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구약

[스크랩] 창세기 19장 원어 해석

수호천사1 2018. 4. 22. 05:39

창세기 19장 원어 해석



(19:1) 그 두 천사가(쉐네 함말르아킴)

‘천사’에 해당하는 ‘말르아크’는 ‘사자(使者)’, ‘전령’ 등으로 번역되며 이는 ‘메시지 전달자’, ‘특별한 임무의 수행자’, ‘공식적으로 파견되어 나가는 대표자’라는 문자적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말르아크’는 ‘인간 사자(使者)’뿐 아니라 ‘천사’ 혹은 ‘여호와의 사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본문에서 ‘말르아크’ 앞에 정관사 ‘하’가 붙은 것은 바로 앞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헤어진 바로 그 천사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마침 ...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요쉐브 뻬솨아르)

직역하면 ‘성문에 계속 앉아 있다가’이다. 이는 천사들이 올 때에 마침 그가 거기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고, 늘 하던 대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롯의 신분과 직업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즉 고대 근동의 ‘성문’은 헬라의 ‘아고라’(αγορα)나 로마의 ‘포름(forum)'처럼 일종의 사교장으로 광고, 고용, 재판, 상거래나 계약 체결 등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신 21:19; 룻 4:1; 시 69:12; 렘 17:19; 암 5:12,15). 따라서 롯이 성문에 ‘앉았다(야솨브)’ 즉 ‘머물렀다’는 말은 그가 그 성의 지도층 인사로서 재판 혹은 그곳 거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9절)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한다. 

 

(19:2)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바레호브 날린)

이것은 소돔을 살피려는 그들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사실 나그네가 성문 안쪽 광장에서 노숙하는 것은 근동 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삿 19:15) 그리 큰 불편은 없었으나 죄악이 극도로 관영했던 소돔의 경우는 달랐고 실제로 매우 위험했다. 

 

(19:3) 식탁을 베풀고(와야아스 ... 미쉬테)

‘미쉬테’는 ‘마시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솨타’에서 유래하여 ‘마실 것’ 혹은 ‘향연’이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직역하면, ‘그러자 그가 마실 것을 만들었다’이다. 

 

무교병을 구우니(우맛초트 아파)

‘무교병’에 해당하는 ‘맛차’는 ‘발효되지 않은(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뜻한다. 

 

(19:4)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민나아르 웨아드 자켄 콜 하암 믹카체)

직역하면 ‘젊은 자로부터 늙은 자까지 끝에서 온 그 백성들이’이다. 여기서 ‘사방’으로 번역된 ‘카체’는 ‘끝’을 뜻하는 말이다. 

 

(19:5) 상관하리라(웨네데아)

‘상관하다’에 해당하는 ‘야다’의 원뜻은 ‘알다’이다. 이는 감각 기관을 통해 아는 것(19:33; 사 6:9) 외에도 마음이나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15:8; 출 7:17; 삿13:21) 까지도 포함한다. 나아가 이 ‘야다’는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한 완곡한 표현으로서 성경에서는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말은 한걸음 더 나아가 동성애를 가리킨다(삿 19:22). 

 

(19:8) 내 집에(뻬첼 코라티)

직역하면 ‘나의 서까래(혹은 지붕) 그늘 안으로’이다. 이는 손님들이 자기의 보호 안에 있다는 말에 대한 관용적 표현이다. 

 

(19:9)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와이쉬포트 솨포트)

‘솨파트’는 ‘재판하다’, ‘다스리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 용법은 ‘그가 재판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가 된다. 이는 소돔성에서 롯이 행했던 일이 재판하는 일이었으을 암시해 준다. 그래서 이 본문의 뜻은, ‘성문에서 재판 일을 했으면 됐지 집에까지 와서 네가 우리를 재판하려 하느냐?“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근무 시간 이외에도 네가 재판관 노릇을 하려 하느냐’란 의미인 것이다. 

 

(19:11) 그 눈을 어둡게 하니(힉쿠 빳싸느웨림)

‘힉쿠’의 어근인 ‘나카’는 ‘치다’, ‘때리다’란 뜻으로 천사들이 소돔 사람들을 쳤음을 의미한다. 또한 ‘소경’에 해당하는 ‘싸느웨르’는 완전한 소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역사로 이루어진 일시적인 시각 장애를 가리키는 말로 ‘갑작스런 실명’이란 뜻이다. 그래서 직역하면 ‘그들의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소돔 사람들을) 쳤다’이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아람 군대를 쳐서, 그 군대가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서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었던 사건이 있었다(왕하 6:18,19).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8-30)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19:12)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호체 민 함마콤)

‘이끌어 내라’에 해당하는 ‘야차’가 본문에서처럼  사역형 능동으로 사용될 때에는 ‘인도해 내다’, ‘분리하여 데리고 나오다’란 뜻이 있다. 

 

(19: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차아카탐)

본문이 말하는 ‘부르짖음(차아카)’은 회개나 간구로 인해 울부짖는 부르짖음이 아니다. 오히려 죄와 악이 가득 섞인 시끄럽고 잡다한 더러운 소리이며 한편으로는 소돔 성의 지배 계층의 압박에 대한 피지배 계층의 원성일 것이다(18:20). 

 

멸하시려고 ... 멸하리라(마쉬히팀 ... 레솨하타흐)

‘멸하다’에 해당하는 ‘솨하트’는 ‘완전하게 부수다’란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두 번 사용되어 그 심판이 매우 임박하였음과 철저한 것임을 보여 준다. 

 

(19:14) 나가서 ... 말하여 이르기를(와예체 .. 와예답베르 ... 와요메르)

직역하면 ‘그러자 그는 나갔다 ... 그리고 그는 이야기하였다 ...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이다. 이런 용법이 사용된 것은 천사의 재촉하는 말을 듣고 위기감을 느낀 롯이 급히 나가 바로 말하고 선언하였음을 보여 준다.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쿠무 체우 민 함마콤 핫제)

‘쿠무(일어나)’와 ‘체우(떠나라)’는 모두 2인칭 복수형이다. 특히 앞에 나오는 ‘쿰(일어나)’은 경각심을 고취하고 결단을 촉구하는 말로서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히 일어나라는 의미이다. 

 

농담으로 여겼더라(와예히 키므차헤크)

‘농담으로’로 번역된 ‘차하크’는 ‘웃다’, ‘희롱하다’란 뜻으로 본문에서는 강의형 능동 분사형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롯의 단호한 명령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롯의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계속 비웃으며 심지어는 장인을 조롱하기까지 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는 마치 노아의 홍수 때를 연상케 한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

 

(19:15) 천사가 ... 재촉하여(와야이추 함말르아킴)

‘재촉하다’에 해당하는 ‘우츠’는 동사의 상태를 강조하는 사역형 능동으로 ‘~을 강요하다’란 뜻으로 쓰였다. 상황이 긴박한 것이 표현되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10).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펜 팃싸페 빠아온 하이르)

‘멸망할까’로 번역된 ‘팃싸페’는 ‘싸파’의 수동형으로서 ‘휩쓸려져 버리다’로도 번역될 수 있기 때문에 본문을 직역하면 ‘그 성의 형벌 중에 휩쓸림을 당하지 않도록’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그 성의 형벌’ 또는 ‘그 성의 죄악’과 롯을 구분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 7:31, 32).

 

(19:16) 손을 잡아 인도하여(와야하지쿠 ... 우베야드 ... 와요치우후)

‘잡아’에 해당하는 ‘하자크’, 그리고 ‘인도하여’에 해당하는 ‘야차’가 모두 사역형 능동으로 사용되어 각각 ‘나가게 하다’, ‘분리하여 데리고 나오다’란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각각 공히 사역형 능동으로 쓰였다는 것은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해 내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이자 강권적인 역사에 이루어진 사실임을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뻬헤믈라트 예흐와 알라이우)

‘자비’, 또는 ‘인자’ 또는 ‘긍휼’에 해당하는 ‘헤믈라’가 ‘~안에’, ‘~로 말미암아’로 번역되는 전치사 ‘뻬’와 결함하여 ‘인자로 말미암아’란 뜻으로 쓰였다. 또한 뒤에 ‘알라이우(그의 위에)’란 말이 따라나온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의 위에 있는 여호와의 인자로 말미암아’이다. 한글 성경의 뉘앙스는 ‘자비’ 또는 ‘인자’가 양적으로 더해 가는 인상을 주는데, 원문에서는 하나님의 인자가 롯 위에 변함없이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19:17)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힘말레트 알 나프쉐카)

‘힘말레트’는 ‘말라트’의 수동형으로 ‘도망하다’, ‘구원받다’란 뜻이 있다. ‘알 나프쉐카’는 ‘너의 생명을 위해서’라는 뜻이다.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알 탑비트 아하레카 웨알 타아모드 뻬콜 학킥카르)

본절에 나오는 네 번의 명령 중 두 번은 ‘도망하라’는 것이고, 두 번은 본문에 나온 것처럼 부정어 ‘알’이 붙은 ‘~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알’은 단회적인 금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굉장히 단호한 명령임을 알 수 있다. 본문에 나오는 두 번의 명령 중 첫 번째의 동사 ‘탑비트’는 ‘나바트(보다)’의 사역형으로서 ‘관심을 보이다’, ‘주의를 집중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첫 번째 명령을 직역하면 ‘너의 뒤에 관심을 보이지 말라’이다. 두 번째는 ‘알 타아모드 뻬콜 학킥카르’로서 여기서 ‘들’로 번역된 단어는 ‘킥카르’인데, 이는 보통 ‘들판’을 나타내는 ‘사데’와 달리 ‘요단 골짜기의 비옥한 둥근 지역’을 가리킬 때 쓰인다. 따라서 직역하면 ‘요단의 둥근 지역에 서 있지 말라’이다. 

 

(19:19)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웨아노키 로 우칼 레힘말레트 하하라)

‘로’와 함께 쓰여 ‘절대 할 수 없다’란 강한 의미가 있다. 또 인칭 대명사 ‘아노키(나)’가 따로 분리되어 쓰여서 롯이 강하게 자기의 생각과 입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나는 절대로 산으로는 도망할 수 없습니다’이다. 이 말은 ‘도망하는 것’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산으로 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부정임을 암시한다.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할로 미츠아르 히)

앞절과 함께 생각해 볼 때 롯은 산으로만큼은 가지 않기 위해서 가장 설득력 있게 두 사자를 자기 생각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즉 ‘작다’라는 것을 부각시켜서 자기의 제안이 어떤 욕심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드러냄과 동시에 최소한 그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산이 아닌 들이 되게 하려는 속셈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롯은 ‘도망가라는 제안은 받아들일테니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는 식이다. 

 

(19:21) 내가 ... 네 소원을 들었은즉(나사티 파네카)

‘들었은즉’에 해당하는 ‘나사’는 ‘들어올리다’, ‘높이다’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소원’에 해당하는 ‘파님’은 ‘얼굴’을 뜻한다. 따라서 직역하면 ‘내가 너의 얼굴을 들어올렸은즉’이 된다. 이는 롯의 체면을 살려 주었다는 뜻이다. 

 

(19:22) 소알이라 불렀더라(카라 ... 초아르)

‘초아르’는 ‘중요치 않다’, ‘경멸한 만하다’란 뜻의 ‘차아르’에서 유래하였다. 본문은 20절에서 롯이 ‘작은 성’이란 뜻을 지니는 ‘미츠아르’란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하였으므로 그 성은 ‘미츠아르’의 어근 ‘차아르’를 거쳐 ‘초아르’란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19:24)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메에트 예흐와 민 핫솨마임)

한글 성경은 ‘하늘’을 먼저 쓰고 ‘곧 여호와께로부터’를 뒤에 서 주었는데, 원문은 ‘여호와께로부터 곧 하늘에서’의 순서를 보여 주고 있다. 

 

(19:25) 엎어 멸하셨더라(와야하포크)

‘뒤집히다’, ‘변화시키다’란 뜻을 갖고 있는 ‘하파크’가 계속적 와우와 결합하여 미완료형으로 쓰여서 앞선 사건의 결과로 ‘원래 있던 상태가 완전히 뒤집어져 새롭게 변해 버린 것’을 의미한다. 한편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지역은 역청이 많았던 곳이었는데 하나님의 불심판으로 인한 지층의 침강, 함몰 등으로 지중해 수면보다 약 392m가 더 낮은 죽음의 바다로 변해 버렸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 24:42,43)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2,3)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13)

 

 

(19:26) 뒤를 돌아보았으므로(왓탑베트 ... 메아하라이우)

‘돌아보다’에 해당하는 ‘나바트’는 ‘주시하다’, ‘생각하여 바라보다’, ‘관심을 보이다’라는 뜻이다. 또한 ‘메아하라이우’는 ‘그의 뒤에서부터’ 즉 ‘롯의 뒤에서부터’란 뜻이다. 롯의 아내는  롯의 뒤를 마지못해 따라오다가 뒤에 두고 온 모든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목하여 바라 보다가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19:27)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와야쉬켐 ... 밥보케르)

‘일어나’에 해당하는 ‘와야쉬켐’은 그 자체가 ‘일찍 일어나다’, ‘(어떤 장소에) 일찍 나가다’란 뜻을 지니며, 비유적으로 ‘진지하게 행하다’란 의미도 있다.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엘 함마콤 아쉐르 아마드 솸 에트 페네 예흐와)

직역하면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얼굴들 앞에서 있던 그 곳으로’이다. 

 

(19:29)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와이즈코르 엘로힘 에트 아브라함)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자카르’는 원래 ‘새기다’, ‘조각하다’란 뜻이 있었으며 보통 ‘기억하다’, ‘잊지 않다’로 번역된다. 

 

(19:30) 굴에 거주하였더니(와예쉐브 빰메아라)

팔레스틴은 석회암 층이 많아 자연 동굴이 많았다. 롯과 그의 두 딸이 거처로 삼은 ‘굴(메아라)’도 이러한 자연 동굴이었다. 한편 롯이 도망해 온 이곳은 하나님이 처음에 피신하라고 명령하셨던 장소(17절)였는데 롯은 이전에 자기 판단에 따라 불순종하였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진행이 인간의 분순종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 나간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31)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웨이쉬 ... 엔 ... 라보 알레누)

‘배필 될’에 해당하는 ‘뽀’는 ‘들어가다’, ‘교제하다’ 등을 뜻하며 본문에서와 같이 남녀 사이에서 성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성관계를 갖는 것을 뜻한다. 

 

(19:32) 우리가 ... 술을 마시게 하고(나쉬케 .. 야인)

‘마시게 하다’에 해당하는 ‘솨카’는 본문에서 사역형 능동으로 쓰여 ‘우리가 마시우게 하리라’란 뜻이다. 아버지인 롯에게 술을 마시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두 딸에게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술’을 뜻하는 ‘야인’은 ‘거품이 일어나다’란 말에서 유래하여 ‘포도주’를 뜻한다.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우네하예 메아비누 자라)

‘이어가자’(한글개역성경은 ‘전하자’로 번역)에 해당하는 ‘하야’는 ‘살다’, ‘생존하다’, ‘소생하다’란 뜻이다. 이 단어가 본문에서는 행동의 강조 또는 열심을 나타내는 강의형으로 쓰여 종족 보존에 대한 강한 열망을 잘 보여 준다. 그리고 ‘후손’(개역성경은 ‘인종’으로 번역)에 해당하는 ‘제라’는 ‘씨’, ‘종자’, ‘후손’이란 뜻으로 협의적인 의미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사’로 볼 수 있지만 광의적인 의미로는 ‘민족’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19:37) 모압(모아브)

‘모압’은 ‘아버지’를 뜻하는 ‘아브’에서 유래한 말로 ‘아버지로부터’란 뜻을 가지고 있다. 70인역(LXX)에서는 이를 ‘나의 아버지로부터 태어난’이란 뜨스로 번역하였다. 이들은 구속사의 주역인 이스라엘 민족의 적대 민족이 되고 말았다(민 22:1-6; 삼상 11:1-5). 이들은 사해 동북편으로 얍복강과 아로논강 사이에 거하였으나 암몬 자손에 밀려 아르논 남쪽까지 옮겨가게 되었다. 모압 민족이 섬기는 신은 ‘그모스’였다(민 21:29; 왕상 11:7, 24). 

 

(19:38) 벤암미(뻰 암미)

‘벤암미’란 이름의 뜻이 ‘내 백성의 아들’이라는 주장과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주장 그리고 ‘암(몬)의 아들’이라는 주장 등이 있으나 앞선 ‘모압’의 뜻을 볼 때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 

이 벤암미는 롯의 작은 딸이 아버지와 관계하여 낳은 자로 후에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암몬 자손들의 영토는 요단강 동편 얍복과 아르논 두 강 사이에 있었다. 즉 그들은 원주민이었던 삼숨(Zamzumim) 민족을 몰아내고 그 지방에 거주하였으며(신 2:18-20) 강력한 나라로 성장시켜 수도를 현재 요르단의 수도 암만(Amman)으로 알려진 랍바로 정하였다(삼하 11:1; 사 15, 16장). 그리고 이들이 섬기던 주신(主神)은 몰렉(Melech)으로서(왕상 11:7) 밀곰이라고도 불려졌다(왕상 11:5; 왕하 23:13). 역사상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의 적대 민족으로 계속 나타나게 되었으며(느 2:10, 19; 렘 40:13; 암 1:12-15) 여러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선포했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