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교사가 체험한 삼자교회
어느 선교사는 여러 해 삼자교회를 섬겼다. 중국의 변방이어서 그런지 삼자교회와 가정교회가 서로 협조하며 공존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여서 부담없이 삼자교회에 참석하고, 삼자교회 교역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제를 가졌었다. 그 선교사에게 삼자교회가 그 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교회처럼 보였다. 삼자교회의 형제들과 만나면서 그 선교사의 생각 속에 어느덧 그 전에 배웠던 삼자교회는 공산당의 통전부에 의해 관리되고 감독, 임명되며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하는 정치적 기구로 생각한 것이 현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삼자교회에서 공식적인 설교는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각 교회 지도자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가 못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따로 교제 형식으로 모여서 그들에게 목회적이고 기본적인 내용들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피부로 느낀 것은 언제나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최종 결정에서 정부의 간섭을 문제삼고 나섰고 늘 정부 관리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교제를 통하여 충분히 원하는 사역들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문제를 단순히 사회주의 국가이니까 할 수 없이 교회가 정치를 해야 하는 구나 생각했다. 다행인 것은 지도자들이 그래도 순수한 복음과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선교사는 몇 년간 삼자교회와의 협력사역을 진행하면서 폭 넓게 삼자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역적인 특성상 그 선교사가 양육한 지도자들을 삼자신학원에 보내면서 삼자 지도자들의 회의 내용들을 가까이서 듣게 되었고 그들이 하는 소리를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지역적인 특성을 살려서 열심히 일하는 삼자교회 지도자들의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더 많은 문제와 아픔을 보게 되고 듣게 되었다.
1. 삼자교회 교역자의 아픔
ㅇㅇ교회의 교역자는 삼자교회를 목회하면서 동시에 가정교회들과도 은밀하게 교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경신학원을 졸업한 나이 많은 목사에게 늘 감시를 당하고 있다. 그 늙은 목사가 하는 일들은 고작 정부에 가정 처소들을 고발하는 것이고 교회 손님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선교사 일행이 갔을 때도 먼저 가서 그 목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그들을 영접하였다. 사역을 하고 있는 동안 그 교역자는 나이 많은 목사와 늘 갈등이 있었고 결국 부딪히기까지 하였다. 삼자교회에서 동역자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다.
공안원이 삼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조건을 내세워 포섭한 다음 신학교의 소식을 공안에 알리는 대가로 많은 혜택을 누리며 공부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즉 프락치를 신학교에 심고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프락치로 투입된 학생이 부학장과 같은 동료학생을 고발하는 바람에 그 두 사람은 신학원을 떠나야 했다. 이 학생은 졸업 전부터 선교사와 같이 가정교회와 삼자교회 사역을 했었다. 하지만 대도시가 좋아서 그런지 졸업과 동시에 신학원에 남아서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지 삼자교회 담임이 직접 가서 설득을 하여 데리고 와야 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둘 사이는 금이 갔고 교회에 돌아온 그 전도사는 나이가 많은 목사 편에 서서 사사건건 자기를 데리고 온 젊은 목사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는 나름대로 자기의 살길을 위해서 공안과 손을 잡고 젊은 목사를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자기가 세운 계획이 제 대로 실행되지 않자 그 전도사는 급기야 젊은 목사가 선교사하고 친하다는 사실을 알고 선교사를 고발하고 또 다시 공안의 지지를 받아 냈다. 젊은 목사는 고발을 당하였고 그 전도사는 그 땅에서 공안의 많은 지지를 받아 가면서 왕 노릇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가정교회 소식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척 하면서 우회적인 교제를 통하여 가정교회 소식들을 하나 둘씩 공안에 넘겨 버렸다.
다른 성에 있는 삼자 지도자는 아예 사람들을 삼자신학원에 보내지 않고 자기 수하에서 키워서 제자로 만들고, 교회에 파송해서 목양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이들이 공식적인 목양을 할 수 있는 것은 파송한 제자들은 자기 손에서 책임을 지고 일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 전도사는 외국인이 사이에 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재정을 후원해 준다면 사역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한다.
이상과 같이 삼자의 아픔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되어있어서 자기 소신껏 목회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목사가 전도사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전도사는 목사를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서 순진한 성도들도 이러한 정치판 싸움에서 이용당하는 자로 쉽게 전락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2. 삼자교회 안에서 본 삼자교회의 실상
이 선교사가 삼자교회와 오래 협력하다 보니 이제는 삼자교회 안을 밖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목양을 하다보면 전도가 필연적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다가도 실제적으로 전도의 문제가 나오면 삼자교회 교역자들이 긴장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삼자교회 안에서 하는 것도 정부가 모르고 있으면 곤란한 것이 많이 있다. 교회 밖에서 하는 일은 반듯이 정부에 신고가 되어야 하고, 신고 안 된 것은 모두가 하기를 꺼려한다. 특히 종교를 담당하는 종교국은 교회를 책임지고 관리와 통제를 해야 되는 임무를 맡고 있어서 교회와 정부는 늘 같은 입장을 지지해야 한다.
한번은 교회의 외부수리를 하던 중에 벽에 '愛國愛神'이라고 쓰길래 '愛神愛國'으로 쓰면 안되겠느냐고 하니 그것은 불가능하며 이것도 하나의 구호처럼 삼자교회가 주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라가 먼저 있어야 하나님도 있다는 것이고 나라를 먼저 사랑해야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이것이 잘못된 것을 아는 어떤 전도사는 아예 愛國愛神을 쓰지 않고 다른 것을 써 놓는다. 삼자교회 안에 있는 양회(삼자회와 기독교협회) 주석(主席)이 모든 행정과 사무를 책임지고 있어서 정부의 조직을 반영하고 있다. 사실 이들은 일 년에 한 차례씩 정부의 장관급하고 회의를 하고 있다. 이 주석 자리는 꼭 교인 중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잘 시행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데 대부분 교인이 아닌 정부의 인사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그리고 교인들도 목사를 별로 인정하지 않고 목사도 자기 양이라는 생각이 상대적으로 상당히 낮다. 주일날 교회에서 서로 만나는 모습을 보면 목사하고 신도하고 악수를 한다거나 서로에게 안부를 묻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즉 교제가 거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교회인 삼자교회를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기에 목사에 대하여 그리 존경심도 없고 심방이나 전도를 위한 프로그램 같은 것도 거의 없다.
삼자교회 안에 있는 것이 있다면 적용을 찾아 볼 수 없는 교제(交際) 없는 성경공부 뿐이다. 그래서 성경을 몇 년을 배운 삼자교회 자매는 선교사 앞에서 성경을 줄줄이 꿰고 있지만 실제적인 삶의 문제들을 거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헌금이나 영적인 질서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다. 목사도 자기가 원하지 않는 정부 문건을 교회 앞에 읽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른 대도시 삼자교회의 어느 복음적인 목사는 세상의 죄악에 대하여 설교하다가 중국은 나쁘지 않다고 강조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삼자의 신학이 성선설을 지지하며 중국이 사회주의를 실현하였기에 중국은 나쁘지 않다고 보는 입장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적인 설교를 하다가도 양회의 가이드라인을 넘는 내용은 빼거나 우물쩍 넘어갈 수밖에 없는 아픔이 있다.
정부 차원으로 하는 행사도 마찬가지다. 삼자의 정책이나 노선에 대해 각자의 반대적인 견해만 개인적으로 말할 뿐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반동이요 반삼자이다. 어느 목사는 같은 교회 전도사에게 반삼자, 반동으로 인민의 적이 되었다고 고발당하였다.
이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삼자교회 성도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지 못했던 많은 이유 중에서 한 가지는 그들 가운데 정부의 소식통 역할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은 순전히 이용을 당하고 다른 이들은 대가성이 주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온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 많은 주의를 하고 있다. 사실 교인이 목사를 감시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현지 교회 목사는 교인들이 너무 수준이 낮아서 그들이 자기가 목양을 하는 양들인지 아닌지 자기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탄을 하였다.
3. 삼자교회 목사들과의 교제에서 얻은 경험
삼자교회 목사들은 좋든 싫든 신학원에서 정규과목으로 반듯이 삼자 정책과 사회주의 노선에 일치하는 종교정책에 대해 배운다. 다행히도 중생의 체험이 있는 사람으로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람들은 이러한 학습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중간에 나오거나 아니면 신앙을 하나의 출세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은밀히 공안과 일을 같이 하기 시작한다. 지금도 삼자교회 안에서는 언제든지 신앙을 뒤로하고 주님과 친구를 배반할 수 있는 상황이 많이 주어진다.
이 가운데서 자기 나름대로 신실하게 목회 하고자 고투하는 복음적인 교역자들도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이들은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부류이다.
이들 복음적인 삼자교회 목사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 위치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다니엘과 같이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역들을 감당한 것처럼. 그리고 신중국 건립 이후 믿음의 선진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에서 신앙의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신앙서적과 함께 올바른 역사관과 세계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서적이다.
복음적인 삼자교회 목사들은 나름대로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목회적 실천신학에 대해 매우 빈약하고, 말씀을 생활에 접목하는 적용 부분에 있어서 매우 취약하다. 이들에게 목회적 돌봄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적전쟁에 대해 삼자교회가 잠잠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사회 문제로 비화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교역자들이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자교회 목사들은 회의나 출장 또는 해외에서 오는 손님들 때문에 교회를 자주 비우고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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