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지구촌 큰 잔치(올림픽)
준비와 한국교회
지금
대륙의 수도는 내년에 있을 지구촌 큰 잔치인 올림픽 준비로 매우 분주하다. 가름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투자와 함께 대륙의 변화를 위하여 전력질주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치고
있음이 역력하다.
내년에 치를 올림픽에 국가적인 명운을 걸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따라서 대륙정부가
작금의 올림픽 준비를 위해 쏟아 붓는 각고의 노력이 때때로 섬뜩하게 느껴진다면 나의
지나친 기우(杞憂)일까?
대륙정부는 지금 드러나지
않은 비상사태다. 지구촌 큰 잔치를 앞두고 그 잔치를 선교의 최대 기회로
삼으려는 듯한 세계기독교의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개최하는 올림픽이기에, 기독교에 의해 일방적인 선교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 대륙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대륙에서는 이를
대응하기 위한 태풍작전이 은밀하게 시행되고
있다.
태풍작전? 이것은 이미 언론에 의해 공개된 상태로
더 이상은 은밀한 비밀작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고 진행되고 있는 작전도 아니다. 아는 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이지만,
여전히
태풍작전은 조용히, 그러면서도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대륙의 현재 상황이다. 이로서 대륙의
선교현장은 긴장감이 맴돌고 있어 많은 사명자들은 숨죽인채 조용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대륙정부가 가장 눈에 거슬려 하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있다. 기독교의 급신장이다. 대륙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이미 전체 공산당원의 숫자를 훌쩍 뛰어 넘었다. 대륙의 기독교 성장은 이제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대륙정부는 시방 대륙에서 기독교의 성장을 더 이상은 어떤 무력으로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바로 여기에 대륙정부의
두려움과 고민이 있는 것이다.
지금 대륙정부는 기독교의
개방을 심각하게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서방교회가 기대하는
그런 식의 개방은 절대로 아니다. 대륙에 공산주의를 정착시킨 대륙적 공산주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대륙정부는 기독교를 개방하되 서방교회의
기대대로 개방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적인 맥락에서의 개방을 위한 묘책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나의 예상이다.
만일
대륙에서 기독교가 개방된다면 현재의 체계를 따라 속칭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분류는 모호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대륙교회와 세계교회의 활발한 교류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륙교회는 철저하게
세계교회로부터 분리되어 홀로서기가 요구될 것 같다. 그러므로 외국교회와의 접촉을
더욱 철저하게 봉쇄시키는 것이 대륙에서의 기독교 개방정책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이를 모르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따라서 대륙에서 펼쳐질 지구촌의 큰 잔치가 마치 우리나라
안방에서 열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만 같아 답답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무분별한 계획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소문이 들리며, 대륙의 선교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메머드급의 이벤트가 은밀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단 말인가?
소문에 의하면 한국의 모 선교단체는 내년에 대륙의 수도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개막전후에 수 천명에 달하는 단기선교사(?)를 집단적으로 파송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계획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유사한 크고 작은 소문이 여기저기에서
넘쳐나게 흘러나오고 있다. 나도 얼마 전에 대륙여행을
왔던 어떤 젊은이들로부터 자기들은 '내년에 수 십명의 문화예술단을 중심으로
백 수십명의 단기선교팀을 대륙으로 파송할 계획'이라는 말을 직접 들은 바 있다.
좀더 심사숙고해야만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만류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선교현장을 더 어렵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교란 결코 이벤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는 삶이며, 삶을 서로 나누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삶이 결여된 이벤트성
단기선교는
선교현장을 어지럽게 할 뿐, 그로 인해 어떠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믿는다.
올림픽은 분명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스포츠의 총아다.
따라서 그 기간에는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그런 때에 선교라는 명분으로 각종 행사를
펼친들 그것이 얼마나 선교현장에 도움이 될까? 뿐만 아니라,
그 때 필요한 엄청난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까? 그리고 투자한만큼의 상대적인 효율성을
거둘 수 있을까? 진정으로 바람직하고 생산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대륙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은 관광특수를 노리는
최고의 성수기가 될 것이다. 최고의 성수기에는 모든 것이 비싸게 마련이다. 호텔비를
포함하여 일반적인 비용의 가격은 지금부터 상상을 초월할만큼 상승하고 있다. 고비용이
예상된다는 사실이다. 하필 이런 시점에
수많은 사람들을 대륙으로 보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과연 투자에 걸맞는
기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일까? 정말 재고해 보아야 한다.
작금의 대륙에서는 하던 일들을
중지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명자의 숫자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100여명이 넘을 것이라는 소문만 파다(播多)할 뿐이다.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고국으로 쫓겨가게 될런지 예측할 수 없다. 대륙정부의 올해 목표는
외국에서
온 사명자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자자(藉藉)하다. 그러므로 많은 사명자들이 자기에게 그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하며 걱정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 대륙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 사명자들은 대륙정부에 의해 강제로 추방된
것이 아니다. 강제적인 추방은 이미 낡은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보다 신사적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대륙정부는 그들에게 철수를 공식적으로 요청한다고
한다. 도저히 거부하지 못하고 스스로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전략으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소문없이 조용히 선교현장을 떠나 귀국하는 것이다.
대륙정부는 지금 세계의 여론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행여나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의 여론이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조성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외에서 들어온 기독교 사명자들을 발원색출하여 추방함에 있어서 지난
날과 같은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라, 보다 부드럽게, 그렇지만 아주 음흉한 방법으로
그들을 하나 둘 대륙에서 철수시키고 있다. 이런 사실을 한국교회가
인식하고 깊이
성찰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진실로 한국교회는 대륙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과연 대륙에서 펼쳐지는 지구촌의 큰
잔치 올림픽이 한국교회에 주어진 선교를 위한 절대절명의 기회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말 한국교회가 혼신을 다하여 완수해야 하는 중요한 마지막 영적 추수를 위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래서 대륙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그날을 D-Day로
정하여 선교를 위해 혼신의 노력으로 전력추구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륙은 선교적인 입장으로 볼 때 아주 중요한 지형적인
조건을 갖춘 땅이 틀림없다. 대륙은 전 세계 1/5을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인구가
살고 있는 땅이다. 주변에는 대체적으로 미전도종족으로 구성된 16개국으로 둘러쌓여 있는 땅이기도
하다. 이것은 분명히 천혜(天惠)의
조건이다. 이로서 대륙의 선교적
잠재력과 가능성은 무한함과 동시에 그것을 충족시키기에 합당한 땅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한국교회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깊이 기도하며 연구해야 할 일이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신 날이 임박했다. 온 세상에 복음이 증거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시간이 급하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주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분명한 뜻이다. 따라서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를
향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지상과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급하고 바쁘기로 실을 바늘 허리에 묶어서 바느질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계복음화가 아무리 바쁠지라도 우리가 조급하게 서둘러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급한 마음이 들면 들수록 더욱 차분히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 때를 묵묵히 기다리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조급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시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역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는 때때로 사람의 생각과 뜻이 주님의 생각과 뜻을 거스르는
결과를 낳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륙을 향한 주님의 생각과 뜻이
무엇인지 조용히 헤아리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 급하다고 여겨질수록 더욱 그러해야 한다.
대륙정부를 자극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동하며 대륙을 섬기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는 작금의 단기선교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듯하다. 선교현장에서 단기선교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는 문제로 인한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어느 편에도 손을 들어줄 수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의
단기선교에 대한 이해부터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단기선교에 대하여는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단기선교가 선교현장에서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데에는 어느 편에도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양편 모두는 각각의 생각일 수 있으며,
각각의 생각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존중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기선교란 그것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이요, '필요하지 않다'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선교학적으로
창의적 접근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에서는 한국교회의 단기선교활동이 장기적인 사명자들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장기사명자들의 가운데는
한국교회가 파송하는 단기선교팀을 곱지 않게 생각하고, 또 그들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기선교팀의 방문을 거부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과의 관계유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후원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원의 중단은 선교현장에서
살고 있는 장기적인 사명자들에게는 최대의 위기가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곱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선교팀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선교현장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는 아니라고 변명한다. 오히려 그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질책한다. 그는 '선교현장에서 단기선교로 인한 문제는 운영이 전문적,
전략적이지 못한 결과'라면서, 장기적인 사명자는 '단기선교 운영을 배우고,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듯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단기선교 운영에 관한 내용을 배울 것인가? 그리고
그 가르침은 믿을만 할까?
선교현장은 현장마다
각자 다른 환경과 입장이 있다. 모든 현장이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일 수 없다. 각자의 처한 환경과 입장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단언하는 평가는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모두를 개체로 보아 개체적인 환경과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기선교는 항상 장기적인 사명자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면 선교현장에서의 문제는 훨씬 적게 발생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현장에서는 단기선교로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단기선교팀의 운영이 선교현장에 있는 장기적인 사명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파송하는 한국교회에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어쩌면 선교현장을 잘 모르고
세운
계획이기에 당연히 일어날 문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교현장의 장기적인 사명자를 철저하게 소외됨에서
비롯된 문제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단기선교가 선교현장에서
일으킨 문제는 그들이 선교현장을 떠난 후 장기적인 사명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해결짓기에 벅찬 경우가 많다. 따라서 더 큰 문제가 발생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선교현장에서 단기선교가 가져오는
난맥상(亂脈相)임을 알아야 한다.
최근에 나는 아프간 사태로 말미암아
누리꾼들이 한국기독교에 대하여 곱지 않은 시각으로 쓴 글들을 눈여겨 보았다. 참 많은 내용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 중에서 문득 한국교회의 단기선교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어느 누리꾼의 글이 눈에
띄었다. 그 내용 전문을 옮겨 본다. 한 번쯤은 읽어보고 자성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역'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사역이라는 말을 붙이려면, 슈바이처 박사 정도는 해야죠. 고작 열흘동안 현지에 가서
시늉이나 내고 사진이나 찍어 싸이에 올리고, 아무도 안밟은 땅을 우리가 밟았노라고 자랑하고 뽐내는게 제대로 된 사역입니까? 제대로 된 사역을
하려면, 카메라부터 가져가지 말라는 어느 분 말씀이 생각납니다. 무슬림에게 있어 개신교로 개종한다는게, 그 문화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줄이나 알고
있습니까?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생명의 위협속에서 살아야 하는 삶입니다. 억지로 개종강요해서 무슬림들 개신교로 개종시켜놓고, '아싸 우리가 주님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희희낙낙 자기만족에 빠질 줄이나 알았지, 그 무슬림들을 끝까지 책임지려하는 사람은 적어도 저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한국교회만 둘러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때 1200만이던 신자 수가 작년까지 800만으로 1/3
이 토막나 버렸습니다. 오로지 전도와
개종을 시켜서 교회로 끌고 오기만 하면 나의 사명은 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 많습니다. 마구잡이식 개종강요 활동에다 사역이라는
성스러운 말을 함부로 끌어다 같다붙여 포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슬람 지역 혹은 기독교에 대한 정서가 좋지 않은 지역에서 대규모 야회집회 열고, 모스크를 뱅글뱅글 돌면서 "무너질지어다!"라고 기도하면서
여리고 작전하고, 모스크 앞에서 통성기도하고, 무슬림 어린애들 모아놓고 과자주면서 찬양시키고(어떤 때는 한국어로), 힌두교 성전에 신발신고
들어가고, 라마단 때 역라마단 기도한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고....."
누가
이 내용을 단순히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여겨 무시할 수 있는가? 한 번쯤 깊이
상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라고 여겨졌다. 참으로 안타깝다. 한국교회의
단기선교가 언제부터 누리꾼들에 의해 난타되어야 할 상황이 되었더란
말인가?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이 다 그렇지는 않으련만, 마치 모든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이 그렇다는
듯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매우 씁쓸하고 슬프다.
정말
신중했으면 좋겠다. 한국교회에 주신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까지는 적어도 2천 여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보았으면 싶다. 그런다면 선교를 위해 결코 급하게 서두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치 내일이라도 세상의 종말이 올 듯이 서두르는 경망함은 진정한
지구촌 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내 생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여기며 때가 급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날과 그시를 나는 모른다. 주님의 일은 오직 주님만이 아실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좀더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힘쓰고 있다.
주님의 때는 내가 서두른다고 해서 빨리
임하는 것도,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기다린다고 해서 늦게 임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주님이 계획하셨고, 그 계획을 따라서 지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마지막
그날이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열정으로 인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한껏 여유로운 마음으로
순리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선교를 이루는
진정한 삶이라고 여기며 대륙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륙에서
내년에 펼쳐질 지구촌 큰 잔치 올림픽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들떠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께서 올림픽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신다면 주께서
친히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오직 우리는 대륙에서 펼쳐질 올림픽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한국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헤아려
이를 행해야 할 뿐이다. 공연히 필요 이상으로 설쳐대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년 올림픽을 통해 주께서 한국교회를 크게 사용하길 원하신다면,
그 뜻을 이루실 일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조용히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한국교회가 너무 설쳐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지구촌 복음화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근에 아프간에서 일어난 사태를 생생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복음은 수 천년의 역사와 함께 수많은 사명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전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 번도 어떤 사람에 의한 이벤트적인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주님의 일은 주께서 친히 계획하셨고,
그 일을 이루셨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그 분의 이끄심을 조용히 따르는 것만이 최선이요,
전부라는 생각이다.
이제 점점 대륙에서 있을 지구촌
큰 잔치 올림픽 D-Day가 임박해 온다. 정말이지 한국교회는 더 이상 남의 집 잔치에 공연히
흥분하며 설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 더 신중하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그 뜻이 이루어지길 위해 기도하는 성숙된 모습이 보고 싶다. 대륙에는 대륙교회가 있고,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륙교회에 허락하신 주님의 기회이다. 결코 한국교회가 월권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한국교회는 대륙교회를 형제교회로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형제교회가 내년에 펼쳐지는 올림픽을 세계선교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겨 그 기회를 잘 활용하도록 기도로 지원하는 일은 한국교회가 대륙교회를 돕는 가장 귀하고 멋진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그들의 손을 잡아 도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될 것이다.
대륙에서 장기적인 사명자로
살아가는 이들은 지금 몹시 긴장하고 있다. 극히 신분을 조심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이제는 그들을 더 이상 당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륙에서
오랫동안 살며 사명을 감당하려고 헌신한 이들로 하여금 불안 가운데로 몰아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지금, 오늘의 대륙이 내일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추이를 숨죽인채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깊이 이해해주어야 한다.
오해하지 말라. 나는
한국교회에게 대륙정부의 눈치를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대륙에서 살아가는
장기적인 사명자를 배려해 달라고 요청할 뿐이다. 대륙에서 단기간에 어떤 목적을
성취하려는 욕심을 내려 놓고, 오직 주님의 섭리가 주님에 의해 이루어질 그 날을
조용히 기다리며 기도해 줄 것을 바랄 뿐이다. 그것만이 한국교회가 이미
대륙에 파송한 장기적인 사명자들과 더불어 일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교회에게 좀 더 자중해 주길 요청한다. 조급한 정열만으로는 서쪽을 향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절대로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은 주님이 친히 이루신다는 평범한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좀더 지혜롭게, 기도 가운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대륙선교의 한 부분이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7. 9. 4 (화)
글/
불꽃 石一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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