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설명 없이 교회 봉사자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잘려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정팀,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예배·차량·식당 봉사자 모두가 한두 주 사이로 해임돼 버렸다면? 갑자기 원로장로와 은퇴장로가 교회 운영 전반에 나서 교인들과 아무 상의 없이 교회의 조직을 개편해 버린다면? 게다가 새로 봉사자로 임명된 사람들이 장로들의 자녀, 그것도 교회에 잘 출석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왜 이렇게 하는 건지 교회에 문제를 제기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에 오래 다니고 교회를 잘 아는 장로들이 하는 일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며 따라갈 것인가. 만약 내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면 마음이 어떨까. 장로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맡고 있던 아이들에게 더 이상 너희들을 돌볼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이런 일을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교회가 있다. 한국도 아니고 개신교인 비율이 전 국민의 1%도 안 되는 일본에 있다. 도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한인 교회, 91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경복음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재일 한인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는 동경복음교회. 그러나 그 긴 역사가 오히려 교회를 좀먹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 도쿄 아라카와 구에 있는 동경복음교회. 교인 150여 명으로 개신교인 비율이 1%도 안 되는 일본에서는 꽤 큰 규모다. <뉴스앤조이>는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도쿄에 체류하며 동경복음교회를 취재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전 담임목사 사역 막았던 장로들, 스캔들 의혹 부목사는 적극 지지

동경복음교회는 지난 8월까지만 해도 한국 기독교 방송에 3주에 걸쳐 선교의 좋은 사례로 소개되는 등 아무 문제없어 보였다. 오히려 척박한 선교지인 일본에서 활발하게 사역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는 교회였다. 그러나 근 세 달간 교회가 겪은 일들은 그야말로 평지풍파다.

조용했던 교회에 폭탄이 터진 사건은 바로 9월 20일, 조 아무개 담임목사의 갑작스런 사임 발표였다. 2009년부터 6년째 사역했던 조 목사는 예배 말미에 갑자기 사임을 선언하고 일주일 내로 일본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아무 사정도 모르던 교인들은 어안이 벙벙해 상황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담임목사를 떠나보냈다.

왜 조 목사가 갑자기 떠났는지 답답해하던 교인들은 일주일 만에 또 한 번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9월 27일 예배 시간에 익명의 투서와 사진이 교인들의 휴대폰으로 전송된 것이다. 내용은 조 목사 대신 예배를 인도하게 된 김 아무개 부목사의 스캔들이었다. 재일 교포인 김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잠깐 한국에 있을 때, 한 유부녀를 임신시켰으며 그에게 돈도 몇 차례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쌍둥이가 임신된 초음파 사진, 김 목사와 어떤 여자가 결혼할 때 입는 한복을 입고 다정하게 찍은 사진, 김 목사가 상반신을 탈의한 채 화장실에서 찍은 사진 등이 첨부됐다. 메시지와 사진만으로 스캔들의 진위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교인들이 충격에 빠지기에는 충분했다.

몇몇 교인이 수소문해 보니, 김 목사는 동경복음교회에 오기 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사역했던 동경교회에서 이 스캔들 때문에 사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장로들과 일부 권사는 김 목사의 의혹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임한 조 목사에게 여러 가지 흠결이 있었다는 말을 퍼뜨렸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교회 돈을 유용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뉴스앤조이> 취재 결과, 조 목사의 돈 문제는 실체가 없었다. 교인들은 오히려 조 목사가 부임한 후 교회 재정 시스템이 투명하게 바뀌었다고 했다. 장로만 관리하던 체제에서 집사·권사·장로가 함께 관리하게 하고, 수기(手記)였던 것을 컴퓨터로 기록하게 했으며, 재정 상태도 신도 총회 자료에 좀 더 세세하게 항목별로 공시했다는 것이다. 6년간 조 목사가 교회에서 받은 사례비, 목회 활동비, 자녀 학비 등은 모두 장로들이 조 목사를 데려올 때 약속한 금액이었다. 교인들은 장로들이 직접 교회 통장을 관리했고 조 목사에게 주는 돈까지 결정했으면서, 이제 와 조 목사가 교회 돈을 유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작년부터 장로들은 조 목사의 사역에 간섭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제자 훈련 프로그램과, 해외 단기 선교, 성경 읽기 리더 세우기 등을 막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던 교인들은, 조 목사가 잘해 나가던 사역을 접는 것에 의아해했다. 또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고유 권한이었던 부목사 인사권도 자신들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김 목사의 스캔들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었다. 2013년, 동경교회와 김 목사가 소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일본지방에서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건의 진위 여부는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감리회 일본지방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 투서를 보낸 사람이 나중에 거짓말이었다며 사과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목사가 나온 사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동경교회 관계자는 "김 목사가 성관계는 부인했지만, 그 사람이 유부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고 상반신을 탈의한 사진과 돈을 보낸 것도 인정했다. 임신시킨 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유부녀라는 것을 알고도 그런 사진을 보냈다는 건 부적절한 관계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보냈다"고 말했다.

동경복음교회 교인들은 조 목사에게 문제가 있고 김 목사는 결백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장로들은 막무가내였다. 11월 첫 주, 동경복음교회를 60년 이상 다닌 김 아무개 원로장로(82)가 광고 시간에 나와 김 목사를 '담임목사대행'으로 세웠다고 공식 발표했다. 스캔들 의혹을 김 목사가 해명하지도 않았고, 그가 담임목사대행이 되는 것에 대해 교인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았다. 장로들끼리 논의한 결과였다.

<뉴스앤조이> 기자는 스캔들에 대한 입장을 김 목사에게 직접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김 목사와 11월 21일 저녁 8시 도쿄 모 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그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김 목사는 당일 돌연 약속을 취소했다. 만나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메시지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기자는 22일 주일, 동경복음교회를 찾아가 김 목사를 만났으나 그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며 완강하게 취재를 거부했다.

장로들도 취재를 거부했다. 기자는 일본에 가기 전 김 원로장로와도 통화해 22일 주일예배가 끝난 후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김 장로는 취재에 응한다고 한 적이 없다며 말을 바꿨다. 유일한 시무장로인 신 아무개 장로도 기자에게, "교회는 문제없으니 이야기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장로들과 김 목사는 오히려 기자에게 "제보자가 누구냐",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게 누구냐"고 물으며, 누가 교회 일을 바깥에 발설했는지 색출해 내기 바빴다.

  
▲ 11월 22일 동경복음교회 추수 감사 예배 현장. 담임목사가 공석인 현재, 김 아무개 부목사가 담임목사대행으로 예배 사회 및 설교를 담당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제직회 열자는 교인들 제안 무시…따르기 싫으면 나가라?

동경복음교회 교인들은 10월부터 제직회를 열자고 장로들에게 제안해 왔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교회 상황에 대해 제직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장로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제직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소통의 창구를 막은 채, 장로들은 조직 개편을 강행했다. 장로들이 교회 운영 전면에 등장했다. 원로장로와 은퇴장로까지 나섰다. 예배위원회는 김 아무개 원로장로, 재정위원회는 신 아무개 시무장로, 교육위원회는 문 아무개 은퇴장로, 관리위원회는 장 아무개 은퇴장로가 맡았다.

10월, 헌금을 계수하고 재정을 담당했던 사람이 해임되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더니, 11월 들어 주일학교 교사들, 차량 봉사자들이 일시에 해임됐다. 성가대와 예배 찬양팀도 해체됐다. 이외에도 예배와 식사 등 교회 내에서 봉사하던 모든 사람이 해임됐다. 어떤 사람은 토요일 저녁에 문자메시지로, 어떤 사람은 예배 시작 15분 전 장로에게 불려 가 해임을 통보받았다. 성가대는 주일 오후, 다음 주에 할 찬양을 연습하고 나서 해체된다고 통보받았다.

매주 교회의 조직과 봉사자가 바뀌었다. 예배 순서가 한 주 만에 수년 전으로 회귀했다. 금요 예배가 없어지고 수요 예배가 생겼다. 몇 개로 나뉘어 있던 여선교회가 하나로 통합됐다. 성가대와 주일학교 교사 등 봉사자들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 중에는 장로와 권사들의 아들과 며느리 등 친인척 관계인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매주 교회에 출석하지도 않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이유로, 어떤 절차를 거쳐 하루아침에 봉사자들을 교체하는지 교인들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잘린' 교인들은 서로에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 조 목사가 추진했던 사역에 적극적이었다든지, 사임 후 다시 해외로 선교를 나가게 된 조 목사에게 선교 헌금을 후원하자고 했다든지, 제직회를 열어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했다든지 등등, 모두 교회를 주름잡고 있는 장로들과 일부 권사들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들이었다.

터줏대감들의 일방적인 교회 운영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11월 22일 주일 예배 후, 장로들과 김 목사는 그동안 문제의식을 표현해 왔던 이 아무개 집사를 불러,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떠나라"는 식으로 말했다. 한 권사는 일방적으로 주일 식당 봉사 방식을 변경한 후,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 여집사에게 "봉사를 못하겠다면 위에다 교회 떠날 예정이라고 보고할 테니 그런 줄 알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22일 오후 교회 식당에서 한동안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교회 대표'는 김 아무개 원로장로…제동장치 없는 교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도쿄에서 만난 동경복음교회 교인들은 요즘 이 말이 낯설지 않다고 했다. 교인들은 이런 일들이 동경복음교회에서 반복되어 왔다고 했다. 장로들과 권사들은 모두 40~60년 교회에 있는데 목사는 항상 몇 년 못 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조 목사는 5년 9개월, 그전에 있던 목사는 2년, 그전에 있던 목사는 5년…. 기자가 만난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갈라지고 교회를 떠났다고 말했다.

이번 분란으로 교인들은 또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고 있다. 장로들의 교회 운영에 딴죽을 거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나가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상황이지만,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 교인들은 동경복음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5~6년 전 동경복음교회를 만나 처음 신앙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20년 이상 교회를 다니며 열심히 봉사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교회를 얼마나 다녔든지 얼마나 봉사했든지 얼마나 사랑했든지, 그런 이유로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교회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과정은 쉽지 않다. 동경복음교회는 겉으로 보기에 장로교회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소속 교단이 없는 '단립(單立) 교회'이기 때문에 – 일본에는 이런 형태의 교회가 많다 - 사태를 중재할 제삼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 자체가 법인화해 있고, 법인장은 김 원로장로다. 법인 정관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일을 해결하기에는 허술하다. 연말이면 서리집사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 임명하게 되는데, 장로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만 서리집사를 주고 제직회를 연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