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근대선교역사의 세 시대

수호천사1 2009. 7. 27. 22:32

근대선교역사의 세 시대

 

 

 

1. 첫 번째 시대

(The First Era:1792년 ~ 1910년 해안지역 선교시대)

 

근대선교역사의 첫 번째 시대를 개척한 사람은 『윌리엄 캐리』였다. 18세기 영국교회는 캘빈주의의 영향으로 선교운동에 눈을 돌리지 않았으며, 대위임령은 예수님이 사도들에게만 주신 특별한 사명으로 이해하고 이러한 입장을 고수했다. 세계선교에 눈을 뜨게 된 캐리는 교회안의 무감각한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워야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어느 날 목사들의 모임에서 캐리는 해외선교에 대한 그의 원대한 계획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한 원로목사가 일어나 그에게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그만 흥분하고 자리에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한다면, 자네나 우리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 걸세.'

 

이것은 그의 선교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그러나 캐리 안에 불붙은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과 성령의 불은 더욱 크게 타올랐다.

 

캐리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이 곧 우리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었다. 이 믿음으로 1792년 봄 그는 '이교도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강구해야할 크리스천의 의무에 관한연구(An Enquiry into the Obligation of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s)'라는 책을 출간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세계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임을 역설하였다. 이 책을 읽고 캐리의 몇몇 친구들이 마음의 확신을 얻어 작은 선교기관을 만들었다. 그것이 캐리가 말한 ‘수단’이었다. 그 조직은 취약해고 연약했지만, 캐리가 인도로 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후원을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캐리의 영향력은 영어권 세계 전역에 미쳤고 그의 작은 책은 개신교 선교 운동의 대헌장이 되었다. 이 작은 책은 당시의 복음주의 대각성과 함께 미 대륙과 유럽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거의 순식간에 반응이 나타났다. 제2의 선교회가 런던에 설립되었고 스코틀랜드에 둘, 네덜란드에 하나 그리고 영국에 제3의 선교회가 세워졌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선교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선교회 형태의 조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캐리의 주장이 옳았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5명의 대학생이 이 책의 도전을 받아 기도하기 시작(후에 Haystack prayer Meeting으로 발전)한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미국해외선교위원회(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of Foreign Mission)’라는 미국의 선교수단을 허락하셨고 이들을 통해서 학생선교운동이 시작되도록 인도하셨다. 사실상 캐리가 배를 타고 인도로 떠난 이래 25년간 미국과 유럽에 12개의 선교단체가 생겨났다. 또한 그의 영향으로 보스턴에서는 여성선교기도모임이 생겼는데 이 모임은 1865년에 미국의 독신여성들로 구성된 여성선교단체로 발전되었다.

 

첫 번째 시대의 두 가지 놀라운 특징은

1)파송된 선교사들이 보여준 놀라운 희생정신(처음 60년간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대부분 2년 내에 죽음을 맞이했다)과

2)선교전략에 훌륭한 통찰력인 4P의 개발이었다.

 

 이 시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며 신변보호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던 해안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영국과 유럽의 교회의 주도로 선교하던 시대라 할 수 있다.

 

2. 두 번째 시

(The Second Era:1865년~1980년 내륙지역 선교시대)

 

이 시기를 개척한사람은 『허드슨 테일러』였다.

 

그도 역시 캐리처럼 채 삼십도 안 된 청년이었다. 아직 첫 번째 시대가 진행되고 있었던 때에 중국연안지역에서 선교하던 어느 날 양자강 상류로 부터 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온 중국내지인을 만나게 되면서 중국내륙에는 연안지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윌리엄 캐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료를 수집, 통계들과 표와 지도를 면밀히 검토하고 준비하여 마침내 ‘중국의 영적인 필요와 요구(China's Spiritual Needs and Claims)' 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중국내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이런 주장을 했을 때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를 비난하였다.

 

“사지로 보낸 청년들의 피를 그대가 다 책임질 것인가?”

 

이런 힐난조의 질문을 듣고 망연자실하여 해변을 거닐면서 해결책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져있던 그에게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 해답을 주셨다.

 

“네가 그 청년들을 중국내지로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에 그의 고민은 해결되었으며 마침내 'China Inland Mission(1865년)'를 결성하였고 하나님은 이 단체를 통해 6천명이 넘는 선교사들을 중국내지로 보내주셨다. 해안지방에 머물러 있던 복음은 드디어 내륙을 향해 가게 되었다. 다른 선교회들은 20년이 지나서야 『허드슨 테일러』의 뒤를 따르게 된다.

 

수단내지선교회(Sudan Interior Mission), 아프리카내지선교회(Africa Inland Mission), 중앙아프리카선교회(Heart of Africa Mission), 미전도지역선교회(Unevangelized Fields Mission), 미개척지선교연맹(Regions Beyond Missionary Union)등 수많은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첫 번째 시대의 초기에 있었던 일이 두 번째 시대의 초기에도 동일게 일어났다. 학생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 운동은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 1888년)으로서 선교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소달리티였다. 이 단체를 통해 10만 명의 학생들이 선교에 헌신하였고 이들 중 2만5백 명의 학생들이 선교사로 자원하여 전 세계로 흩어져 갔다. 불과 50년 만에 이루어진 놀라운 역사였다. 이 두 번째 시대가 시작되던 1865년은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한 해이다. 바로 토마스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의 서해안을 방문한 해 인 것이다. 그 이듬해인 1866년 9월에 그는 대동강변에 순교의 피를 뿌리게 되었고 이때 불타버린 미국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계기가 되어 1882년 한미통상조약이 체결되었고 결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다.

두 번째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첫 번째 시대는 존재하였다. 해안지방에서도 아직 할일을 완수하지 못했는데 왜 내륙으로 가야하는가?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기에 첫 번째 시대와 두 번째 시대 사이에 45년간의 소위 첫 번째 전환기가 존재하게 된다. 마치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아직 다 복음화하지 못했는데 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야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했던 초대교회 시절처럼 아직도 많은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연안지방이나 태평양의 섬 지역에서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었다. 선교는 4P를 거치면서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두 시대가 중복됨으로써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선교해야 할지 갈등과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1910년 영국, 에딘버러에 전 세계의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회 대표들이 모두 모여 선교대회를 개최하였다. 당시에 논의 된 것을 간략히 요약하면 우리가 서로 연합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죽기 전에 전 세계의 복음화는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전 세계의 교회가 복음을 들고 본격적으로 내륙을 향해 가려고 할 때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은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일어났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식민지들은 독립해 나갔고 개척자 단계와 부모 단계(Pioneer와 Parent)는 더 이상 적절한 단계가 아니었으며 협력자와 참여자 단계(Partner, Participant)가 더 바람직하게 되었다. 영국과 유럽은 전쟁으로 황폐해져 갔으며 인해 선교의 주도권은 미국교회로 넘어가게 된다.

 

3. 세 번째 시대(The Third Era:1934년 ~ ? 종족선교 시대)

 

세 번째 시대는 우리 시대에 세계 복음화를 완성하자는 목표에 헌신했던 S.V.M 출신의 두 젊은이에 의해 시작되었다. 카메론 타운젠드(Cameron Townsend)는 복음의 전진을 위해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과테말라로 달려갔다. 스페인어로 된 성경을 마을마다 나누어 주면서 그가 만났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인디언이 그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전능하시다면서 왜 우리말은 하지 못하시는 거죠?” 라고 질문했을 때 토착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그들의 말로 전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주신 확신을 통하여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를 만들도록 하셨다. 그는 복음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가도록 길을 연 셈이다.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 사역하던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카스트 제도라는 사회적 장벽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장벽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그가 찾아낸 것이 바로 ‘동질집단(Homogeneous Units)'이었는데 오늘날의 ‘종족집단(People Groups)’과 같은 개념이다. 맥가브란은 새로운 선교회를 설립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활발한 활동과 저술을 통해 교회성장 운동과 미개척지 선교운동이 일어나면서 아직 복음이 전달되지 않은 남은 집단들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선교단체와 기관들이 생기게 된다.

 

[결론]

 

선교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지기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오셨다. 하나님은 이 일을 4가지 선교기재를 통해서 이루어 오셨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행하실 것이다. 우리는 『선교의 역사적 관점』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여전히 남은 과업이 놓여져 있다. 아직도 단 한번도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 있다. 지금도 하나님은 바울 선교사를 통해 이렇게 도전하고 계신다. (롬10;12-15)

 

“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 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출처 : 내 사랑 중국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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