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크랩] 대륙교회의 오늘을 진단하며....

수호천사1 2008. 3. 31. 13:50

대륙교회의 오늘을 진단하며....


  중국은 한 때 방방곡곡을 누비며 순회하는 복음 전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대로 파송하실 때 당부하셨던 말씀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두 벌 옷과 두 켜리의 신발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허리에는 전대(纏帶)를 차고 있지 않았었다. 그들은 머리 둘 곳을 염려하지도 않았고, 어디든지 자기들을 영접하는 곳이라면 그곳을 주님이 준비하신 곳으로 알고 머물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체계적인 신학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이들이 아니었다. 오직 복음으로 인해 거듭남의 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누겠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주님께 온전히 헌신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비록 배운 것은 없지만, 주님을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하루 빨리 증거해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이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졌고, 복음이 전해진 곳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세워진 교회에 성도들로 채워졌었다.

  그들은 신중국의 건국과 함께 몰아닥친 박해와 핍박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직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했다. 따라서 중국이 가장 암울하다고 여겼던 시절에도 그들을 통해 복음은 더욱 확산되어만 갔다. 마치 추운 겨울을 나는 인동초(忍冬草)와 같이 꿋꿋하게 살아 대륙의 엄청난 부흥의 불씨가 되어 오늘의 중국교회를 일으켜 세운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앞서 말한 그런 복음 전도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오히려 무섭게 몰아닥치고 있는 세속화의 물결 속에 휘말려 스스로의 생존에만 급급하게 매달리는 듯한 이들이 자주 목격될 뿐이다. 이런 현상을 목격할 때마다, 그들을 '타락했다'고 비난이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급속하게 도시화로 변화되는 중국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가볍게 치부해 버릴까?

  작은 거인 등샤오핑의 개혁개방화 정책은 중국을 놀랍게 변화시켰다. 중국의 변화는 도시화라는 명분으로 급속하게 세속화되고 있다. 지금 중국의 시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갈수록 화려해져 가고 있는 도시의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도새생활의 거짓된 신기루를 좇아 조상대대로 살아 왔던 가난한 고향마을 시골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동안 중국교회는 시골의 가정교회를 주축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시골이 텅텅 비어 교회의 존립(存立)이 불안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도 도시로 이주하는 시골 사람들을 따라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시로 이동한 교회는 도시문화에 급속하게 젖어들어 세속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들기 시작했다. 복음의 순수한 열정만 가지고 있던 교회는 도시에서의 존립을 위해 급속히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시생활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돈이란 성경에서는 '일 만 악의 뿌리'라고 선언한다. 그렇다고 돈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돈이 없는 도시생활이란 생각할 수 없기에 돈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골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한 교회도 돈이 필요했다. 도시에서 살아 남기 위해 돈의 필요성은 절대적이었다. 먹고 입고 써야 하는 가장 기초적인 생활부터 돈, 돈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그 옛날 출애굽한 히브리민족들의 광야생활에서는 돈이 필요 없었다. 때를 따라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렸고, 바위에서는 물이 쏟아졌기에 먹거나 마실 걱정이 없었다. 신발이나 옷도 헤어져 떨어지는 일이 없어 물려주며 신고 입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언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지 모르니, 땅에 뿌리를 박고 세운 집도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는 하루 하루를 쉬거나 잠들 수 있는 장막이면 족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히브리 민족이 출애굽하여 지내던 광야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나 메추라기는 물론 물이 쏟아지는 바위도 없다. 신발과 옷은 자꾸만 헤어져 떨어진다. 하루하루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신고 입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도시생활에서 장막이란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땅에 뿌리를 내린 집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어디 집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제 교회도, 전도자들에게도 돈, 돈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더 이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두 벌 옷과 두 켜리의 신발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허리에 전대를 차고 있지 않으면 도시에서는 생활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도시생활에서 생존하려면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하다. 이래 저래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돈이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는 시대, 그래서 돈이 더욱 절실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 것이었을까? 얼마 전이었다. 모 큰 도시에서 정부로부터 인준을 받지 않은 가정교회 지도자 몇 사람이 모여 대단한 선언을 했다. 그들의 선언은 '이제는 더 이상 작은교회로는 안 된다'라는 주장과 함께, 자기들이 개척한 교회를 '앞으로 2,000명 이상이 모이는 대형교회로 성장시키겠다'고 했단다. 왜 그들이 대형교회를 선언하게 된 것일까? 도시에서는 더 이상 작은교회로는 안 된다고 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그럴 만한 여러 가지 이유를 밝혔다고 하지만, 그들은 더 진실한 내막은 감추고 있음이 분명했다. 차라리 돈이 필요했다고 솔직하게 밝혔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러나 그것은 감추고 이리저리 구차현 변명을 늘어 놓았다는 것이 참 애처롭게 생각되었다. 그들에게는 돈, 돈이 필요했다. 도시에서 교회가 존립하기 위해 돈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도시에서는 옛날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이 집 저 집으로 쫓기듯이 옮겨다니며 예배드리는 일만으로는 교회가 존립할 수 없다고 여겼음이 분명하다. 특히 교회가 어떤 일을 하려면 옛날처럼 작은 가정교회의 규모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음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도시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아야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아야 돈이 모이며, 돈을 모아야 교회의 존립이나 교회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정말 안타가운 일이다. 교회의 존립과 일을 위해 반드시 큰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정당하지 못한 생각이다. 돈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교회는 돈으로 무엇을 하는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교제가 있는 모임일 뿐이다.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선언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서방세계로 유학을 다녀 온 이들이었다. 그들이 서방세계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은 결국 대형화되어 가고 있는 도시교회였던 모양이다. 따라서 지난 날의 중국교회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열정으로 성장하던 시절은 성숙되지 못한 교회로 여겼고, 서방교회들이 화려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대형화된 것은 성숙된 교회라고 여기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날의 중국교회의 모습에 열등감을 갖고, 서방교회의 대형화된 모습을 동경하며 그것을 닮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게 된 것이었나 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무조건 교회의 대형화를 꿈꾼다는 것은, 그래서 옛날의 시골교회가 가졌던 순수함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진배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그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성도가 서로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세속화로 인하여 나날이 혼탁해 가는 세상 속에 주님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세상의 빛이어야 한다. 썩어져 가는 세상을 썩지 않도록 지키는 소금이어야 한다. 이것이 참 교회이다. 

  그러나 시방 서방교회는 세상의 빛으로서,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속화된 종교기업으로 전락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서방교회는 단순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교회도 어떤 프로젝트를 가지고 발빠른 마케팅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마케팅이 없는 교회는 성장에서 뒤처지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 교회는 이제 하나의 종교기업이 되고 말았다. 경영의 수지를 맞추지 않으면 교회도 스스로 소멸되고 마는 기업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오늘날 서방세계에서 도시교회를 이끄는 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관심사는 교회의 흑자경영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의 경영방법을 가르치는 상아탑의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종교기업을 공부하고 있다. 목사 스스로도 자신을 '아무교회 CEO'라고 소개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교회가 세속화의 가장 화려한 꽃이 되어 버린 듯한 상황이 놀랍기만 하다. 이런 모습이 바로 오늘날 도시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교회는 진상(眞相)과 전말(顚末)이 세속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서로 엉켜 버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부끄럽게 드러나고 말았다. 이것이 곧 교회의 세속화가 가져오게 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시방 이런 일이 중국교회에서 벌써부터 그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중국교회의 진정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있던 사도시대의 아름다운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자꾸만 서방교회의 타락되어 세속화된 모습을 동경하며, 그렇게 변화려고 안달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무섭게 몰아닥치는 세속화의 물결 속으로 점점 휘말려 들어 교회가 가져야 할 진상과 전말이 혼둔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이 여겨지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 중국의 더 한층 발전할 것이다. 중국의 발전은 도시화를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 자명(自明)하다. 따라서 중국의 발빠른 도시화의 발전과 함께 교회의 세속화도 더욱 무섭게 가속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복음화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도시화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하나님께 인정 받는 교회로서의 성장은 이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중국교회는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가? 교회의 세속화는 점점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가중(加重)시킬 것이며, 탐욕에 눈이 어두어 세상과 타협하게 될 것이다. 외형적으로 세상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종교집단으로 전락되어 세상과 더불어 생존경쟁의 치열한 싸움을 펼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참 교회다울 수 있을까? 벌써부터 마음 한켠이 자꾸만 답답해지고 있는 것은 비단 나 뿐일까?

  2008. 3. 5 (수)

  
글/ 불꽃 石一進
 

출처 : MyLoveChina
글쓴이 : 왕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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