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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세기 12장 원어 해석

수호천사1 2018. 4. 14. 20:33

창세기 12장 원어 해석





(12:1) 너는 ... 가라(레크 레카)

‘레크’는 ‘걷다’란 뜻이 있는 ‘할라크’의 2인칭 명령형이다. 그리고 ‘레카’는 전치사 ‘레’와 2인칭 단수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너에 대하여는(as for you)' 혹은 ’너에 관한 한(as far as you are concerned)'으로 번역할 수 있다. 명령의 수행자가 아브라함인 것을 아주 강조하는 용법이다.

 

너의 고향(메아르체카)

‘너의 고향’으로 번역된 ‘메아르체카’는 문자적으로 ‘너의 땅에서부터’란 뜻이다. 이것은 최초의 요구로 ‘땅’을 떠날 것에 대한 명령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이 버리고 떠나야 할 것으로 명시된 세 개의 단어 ‘메아르체카’, ‘밈몰라드테카’, ‘밉베트 아비카’ 앞에는 모두 철저한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민’이 붙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과거의 모든 것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함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친척(우밈몰라드테카)

‘친척’으로 번역된 ‘몰레데트’는 ‘낳다’, ‘출생하다’로 번역되는 ‘얄라드’에서 유래하여 ‘한 조상으로부터 태어난 자’란 문자적 의미를 갖는다. ‘친척’은 부족과 ‘아비 집’의 중간 규모의 가족단위를 가리키는데, 이러한 ‘친척’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한 이유는 당시 하란에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가족들이 살았기 때문이다(24:10; 28:10). 친족이 많은 자는 유력한 자로 여겨졌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친족은 모여 살았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우밉베트 아비카)

직역하면 ‘그리고 너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이다. 하나님께서는 ‘고향’(또는 본토)이라는 넓은 영역에서 ‘친척’이라는 중간 영역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의 아버지의 집’ 즉 가장 작은 영역으로, 아브라함이 떠나야 할 곳을 점점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엘 하아레츠 아쉐르 아르에카)

‘네게 보여 줄’로 번역된 ‘아르에카’는 ‘라아(보다)’ 동사의 사역형 미완료형에 2인칭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내가 너로 보게 할’ 이다. 개역성경은, ‘내가 네게 지시할’로 번역했다. 따라서 아직 아브라함에게는 구체적인 목적지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하아레츠’는 정관사 ‘하’가 땅을 의미하는 ‘아레츠’를 결합되어 있는 것을 주목하라. 그러니까, ‘어느 땅’이 아니라 ‘바로 그 땅’ 즉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로 그 땅, 가나안인 것이다.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사 45:3,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29,30).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웨에에시카 레고이 까돌)

여기서 ‘민족’으로 번역된 ‘고이’란 용어는 대부분의 경우 이방 열국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그런데 본문에서 특별히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아브라함이 당시에는 일정한 정착ㅈ도 없이 유리하는 미약한 상태에 있었지만 장차는 이방 여러 나라들과 같이 강력한 나라를 이루는 큰 민족으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큰(까돌)’은 크기나, 수효나, 중요성에 있어서 탁월함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존귀함이 큰 것까지 가리키는 매우 포괄적인 용어이다. 따라서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수효가 많아지며 큰 나라를 이룬다는 의미와 더불어 존귀한 민족이 된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네게 복을 주어(와아바레크카)

2절을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그리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그리고 너는 복이 될지라’ 이다. ‘복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미완료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미완료형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지속적인 믿음과 순종의 반응을 요구하는 것을 보여 준다.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와아갓델라 쉐메카)

‘창대하게 하다(와아갓델라)’는 앞서 ‘큰 민족을 이루고’에서 ‘큰(가돌)’과 동일한 어근의 단어로서 ‘크다’는 뜻과 더불어 ‘존귀케 하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비(17:5)’,‘하나님의 왕자(23:6)’,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18:17-19), ‘선지자(20:7)’, ‘하나님의 종(시 105:6)’, ‘하나님의 친구(20:7)’ 란 명예스러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우리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란 큰 영예를 얻게 되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너는 복이 될지라(웨흐예 뻬라카)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복이 되어라’ 이다. 다른 축복들이 하나님을 주어로 가지는 반면, ‘너는 복이 되어라’는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시는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 명령에 따라 타인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아야 했는데, 이를 반영해서 한글 개역성경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번역한 것이다.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와아바라카 메바레케카)

이 문장에 나오는 두 단어의 어근은 모두 ‘빠라크’라는 동사인데, 이 동사의 주어와 목적어가 사람일 때는 ‘축복한다’로, 주어가 하나님이고 목적어가 사람일 때는 ‘복을 내린다’, 그리고 주어가 사람이고 목적어가 하나님일 때는 ‘찬양한다’, ‘송축한다’로 번역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빠라크’의 기본 개념은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 ‘높이다’, ‘칭찬하다’, ‘찬양하다’, ‘기리다’이다.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우메칼렐르카 아오르)

한글 성경은 ‘저주’라는 단어가 똑같이 사용되었지만, 히브리 원어는 서로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다. 먼저 사람이 사람을 저주하는데 사용된 ‘칼랄’은 ‘멸시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로 상대에 대해 경멸하며 분별없이 발설한 욕설을 뜻한다. 반면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는데 사용된 ‘아라르’는 정확한 사법적 근거에 의해 내려진 반드시 성취되는 신적 정죄를 의미한다. ‘너를 저주하는 자(메칼렐르카)’는 바로 앞의 ‘너를 축복하는 자(메바레케카)’가 복수로 쓰여진 것과 달리 단수형으로 쓰여졌다. 이는 아브라함을 멸시하는 경우를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다루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신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대해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지게 하신 것이며, 반대로 그를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선 엄중한 경고를 의미하는 것이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웨니브레쿠 베카 콜 미쉬페호트 하아다마)

‘너로 말미암’로 번역된 ‘베카’는 ‘너에 의하여(by you)’, ‘너로 말미암아(through you)’로 번역할 수 있지만, ‘네 안에(in you)’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복을 얻을 것이라’로 번역된 ‘웨니브레쿠’는 본문처럼 수동태(‘복을 받을 것이다’ they will be blessed)로 번역할 수 있지만, 재귀형(‘서로 축복할 것이다’ they will bless themselves one another)로 번역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네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게 될 것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6-28).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와옐레크 아브람 카아쉐르 띱베르 엘라이우 예흐와)

직역하면 “그러자 아브람이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갔다‘이다. 히브리 본문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띱베르 엘라이우 예흐와)’ 앞에 전치사 ‘카’와 관계 대명사 ‘아쉐르’의 합성어를 넣어 아브라함이 다른 기준은 전혀 없이 오직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말씀 중심의 신앙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했다.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와옐레크 잇토 로트)

‘와엘레크’는 와우 계속법 미완료형이 사용된 형태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행동의 결과로서 롯의 행동이 계속적으로 뒤따른 것을 표현하는 용법이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칠십오 세였더라(뻰 하메쉬 솨님 웨쉬브임 솨나)

굳이 나이를 밝히는 것은 이 사건이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75세에의 나이와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본문이 보여 주는 나이는 믿음을 가진자의 인내가 약속의 성취를 위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12:5) 소유와 ... 사람들을(레쿠솸 ... 한네페쉬)

‘레쿠솸(소유)’은 유목민 아브라함이 가진 가축들이며 ‘한네페쉬(사람들)’는 가축들을 돌보는 아브라함의 종들이나 그 가족들을 가리킨다. 한편 구약 성경의 아람어 번역본인 탈굼(Targum)은 아브라함과 같이 가나안으로 간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게 한 개종자라고 기록한다.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 들어갔더라(와예체우 랄레케트 ... 와야보우)

단어순서대로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떠났다, 가기 위하여 ... 그리고 그들은 들어왔다’이다. ‘예체우’(떠나다)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다’의 의미가 있고, ‘레케트’(‘할라크’에서 변화된 형태)는 ‘밖에서 거닐다’, ‘행하다’의 의미가 있고, ‘야보우’(들어가다)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다’의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가족은 ‘하란’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여행하다가’,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이 본문에 잘 묘사되어 있다. 사실, 아브라함 일행이 유프라테서 강 상류를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르는 여행 거리는 700 km가 훤씬 먼 거리가 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가나안 땅으로 ... 가나안 땅에(아르차 케나안 ... 아르차 케나안)

‘아르차’는 ‘땅’을 의미하는 ‘에레츠’에 ‘~를 향하여’를 뜻하는 어미 ‘아’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형태로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움직임의 방향이 강조하고 있다.

 

(12:6) 그 땅을 지나(와야아보르 ... 빠아레츠)

‘지나’로 번역된 ‘야아보르’는 ‘건너가다’, ‘넘어가다’를 뜻하는 ‘아바르’가 변화된 형태이다. ‘빠아레츠’는 ‘그 땅 안에’(in the land)를 뜻한다. 그래서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그 땅 안에서 [그 땅을] 넘어갔다’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 땅에 들어갔지만, 궁극적으로 그 땅을 ‘넘어서’ ‘지나갔던’ 것이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11:9).

 

세겜(쉐켐)

아브라함 당시의 이름이었다기 보다는 후대에 이곳에 성읍을 세운 히위 족속의 족장 세겜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지명인 듯하다(34:2). 예루살렘 북쪽 약 40 km 지점으로서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물이 비교적 풍부하고 땅이 비옥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후에도 성경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며(32:18-20; 수 20:7; 왕상 12:1; 시 60:6)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요 4:6).

 

모레 상수리나무(엘론 모레)

‘모레’가 ‘야라(가르치다)’란 말에서 유래하여 ‘선생’이라는 뜻을 지니며, 이는 13:18의 ‘마므레’와 마찬가지로 상수리 나무를 심은 소유주의 이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모레’가 ‘라아(본다)’란 말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를 종교적인 신탁(神託)과 관련된 것으로 보아 종교적 행사가 벌어지던 장소의 명칭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상수리나무’로 번역된 ‘엘론’은 ‘강하다’는 뜻이 있는 ‘울’에서 유래한 것으로 재질이 강하고 큰 참나무(Oak)과에 속하는 테레빈(Terebinth) 나무로 추정된다. 특별히 모레 상수리나무가 언급된 것은 이 나무가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나무로서 아마 지계표(Landma가) 역할을 하는 나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웨학케나아니 아즈 빠아레츠)

‘아즈(그 때에)’란 지시 부사가 사용된 것은 본문이 아브라함 당시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모세에 의하여 쓰여졌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 사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을 강조한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12:7) 여호와께서 ... 나타나(와예라 예흐와)

‘나타나’에 해당하는 ‘예라’는 ‘보다’는 뜻이 있는 동사 ‘라아’의 재귀형이다. 따라서 본문은 ‘여호와께서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셨다’는 뜻이 있다.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와이벤 솸 미즈뻬아흐 라이흐와)

원문에서 본문의 서두에는 ‘쌓고’에 해당하는 ‘와이벤’이 나오며, 이는 ‘그러자 그는 쌓았다’고 번역된다. 이처럼 본문의 서두에 앞문장의 결과로 본문의 상황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와우 계속법’이 사용된 것은 아브라함이 그 땅을 자신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단을 쌓았음을 암시한다. 특별히 본문에 ‘여호와를 위하여(라이흐와)’란 표현이 나오는 것은 모든 일의 최종 목적을 여호와께 두는 아브라함의 성숙한 신앙을 잘 보여준다. ‘제단을 쌓는’ 외형적 행동보다는 단을 쌓는 마음의 동기, 즉 ‘여호와를 위하는’ 그 정신이 더 중요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12:8) 장막을 치니(와예트 오홀로)

‘치니’라고 번역된 ‘와예트’는 계속적 ‘와우’와 동사 ‘나타’의 미완료형이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 쳤다’이다. 그런데 동사 ‘나타’는 단순히 ‘펼친다’는 의미로서 ‘장막을 치다’는 뜻 외에도 비유적으로 ‘장막터를 넓히다’, 한 가문이나 민족을 세운다는 은유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렘 10:20).

 

벧엘(뻬트 엘)

‘집’이란 뜻이 있는 ‘베트’와 ‘하나님’이란 뜻이 있는 ‘엘’이 합해져서 ‘하나님의 집’이란 뜻을 가진 지명이다. 야곱이 이곳에서 여호와의 환상을 보고 그 이름을 벧엘로 고쳤다(28:10-22). 아브라함 당시에 ‘루스’로 불렸던(28:19) 이 곳을 굳이 야곱의 사건과 연관시켜 ‘벧엘’로 언급한 것은 이 글을 쓴 당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와이크라 뻬쉠 예흐와)

이는 4:26에 나오는 내용, 즉 셋이 에노스를 낳을 당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와 동일한 표현이다.

 

(12:9) 점점 ... 옮겨갔더라(와잇싸 ... 할로크 웨나쏘아)

본문에는 ‘뽑다’란 원뜻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장막의 말뚝을 뽑다’, ‘이주하다’란 의미를 가진 ‘나싸’가 문장의 초두와 끝부분에 두 번 나오며, ‘걷다’란 의미가 있는 ‘할라크’가 그 중간에 나온다. 그리고 ‘할로크’와 ‘웨나쏘아’는 모두 행동의 계속성을 강조하는 부정사 절대형으로 쓰였다. 이 형식은 아브라함 일행이 장막을 치고 또 장막을 거두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계속 이동하는 고달픈 유랑 생활을 하고 있음을 눈에 보일 듯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남방으로(한네게바)

‘남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게브’는 원래 ‘메마르다’란 뜻을 가진 ‘나가브’에서 유래하여 ‘거치른 땅’이란 뜻을 지닌다. 가나안 지역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로 약속된 땅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거친 남방으로 이주를 한 이유는 가나안 지역에 이미 정착한 원주민들의 경계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2:10) 애굽에 거류하려고(미츠라이마 라구르)

애굽에는 세계에서 가장 길 뿐만 아니라 수량이 풍부한 나일강(6,400 km)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뭄일 경우 그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거류하다(구르)’는 원래 ‘길에서 벗어나다’란 의미가 있으며, 여행자의 신분으로 어떤 지역에 일시적으로 잠간 머무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내려갔으니(와예레드)

‘야라드(내려가다)’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아브라함이 팔레스틴 남방 네게브 지역에서 보다 낮은 북부 아프리카 저지대로 이동한 것을 나타낸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ㄴ)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2:13-15).

 

이는 ... 심하였음이라(키 카베드)

‘심하였다’라고 번역된 ‘카베드’는 ‘비둔하다’, ‘강퍅하다’, ‘무겁다’, ‘무겁게 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17:5).

 

(12:11) 아리따운 여인이라(키 잇솨 예파트 마르에)

직역하면 ‘아름다운 용모의 여인’이다.  ‘예파트’는 ‘빛나다’는 의미가 있는 ‘야파’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12:12) 나는 죽이고(웨하레구 오티)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나를 죽일 것이다’이다.  여기서 ‘죽이다’로 번역된 ‘하라그’ 동사는 무자비한 폭력의 행동을 내포하는 단어이다.

 

(13:13) 원하건대 ... 하라(이므리 나)

‘이므리’는 ‘말하라’는 뜻을 지닌 명령형이다. 그리고 ‘원하건대’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는 명령형과 함께 쓰일 때 ‘애원하다’는 의미가 강해진다. 가장(家長)의 권위가 강하였던 당시 사회에서 아브라함이 이처럼 사라에게 비굴하게 애원한 것은 애굽 왕 바로가 미모가 출중했던 유부녀를 첩으로 취하기 위해 그 남편을 죽이기도 했던 당시 애굽의 풍습에 아브라함이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이타브 리 바아부레크)

직역하면 ‘그는 당신 때문에 나를 잘 대해 주리라’이다. 본문에서 ‘이타브’는 ‘좋다’, ‘기쁘다’, ‘복을 받다’로도 번역되는 ‘야타브’의 3인칭 미완료형으로서 뒤에 전치사 ‘레’와 함께 1인칭 목적어 어미를 취하여 바로가 계속하여 자기를 선대하며 그 결과가 자기가 복을 누리게 되리라는 의미를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이 문장 바로 뒤에 나오는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14:14) 심히 아리따움을(야파 ... 메오드)

‘야파’는 ‘화려하다’, ‘빛나다’란 뜻을 지닌다.

(15:15) 바로의 고관들도(사레 파르오)

‘바로(파르오)’는 ‘큰 집’을 가리키는 애굽어에서 유래하여 왕궁에 거하는 애굽 왕을 가리키는 일반적 명칭이다. ‘사르(대신, 고관)’는 ‘주관하다’에서 온 말로 백성을 통치하는 왕의 측근을 말한다.

 

칭찬하므로(와예하렐루)

‘빛나다’, ‘과시하다’는 의미가 있는 동사 ‘할랄’은 강의형(또는 강세형)으로 사용되어 ‘노래하다’, ‘찬양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할렐루야’의 어근이 바로 이 동사이다. 바로의 대시니들은 사라의 미모에 매혹되어 바로에게 그 아름다움을 마치 노래하듯이 끊임없이 아뢰었음을 묘사한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

(12:17)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와예낙가 ... 네가임 께돌림)

‘네가임(재앙)’ 과 ‘와예낙가(내리신지라)’는 동일 어근(나가)을 갖는다. 즉 ‘내리신지라’는 ‘닿다’, '접촉하다‘ 뜻이 있는 ‘나가’의 강의형(강세형)으로서 특히 ‘하나님께서 형벌로서 때리다’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재앙’ 역시 ‘닿다’란 뜻이 있는 ‘나가’에서 유래하여 강하게 ‘때림’이란 의미를 가지며, 특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하는 재난을 가리키는(출 11:1; 시 38:12; 91:10) ‘네가’의 복수형이다.

 

(12:18) 어찌하여 ... 어찌하여(마 ... 람마)

‘마’는 ‘무엇 때문에’, ‘왜’라는 뜻을 지니는 의문사이다(27:46). 바로는 동일한 의문사를 두 번이나 반복 사용하여 아브라함의 잘못을 지적한다.

 

(12:19) 데려가라 하고(카흐 왈레크)

직역하면 ‘너는 취하라 그리고 너는 가라’이다.

 

(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와예차우 알라이우 파르오 아나쉼)

직역하면 ‘그리고 바로가 [아브라함, 즉] 그에 관하여(알라이우) 많은 사람들에게(아나쉼) [직접] 명령을 내렸다(와예차우)’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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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왜왜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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