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개조 운동
신앙개조운동은 삼자교회와 협력하고 있거나 협력하려하는 선교사들이 간과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삼자교회가 외면적으로 아무리 변신을 한다 해도 신앙개조운동을 시행하는 한 삼자교회는 변화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지역과 목사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삼자회 지도부가 상부의 지휘를 따라 시행하는 신앙개조운동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시작된 신앙개조운동을 간파하고 명확하게 이해함으로 표면적 현상 뒤에 있는 삼자교회의 실체를 확실히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1. 신앙개조 운동의 사회적 배경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교회도 장대한 발전을 하였다. 정부는 종교의 관리를 강화하며 인도라는 명목으로 종교와 사회주의가 서로 부응하게 하려한다. 삼자교회는 50년 동안 중국을 종교가 없는 지역으로 만들려고 적극 노력하였다. 즉 기독교 내부에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삼자회를 두어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서로 부응하도록 하였다.
신앙개조운동이 진행된 것은 강택민이 "민족의 일과 종교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전국 연합 회의에서 언급한 중요한 세 가지 사항에 기인한다.
1) 전면적으로 당의 종교 정책을 정확히 관철하여야 한다.
2) 법에 따라 종교 사무관리를 강화해야한다.
3) 종교와 사회주의가 부응하도록 적극 인도한다.
전국 정치협회 주석 이서환(李瑞環)은 강택민의 연설을 "우리의 모든 연설은 종교와 사회주의가 부응하도록 적극적으로 인도하며, 어떤 종교도 법을 엄격히 지켜야하고, 인민의 유익을 구하고, 민족의 단결을 도모하며, 국가의 통일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주석하였다. 이 말에 따르면 종교계 사람들이 정부의 4가지를 보증하라는 말을 따르고 지지해야 만하며, 그래야 종교신앙은 정부의 보호와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기독교 삼자회의 주석이자 기독교협회장인 정광훈 주교의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은 다르다. 이서환이 이것을 발표한지 한달 뒤인 96년 3월의 전국 정치협회 제 8차 모임에서 정광훈은 "종교에 대하여 정치 태도와 당과 정부의 보호는 부족하다. 이는 종교 신앙은 본래 사회주의 발전을 낮추게 하는 하나의 위기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종교신앙을 고조시키는 것은 정치상 하나의 실수이며 사회주의에 부응할 수 없다"고 하였다. 계속하여 "종교는 마땅히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의 문장'을 만들지 말야한다. 왜냐하면 믿음을 높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부정하며, 신도가 공산당과 대립하게 되며, 이러한 대립의 현상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게 되면 저들을 이용하게 될 것이며, 돌변하여 정치의 분열을 야기하며 충돌과 반항하며, 우공의 산을 옮기던 정신과 자신의 개혁을 촉진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것을 기독교에 실험적으로 행해보기를 결심하였는데, 그것은 '신학 사상 건설 운동" 바로 신앙개조운동이다. 이는 삼자애국의 50년 동안 완성하지 못하였던 것을 자기가 완성해 보려 하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당과 정부로 하여금 종교 신앙, 특히 기독교 신앙이 정부의 주목을 받고, 신앙개조운동을 적극 지지하도록 하였으며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철저하게 개혁하도록 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정광훈의 발언이 비밀 문건으로 만들어져 각성 일급 종교 사무국에 전해지고, 정부의 종교관련 업무지침 문건이 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그들은 기독교에 시험을 해보고 모든 종교에 행하려고 희망하고 있다.
신앙개조운동의 발전과 과정의 중요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는데, 이것은 중국교회 발전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2. 신앙 개조 운동의 형성과 발전
삼자회는 1950년대 초에 신앙개조운동을 삼자의 애국운동으로 시작했다. 신앙개조운동은 사실상 삼자는 자치 자양 자전 중에서 자전의 일부이다. 삼자회의 어느 원로는 50년대의 삼자운동을 제 1의 황금시대라 말하고, 신앙개조운동을 제 2의 황금시기라고 말한다. 처음 삼자가 일어났을 때 오요종은 "자전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가서 전도하는 문제가 아니고, 어떤 것을 전하느냐의 문제"라고 하였다. 그는 "자전은 중국 신도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인데 서방 신학을 벗어나서, 현실의 사상을 피하고, 중국 신도 스스로의 신학체계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요종이 퇴임했을 때 1956년 「천풍」에 한번 이 주제에 대한 신학 대토론을 게재하였다.
개혁개방 후 정광훈이 삼자의 수령이 된 이래 기독교 신앙개조운동을 그대로 내버려 둔 적이 없다. 신앙개조운동은 다시 건설하려는 '사회주의 기독교' 의 꿈을 꾸었다. 1996년 3월 정광훈은 전국협회 회의상에서 기독교 자체 내에 실험을 시작했다며, 그의 혁신 사상을 역설했다. 같은 해 9월 그는 "기독교의 하나의 사상에 깊은 문제를 말한다"를 썼는데, 여기서 그는 공개적으로 이신청의의 교의를 비판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도덕의 무용론을 부축인다고 말하고 복음의 윤리도덕 내용을 속이 비게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주의로 만들고 선악의 하나님이 아니게 하였다.
1997년 정광훈은 금릉신학원에서 신앙개조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신학생들의 종교신앙에 애국심이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아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정부에 대한 태도에서 반동적인 신앙은 진정한 애국이 아니다) 이는 신학생들의 신앙은 믿음과 불신사이에 깊은 모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앙개조 운동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신학생들의 신앙을 개조하는 운동은 매우 중요하기에 이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하였다.
1998년 정광훈은 자신의 문집 출판물에서 신사상의 중요 자료들을 널리 보급하면서, 신학생과 교수들이 읽게 했고 글을 쓰게 하면서 금릉신학원에 그의 사상이 강제로 퍼지게 했다. 그의 행동은 동역자들의 많은 반감을 샀으나 당과 정부의 많은 지지를 받는 위치를 획득했다. 국가 종교 사무국장은 "내가 보기에 정광훈의 문집은 삼자애국 운동의 일환이며 새로운 진로의 시작이다."라고 평하였다. 그리하여 중앙정부는 정광훈의 신앙개조운동의 내용을 승낙했고, 그의 신학사상을 밀어주며 돈을 달라면 돈을 주고 사람을 달라면 사람을 보내 주었다. 얼마 전 삼자교회 내에 정광훈의 사상은 교회관리위원을 평가하는 도구가 되었고, 합격의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남경의 삼자회 관리를 받는 교회들의 예배 순서에 정광훈의 어록이 성경, 찬송과 같이 있게되고, 매 주일 성도는 정광훈 어록을 배우며 외우게 했다는 말이 들린다. 1998년부터 정광훈의 신앙개조운동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가 인민 정부협회 신문에 발표한 "종교 관념을 조종한다"에서 "금릉신학원과 협회는 정치상 낙후되었고, 신학과 신앙이 보수적이다"라고 엄격히 비평했다. 그는 "교회의 아주 낡은 신학관념들이 학원 내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어느 교수를 "성경의 예수 재림의 강의는 조국에 대한 복과 화에 대하여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는 삼자애국과 사회주의 건설에 반대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지금의 정치 조건을 이용하여 종교관념의 본래의 모습을 변혁하려하고, 종교 안의 모든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합당하지 않은 것이어서 종교 관념의 변화를 촉진하며, 종교 관념과 사회주의가 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정광훈은 "종교의 사회주에 합당치 않은 것들에 대해서 어떤 것은 즉시 버려야하고 어떤 것은 차츰 버려서 종교가 사회주의에 합당한 신관념으로 발전해야하는데 이렇게 된 것이 종교의 새로운 모습이다"라고 주장하였다.
1988년 11월 화동지역 삼자회와 신학교가 참가한 신덕(信德)회의(또는 취풍회-吹風會)에서 정광훈은 대담히 삼자회 지도자들에게 정통 아닌 자유화를 요구하였다. 공개적으로 신학사상의 다양화를 제기하였으며, 또한 "신학은 대담하게 정통을 타파해야하며 자유화되어야 한다"고 선동하였다. 게다가 그의 독일친구는 대담하게 예수님은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고, "오늘날 중국의 기독교인들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대중에게 자신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며 또한 근본주의자를 싫어한다"고 선언하였고, 또 말하기를 "1950년대의 싸움을 다시 싸워야한다(1950년대에는 워치만리와 왕명도를 싸워 쓰러뜨렸으며 정광훈은 아직도 그때의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다). 50년대에 논쟁하던 문제가 다시 나타났고, 교회 불일치의 요소들은 퇴조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신도들의 복음전도와 간증을 반대하였다. "현재 중국교회의 신도들은 너무 적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다. 우리가 전도와 간증을 강조할수록 오려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며 그 신도들의 수준은 낮아지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천풍」에서 전국 삼자회가 발행하는 모든 간행물의 문장의 말끝에는 전도와 간증으로 되어 있다고 비평하였다. 회의 후 그는 각 대표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기를 "교회로 돌아간 뒤에 만약 우리의 의견이 신도들의 의견과 다르다면,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하며 그들의 관점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신도들에게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복음주의세력의 인사들을 존중할 필요가 없다. 또한 더 이상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와 같은 책을 써서 비위를 맞출 이유도 없으므로 이제는 「그들도 기독교인이다」(정광훈이 현재 쓰고있는 책으로, 사람의 인품이 좋고 그 행위가 선하면 모두가 기독교인들이라는 내용이다)와 같은 책을 쓸 수 있으며 내어놓고 자유와 다양함을 말할 수 있다."고 하여 대담히 삼자회 지도자들에게 정통아닌 자유화를 요구했다. 또한 그는 삼자교회를 "영성파가 주류를 이루고 영성파가 천하를 통일했다"고 비판하였다.
신덕회의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98년 12월 산동 제남의 전국기독교 제6회 2차회의에서 '신학사상 건설의 결의'를 통과 시켰고, 정광훈은 이를 금능신학원의 신학사상 건설의 근거로 선택했다. 삼자회는 1950년대이래 반세기동안 정광훈을 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세력을 잡기 위하여 정부를 이용해 99년초 학교 개혁을 시작했고, 기회를 잡아 신학사상 건설의 이유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신학생 6명을 내쫓았고, 성경의 진리를 보호하며 전도를 중시하는 교수는 권고퇴직 또는 해외유학을 보내고, 심지어 어떤 때는 교수의 자격을 박탈해 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신학 경험이 없는 자나 유학행정을 담당하는 자를 새롭게 바꾸어 버렸다. 현재의 교무처장은 모 대학의 정치선전원이다.
1999년말 상해 있는 전국 삼자회는 정광훈을 ' 중국 기독교 신학사상 건립을 밀어주는 모임'의 장으로 세웠는데, 전국의 양회와 전문 위원회에 "모두가 적극적으로 신학사상 건설의 발전을 밀어준다, 신학교육 위원회, 문자 출판 위원회, 자전 연구 위원회 등 새로운 조직이 절강, 복건, 강소, 상해, 북경 등에서 모여 성경을 떠난 새로운 신학사상을 보급한다."를 요구하였고, 이신칭의(以信稱義-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이애칭의(以愛稱義-사랑을 근거로 의롭게 됨)로 바꾸었다.
2000년 신학사상 개조 운동은 전국 각지 삼자 관하의 모든 곳에서 전개되었는데, 심지어 현과 향의 교회에까지 전개되었다. 금년 초 정광훈은 상해의 국제 교회에서 700여명의 인사에게 새로운 그의 사상을 소개하였다. 강소성 삼자교회 교역자들이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신학연구토론을 개최하고 각 사람이 정확히 문장을 만들어 이것을 출판하여 교역자료로 삼게 했다. 금릉신학원도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정광훈의 신앙개조사상을 토의하였다. 그래서 석사의 논문은 필수적으로 정광훈의 신앙개조사상을 인용해야하고 그의 관념에 통과해야한다.
학교측에서는 감위창신('敢爲創新-대담히 새롭게 창조하자)'을 요구하였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성경은 기독교 윤리도덕의 표준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석사과정의 어느 학생이 전하기를 '사상교류회'에서 성경의 무오론을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① 성경과 과학은 맞지 않으며 신약의 부활에 대한 기록은 과학에 맞질 않는다.
② 구약 성경은 도덕과 맞질 않는다. 왜냐하면 구약의 사무엘 선지자는 대도살을 북돋았다.
③ 신약 성경 중에 도덕에 대해 무오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바울의 말은 기독교 성도들의 생활에 표준이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3. 신앙개조 운동의 중요 내용
신앙개조 운동은 3가지 큰 주장을 갖고 있다.
1) 삼자애국운동의 전면 재교육을 강조하며 삼자애국운동의 성과를 견고히 하며 발전시킨다
2) 자유주의 신학을 널리 펴며. 복음파의 힘을 분산하며 철저히 약화시키고
3) 신앙개조를 빨리 실시하여 기독교 신앙 중 사회주의에 불합당한 것을 제거하고, 사회주의 신 종교를 만든다.
이제 전술한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1) 삼자 원로의 사상건설의 주장은 교회 안에서 삼자애국 운동을 재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삼자는 중국교회의 하나의 정치 방향이며 중국교회는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애국을 하며, 해외의 기독교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신앙개조운동의 발단은 바로 일차 삼자 애국운동의 재교육에서 출발하며, 교회의 위 아래로 삼자의 합리성과 필요성을 잘 알게 하고, 삼자 애국운동의 성과를 보호하는 것이다. 현재 삼자회의 주석인 라관종(羅冠宗)은 "해외의 반동 세력이 중국을 향해 부채질한다, 신중국을 반대하는 수단으로 삼자운동을 공격하며, 중국기독교의 애국주의 사상과 언론과 행동을 공격하며, 중국기독교를 식민지화 하려하는데----, 개혁개방이후 제국주의와 해외 적들의 세력은 삼자를 계속 공격하며, 변화시키려는 방법으로 겉으로는 '친구여'하며 작은 은혜의 혜택을 주면서 조금씩 속여오며 심지어는 돈을 주어서 우리나라 교회의 권리를 침범한다. 그들은 바로 국가의 권리를 침해하려고 함부로 꾀하는 것이며 사회주의 조국을 전복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는 깨어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말하였다. 금릉신학원의 새 교무처장인 왕애명(王艾明)은 심지어 신학개조운동은 삼자애국원칙에 입각하여 기독교의 교의 측면과 사상과 실전 상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학사상 건설의 대사명은 "교의 신학 측면에서 삼자의 원칙에 입각한 조직신학의 체제에서 중국교회의 특정한 신학적 교의학을 형성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삼자애국운동은 교회중의 정치운동이 중국기독교의 교의로의 변화이며, 중국 특색의 기독교 신앙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교회의 신앙고백을 바꿔야하는데 나는 삼자 애국의 원칙을 믿는다."고 하였다.
2) 자유주의파의 주장은 '사상건설로 정치상 낙후된 복음파의 신학을 자유주의의 발전한 사상으로 정치를 바꾼다'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로 소수의 청년회를 배경으로 당과 정치의 세력이 교회에 들어옴으로 당과 정부의 충실한 친구가 되었다. 복음파의 주장은 교회와 정치의 분리이다. 그래서 정치상의 세력으로 보면 낙후분자이며 자기들의 신앙 입장으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파는 지나치게 신앙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여 사회주의에 부적합하며 정치상 낙후되었고, 신학상 봉건사상이다라고 말한다. 중국기독교는 복음파가 자유주의신학을 받아들여야하며, 신학사상 건설의 목적은 복음파를 또 하나의 자유주의로 개조하거나 자유주의로 만드는 것이다. 금릉신학원 원장 진택민은 "50년 전의 신학사상(예: 송상절, 계지원, 조세광등의 부흥사)이 교회 안에 전해 내려왔으며 50년간 변한 것이 없다. 교회의 많은 사상이 사회주의에 협력하지 않고 합당하지 않고, 신학 사상이 현실적으로 낙후되었다"고 중국교회를 비판하였다. 진택민은 학생대회에서 공개적으로 "금릉신학원의 교수와 학생중에 신학사상건설에 적극적이 아닌 자가 있다. 교수와 학생은 전투에 참가해야하는데, 바로 새로운 신학사상과 옛 신학사상의 싸움이다. 만약 전투에 참가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전투를 통하지 않고는 새로운 신학사상개조운동을 널리 전할 수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진택민이 말하는 신사상의 목적은 그의 저서(신학지 99년 제4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모든 종교와 모든 민족의 신은 같은 하나님이다.
다만 다르게 이름을 부르고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의 신은 모두 같은 한 분이다. 다만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신은 자기의 이름을 계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단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있는 자(출3:14)이며 모든 신의 이름은 사람이 지은 것이다.
②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함은 정치상의 반동이며 신학상의 잘못된 관념이다.
전동심은 「정주교 기독론 약론」에서 우리 나라의 기독교계에서 믿음으로의 교리를 이용하는데 기독교의 의를 믿지 않는 자태이다. 또한 정치상 명백한 반동이며 사실 신학상 틀린 것이다 라고 하였다.
③ 종교 신앙의 전부는 믿음이 아니고 도덕이다.
유위는 「정주교의 기독교 도덕 윤리 관점」에서 계시록중의 새로운 소식이라는 것은 본래 사도를 통해 윤리도덕의 품행을 중시하라고 읽는 자들을 일깨우는 것이기에 다르게 해석해서는 안된다 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도의 신앙과 기독교 신앙이 요구하는 모든 내용은 잘못된 것이며,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잘못 해석하고 왜곡한 것이고, 도덕이 결핍되어 있고, 기독교를 미신화 하는 것이며, 숭고한 신앙을 변질시켜 기독교 특색의 민간 미신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④ 믿지 않는 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황계신은 「교회 밖의 진선미와 구원의 문제」에서 "만약 교회 밖의 사람이 양심적으로 지도하고 행동하는 생활을 한다면 그는 의롭다 할 수 있다. 행위의 진선미는 구원에 대단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들이 복음을 듣지 못했다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의롭게 되었기에 구원을 얻는 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3) 정광훈의 주장인 사상건설은 바로 철저한 신앙개조이며 사회주의에 부적합한 신앙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버려야한다는 것인가, 무엇이 고결한 신앙인가?
정광훈의 신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하나님의 최고의 속성은 공의가 아니고 사랑이다.
② 하나님의 최고의 일은 창조이지 구원이 아니다.
③ 성도가 부활을 믿는 것은 신앙의 세계관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문제는 더 사고할 필요가 없다.
④ 성경의 일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먹어 보지 못한 것을 먹는 것이며,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며 해보지 못한 많은 것을 해보는 것이다.
⑤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죄가 없다. 복음은 바로 복음이다. 유일한 하나님을 승인하는 것, 피안의 세계가 있다는 것,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것들은 무능한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복음이 아니다.
⑥ 예수가 와서 하신 말씀 중에 말세의 소식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군중을 기만하고 우롱한 것이기에 사회주의는 친근감이 없다. 그는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이 묻는 것이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가 아니고 약하고 굶주린 자에 대한 태도를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⑦ 교회의 사명은 전도나 간증이 아니고 윤리도덕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강조하고 간증해서 사람이 많아지면 소질만 점점 낙후될 뿐이다.
⑧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의는 도덕의 무용론을 부축이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애청의(以愛稱義-사랑으로 의롭게 됨)로 바꿔야 한다.
⑨ 기독교는 회개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각종 종교와 중국의 민간종교도 같은 내용이다. 그것을 배워보면 천당지옥, 신선, 귀신 등이 없고 인간을 인도할 피안의 세계가 없으며 믿고 안 믿는 것을 논하지 않으며 귀신이 병마를 준다고 하지 않는다.
⑩ 기독교는 믿음을 높일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널리 강의 해야한다.
이와 같은 정광훈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①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다.
② 사람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자유의지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③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
④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하며 믿음이 의롭게 됨의 근거이다.
⑤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은 선택한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⑥ 세상에서의 육체적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모두 마귀로부터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적이다.
⑦ 세상과 세상의 일을 사랑하지 마라.
⑧ 믿음과 불신은 함께 할 수 없다.
⑨ 전도를 논하지 말고 성도는 기도하고 전도를 실천하라.
⑩ 미래의 신천지는 이 세계의 대신이다.
결 론
신앙개조운동이 정말로 기독교의 신앙을 개조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신앙개조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중국의 성도는 잘못을 능히 분별할 수 있으며 신앙을 위해 용감히 도전해 나갈 것이다. 중국의 교회는 이러한 열심을 가진 진리의 성도들이 있고, 진리에 입각하여 굳건한 교회를 세워갈 것이다. 신앙개조 운동은 삼자교회에서만 가속화 될 것이고, 진정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분별하여 나올 것이다. 또한 그 동안 대가를 지불해온 가정교회는 마땅히 신앙개조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삼자의 진실한 면모를 여실히 보게될 것이며, 더욱 복음 전도에 매진하며 증인들에게는 믿음과 힘을 더하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가정교회는 더욱 성숙하고 강해질 것이며 성령의 끝임 없는 인도를 받으며 삼자에서의 진정한 신앙인들을 흡입하게 되며, 50년간 분열되었던 교회가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중국은 더 아름답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중국의 기독교 교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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