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료선교 현황과 전망
송모세 선교사
1. 중국의 국민의료 현실
1) 의료 수혜의 불평등 구조
흔히 중국이 철저한 사회주의 국가이며, 국가가 인민들의 보편적인 삶의 요구인 교육이나 의료를 평등하게 제공해 줄 것이라는 상식적인 선입관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교육여건이나 의료설비 등이 빈약하며 매우 낙후되어 있는 것은 차지하고라도 그나마 그 수혜의 알맹이는 권력층과 부유층이 선점해 버리기 때문에 중국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는 도시빈민들과 농민들은 교육과 의료의 외곽지대에 놓여 있다.
오늘날 일반적인 중국인들에게 “당신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생활문제가 뭐냐?”고 물어보면 거의 이구동성으로 낮은 수입에 비해 상상을 초월하는 자녀 교육비와 제대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여 폐질환으로 망가져 가는 자신들과 식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되면서 ‘배급하는 사회주의 경제’로 꾸려왔으나 결국 그것은 급격히 발전해 나가는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한 세대나 뒤쳐지는 결과를 낳았다.
등소평이 실권을 잡자 중국은 개방, 개혁을 과감히 실행하여 자본주의 기업처럼 ‘이윤을 내는 경제체제’로 몰아갔다. 등소평의 바통을 이어받은 현재의 실용주의 노선의 지도자들은 더욱 개혁에 속도를 붙여서 중국에서 ‘국가에 기대어 손해를 끼치는 요소’는 그것이 뭐든지 잘라냈다.
학교나 병원도 예외일 수 없었다. 사실 그 동안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주었던 이들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 대신 자율적인 경영을 통해 운영해 나가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중국의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9년 동안의 ‘의무교육’이 유명무실해지고 유치원부터 중· 고등학교 까지 소위 ‘귀족학교’가 도시마다 등장했으며 베이징의 H중학은 기숙사비를 포함한 1년 학비가 미화로 1만 불에 이른다.
이런 풍조는 모든 학교에 미쳤으며 아주 열악한 교육여건을 가진 학교에서 조차 갖가지 잡부금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시달리고 있다.
교육의 불평등 이상으로 심각한 것은 의료수혜의 불평등이다. 물론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지역편차와 소득편차가 극심한 것이 또한 중국이다.
지역편차라는 것은 동남부 해안과 서부의 내륙,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말하는데 기본적인 수술이 가능하며, 암 같은 난치병을 진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은 중국의 해안 도시들과 수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에만 몰려있다.
따라서 서부 내륙의 농촌사람들은 일생동안 병원의 문턱을 밟아보는 일이 없다. 아주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을 가지고도 평생 신음하는가하면 죽어가는 사람도 많다.
2) 중국인들의 의료관행
도시인들도 병원의 문턱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돈이 적게 드는 민간요법이나 약방에 매달린다. 중국의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광고의 절반 이상이 의약품 선전이며 길거리에 뒹구는 광고물의 대부분이 약 선전이다.
중국인들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우선 곳곳에 산재한 약방에 들러서 자기 임의대로 진단하여 거기에 맞는 약을 달라고 한다. 따라서 약물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정도가 심하다.
중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으나, 그것을 채움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한숨짓고 있다. 따라서 중국인들을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는 길은 의료선교가 되는 것이다.
2. 중국의료선교 역사
1) 淸朝 초기의 예수회 선교사들
淸朝가 세워지면서부터 중국에 활동하고 있던 로마가톨릭 선교사들과 청국 황실의 관계는 친밀해졌다. 청조 2대 황제 강희제(康熙帝)는 로마가톨릭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갖게 되어 1692년에는 로마가톨릭의 중국 내 포교를 공식으로 허락했고, 그 뒤에는 紫禁城(황궁) 안에 프랑스 선교사들의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또 자신이 말라리아에 걸려 병석에 누웠을 때 자신을 완치시켜 준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베이징에 교회를 지어 이들에게 하사했다. 물론 침, 뜸, 약초요법 등 중국고유의 전통적인 의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당시 서양에서 일기 시작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의약품이나 치료기술에 상당한 진보를 가져왔고 로마가톨릭에서는 선교사들을 신과학과 의술, 신기술로 무장시켜 선교지에 파송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淸國 황실의 호의에 힘을 입은 로마가톨릭은 皇帝와 皇室을 자문한다면서 점점 내정에 간섭하는 일이 잦아지고 나중에는 제사나 공자사당 및 천신단에 의식을 올리는 전통적인 중국의례에 대하여 우상숭배라고 규정하면서 교황의 금지칙령이 내려지기에 이른다.
그러자 강희제는 황제의 권위를 침범하며 내정간섭을 한다는 이유로 일부 예수회 선교사 외에는 대부분 추방했으며, 그 후로 로마가톨릭의 선교는 입지가 좁혀져 크게 위축되었다.
2) 청조 말기의 서양 기독교와 의료선교
기독교(개신교)와 중국의 만남은 악연으로 시작된다. 중국에 상륙을 시도하던 영국, 미국 등 기독교선교사들은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중국과 영국이 중국 내 아편의 반입을 둘러싸고 벌인 소위 ‘부끄러운 전쟁’인 [아편전쟁(1839-42)]의 결과로 중국역사에 치욕인 [남경조약]과 [천진조약]을 통해 선교의 기회를 얻어 낸다. ‘총과 대포로 얻어낸 선교할 권리’가 중국인들로부터 반감을 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선교사들은 외국인들의 거주지인 조차지에서는 그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으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중국인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생명의 위협이 되었다. 중국인들과의 사이에 가로 막혀있는 장벽을 두고는 조금도 복음의 진보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교사들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고심하였고 그 결과 중국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중국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호의적인 방법의 하나는 [내지선교회]의 설립자인 [허드슨테일러]처럼 중국인이 먹는 음식을 먹고, 중국인이 입는 의복과 변발을 하고, 중국인처럼 사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것인데 곧 교육과 의료에 헌신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선교기관들이 이 부분에 집중하여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워 가난하고 병든 중국인들을 깨우치며 치료해주었다.
그러자 중국인들은 선교사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갖게 되었으며 따라서 복음으로 접근이 가능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이 가진 서양인 선교사에 대한 깊은 반감과 불신의 벽을 교육선교, 의료선교가 허물었던 것이다.
3. 의료선교 실태
중국에서의 의료선교는 마치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전과 같다.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에 모두 무너졌고 폐허가 되었다. 다시 수축해야 한다. 이 일에 중요성과 시급성을 인식하고 의료선교를 위해 병원과 진료소 등 중국인들에게 다가 갈 수 있는 의료기관들을 일으켜야 한다. 현재 중국의 정치, 사회 상황은 다른 어떤 때보다 이것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 첫째, 유연하고 개방적인 정치 분위기와 성(省)급 이하의 정부가 외국 의료기관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둘째, 모든 중국인들의 보다 질 나은 의료에 대한 갈망을 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면 현재 거의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교회의 중국 의료선교 실태를 살펴보자.
1) 의료기관에 의한 선교접근
北京, 延吉, 丹東 등 여러 지역에 세워졌거나 세워지고 있는 병원들, 개인이 세우는 경우도 있으며 한국에 있는 기존병원이나 선교기관이 세우는 경우도 있다. 丹東의 경우는 국민들의 성금과 기업의 후원금으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쉬운 것은 한국교회가 이 일에 별 관심도 없고 투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길림성 M시립병원과 협력관계를 맺고 낡고 낙후된 시설을 500베드 규모로 중수하고 현대식 의료설비를 설치해 주고 모든 운영과 관리는 M시 당국에 일임하고 캐나다, 독일, 한국 등에서 파견되어 온 의사, 임상 병리사, 기사, 간호사가 일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온 경험이 풍부한 5명의 수녀간호사들은 헌신적으로 봉사하여 대단히 환영받고 있다고 한다. 초기에는 거액을 투자했기 때문에 병원의 운영권을 누가 가지느냐를 가지고 갈등을 겪었는데 가톨릭은 모든 운영권을 M시에 넘기고 전문적인 영역에서 봉사만하기로 하였으며 결과는 오히려 선교면에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규모로 비영리적인 의료기관을 설립 운영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본 운영비를 충당해 가며 지속적으로 의료선교하기 위하여 보다 작은 규모의 개인 병원이 많이 세워지고 있다. 한국에서 취업난을 겪는 의사들 가운데 중국행을 선택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의사 가운데 선교 헌신자가 많이 나와서 중국 곳곳에서 병원을 세우고 있는데 주로 한국인들이 많이 와서 사는 도시에 세워진다. 한국교민은 한국 기업이 많은 산동성의 청도, 위해, 연태와 요녕성의 대련 등 몇 개 도시를 제외하고는 대개 유학생과 기업인을 포함한 일반인들이 반반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교민 1,000명이 넘는 도시라면 병원을 세웠을 때, 기본운영비를 충당해 갈 수 있다.
이들 한국 병원은 한국교민들에게 환영받고 있는데 한국 병실의 분위기와 아픈 사정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2) 단기 의료봉사활동에 의한 선교
한국대학의 긴 방학은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선교봉사활동을 하기가 좋다. 특히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의료 봉사팀을 구성할 때 지원자가 많은 편이다.
주로 어떤 지역과 연관된 전문적인 선교기관이나 규모가 큰 교회의 의료선교팀이 그 교회와 연결된 선교사의 안내로 의료혜택에서 낙후된 지역에 들어가서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데 너무 노골적인 복음전도가 아니라면 눈감아 준다.
그러므로 의료선교는 그 지역에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 계기가 된다.
3) 중의학을 배운 선교사에 의한 의료선교
중국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선교는 의료선교다. 교육선교는 “항상 무엇을 가르치고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특히 중국에서 아무리 많이 투자를 했다하더라도 외국인이 가르칠 경우에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감시되고 통제되기 때문에 효과를 내기가 힘들다.
그러기 때문에 중국에 파송되어온 선교사 중에 젊은 층들은 다시 중의학원에 들어가 의학을 배운다. 이미 상당수는 공부를 마치고 현장에 투입되어 있다. 그들의 활동은 대개 두 방면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도시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빈민들에게 인술을 펴면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농촌을 순회하면서 의료혜택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병든 자를 돌봐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중국에서 가능한 새로운 선교모델의 하나가 된다.
4. 중국에서의 의료 선교전망
앞서 밝힌 바가 있듯이 현재 중국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교방법이 의료선교이다. 앞으로 더욱 이 방면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야 하겠고 헌신자들이 많이 나와서 까다로운 중국선교의 문을 열어야 한다. 중국에서 병원을 설립할 경우, 대규모 투자인 경우에는 성(省)이나 시(市)정부 단위와 협력하고 아무 조건 없이 운영권을 맡기는 것이 낫다. 그 대신 반대급부로 선교부분에 특혜를 받으면 더욱 좋다.
개인병원의 경우, 가능한 거류 한국인에게서 기본운영비가 나오는 장소에서 적정규모의 병원을 열고 중국인에게 인술을 베풀면서 변화되는 중국의 상황에 맞추어 중국인에게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모델이다.
그리고 다양하고 많은 단기 의료 선교팀들이 구성되어 끊임없이 중국의 깊은 대륙을 공략해야 한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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