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우리말

[스크랩] 세종대왕 다시 보기

수호천사1 2008. 10. 7. 15:22

세종 대왕 다시 보기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선각자 하면 세종대왕을 꼽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기껏 ‘한글 발명’ 말고는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제 우리는 눈을 바로 떠서 세종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 시대에 이 나라에서 이만큼의 위대한 상품이 없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세계 각국에서 문맹퇴치사업에 가장 공이 많은 개인이나 단체를 뽑아 매년 시상하는 문맹퇴치 공로상의 이름이 세종대왕상이다.


1983년 일본에서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에 따르면 1400~1450년의 주요 업적으로 한국(Korea) 29건, 중국(China) 5건, 일본(Japan) 0건, 동아시아 이외의 전 지역 28건이 기록되어 있다.

정확히 세종(1397~1450)이 살았던 때다.

반세기 동안 세계 발명의 절반을 세종대에서 해낸 것이다.


우리나라 학자 전문가들이 모여 ‘과거 1000년 동안 한국의 100대 인물’을 뽑았는데 그 1위가 세종대왕이다.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은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할 선현 및 현존 과학기술인 15명을 선정했다.

헌정 대상자는

최무선(崔茂宣·1326-1395) 

장영실(蔣英實·1390-1450) 

이천(李Q·1376∼1451) 

이순지(李純之·1406∼1465) 

허준(許浚·1569∼1615) 

홍대용(洪大容·1731∼1783) 

김정호(金正浩·1804∼1866) 

지석영(池錫永·1855∼1935) 


우장춘(禹長春·원예시험장 초대청장·1898∼1959)

이원철(李源喆·초대 국립관상대장·1897∼1963)

이태규(李泰圭·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1902∼1992)

안동혁(安東赫·전 상공부장관·한양대 명예교수·1906∼)

현신규(玄信圭·전 농촌진흥청장·1911∼1986)

최형섭(崔亨燮·충남대 석좌교수·1920∼)

이호왕(李鎬汪·학술원 회장·1928∼) 등이다.


고려때 1사람, 조선시대 7사람. 근현대까지 7사람이다.

나중에 지석영이 제외되어서 현재는 14인이다.

그 중 세종대에만 장영실, 이천, 이순지 3사람이 뽑혔다.

‘이천’의 경우 한국의 레오나르도다빈치라 칭할 만큼 과학기술에 매진한 무장이다.


또 학자들이 뽑은 고대 이래(청동기 포함이니 3000년 역사 중에서)로 한국의 20대 과학 유산은 다음과 같다.

그 중 6개가 세종대에 만들어 졌다.

모두 발명품이다.

더구나 한글은 발명이라기보다는 인류 문화유산이라는 측면에서 달리 언급하기 위해 이곳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1.<거북선> - 조선

2.<고려자기> - 고려

3.<금속활자> - 고려

4.<대동여지도> - 조선

5.<동의보감> - 조선

6.<봉덕사 종> - 신라

7.<비파형 동검> - 청동기

8.<석굴암> - 신라

9.<수원성> - 조선

10.<앙부 일구> - 조선 세종

11.<자격루> - 조선 세종

12.<천성열차분야지도> - 조선

13.<첨성대> - 신라

14.<측우기> - 조선 세종

15.<칠정산> - 조선 세종

16.<팔만대장경> - 고려

17.<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 - 조선 세종

18.<혼일 강리도> - 조선

19.<혼천의> - 조선 세종

20.<화약무기> - 고려

[조선 12개 중 6개가 세종조. 고려 4개 신라 3개, 청동기 1개]


그냥 역사를 흘려들었던 사람들도 이 사람들은 알 것이다.

- 희대의 명재상 '황희와 맹사성'

- 과학 혁명의 주창자 '장영실'

- 음악의 귀재 '박연'

- [농사직설]을 집필한 '정초'

- 대마도 정벌 '이종무', 육진을 개척한 '김종서'


무엇이 이토록 이 시대를 위대하게 꽃피울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었을까?

과학, 인문, 교육, 출판, 음악, 역학, 농업, 정치, 외교, 무기,,,,,,,

그 시대의 모든 분야가 다 꽃처럼 활짝 피어났던 시기다.

이 모든 이들이 그토록 성실하게 몰두하고 정진할 수 있도록 만든 이는 단연 세종이라는 위대한 임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영실의 예를 들면 세종의 사람 씀에 대해 그 파격을 알 수 있다..

장영실은 본시 기녀 소생으로 경상도 동래현의 관노였다.

관청에서 연장다루는 일을 하던 중 1400년경 영남에 몰아닥친 가뭄 때 장영실은 강물을 논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를 개발하여 현감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세종이 도천법(과거로는 뽑을 수 없는 인재를 지방관이 추천)을 선포하자 동래현감은 장영실을 천거한다.

노비 신분의 그에게 벼슬을 준다는 일은 여러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나 세종은 과감히 장영실을 중용하였고 그의 발명품은 그런 바탕에서 꽃피운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노비라 함은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던 최하층민이었으나 그런 신분에서도 과감히 발탁할 수 있었던 세종의 안목은 그 시대를 황금기로 만들었다.

위에 언급된 20개 발명품 중 5개가 장영실이 것이었으니 그의 능력은 에디슨이나 레오나르도다빈치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장영실이 능력이 뛰어나다하겠으나 세종이라는 후광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대엔 농업이 국가 제1의 중대사였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시간과 절기를 알아야 했고 그를 알기 위해서는 천문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장영실을 중국으로 보내 천문역법을 배워오게 하였으나 중국에서도 국가비밀로 하여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돌아온다.

이런 차에 발명된 각 역법기구들은 더욱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한글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유산이다.

몇 가지 인용하겠다.


외국인도 극찬하는 한글의 우수성

미국에 널리 알려진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지 1994년 6월호 「쓰기 적합함」이란 기사에서, ‘레어드 다이어먼드’라는 학자는 ‘한국에서 쓰는 한글이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 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조선일보 94.5.25).

그는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말한다.


또 소설 『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였다(조선일보 96.10.7).


그런가 하면 시카고 대학의 메콜리(J. D. McCawley) 교수는 미국사람이지만 우리나라의 한글날인 10월9일이면 매해 빠짐없이 한국의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KBS1, 96.10.9).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세계 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자들은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KBS1, 96.10.9).


1986년 5월, 서울대학교 이현복 교수는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를 방문하였다.

그때 리스대학의 제푸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면서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하였다.

샘슨교수의 이러한 분류방법은 세계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의 사치’라 하였다.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는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한글은 가장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한글 문화권에 사는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기는 더 쉽다.

영어발음을 90% 이상 나타낼 수 있다.

소리의 표현은 우리 말로 8,800개를 낼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본어는 300개, 중국말(한자)은 400여개라고 하니 우리말의 표현력이 무려 20배가 넘는다.

세계 언어 중에 단연 독보적인 존재인 것이다.(조선일보, 96.10.7, 재미동포 박춘양의 발표기사)



세종대왕의 가치를 단순히 이러한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준 선각자 정도로만 인식하고 넘어가버리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의 통치 리더쉽, 인재 등용의 용단, 끊임없는 탐구심,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던 열린 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그 모든 능력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그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후손들의 가장 막중한 사명감 하나가 있다.

세종이란 이름을 반드시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다.

아무도 그 시대 이후로 그만한 성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 만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 만큼 국가경쟁력을 상승시킨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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