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우리말

[스크랩] 한글의 우수성과 한류의 뿌리 (최기호)

수호천사1 2008. 10. 7. 15:25

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월간 <너울> 2008년 9월호

 



최기호 | 외솔회장, 상명대 명예교수

 

우리 인류의 문화사에는 네 차례의 큰 변혁이 있었다. 그 변혁의 요소로서 말과 글과 인쇄술과 뉴미디어를 든다. 인류는 말을 함으로써 수렵사회를 이루었고, 글자를 만들어서 여러 가지 지식과 기술을 기록하고 축적해 농경사회를 형성했다. 또 활자를 만들고 인쇄술을 발달시키며 다량으로 생산하여 산업사회를 이끌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뉴미디어가 변혁의 주인공이 되어 인류 문화를 급속도로 혁신하고 있다. 안경은 눈, 마이크는 입, 자동차는 발을 확장했다. 컴퓨터를 비롯한 뉴미디어는 사람의 두뇌까지 확장하는 대변혁의 디지털 시대, 정보문화 시대를 만들었다.


우리 민족은 일찍이 한국말을 갖고 있었으며,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에 세계에서 가장 일찍이 금속활자를 개발해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간행했는데, 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경(1455)보다 훨씬 앞선 일임은 잘 알고 있다.


세종대왕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한글은 뉴미디어 컴퓨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정보사회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문자메시지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자유롭게 사용하는 까닭도 전적으로 한글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한글의 우수성과 한국적 가치


세계 문자 중에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글자는 한글뿐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경복궁에서 훈민정음을 음양오행의 원리로 음성기관을 본떠서 오직 어리석은 백성을 위하여 친히 창제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계해년(1443) 편 12월에는 ‘세종대왕께서 친히 언문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1446년 9월 상한에는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완성하여 세상에 펴냈다. 이때 글자 이름이 ‘훈민정음’이었는데, 그 뒤로 언문, 정음, 암클, 절글, 중글, 반절, 가갸, 국문 등으로 부르다가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고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훈민정음≫ 서문에 훈민정음 창제 동기가 잘 밝혀져 있다.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사회가 안정되고 인구도 늘었다. 어리석은 백성(愚民)을 다스리는 데 한계를 느낀 조정은 백성을 가르치는 훈민(訓民)정책을 마련했다. 우민 상태로는 세종대왕이 왕도를 이룰 수가 없는 만큼, 백성을 깨우쳐 백성이 억울한 일이 당하지 않도록 하여 태평천하를 만들자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었다.


백성들이 먹고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농사라고 여긴 세종대왕은 ≪농사직설≫ 같은 책을 편찬하고, 측우기와 풍향기, 수표 등을 만들어 농업을 장려했다. 농사를 위하여 별자리까지 연구하고 해시계며 물시계 따위를 발명하고 천문학도 깊이 연구했다.


한편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음악을 중요시해, 당악과 아악을 정리하고 악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세종대왕은 중국 음악과 조선 음악의 차이점을 깨닫는다. 그래서 중국 음악을 잘 연주하려면 중국에서 나는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야 하고, 조선 음악을 잘 연주하려면 조선에서 나는 돌이나 대나무 따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풍토에 따라 바람 소리가 다르고, 바람 소리가 다르기에 말이 달라지는 것에서 세종대왕은 중국 사람의 말과 글이 우리의 말과 글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백성에게 알맞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다.


한글의 우수성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한글은 문자 발달사에서 가장 뛰어난 음소문자다. 그리고 조음점이 비슷한 글자는 자형이 유사하다. 가령 치음 계열의 ‘ㅅ, ㅆ, ㅈ, ㅉ, ㅊ’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 더욱 중요한 것은 21세기 정보사회에서 컴퓨터에 알맞은 자음과 모음의 조합형 문자라는 것이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정연하여 ‘좌자우모(左子右母)’, 즉 컴퓨터 자판 왼쪽에 자음, 오른쪽에 모음을 배치할 수 있다. 이를 과학적이고 조직적으로 조합해서 많은 정보를 생산한다.


또 엄지손가락으로 자판을 찍는 휴대전화의 버튼이 모두 12개인데, 이 중 별표(*)와 샤프(#)를 빼면 10개의 버튼이 남는다. 한글은 훈민정음 창제 원리인 천지인(天地人) 세 글자와 가획(加?)의 원리로 모든 글자를 조합하여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나라 청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일본 글자의 100 음절과 중국의 3만 자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대 디지털 시대는 속도 싸움이다.


그리고 한글은 음성인식에서 뛰어나다. 일음일자(一音一字)와 일자일음(一字一音)의 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음성인식이 탁월하다. 컴퓨터에서 자판 없이 음성인식으로 입력할 때 가장 적합한 글자로 평가받는다. 음소문자라는 영어조차도 음성인식 면에서는 아주 원시적이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는 그 발음이 [ei], [?], [?], [?], [а]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 읽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글자 옆에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것이다. 가령 ‘knife’라는 낱말은 [naif]라고 읽지만, [naif]라는 발음을 원래의 낱말인 ‘knife’로 복원하는 일이 불가능해 음성인식에 적절하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는 컴퓨터 기술이 매우 발달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한글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컴퓨터 뉴미디어 기술이 훨씬 발달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영화 같은 분야에서 우리를 월등히 앞선다.


그런데 컴퓨터 기술 면에서는 우리를 넘보지 못한다. 컴퓨터 자판이 50여 개인데 일본 글자는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만 해도 각각 50자에 이른다. 거기에 한자 1,800자를 집어넣으려니 컴퓨터가 용량이 커져 정보처리가 굼뜰 수밖에 없다.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의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 교수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이고, 이 때문에 남북한이 세계에서 문맹자가 가장 적다고 극찬하는 논문을 과학 잡지 <디스커버> 6월호에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시카고대학 매콜리(J. McCawley) 교수와 일본 레이타쿠대학 총장 우메다 히로유키(梅田博之) 교수도 한글의 창제 원리에 놀라며 과학적이고 언어학적인 훈민정음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특히 독일 함부르크대학 베르너 사세(W. Sasse) 교수는 서양이 20세기에 이룩한 음운 이론을 세종대왕은 이미 500년 전인 15세기에 이루었으며, 훈민정음은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자로서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칭찬한다.



한글의 뿌리


한류(韓流)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한국의 대중가요나 영화, 드라마 따위가 다른 나라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 대중문화의 새로운 문화 열풍이다. 한류라는 말은 1990년대 후반 중국의 언론매체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다. 다른 문화가 매섭게 파고든다는 뜻의 낱말인 한류(寒流)와 동음이의어로, 중국인이 한국의 문화가 자국에서 널리 퍼지는 것을 놀라움에 찬 눈으로 본 것에서 유래했다.


이른바 한류는 이와 같이 뛰어난 한국의 문화가 뿌리가 된 것이다. 갑자기 잘생긴 ‘욘사마’ 배용준이 나오고, 예쁜 이영애가 나오고, 노래 잘하는 보아가 나오고, 춤 잘 추는 비가 나와서 한류를 낳은 것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문화의 뿌리 깊은 전통문화의 산물이다. 한류는 어느 한 개인이나 특정 가수가 나타나서 이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문화도 한국의 전통문화와 수준 높은 한국적 가치철학이 결합해 좋은 소재의 영화, 드라마가 되고, 음악이 되고, 게임과 패션이 되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이 열기가 서서히 한국에서 그 붐이 일고, 결국 그것이 외국으로 나가서 한류 열풍으로 달아오른 것이다.


한류의 문화적 가치는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문화가 다른 민족에게 광범위하게,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거의 첫 사례라는 데 있다. 한류가 가져다준 가장 큰 효과라면 바로 외국 사람들의 한국을 보는 시선을 확 바꾸어놓은 것이다.


한류에서 자신감을 얻은 우리 문화 콘텐츠는 이제 세계 최고의 선진 시장인 미국과 유럽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이들 시장에는 주로 만화와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선두에 서서 선전하고 있다. 거룡반점 막내딸 ‘뿌까’, ‘뽀로로’, ‘블루베어’ 등이 서양 사람들에게도 호감을 이끌어내면서 성공적으로 그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 때문에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으로 한국 이미지가 올라가고, 그 덕분에 휴대전화나 디지털TV 같은 한국 상품도 많이 구입하고, 결국에는 한국을 직접 찾아와 관광하는 등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 대중문화의 열풍은 일본 지도자나 몇 사람이 싫어한다고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다. 5천 년 역사에서 이룩한 한국 문화와 한국적 가치에서 우러나오는 진수가 이제 그 일부를 드러내는 것이다. 금속활자 같은 고급문화와 우수한 한글이 그 바탕을 이룬다.


세계인 품을 한글


말은 문화의 알맹이고, 나라와 겨레의 바탕이다. “겨레란 언어 공동체이며, 겨레의 힘은 곧 말을 바탕으로 하여 길러진다”라고 주시경 선생은 가르쳤다. 박은식 선생도 “일본말을 가르치면 일본 사람이 되고 중국말을 가르치면 중국 사람이 되므로 우리는 우리말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류는 문화정보사회에서 문화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한글이고, 이 쉽고 과학적인 한글을 통하여 정보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다. 그 결과 한국 문화와 한류는 끊임없이 세계인을 품을 것이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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