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위에 목사 없다"중대형 교회는 '공동 목회'로 가자
오늘은 필자가 존경하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싶습니다. 그를 처음 만나게 된 곳은 과거 필자가 근무했던 정부 산하의 한 연구소입니다. 하루는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인상 좋게 생긴 한 사람이 웃으며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이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어찌 알았냐고 물으니 식사 전에 잠시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마침 동년배인데다가 필자의 다른 동료들과도 이미 잘 아는 사이라서 서로 말을 놓으며 금방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서울공대에 다닐 때부터 N선교회에 가입하여 평신도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직장 내에서 '일대일 양육'에 힘썼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는 첫 월급을 모두 선교 단체에 헌금할 정도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헛되지 않아 곧 결신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퇴근 후에는 기숙사 내에서 성경공부 모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열심이 하도 대단하여 늘 감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근무지인 대전에서 서울에 올라가 '팀 사역'을 하고 월요일이면 새벽 기차로 내려와 다시 직장 사역을 했습니다. 그 뒤 그는 대기업인 L사로 이직하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성실히 근무하다가 수년 전에 퇴직했습니다. 그 친구는 평생 동안 사역하면서 단 한푼의 사례비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늘 바치기만 했습니다. 그는 목사가 아니었으나 그 어느 목사 못지 않게 열정적인 목회를 했으며, 신학자가 아니었으나 그 어느 신학자 못지 않게 성경을 많이 연구했고, 그리고 직업 선교사가 아니었으나 그 어느 선교사 부럽지 않게 많은 제자를 양육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삶을 실천한 것이지요.
'담임 목회'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요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단독 목회'나 '담임 목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와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굳이 그것을 탓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내 목회'가 그리 중요하냐?"는 질문입니다. 목사직은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직분입니다. 따라서 누구의 목회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교회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일진대 왜 하필 반드시 내가 영구직 당회장이 되어야 하고, 왜 내가 설교를 독점해야 하고, 왜 내가 담임목사가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설교나 목회는 믿을 수 없기 때문인가요. 돈을 벌기 위해 목회하고, 밥을 먹기 위해 목회하고, 명예를 높히기 위해 하는 목회가 아니라면 구태여 그런 아집에 집착할 이유가 하등 없지 않을까요. 성도들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 목회자는 13만에 달하고, 교회는 무려 6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교회나 목사가 모자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것입니다. 현재도 많은 목회자들이 '미자립 교회'에서 아주 힘들게 사역을 하고 계시고 이미 근처에 또 다른 미자립 교회들이 많이 있는데 해마다 신학교 졸업생 수에 맞추어 계속 교회 수를 늘려가야 하는 것이 과연 정상이냐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소명'이란 의미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정말 '담임 목회'나 '유급 목회'만을 뜻하는 것인지요. 또는 정말 꼭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가 되어야만 그 소명이 이루어지는 것인지요. 장로나 교사나 집사의 사역 또한 매우 중요한 목회라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왜 자신은 꼭 담임목사가 되어야만 합니까. 혹시 담임이 아니라면 아예 목회도 아닌지요. 그런데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렇게 크고 작은 교회들이 온 나라에 넘치지만 실제로 많은 성도들은 오히려 집 근처에서 건강한 교회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요. 앞으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목사님들의 목회를 제공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가 결코 아닙니다. 목회가 우선이 아니라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우선입니다. 앞으로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한국교회에는 결코 희망이 없습니다.
목회자들의 착각 언젠가 필자가 "다닐 만한 교회가 주변에 별로 없다"고 했더니 어느 신학교 교수님이 "그거 교만이 아니냐"고 대뜸 반박하시더군요. 물론 그분이 그리 말씀하신 진의를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면 오늘날 적어도 100만 명이 넘는다는 가나안 성도들이 정말 눈이 너무 높고 교만해서 교회를 떠났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도리어 일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의 생각이 저리 안일하고 경직되어 있으니 개신교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만날 "교회! 교회!" 하며 '교회당 중심' 신앙 생활을 노래하지만 사실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확장'이며 '하나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중세 교회처럼 무조건 교회당 수와 신도의 수가 많다고 복음이 확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지요. 내실이 없이 겉으로 드러난 허세는 그냥 거품이며 허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먼저 목회자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 '담임 목회'라는 낡은 전통과 '담임목사'라는 교권주의적 감투를 거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교회 비리도 사실은 투명성이 취약한 단독 목회나 담임 목회이기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들도 가능하면 함께 동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교회를 굳이 내 교회나 내 자식의 교회로 만들려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제사'와 '성직자'와 '성전'이 없다고 알려진 유일한 신앙공동체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온전한 제물이시고, 영원한 제사장이시며, 그리고 성육신하신 성전이셨기 때문입니다. 주로 가정에서 모이던 신약 초기 300년간의 교회에는 '신성한 건물'이나 '성직자'라는 개념조차 아예 없었습니다. 물론 제사장이나 승려나 사제 따위의 직책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 제자들의 면면을 한번 보십시요. 가난한 어부들과 천대받던 세리가 그 무슨 대단한 성직자 행세를 그리 했겠습니까. 오히려 사도들은 자신을 늘 '작은자'로 여겼으며, 교회 내의 모든 지체들은 서로 평등하게 형제와 자매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예배'와 '목회자'와 '건물'을 지나치게 신성시하고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돈 바치는 제사가 되고, 목사가 복 내리는 무당이 되고, 예배당이 만사형통을 비는 성황당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교회를 이리도 심하게 변질시키고 있는 걸까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목회자들이 본래 종의 모습으로 돌아가 백의종군하며 '시무 목사'가 되면 안 될까요. 직분에 무슨 수직적 계급이 있는지요. 왜 나이 많은 목사는 더 대접을 받으려 하십니까. 나이가 무슨 벼슬인가요. 고참 목사가 신참 목사와 서로 도우며 합심하여 동역하면 그게 무슨 부끄러운 일이라도 되는지요. 아니면 자신은 처음부터 고참이었나요. 그러니 기필코 '나만의 목회'를 하겠다는 고루한 생각은 좀 버리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애초부터 예수님의 교회 안에 '내 것'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많은 경우 왜 공동 목회를 기피할까요. 목회자 개인의 종교적 야망과 수입이 우선적 고려 사항이 되니 그리 된 것은 아닌지요. 특히 중대형 교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고 봅니다. 교황이나 대통령보다도 더 과도하게 교권을 독점하고 부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을 군견처럼 부리며 파리 목숨으로 만들고 있는 현재의 '목회 독재용 담임목사제'는 당장 폐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멀쩡한 귀머거리들은 왜 이토록 쉬운 말을 전혀 못 알아 듣는 걸까요. 도무지 염치라고는 모기 눈꼽만큼도 없어 보이는 강남의 어느 표절 목사가 스스로 부끄러운 행실을 먼저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도리어 자신의 비리를 비판하는 성도들과 언론매체들을 향해 무차별 법정 고소를 남발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자기의 그 알량한 권력을 매우 과신하기 때문입니다. 비리가 들통나면 처음엔 자숙한다고 온갖 잔재주를 연출하다가 결국 뒤로는 이런 호박씨를 까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비대해진 종교 권력의 중세적 습성입니다. 하여튼 소위 '주의 종'이란 하인배들이 틈만 주면 감히 교회 장부까지 숨기며 교주가 된 형국이니 한국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을 다 아시지 않습니까. 따라서 앞으로는 담임목사, 수석목사, 부목사, 교육목사, 그리고 심방목사 등으로 직제를 수직적으로 계급화하거나 제한하지 말고 동역하는 모든 목회자들이 전공과 재능에 따라 정기적으로 순환하며 설교와 사역을 분담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칼뱅은 불과 27세의 젊은 나이에 그 유명한 <기독교강요>를 저술했습니다. 신학자나 설교자의 영적 능력이 나이에 정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공동 목회의 경우 장기적으로 볼 때 대형 교회들의 건강한 분립 또한 더욱 용이해질 것입니다. 목사 위에 목사는 없는 법입니다. 굳이 담임목사직을 권력화하여 한 사람의 주머니에게만 특혜를 주지 말고, 차라리 그 돈으로 더 많은 교역자들이 경제적 고통 없이 정상적인 동역을 할 수 있도록 균형있게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작은 교회들은 재정 형편상 잠정적으로 단독 목회를 허용하더라도, 중대형 교회들만은 필히 공동 목회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 경우 목사 독재, 장로 독재, 설교 독점, 헌금 횡령, 그리고 세습 등의 고질적인 교회 사유화 현상도 현저히 해소될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흔히 실수하는 가장 큰 착각은 자기가 설교를 잘하고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성장하는 줄 압니다. 교회 성장을 자기 개인의 걸작품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교만이지요. 사실 교인들의 헌신적인 사역과 다른 직분자들의 적극적인 동역이 없다면 그 어떤 성장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교회는 목사의 밥상이 아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작금의 개신교는 결코 약간 변질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 생각한다면 그건 대단한 착시입니다. 과거 교회 성장의 일등 공신이 목회자들인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 교회의 개혁과 회복이 안 되는 가장 큰 장애물 역시 누가 뭐라고 해도 목회자들입니다. 말로는 항상 '복음주의'니 '개혁주의'니 하며 경건하게 외치지만, 실제 행위로는 반기독적 '교권주의'와 '금권주의'에 사로잡힌 직업종교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중세교회처럼 선거마다 뇌물을 뿌리며 성직매매를 일삼는 교단들에게 정말 희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상당수의 목사들이 성도들을 우민화하여 맹신도로 만들고, 자기 밥그릇을 공동체보다 우선시하니 항상 개혁이 겉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자에 어떤 교회들을 보고 있노라면 개혁자 칼뱅이 당시 부패한 '사제 제도' 대신에 새로 만든 현재의 '목사 제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현행 목사직은 자칫하면 중세 사제직보다도 더욱 치명적으로 위험한 직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글성경에 단 한번 '목사'로 번역된 그 '목자(포이멘)'란 직분을 오늘날 각 교단들이 규정한 목사직과 그대로 동일시하는 어리석은 신학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근거도 전무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애초에 목사직이 없었다면, 장로나 집사들이 야간에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의 '설교자'와 '교사'가 되어 자비량 사역을 했어도 이보다는 훨씬 더 순수하게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필자는 정상적인 유급 목회는 적극 지지합니다. 그러나 상당수 중대형 교회들의 터무니 없는 '사치 목회'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소위 목회자란 분들이 어떻게 단지 교회 사역만으로 수십 억대의 재산가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설사 비양심적인 사이비 목사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요즘 가만히 보면 비교적 건전한 교단의 목사님들조차도 밥그릇 이야기만 나오면 발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구약 지성소의 성물이라도 건드린 것처럼 야단이십니다. 하지만 교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우습지도 않습니다. 교회가 목회자들의 생업과 고소득을 위한 무슨 복지 기관이라도 되는 것인지요. 교인들에게 마치 "내가 거룩한 목회하고 있으니 너희는 당연히 내가 요구하는 경비를 모두 책임지라"는 식의 선무당같은 태도는 이만저만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언제 목사님들에게 목회의 길로 가시라고 억지로 강요를 했던가요. 아니면 목사님들 모두 개인적으로 교인들의 사전 허가라도 별도로 받고 신학교로 가신 것인지요. 교인들은 봉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인들도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만날 교인들만 보면 돈을 바치라고 하십니까. 만일 그토록 바치는 것을 좋아하시면 자신들도 직접 땀 흘려 일해서 돈을 벌어 헌금을 하시면 어떨까요. 허구한 날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뜨겁게 설교하시면서, 왜 목회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가 손수 천막을 지으며 '자비량 사역'을 한 것은 열심히 가르치고 실천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정녕 모르겠습니다. 사도들이 하지 않은 십일조는 그리도 집요하게 강조하면서, 왜 사도들의 자비량 사역은 따르지 않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바치라 필자는 손봉호 장로님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고 큰 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목사님들을 너무 존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목사를 보면 화가 납니다. 그게 목사님들을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손 장로님은 사랑이 있기에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요즘 분수를 모르고 우쭐하는 귀족 목사들처럼 그렇게 시건방 떨며 잘 먹고 잘살다가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수시로 주일 점심에 출장요리사를 불러 평균 25만 원 짜리 초호화 식사를 즐긴 목사는 도대체 뭐 하는 인생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게 무슨 새로 나온 '주일성수' 비법인가요. 아무튼 이처럼 고강도의 사치를 떨고 가난한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며 전체 목회자의 품위를 크게 손상시킬 정도로 질이 안 좋은 목사는 아예 조기에 퇴출시켜서 목회를 금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그리 생각합니다. 신실한 목사님들이 적지 않은데, 공교회가 하필이면 저런 부실한 사역자를 굳이 계속 고용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사실 교회 돈을 맹물 마시듯 쓰는 이런 부류의 저질 목회자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습니다. 이건 필자가 지난 30년간 직접 목격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이 사람들이 정말 목사인지 '먹사'인지 영 헷갈리는 것입니다. 여하튼 저런 황제식사는 일부 목사들이 교인들의 소중한 헌금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득권 포기 없는 '교회 회복'이란 결단코 없습니다. 교회 내에서 목사님들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특히 중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님들은 강단에서 혼자 교회를 위하는 척 늘 말로만 거룩하지 마시고, 진정 공교회의 바른 회복을 원하신다면, 더 이상 '교회의 것'이나 '교인들의 것'으로 생색내지 말고 목사님들 '자신의 것'을 먼저 바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목사님들이 바쳐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한평생 교회의 혜택만 받고 살려 하지 마시고 이제라도 한번 제대로 바쳐보십시요. 그리고 그 중에 첫 바침이 바로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담임목사직'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강단에서 늘상 입버릇처럼 성도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싸구려 축원을 남발하지 마시고, 반대로 이젠 성도들의 간절한 축원에 진정 귀를 기울이시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썩고 또 썩은 이 비상한 시대에는 목사님들도 제발 성도들의 고언에 겸손히 순종을 좀 하시라는 말입니다. 아울러 만날 성도들에게만 바치라고 입바른 소리 하지 마시고, 우선 목사님들 자신부터 성경의 가르침대로 '힘에 지나도록' 바쳐서, 비록 사도들만큼 가난해지지는 못 하겠지만 그 근처까지만이라도 좀 검소하게 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돈과 권력을 차지하는 '제왕적 목회'는 그저 '종교적 사기'일 뿐입니다.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며, 너희 눈으로 찾아보아라. 장마당마다 찾아다녀 보아라. 바르게 살며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는 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 나를 두고 맹세하면서도 속에는 사기칠 생각밖에 없구나(렘5:1-2, 공동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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