한다.
넷째, 교회는 눈에 보이는 통일을 넘어 통일 이후에도 남북이 진정 하나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남북교회는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도 화해를 실현해야 한다.
여섯째, 민족통일과정이 세계평화를 위한 공헌이 될 수 있게 세계교회와 연대해야한다.
일곱째, 교회는 정부가 통일문제를 통치이데올로기로 악용하거나 정권유지에 악용하지 않도록 감시하여야 한다.
여덟째, 교회는 국민의 합의와 참여에 기초한 통일운동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아홉째, 교회는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북한의 식량난을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수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위에 기술한 한기총과 교단과 구별되는 평화통일운동 방향의 특징은 먼저 평화통일을 위해 세계교회와 긴밀한 협조를 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부의 통일정책과 보조를 맞추며 조선 그리스도연맹을 동등한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북한의 지하교회나 탈북자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6. 한국기독교 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한국교회 중 가장 먼저 통일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러나 북한교회재건이라는 문제에서는 부정적이고 북한교회 재건운동이라는 발상이 반통일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북한선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교회협의회와 마찬가지로 조선그리스도연맹을 북한교회의 공식적인 대화상대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눔의 교류를 출발점으로 하여 점차 신학의 교류와 말씀의 교류로 발전하는 것이다.
v. 북한교회 재건을 위한 과제 및 전망
1. 교회의 갱신과 연합운동
북한교회 재건은 정체와 침체 가운데 방향감을 잃어버리고 불안해 하는 한국교회에 하나의 갱신운동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 교회 재건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고, 일치와 연합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이다.
90년대 들어서 통일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쏠리면서 북한선교에 대한 열기가 교파, 교단, 개교회를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해외선교에서의 과열된 경쟁으로 분열과 갈등의 부작용을 낳았던 경험에 비추어 우려와 자성의 소리가 있어 왔다. 이에 각개 전투식의 북한선교를 지양하고 한국교회가 일치해서 민족복음화를 수행함으로 북한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국교회가 북한교회 재건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는 일이 시급히 요청된다. 북한선교, 북한교회 재건문제는 교파 경쟁이나 대립의 관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서로 간에 유기적 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선교 공동 프로그램을 작성, 실천하는 협력의 방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북한교회 재건을 위한 협력 체제를 강화해서 한국교회의 재정적, 인적 자원을 낭비할 수 있다. 또한 북한선교는 교단경쟁을 지양하고 개교회 중심을 탈피하고 북한 선교지를 채워주는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
지금은 보다 큰 안목을 가지고 북한교회재건 연합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각 교파와 교단, 그리고 선교단체간의 주도권 다툼과 이해관계를 떠나야 한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 통일단체를 하나로 묶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구를 결성하여 북한과의 접촉창구를 단일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적인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산하 통일위원회와 보수의 연합체인 남북나눔운동본부 그리고 부흥사통일운동기구와 기타 통일 단체를 총망라하여 연합한 하나의 기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한기총내 북한교회재건위원회가 교파의 90% 이상이 참여한 가운데 재건사업을 진행시키고 있으나 좀더 적극적으로 진보주의 계열을 수용하고 연합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 북한동포 돕기운동에서는 한기총과 교회협의회와 식량은행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통일준비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활발한 연합운동이 진행 중이다.
2. 북한연구 및 사역자 훈련
선교는 선교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북한교회 재건 역시 선교지인 북한에 대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및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남한과 북한은 한 민족이고 동일한 언어와 문자, 그리고 문화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으나 반세기에 걸친 분단은 전혀 이질적인 모습으로 갈라놓았다. 북한 지난 50년에 걸쳐 일인독재의 공산체제를 유지 해 오면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를 개편하고 역사와 문화를 왜곡시켜 버렸기 때문에 한민족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들이 모두 말살되었던 것이다. 민족성과 인간성조차도 철저한 통제와 고립 속에서, 그리고 유아기로부터의 사상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변질시켰다. 개방화정책으로 점차로 북한이 외부에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폐쇄성으로 인하여 북한에 대한 지식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선교지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오지이며 미지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북한교회재건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연구와 이해가 먼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취해온 반족교정책의 실상과 북한 주민의 심리상태와 의식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도 심도 있게 실시되고 교육되어야 하겠다.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정책수립에 있어 북한의 현재의 행정구역에 맞춰 과거 교회의 소재지를 발굴하고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1) 전문연구기관 설립
북한교회재건을 위하여 전문적인 연구기관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북한에 총론적인 연구에서 분단시대의 북한 주민의 계층별, 세대별, 지역별로, 그리고 그들의 의식구조, 문화생활, 사회생활 전반에 거린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선교전략에 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 남북교류와 협력시대를 대비하여 직접왕래, 우회전략, 매스컴을 통한 선교, 특수선교 전략 등을 개발하고 연구해야 한다. 나아가 계층별, 연령별로 복음을 바로 전달할 수 있는 전도계획과 전략을 연구하고 전도요원을 미리 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회개발과 사회, 문화적 통합에 다른 갈등과 그 대책에 대하여 복음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답과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연구되어야 한다.
이 때 연구원은 신학자 뿐 만이 아니라, 정부 내 통일원과 유관기관의 전문가 및 사회 각계의 유수한 전문가를 총 동원해야 할 것이다.
2) 사역자 훈련 및 양성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사역자훈련을 해야 한다. 북한교회재건이 이루어지면 수많은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그때의 사역자들은 일반적인 목회방법으로는 선교의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적 복음으로 북한교회에서 북한 문화에 맞게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미리 사역자들을 양성하여 놓아야 한다.
해외선교 훈련에는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전달을 위한 언어교육과 사회문화전반에 걸친 교양교육, 현지적응과 정착을 위한 극기 훈련까지도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북한선교에서도 선교훈련을 통한 전문선교사 양성이 요청된다. 이미 정치적 통일을 이룬 동서독에서 아직 심리적 통일을 이루는 문제가 남아 있는 점을 볼 때 남과 북이 정치적, 사회적 통합을 넘어 진정한 사랑과 화해의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하는 북한교회재건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교회 재건 사역자 양성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첫째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각 교단의 정규 신한대학 내에서 북한선교 전공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또는 이미 교육받은 사람은 계속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북한교회재건에 관한 교육과 훈련을 실시한다(목회자 훈련).
둘째는 연합단체와 선교단체 그리고 신학대학의 비정규과정으로 북한교회재건 사역자를 양성하는 것이다(평신도 훈련).
셋째, 각교단, 노회, 개교회 별로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교육과 훈련, 사명자 대회를 실시한다.
넷째, 중국과 연변등지의 교포나 탈북자를 전도하고 훈련시켜 북한교회재건 사역자로 양성하는 것이다. 이들은 중국과 연변에 숨어 지내는 다른 탈북자에게 복음을 전 할 수 있으며, 북한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을 때에는 그들이 북한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선교하고 더 나아가 북한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 할 수 있을 것이다.
3. 단계별 선교전략 연구
통일과 북한교회재건을 대비하며 단계적으로 한국교회가 준비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힘써 북한동포를 돕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북한재건 기금을 마련하고, 계속적으로 민간차원의 남북의 교회가 교류를 통해 통일의 물고를 트는 작업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전진기지를 마련하고 점차로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1) 북한동포돕기운동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민족화해와 북한교회의 비전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동포를 지원하는 일이다. 북녘의 동포를 돕는 일은 남북한의 동포를 사랑의 줄로 매는 일이요,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요, 북한교회재건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민간단체의 북한동포돕기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일은 지대하였다. 교회의 대북지원은 초기에 KNCC의 대북접촉등 주로 교류차원에서 이루어 졌으나 최근들어 각 교회, 교단, 한기총, 남북나눔운동, 에스라운동, 선명회, 기아대책기구, 이웃사랑회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북한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이 북한동포에게 전달된다면 북한 사람들은 크게 감동받을 것이고 그리스도인과 협력 하게 될 것이다. 북한동포를 돕는 일의 기본방향은 첫째, 인도주의적 전지에서 조건 없이 한다. 둘째,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기여하고 셋째, 특히 북한복음화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동포를 돕는 일에는 어떤 조건도 붙어서는 안 되며 우선 굶주림으로부터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업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가. 식량 및 생필품 지원
나. 영농개선지원 - 비료, 농약, 각종 종자, 농기계 등
다. 협력사업 - 협동산업단지조성(에스라운동), 대북협력지원사업(C.C.C) 으로 북한 에 가장 적합한 모델운동과 프로젝트 연구.
라. 복지센터 및 평화센터 건립지원.
2) 북한재건기금마련
북한교회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재건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크게는 통일 비용으로 볼 수 있다. 독일이 통일의 여파로 엄청난 경제난에 봉착하는 것을 보면서 국가는 물론 교회도 통일에 대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각 교단별로 북한선교 위원회를 두고 기금을 모금하고 비축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미비한 실정이다. 다행히 북한교회재건의 열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어 기금을 모이고 있다. 각 교단과 교회별로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특별예배를 실시하여 홍보와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기금은 통일에 대비해 비축하는 장기기금과 당장 눈앞에 당면한 북한동포돕기, 탈북자돕기 등을 통해서도 단기기금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3) 북한교회와의 교류
한국교회는 북한의 어용기관인 조선 기독교연맹과 계속해서 대화하고 교류하고 협력을 시도해야 하는가? 그들의 실체를 바로 파악하면서 이용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순수한 신앙적인 교류의 차원에서 시도해야 된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한 도움과 나눔과 사랑이 결국 정치적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교회와 교류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항상 북한의 지하교인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그들과의 관계와 접촉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점이다. 김명혁은 바람직한 남북간의 종교교류에 대하여 일곱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남북한의 종교교류는 정치성을 띤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교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남북간의 종교교류는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를 주제로 삼을 수도 있다. 이산가족 상봉과 방문, 환경문제 등이다.
셋째로, 남북간의 종교교류는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단일 창구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의 조선 기독교연맹의 한계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북한의 대표적인 단체로 인정하고 남한에서는 KNCC, 한기총, 한국기독교 평화통일추진협의회가 교류의 단일 창구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남북한종교교류는 물질적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겸할 수도 있다.
다섯째, 남북간의 종교교류는 북한에 있어서의 종교 및 교회의 재건을 주제로 삼을 수도 있다.
여섯째, 남북간의 종교교류는 해외동포들과의 교류를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곱째, 이제 종교인들은 북한종교인들을 자주 만나도록 힘써야 한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만나야 한다.
4) 재건을 위한 선교기지설립
한국교회는 북한선교에 오래전부터 종사하고 있는 국제적인 선교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해 한국교회의 전략적인 지점에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선교의 교두보를 설치하고 총체적인 차원의 선교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북한교회재건은 전담하는 선교기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기지를 제1, 제2, 제3 기지라 명명할 때, 제 1기지는 북한교회재건을 추진하고 지휘하는 본부가 자리 잡은 교회가 될 것이다. 현재로는 한국교회가 될 것이고 이는 초교파적이고 범교단적인 기구를 만들어 선교의 창구역할을 하며 총체적인 지휘와 조정을 하도록 한다. 제 2기지는 북한과 쉽게 교류할 수 있도록 설립된 선교기지 이다. 현재로는 중국과 연변의 교포들이 제 2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교회와 북한교회를 연결하는 중간 다리로 직간접으로 복음을 북한에 전한다. 제 3기지는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북한과의 교류와 왕래가 쉬운 지역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교회가 그 대상이다. 그러나 북한이 개방 되거나 통일 되어서 자유로이 교회의 재건이 허용되면 제 1기지는 한국교회가 아니라 북한교회로 바뀌며 북한교회가 주체가 되어 총체적인 지휘와 통제를 통해 북한교회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Ⅵ. 결 론
북한의 핵실험이 있은 이후 북한교회 재건문제 등 북한선교 전체에 혼선이 있는 듯 했다. 기독교계 일부에서는 대북지원 전면 중단설 까지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근 한기총 63개 교단 대표자들이 모여 북한의 핵실험에도 인도주의적인 지원은 계속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교단 장들이 결의한 북한 교회 재건의 3원칙인 ‘단일 기독교단의 원칙’ ‘북한교회 독립의 원칙’ ‘연합 일치협력의 원칙’ 등을 재확인 하였다. 혼란중인 상황에서 선교방향이 투명하게 설정된 것이다.
북한교회재건의 문제는 한국교회가 준비하고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북한선교와 재건은 남북관계와 주변정세 그리고 정부의 통일정책과 직접 관련이 있다. 한국교회는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 북한교회의 재건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재건운동이 급진전 될 것처럼 보인다. 북한교회재건 문제는 북한교회의 통일이 어떠한 형태로 실현되느냐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북한이 현재와 같이 개방의 물고를 계속해서 그 속도를 높이거나, 통일이 될 경우에 대비해서 북한교회의 재건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은 분명한 한국교회의 과제이다.
북한교회 재건을 위하여 한국교회가 무엇보다도 먼저 이루어 내야 할 일은 연합을 통하여 협력과 일치를 이루는 일이다. 남한교회 내에서 교회와 교회, 교단과 교단 간에, 진보와 보수 간에 공조체제를 이루는 일이다. 특히 한기총과 기독교교회협의회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작금의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의 창구를 단일화 하려는 노력과, 통로를 단일화하려는 시도는 한국교회의 갱신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제 통일정책을 수립하는 일, 북한과의 교류, 그리고 북한에 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있어서 단합된 힘을 보여 주어야겠다.
그리고 북한교회재건을 논할 때에는 북한교회와 협력 체제를 이루는 것이 불가피하다. 먼저 현재 북한의 조선기독교연맹과의 협력 체제를 이루어야 하고, 곳곳에서 일어날 북한의 지하교회와 가정교회 지도자들과 협력 체제를 이루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과거 북한에 세워졌던 교회들을 참고하고 오늘의 북한의 변화된 지형과 인구적 상황을 고려하여 북한의 어느 곳에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할지를 미리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에는 우선 단일 교단의 교회가 세워져야 된다. 그리고 교회재건의 설립의 주체가 북한교회가 되는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또한 전문적인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북한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그에 따른 전도전략을 수립하고 그것을 교육하는 일이 급히 요청된다. 그리고 앞으로 북한에 가서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함께 교회를 설립할 사역자를 미리 훈련시켜야 한다. 이 일 역시 교회의 연합운동을 통하여 협력과 일치 속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북한동포 돕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남북한 교류의 기회를 늘리고, 내면적으로 다양한 선교의 교두보를 지속적으로 마련한다면 개방과 통일의 물결이 닥칠 때에도 북한교회재건 사명을 잘 감당하리라고 본다.
북한교회재건의 문제는 처음으로 재건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10여전에 비해 큰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개 교회 일반 성도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하였다. 그것은 북한교회재건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전체교회와 목회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부 교단 지도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일부의 주장처럼 북한교회재건의 문제를 포함한 북한선교를 위해 이제 목회자들과 교회가 눈을 떠야 할 것이다. 이제 내적으로 저변을 확대하고 확실한 전략과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북한교회 재건운동을 통하여 교회를 갱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이제 북한교회재건을 추진하면서 먼저 한국교회전체에 진정한 회개와 삶의 변화를 일으키며, 교회연합을 통합 일치와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며, 조건 없는 사랑과 나눔을 실행하는 가운데 한국교회는 갱신될 것이며 이런 갱신이 있을 때만이 진정한 북한교회 재건의 사명을 감당하리라 본다.
'선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중국조선족선교에 관한 연구 (0) | 2009.08.04 |
---|---|
[스크랩] 세계관은 지식이 아니라 삶이다 (양진일) (0) | 2009.08.04 |
[스크랩] 통일과 북한선교 (이광순) (0) | 2009.08.04 |
[스크랩] 근대선교역사의 세 시대 (0) | 2009.07.27 |
[스크랩] 제20강 CUP모형에서의 사역의 실제: 도시 (0) | 2009.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