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 원어해석
(13:1) 애굽에서 ... 올라가니(와야알 ... 밈미츠라임)
세속적인 삶을 상징하는 ‘미츠라임’(애굽) 앞에 분리를 나타내며 ‘~로부터’로 해석되는 전치사 ‘민’을 붙임으로써 아브라함이 애굽으로부터 멀어졌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와야알’(‘그리고 그는 올라갔다’)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의 여정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신앙의 향상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잠 14:16).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벧전 3:11).
네게브로(한네게바)
한글개역성경은 ‘남방으로’로 번역했지만, 이것은 오해의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볼 때 ‘네게브’ 지역은 북쪽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네게브 지역은 애굽과 가나안 지역 사이에 있으며 애굽의 ‘온’(헬리오폴리스)과 아라비아의 사막 도시 데마 사이를 잇는 ‘엘랏 길’이나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통과하거나 교차하여 이를 수 있는 곳이다.
(13:2) 은과 금이(빡케세프 우밧자하브)
직역하면 ‘그 은 안에서 그리고 그 금 안에서’이다.
풍부하였더라(카베드 메오드)
‘카베드’는 ‘수가 많고 무거웠다’를 의미하고 ‘메오드’는 ‘대단히, 아주, 많이’를 뜻한다. ‘육축’(미크네)은 사람이 치는 모든 종류의 짐승들을 의미하고, ‘은금’은 족장의 재산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곳에 언급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애굽을 떠나기 전에 은금을 받았다(출 12:35-36).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13:3) 전에(빳테힐라)
이 구절은 ‘~할 때’를 나타내는 전치사 ‘뻬’와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인 ‘빠’, 그리고 ‘열다’란 뜻에서 유래하여 ‘처음’, ‘시작’ 이란 의미를 갖는 ‘테힐라’가 결합된 형태로서, ‘처음에’(at the Beginning)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이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바로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밝힘으로써(12:8),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저지른 이전의 실수를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13:4) 처음으로(빠리쇼나)
이 구절은 바로 앞 3절에 나온 ‘전에’와 거의 같은 기능과 의미를 갖고 있다. ‘리숀’은 ‘처음’을 뜻한다. 창세기 1:1의 ‘태초’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레쉬트’도 ‘리숀’과 어근이 같다. 그래서 ‘빠리쇼나’는 ‘맨 처음 바로 그 때’를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맨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은 세겜임에도(12:6-7) 불구하고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있는 이곳을 처음이라 묘사한 것은 단을 쌓았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곳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12:8).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딤전 5:12).
제단을(함미즈뻬아흐)
구약 성경에서 401회 사용된 ‘미즈뻬아흐’는 ‘희생을 위해 죽이다’라는 뜻이 있는 ‘자바흐’에서 유래된 명사이며, 희생 제사를 드리는 장소를 나타낸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와이크라 ... 뻬쉠 예흐와)
직역하면 ‘그리고 ...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이다. 한글 성경에는 게속적 와우에 대한 해석 ‘그리고’를 생략하고 있지만, 와우가 있음으로 아브라함이 전에 장막을 쳤던 곳에 도착한 일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일이 바로 이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실수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채워주심을 생각하면서 감격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시 86:1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5절-6절) 이 곳에서 갈등의 원인이 서술된다. 역설적인 것은 아브람과 롯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그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거주하다’(야샤브)라는 동사가 본 장의 핵심어이다(6, 7, 12, 18절).
(13:5) 아브람의 일행 롯(렐로트 하홀레크 에트 아브람)
‘홀레크’는 ‘할라크’(‘걸어다니다’)의 분사형으로 지속적인 의믈 가진다. ‘에트’는 ‘~와 함께’를 뜻하는 전치사로서, 롯이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동행했다는 사실을 묘사한다. 롯이 동행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지만, 아브라함이 롯과 동행함으로써 두 그룹 사이에 어떤 갈등이 일어날 긴장관계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예수님과 동행했던 가룟 유다의 모습이 이 경우와 유사하다.
장막이(웨오할림)
‘오헬’(장막)은 일차적으로 유목민들이 가축을 치며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든 텐트를 가리킨다. 그러나 때로는 이 말은 장막 그 자체뿐 아니라 장막 속에 살고 있는 거주자들 즉 가족들과 종들을 가리키기도 한다(삿 6:5; 대상 4:41). 특히 장막이 복수형(오할림)으로 쓰인 것은 롯에게도 많은 장막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재산이 갈등의 원인이 되어간다.
“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수 7:21).
(13:6) 그 땅이 ... 넉넉하지 못하였으니(웨로 나사 ... 하아레츠)
‘넉넉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나사’는 ‘들어 올리다’, ‘품다’ 를 뜻한다. 그 땅이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들을 ‘들어 올릴’ 능력이 없거나, ‘품을’ 능력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동거하기에... 동거할 수(라쉐베트 야흐따우 ... 라쉐베트 야흐따우)
‘라쉐베트’는 부정사 앞에 붙는 전치사 ‘라’와, 이 이야기의 핵심단어 ‘거하다’(야샤브)의 부정사형(쉐베트)이 결합된 형태인데, 이것이 두 번 반복되어 있다.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하야 레쿠솸 라브)
구약성경에서 재산을 모은 것은 하나님의 복수심의 결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본문에서 재산의 축적은 다툼과 분리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25, 33).
(13:7) 그러므로 ... 다투고(와예히 리브)
직역하면 ‘그러므로 ... 다툼이 있었다’이다. 여기서 ‘리브’(다툼)는 대부분의 경우 말로 논쟁하는 것을 가리키나, 때로는 주먹질하며 싸우는 것도 포함된다. 이 단어(리브)는 ‘법적 분쟁’을 전문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시 62:10).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전 5:13).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웨학케나아니 웨합레핏지)
이전에 가나안에 살던 거리미들의 목록에 브리스 족속이 첨가되어 있었다는 사실은(12:6) 목자들이 그 땅이 혼잡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며, 14:5-7; 15:19-21에 포함된 이스라엘 점유 이전의 거미니들에 대한 보다 풍부한 목록을 예견한다. 브리스 족속은 구약성경에 23회 언급된다. 그 이름의 어원은 ‘파라즈’(마을, 촌락)과 연관된다.
(13:8) 한 친족(아나쉼 아힘)
개역성경은 ‘골육’으로 번역한 이 구절을 직역하면 ‘형제들의 사람들’이다. 즉 ‘한 형제’라는 의미이다. ‘아나쉼’은 ‘사람들’, ‘아힘’은 ‘형제들’을 의미한다. ‘아힘’의 원형 ‘아흐’는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친 형제들과 이복 형제들, 그리고 한 조상에게서 태어난 먼 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다.
(13:9) 나를 떠나거라(힙파레드 나 메알라이)
‘힙파레드’(떠나거라)는 ‘나누다’, ‘구별하다’란 원뜻이 있는 ‘파라드’의 재귀명령형이므로 ‘스스로 분리해라’란 의미가 있다. 여기에 ‘제발’, ‘원컨대’로 번역되며 앞절에도 나오는 ‘나’가 또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명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애원에 가까운 간곡한 권유로 롯에게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시 34:14)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잠 12:20).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 바라본즉(와잇사 로트 에트 에나이우 와야르)
‘잇사’는 ‘나사’가 원형이며 ‘들어 올리다’란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러자 롯이 그의 눈들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는 바라 보았다’이다. 아브라함의 제안을 받은 롯은 이것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보다 적극적이며 신중하게 땅을 살펴 보고 있음이 이렇게 표현되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2).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미 7:7).
요단 지역을(에트 콜 킥카르 하랴르뗀)
개역성경은 ‘요단 들을’로 변역했다. ‘킥카르’는 ‘맴돌다’란 의미를 지니는 ‘카라르’에서 유래하여 일차적으로는 ‘원’(圓)을 뜻하며, 분문에서는 ‘주변 지역’, ‘둘레’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직역하면 ‘요단 평지 전체를’ 이다. 요단 강 주변 지역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풍광이 좋았으므로 롯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묘사하는 것이다.
소알(초아르)
‘소알’은 ‘작다’, ‘비천하다’란 뜻이 있는 ‘차아르’에서 유래하여 ‘작음’, ‘비천함’의 의미를 갖고 있다. 원래 이름은 ‘벨라’(14:2, 8)였으나 후에 소알 유역에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관련하여 그 이름이 부정적인 뜻을 지니는 ‘소알’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마치 ‘여호와의 동산’ 즉 네 강이 잇어 물이 풍부하여 아름다웠던 에덴 동산(2:8-15)이나 나일 강의 풍부한 수량으로 생활이 풍요로운 ‘애굽 땅’과 같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 13).
(13:11)그러므로 ... 택하고(와이브하르 로)
직역하면 ‘그러자 그는 그를 위하여 택하였다’이다.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본문의 뉘앙스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어가 ‘로’(그를 위하여, 즉 자기를 위하여)이다.
동으로(믹케뎀)
‘동으로’는 그가 옮겨가는 방향을 나타내지만, 죄를 범한 후 동쪽으로 갔던 아담과 하와 및 가인(3:24; 4:16), 그리고 불운한 탑을 쌓기 전에 ‘동방으로’ 옮겨갔던 바벨의 사람들(11:2)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으로’로 번역이 되지만, ‘에덴의 동쪽을 떠나서’로 변역이 될 수도 있다(창 11:2 참조).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2,13).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13:12)그 지역의 도시들에(뻬아레 학킥카르)
여기서 ‘킥카르’는 앞절에 나오는 ‘지역’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하다. ‘도시들’(아레)은 성벽이 있는 규모를 갖춘 정착지를 의미한다(레 25:29). 롯이 이러한 ‘성읍들’, ‘도시들’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단순히 가나안 땅에 거하였다는 표현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13:13)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웨핫타임 라이흐와 메오드)
‘핫타(죄인)’는 ‘벗어나다’, ‘빗나가다’란 말에서 유래하였다. ‘메오드’는 ‘매우’, ‘아주’, 너무‘란 뜻을 지녔는데, ’여호와 앞에(라이흐와)‘란 표현을 덧붙인 것은 죄악의 정도를 표시하는 방법에 있어서 히브리어 최상급을 능가하는 극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대상 16:8).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17:13).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13:14) 너는 눈을 들어 ... 바라보라(사 나 에네카 우레에)
본문에는 두 가지 명령이 나온다. 하나는 ‘너의 눈들을 들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고 바라보라’이다. 본문의 이 명령들은 강압적인 명령들이 아니라 부드러운 권유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원어 성경에는 ‘원컨대(12:13)로 번역되기도 하며 부드럽고 신중한 요청이나 권면을 나타내는 ’나‘란 불변화사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우레에’의 기본형 ‘라아’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주의 깊게 바라보다’란 의미를 지닌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 19:21).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 5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3,4).
(13:15) 보이는 땅을(에트 콜 하아레츠 아쉐르 앗타 로에)
‘로에’는 ‘라아(보다)’의 분사형으로서 현재적인 의미가 강하다. 이는 아브라함이 지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눈을 들어 땅을 바라보고 있음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그 모든 땅을’이다. 이처럼 한글 성경에는 나오지 않으나 원어 성경은 2인칭 대명사 ‘앗타’와 ‘모든’(콜)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크다는 사실과 더불어 장차 아브라함에게 주어질 축복이 크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레카 엣테넨나 우레자르아)
약속의 땅이 주어질 대상(‘카’ = 너)이 전치사 ‘레’(~에게 혹은 ~을 위하여)와 함께 표기되어 나온다. 직역하면 ‘너에게 내가 주리라 그리고 너의 씨에게’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레자르아카(네 씨에게)’에 쓰인 ‘제라’가 단수 명사라는 사실이다. 이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첫째로 ‘제라’는 집합적으로 쓰여서 ‘후손들’을 총칭하는 의미를 가지며(17:7,8), 둘째로는 개별적으로 쓰여서 ‘이삭’을 가리킨다(15:34).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창 21:13).
영원히 이르리라(아드 올람)
‘영원까지 이르리라’는 히브리어 ‘아드 올람’이 대부분의 경우 시간의 제한을 뛰어넘는 ‘영원’을 의미하지만 때로는 불확실한 긴 기간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되었고(출 21:6), 이러한 해석이 ‘영원’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올람’의 어원과도 조화된다고 볼 수 있다. ‘올람’은 ‘숨기다’, ‘깨닫지 못하다’로도 번역되는 ‘알람’에서 유래하여 인간의 눈에는 감추어진 시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시간이 하나님의 영존성을 가리키는 문맥 등에서는 ‘영원’을 뜻하지만, 문맥에 따라서는 인간이 잘 알 수 없는 ‘미래의 시간’이나 ‘오랜 기간’ 등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본문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13:16) 내가 ... 하리니(웨사므티)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둘 것이다’이다. 본문의 원형 ‘숨’이 기본적으로 ‘두다’라는 뜻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은 이외에도 ‘사람을 지위에 임명하다’,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다’, ‘변화를 일으키게 하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하다’란 의미로도 쓰인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을 주시는 것은 그들을 따로 구별하시며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겠다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티끌 같게(카아파르)
‘아파르’는 ‘재’(민 19:17), ‘가루’(왕하 23:15), ‘모래’(욥 39:14)로 번역되넌 단어이다.
능히 셀 수 있을진대(임 유칼 ... 리므노트)
‘~진대’라고 번역된 ‘임’은 직역하면 ‘~한다면’ 또는 ‘~라면’이다. 또한 ‘능히’ 라고 번역된 ‘유칼’의 원형 ‘야콜’은 ‘~할 수 있다’라는 뜻이므로 직역하면 ‘그가 ... 할 수도 있다’이다. 또한 ‘리므노트’는 ‘마나(수를 세다)’의 부정사형으로 ‘유칼’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직역하면 ‘그가 셀 수 있다면’이다. 이러한 조견문은 내용은 긍정이지만 오히려 강한 부정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관용적 표현이다. 즉, 한글 성경의 ‘능히 셀 수 있을진대’라는 번역은 오히려 ‘셀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땅의 티끌을 셀 수 없는 거처럼 네 자손도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것이다’라는 반어적인 말씀인 것이다.
(13:17) 너는 일어나 .. 행하여 보라(쿰 히트할레크)
직역하면 ‘너는 일어나라 ... 너는 주위를 걸어 다니라’ 이다.
종과 횡으로(레오르카흐 우레로흐빠흐)
직역하면 ‘그것의(땅의) 길이로 그리고 그것의 넓이로’이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레카 엣테넨나)
히브리어로는 15절에 나오는 ‘너와 ... 주리니’란 표현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13:18)이에 ... 장막을 옮겨 ... 이르러 거하며(와예에할 ... 와야보 와예쉐브)
직역하면 ‘그러자 그는 장막을 옮겼다 ... 그리고 왔다... 그리고 자리잡았다’ 이다.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뻬엘로네 마므레)
‘마므레’는 ‘깨다’, ‘꺾다’란 뜻이 있는 ‘말라크’에서 유래하여 ‘강함’이란 뜻이 있다. 그는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었던 아모리족의 족장으로서 아브라함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으므로 자신의 숲을 아브라함에게 준 것으로 보인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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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왜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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