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자신학의 성경관 조정(調整)
2003년 7월 상해(上海)에서는 절강(折江), 강서(江西), 복건(福建) 등 화동(華東) 6개 성(省)과 1개 시(市) 약 200여명의 목회사역자가 참석한 가운데 신학사상건설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정광훈은 ‘신학사상건설사역’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선포하고, 이제 ‘신(信)과 불신(不信)’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던 관심을 ‘성경관(聖經觀)’의 문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였다.[1]) 이예(李睿)는 중국의 새로운 현실과 교회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성경관의 전환, 조정, 혹은 제고가 필연적일 뿐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2])
정광훈은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시하는 견해를 서방의 선교사들이 주입시킨 그릇된 관념이라고 전제하였다. 그는 성경에는 하나님의 계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위해 ‘더듬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그 ‘더듬는’ 과정에는 반드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성경 전부를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3])
정광훈은 성경이 불완전하다는 근거로 첫째, 고대(古代)에 기록된 성경의 내용 가운데 현대의 과학이 밝혀낸 사실과 위배되는 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둘째, 구약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이 성경 전체가 최종적으로 계시하고자 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명제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시하였다.[4])
정광훈은 성경 계시의 점진성(漸進性)을 강조하였다. 그는 점진적 계시가 최종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이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명제를 어떤 성경 구절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았다.[5]) 임문은(林文恩)은 예수의 산상수훈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를 지지하였다. 그는 산상수훈의 교훈이 율법에 대한 예수의 해석이라는 점이 성경 계시의 점진성을 증거한다고 보았으며, 또한 그 교훈의 핵심이 ‘사랑’이라는 점을 근거로 성경의 지향하는 종극(終極)이 곧 ‘사랑’이라고 하였다.[6])
산상수훈은 성경의 점진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자주 언급되었다. 손석배(孫錫培)는 산상수훈에서 반복되고 있는 ‘옛 사람에게 말한 바 … 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고찰하면서 계시의 점진성을 증거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인간의 진보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수준으로 계시를 진행하신다고 보았다.[7]) 엄석우(嚴錫禹)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된다는 사실 자체가 계시의 점진성에 대한 증거이며,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 라고 하신 말씀을 성경 계시의 점진성을 드러내는 증거로 제시하였다.[8]) 맹염령(孟艶玲)은 여성에 대한 율법의 태도, 예수의 태도, 바울의 태도, 현대 중국교회의 태도가 가지는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성경 계시의 점진성을 증명하고자 하였다.[9])
‘계시의 점진성’에 대한 강조는 ‘성경해석의 상황화(狀況化)’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고영(高英)은 성경은 변하지 않지만 성경에 대한 해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성경해석에 있어 네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첫째는, 성경이 기록된 시대와 장소의 배경을 이해할 것, 둘째는 성경이 기록된 원어를 이해할 것, 셋째는 전후 문맥의 흐름을 이해할 것, 넷째는 오늘날의 환경 속에 성경의 진리를 적용할 것이 그것이다.[10])
이홍옥(李洪玉)은 성경이 사용하는 언어, 문자, 논리 등에는 히브리와 헬라의 문화적 요소가 가득하며, 그러한 문화적 요소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므로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중국 기독교회가 그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이해할 때 반드시 중국문화의 배경을 고려하고 시대발전의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1])
계검홍(季劍虹)은 정확한 성경관(聖經觀)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실제(實際)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 가지 실제란 첫째, 중국교회가 처한 사회 실제이다. 둘째, 사회실제 속에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경험의 실제이다. 셋째, 국제환경의 실제이다. 국제환경의 실제는 해외 일부 단체세력이 중국에 대한 침투를 진행하고 있다는 실제를 포함한다.[12])
‘성경해석의 상황화’에 대한 강조는 전통신학, 즉 서구 신학에 대한 비판과 중국 기독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신학사상건설사역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 고영(高英)은 해석자의 환경을 중시하는 성경해석학이 중국을 포함한 제3세계 기독교가 서구 기독교신학을 탈피하는 데 유리하다고 평가하였다.
최근 점차 많은 제3세계 국가의 기독교인들이 전통적인 선교방식과 선교신학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식민문화가 가지고 온 우월감을 기독교 신학 가운데에서 제거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오늘 세계 교회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해석학의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의 원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에서 얻은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교회 환경 가운데 응용하고자 한다.[13])
이예(李睿)는 중국교회가 성경관을 건설함에 있어 ‘서방중심(西方中心)’의 성경관을 경계함과 동시에 중국문화와 교회의 특징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서방 선교회의 각기 다른 성경관이 여과를 거치지 않고 분별없이 중국교회에 침투 및 누적됨으로써 오늘날의 중국 기독교인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점차 중국교회의 자아의식을 마비시켰다고 평가했다.[14])
황조장(黃朝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 해석이 전통적 해석과는 다른 과감한 성경해석을 시도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통해 중국 기독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신학사상건설(神學思想建設)의 정당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예수께서는 성경을 가르치시고 운용하실 때에 언제나 전혀 새로운 각도와 시대상황에 기초를 두고 천국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성경을 생동감 있게 이해하고 생동감 있게 활용하였다. 그는 귀납, 변증, 상황화의 방식으로 그가 만나는 모든 신앙 및 인생의 문제를 처리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신학사상을 건설하였다 … 중국교회가 전개하고 있는 신학사상건설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역사와 현실을 용감히 직면하였고, 과감하게 창의성을 발휘하였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상, 새로운 사물,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인도 아래 신학사상을 조정할 때 기독교 교리가 그 생명력을 보존하게 되는 것이다.[15])
고영(高英)은 성경관(聖經觀)의 조정(調整)이 신학사상건설사역의 최종 목적이라고 하였다.
현재 우리 교회는 신학사상건설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최종적 목적은 성경관을 조정함으로써 중국교회의 상황과 실정에 맞게 성경을 응용하는 것을 돕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처한 환경에 대하여 정확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우리의 성경해석의 입장은 우리 교회가 오늘날 사회에서 겪는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자아반성의 의식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통적 성경관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편차를 극복하고 중국교회가 처한 역사발전 단계에서의 도전과 필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16])
현재 신학사상건설사역의 최대 관심사는 ‘성경관(聖經觀)의 조정(調整)’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관의 조정’은 먼저 성경의 점진적 계시를 전제로 하고 나아가 해석자가 처한 상황에 따른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결국 ‘성경관의 조정’이 요구하는 것은 중국 기독교회가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서구신학의 성경해석방법을 탈피하고, 중국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출발한 독자적인 성경해석을 통해 사회주의와 상호 적응한 신학사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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