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해설](38)
10계명⑦-이웃에 대한 책임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 증명하다
기독교인이라면 이웃 사랑의 실천은 필수적이고 지속적이다.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하나? 타락한 인간에게는 이웃 사랑이 불가능하거나 위선적이다. 하지만 중생된 자라면 이웃 사랑이 당연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증명되는 것이고 믿음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며 죄들의 용서에 대한 확신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 사랑과 관련을 맺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변명을 늘어놓는 어떤 경우라도 이웃 사랑은 조건이 없다. 이웃을 조건에 따라 사랑하거나 용서하는 것은 안 된다. 우리는 용서할 의무와 사랑의 책임만 가졌을 뿐이다.
이웃 사랑과 관련된 10계명은 5~10계명에 해당된다. 그 가운데서 절정에 이르는 계명은 8계명, 즉 도둑질 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바벨론 유수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의 그릇된 행위와 게으름에 대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보이신 여섯 번째 환상인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게 된다. 이것의 양 편에 글이 쓰여 있었는데 한 편은 도둑질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한 편은 헛된 맹세에 관한 것이었다. 전자는 8계명을, 후자는 3계명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10계명의 내용을 요약해서 선언하신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웃 사랑의 절정은 도둑질(8계명)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하나님 사랑의 절정은 맹세(3계명)에서 이해될 수 있다. 8계명이 대표적 의미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웃의 생명을 빼앗거나 보호해주지 못한 경우, 이웃의 아내를 탐하거나 범하는 경우, 이웃의 물건이나 재산을 불법적으로 획득하는 경우, 이웃에게 진실함을 나타내는 경우 그리고 이웃의 모든 것에 대한 질투나 시기하는 경우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이때 주님의 대답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8계명을 실천하라고 언급하셨다. 이것은 문자적으론 8계명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10계명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8계명은 대표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 이웃에 속한 것에 대한 탐심을 가지는 것과 획득할 때는 반드시 합법적이어야만 한다는 계명, 즉 8~10계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8계명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부가 처벌하는 도적질과 강도질을 금지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도적질을 모든 사악한 속임수와 간계로 보시고 금지한다.” 또 부정한 계량기나 고리대금과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이웃의 소유물을 획득하지 말아야 한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110문).
항상 공정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은 공의로운 방법으로 부를 획득해야 한다. 도박, 뇌물, 권력 또는 법을 악용하여 부를 획득하는 것을 엄하게 금지하고 있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142문). 이웃의 재산이나 재물을 보호하는 일만 아니라 침해하지도 말아야 한다. 단순히 이웃의 재물과 재산만 아니라 권익과 권리까지도 찬탈하거나 획득해서는 안 된다.
9계명의 뜻은 무엇인가? 이웃에게 진실해야 하고 이웃의 명예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문을 듣고 나름대로 해석하여 왜곡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험담이나 중상에도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차라리 듣지 않거나 함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한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112문).
9계명을 생각하노라면 말에 관련된 정죄와 경고를 잊을 수 없다. 40여 차례나 잠언에서는 경고하고 야고보서 3장 역시 경고하고 있다. 무심코 내뱉는 말에도 주의해야 하고, 근거 없이 들은 모든 소문을 쉽게 옮기는 습관을 제어해야 한다.
10계명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자신의 형편에 만족해야 하고 이웃의 대한 섣부른 평판을 금하고 질투 역시 금한다. 이렇게 하므로 이웃의 명예를 보존하게 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따르고 순종하는 최소한의 자세이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113문).
지금까지 살핀 이웃에 대한 책임에 속한 5~10계명은 도둑질이라는 계명의 의미에 포함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웃의 재물과 명예를 침범하지도 말아야 하고, 탐내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보존해야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해 그리스도는 율법의 명령을 완전한 의미를 밝히시면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신 후 이것을 위한 자세로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고 덧붙이셨다.
또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8)고 하셨다. 이웃 사랑은 자신처럼 생각하는데서 시작함을 그리스도는 말씀한다. 이처럼 이웃을 자신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이웃 사랑은 이미 시작한 셈이다. 또 이웃 사랑이 시작되었다면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가진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이 논리를 역순으로 정리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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