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독교

[스크랩] 중국삼자신학의 윤리도덕(倫理道德) 강화(强化)

수호천사1 2009. 4. 29. 11:40

1996년 중국기독교전국회의에서 정광훈(丁光訓)은 중국신학발전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는 모든 종교가 ‘선(善)’을 중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시 반드시 선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이 은퇴할 때에 반드시 보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가 윤리도덕을 중시하는 중국교회라고 하였다.[1])

 

기독교를 윤리도덕의 종교로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제남회의(濟南會議)’ 이후 활발히 진행되었다. 당위민(唐衛民)은 도덕적 수양이 기독교인의 신앙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요소라고 보았다. 이는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경은 개인적 도덕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정반(正反) 양면(兩面)의 사례들을 통해 인생의 모든 비극이 개인의 도덕적 문제들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경은 인간에게 도덕적 모델을 제시한다. 아브라함이 부친의 임종을 지킨 것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조카 롯을 구한 것은 화목한 가정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삭이 적들이 파괴한 우물을 여러 차례 복구한 것이나, 최후에 쌍방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 등, 성경에는 도덕수양과 관련된 말씀이 수없이 많다. 주 예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바울은 사랑의 교리를 발양함으로써 예수의 교훈을 구체적 생활 범위 내로 확장시켰다.[2])

 

당위민(唐衛民)은 구약의 윤리가 공의와 참 하나님을 섬길 것과 국가와 민족에 충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신약의 윤리가 성결, 포용, 박애를 강조한다고 보았다. 그는 고등종교의 특징이 윤리와 도덕의 강조에 있으므로 도덕적 생활이 결여된 기독교신앙은 완전한 기독교신앙이 아니라고 보았다.

 

서효홍(徐曉鴻)은 도덕무용론(道德無用論)을 이단사교(異端邪敎)들이 사람들을 미혹할 때 쓰는 공통적인 수법이라고 보았다. 그는 도덕무용론이 비록 교회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드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사회주의 중국의 정신문명건설 방면에서 보여주고 있는 성과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적지 않은 모범 인물들이 출현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의 훌륭한 공민이다’라는 말에 대해 많은 신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문명건설 현장에서, 홍수 지역의 재난 구조에서, 장학사업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업에서 기독교인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있다. 농촌 지역에서는 이웃과의 화목, 가난 극복, 법에 따른 납세, 공안법 준수 등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다.[3])

 

이아걸(李雅杰)은 개인적 측면의 윤리도덕을 강조하면서 자기 몸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도덕의 황금률로 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요구를 헤아리는 것이 윤리의 출발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것이 공자(孔子)가 말한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于人)라는 규율보다 더 적극적이라고 하였다. 그는 물질문명이 발달한 오늘날, 사람들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고 생활의 박자가 빨라짐으로 말미암아 인간관계에 있어 점차 우정과 신뢰가 결여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독교의 사랑의 윤리를 제시하였다.

 

진전원(陳田元)은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는 기독교 윤리가 개인적 차원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을 발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윤리와 도덕의 내용을 개인적 측면에서 사회∙정치적 측면으로 확대하였다. 윤리와 도덕은 개인의 인격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사회의 안정과 단결과 진보를 촉진할 수 있다. 기독교 내의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도덕만을 강조하고 사회도덕을 무시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면서 상벌을 약속하신 것은 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삼으신 것이다. 선지서는 사회정의를 특별히 강조한다.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의 천국복음은 가난한 자와 억압 받는 자가 공의의 따라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4])

 

진전원(陳田元)은 기독교가 이천년 역사의 험난한 세월을 겪으면서 이어져 내려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외에도, 기독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역량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보았다.

 

단위상(單渭祥)은 선하고 가치 있는 인류의 생활은 반드시 윤리와 도덕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전제하였다. 그는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직면하게 될 생명윤리, 인터넷윤리와 같은 새로운 윤리도덕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기준과 가치관을 객관적 진리의 발견 위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기독교의 윤리도덕이 현대화의 조류 속에서 중국사회가 흡수하고자 하는 중요한 윤리적 체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건립, WTO 가입, 세계화의 충격 등은 더 합리적인 윤리와 도덕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지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나의 종교로서 기독교가 가지는 사회적 역할과 범위는 바로 윤리와 도덕의 측면에 있다. 현대화의 세례를 받은 기독교의 윤리와 도덕은 현대화의 과정에서 중국 사회가 흡수하고자 하는 중요한 윤리적 체계가 될 수 있다.[5])

 

단위상(單渭祥)은 사회주의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시장경제의 건강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자연자원의 배치와 같은 경제적 요인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의롭고 건강한 경제윤리의식과 같은 비경제적 요소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 시장경제의 발전과 함께 부각되고 있는 배금주의, 향락주의와 같은 부정적 요소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윤리가 시장경제체제의 과정에서 일종의 평형장치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당과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사회주의정신문명(社會主義精神文明)과 기독교의 윤리도덕적 요구를 접목시킴으로써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상호 적응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학사상건설사역은 기독교를 윤리도덕의 종교로 규정하고, 성경을 윤리도덕의 교과서로 평가하며, 성경의 주요 인물들을 윤리도덕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윤리도덕이야말로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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