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성경해석(聖經解釋)에 대한 이해

수호천사1 2015. 8. 8. 21:49

성경해석(聖經解釋)에 대한 이해 

 

 

 

 

 

 

 

 
        Ⅰ. 해석학의 정의      
     
              해석학(解釋學)에 해당되는 영어       
              "헤로메노이틱스"(Hermeneutcs)는     
              헬라어 "헬메뉴오"에서 나온 것이다.     
     
              이 "헬메뉴오"는 "번역하다", "설명하다"의 뜻인데                   
              이는 헬라 신화에 나오는 신(神)들의 사자(使者)인       
              헤르메스(Hermes. 로마 신화에는 Mercury로 나옴)에서     
              나온 말이다.     
     
              즉 헤르메스가 신들의 의사를 인간의 말로 풀어     
              전달하였다는 신화적 상상(想像)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런 말이 플라톤에 의하여 해석의 원리와 법칙     
              그리고 실제 과정에서의 최선의 방법을 연구하는     
              과학을 지칭(指稱)하는 용어로 처음 쓰이게 된 후     
              인문 과학 분야에서 널리 통용(通用)되게 되었다.     
     
              이제 성경(聖經)으로 시각을 국한해 보면      
              사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해석한다.     
     
              개인적 묵상, 가정 예배와 공중 예배에서의 설교,     
              보다 학술적(學術的)인 주석(註釋)과 강해(講解)는 물론     
              여타 관련 신학(神學) 등도 모두 성경 해석의 한 형태이거나      
              성경 해석(解釋)을 밑바탕으로 삼고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필수(必須) 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경 해석의 원리와 방법과     
              역사를 연구하는 성경 해석학(解釋學)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强調)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성경 해석의 중요성과 여타 신학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이  광범위한 사실(事實)에 근거하여      
              "모든 신학은 성경 해석학이다"라고 규명(糾明)한      
              신학자(神學者)가 있을 정도이다.     
     
              한편 성경 해석학(解釋學)은 모두 문자 기록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해석 원리를 다루는      
              일반 해석학과 시(詩), 예언, 역사, 율법(律法) 등      
              특수한 양식의 기록을 다루는 특수 해석학으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성경 해석학의 세세한 이론은 생략하더라도     
              성경 해석학적 치밀한 연구 결과 확립된 성경 해석의 원리와     
              기본 방법에 대한 포괄적 개관(槪觀)을 하고자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려울 때를 많이 경험한다. 어떤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같아,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경험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성경을 지나치게 상징이나 영적인 비유로 해석하는 사람을 보면서 의아스러움을 갖기도 한다.

성경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그러나 성경을 사사로이 풀다가 뜻을 오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된다. 모든 성경을 가지 방식으로만 해석하여, 지나친 상징이나 영적인 해석을 늘어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1. 성경해석의 목적(目的)

1) 시간적·공간적 언어적, 문화적, 종교적 격차를 좁힐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최대한 정확하게 드러내어 읽는 자로 하여금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도달하도록 한다.

2) 깨달은 것을 자신의 삶에 효과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가운데 살아 역사하도록 만든다.

 

2. 성경해석의 원칙(原則)

1) 평이(平易) 원칙 : 명백하고 혼돈이 없는 성경의 '자연스러운 ' 찾아야 한다.

2) 역사(歷史) 원칙 : 기록자의 시대로 돌아가서 성경의 '본래의 ' 찾아야 한다.

3) 조화(調和) 원칙 : 어느 말씀에도 모순이 없는 성경의 '일반적인 ' 찾아야 한다.

 

3. 성경해석의 유의점(留意點)

1)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관점으로 해석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서 이기 때문이다.

2) 성경 신학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 이기 때문이다.

3) 신구약을 상호관계 속에서 해석한다. 구약의 약속이 신약에서 성취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4) 전후좌우의 문맥을 살펴서 종합적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의 본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5) 불명료한 내용은 명료한 내용을 근거로 해석한다. 난해한 성구는 억지로 해석하지 않는다.

6) 성경 해석의 기초는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무오성이 되어야 한다.

7)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34:16). 성경구절에는 오직 하나의 해석만 있으나 적용은 많다

8) 가감하지 않아야 한다(4:2;30:5,6;22:18,19). 자신의 생각을 넣어 성경을 해석하지 않는다.

9) 사사롭게 풀지 않아야 한다(벧후1:20-21). 지나치게 우화적(Allegory)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10) 성령의 감동으로 풀어야 한다(고전2:13;벧후3:15,16). .성경은 반드시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4. 성경해석의 실제(實際)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 사역이 점진적인 계시를 통하여 인간에게 전달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해석은 하나님 중심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해석하여야 한다.

 

1단계 (관찰) - 어떤 말씀인가?

 

1) 누가 기록하였는가?

2) 무엇을 기록하였는가?

3) 어디서 기록하였는가?

4) 언제 기록하였는가?

5) 기록하였는가?

6) 어떻게 기록하였는가?

 

2단계 (해석) - 무엇을 뜻하는가?

 

1)문법적 해석

(1) 문자적 해석으로 해석한다. 본문이 비유나 은유적이 아닌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 그대로 해석한다.

<> (10:1) 제자(0) -> 이스라엘 백성(×)

(2) 단어에 여러 의미가 있을 있으므로 문맥 속에서 바른 의미를 적용하여야 한다.

<> (고전11:27) 합당치 않게 먹고(×) -> 주의 구속의 의미를 모르고(0)

<> (요일3:10)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 계속 가운데 살지 아니하나니(0)

(3)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뜻이 통하지 않는 것은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 (53:1)여호와의 (×) -> 하나님의 능력(0)

(4) 문맥(文脈) 따라 해석한다. 글의 문맥과 성경 전체의 흐름에 일치시킨다.

<> (14:1) 하나님이 없다(×) -> 어리석은 자가 말이다(0)

성경을 해석할 때는 저자가 성경을 처음 기록할 단어와 구절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저자가 선택한 단어나 단어의 배열순서, 문법, 문맥,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목적 등을 찾아내는 것은 성경 해석에 있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일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저자의 성격, 경험, 교육수준 등을 아는 것이나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 된다. 과정에서 우리는 본문은 오직 가지의 의미만을 가진다는 사실에 유의하고, 본문에서 여러 가지 뜻을 찾아내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문학적 해석

(1) 과장법은 강조를 위해서 실지보다 크게 나타내는 문장의 작법이다.

<> (119:136)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2) 반어법은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강조로써 원래의 뜻을 강조하는 다른 어법과는 다르다.

<> (삼하6:20)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신지...."

(3) 비유법은 문자적이고 자연적인 의미가 아닌 어떤 다른 뜻을 전달하는 단어나 구를 말한다.

<>(18:2)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시다 

(4) 완곡법은 좋지 못하거나 꺼리는 일을 다소 듣기 좋은 말로 대치하는 것이다.

<> (7:60) 자니라  (19:22)  상관하다"

성경에는 과장법, 반어법, 의인법, 직유법, 은유법, 완곡어법 매우 다양한 문학적 기교들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성경은 각각 문학적 기교를 고려하여 그에 적절한 해석을 해야 한다.

성경에는 영적인 진리를 실제적이나 비실제적인 경험들을 들어 설명하는 비유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셨다. 비유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문맥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요소를 찾아내서, 전체 의도나 목적에 합당한 가지의 교훈만을 찾아내는 해석을 해야 한다.

 

3) 역사적 해석

(1) 저자의 기록 목적을 파악한다.

<> (20:3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 ->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

<> (고린도전서) 신자의 분쟁을 꾸중하기 위하여(×) -> 신자의 바른 신앙생활을 위하여()

(2) 성경이 씌어진 배경(시대, 문화, 정치 ) 바르게 이해하여야 한다.

<> (9:23) 십자가를 지고 -> 현재는 고통과 고난으로 이해하나 당시는 죽음을 나타낸다.

성경은 저자나 그것을 받는 수신자(受信者) 살고 있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구약 예언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언서들이 기록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고려해야 하고, 복음서나 신약 서신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역사나 전통 또는 초대교회 지역의 형편들을 고려해야 말씀들의 정확한 의미를 있다.

 

4) 성경적 해석

(1)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Scripture interprets Scripture).

<> (31:31) 언약 = (22:20) 언약

(2) 성경의 애매한 구절은 보다 분명한 성경구절을 통하여 해석되어 상호 모순이 없어야 한다.

<> (3:15) 여자의 후손=(4:4)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 유기적 통일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병행 구절과 연결하며 연구하여야 한다.

모호한 구절은 보다 명백한 병행 구절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 전체의 문맥에서 부분(부분) 해석해야 한다.

 

5) 상징적 해석

(1) 역사적인 실제 인물, 사실, 사건, 제도, 행위 등으로 미래에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을 예표라고 한다.

<> 처녀잉태 : (7:14) -> (1:22-23)

<> (삼하7:12-16) :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2) 물건, 숫자, 형태, 행위, 환상, 색깔 등을 통해서 자기가 의도한 뜻을 나타내려 하는 것을 상징이라고 한다.

<> 12 -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 12지파, 12사도)

<> 붉은 -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 심판(63:2) (1;18) 포도주(23:31)

<> (14:22,24)  이것이() 몸이니라....... 나의 , 언약의 피니라"

예표나 상징의 해석은 성경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해석할 위험이 많으므로 상징적 해석을 때는 매우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 해석을 하기 쉽다

 

6) 신학적 해석

(1) 신앙고백서(웨스트민스트, 벨직, 하이델베르그 ) 교리를 참고한다.

(2) 칼빈주의적 성경해석 등을 참고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는 한꺼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뜻이 점점 확실해지도록 점진적으로 주어졌다. 때문에 성경 66권은 각기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여러 책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책이라 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부분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가 되도록 해석해야 한다. 구절 단어를 해석할 때도 성경 전체의 배경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인의 후손, 아브라함의 , 다윗의 혈통 등에 관한 말씀들은 성경 전체의 신학적 배경 속에서 해석해야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될 있다.

 

3단계 (적용) - 어떻게 적용하는가?

 

1) 해석된 말씀이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를 살핀다.

2)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

3) 효과적인 적용 방법을 찾아 순종한다.

 

 

 

 

 

성경 해석의 원리들      
     

 


         1. 일반적 원리     
     
              성경도 보편적 문화 현상의 하나인     
              인간의 언어(言語)로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모든 문자 기록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다음의 원리가 요청된다.     
     
         1) 객관성     
     
              자신의 선입견(先入見)이나 일부 자료에만 근거한     
              주관적(主觀的) 판단은 응당 신빙성(信憑性)이 없다.     
     
         2) 수용성     
     
              이는 자신의 입장을 먼저 세워 두고     
              그것에만 맞는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의      
              해석(解釋)을 감행(敢行)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客觀的)으로 대상을 해석(解釋)해 보고     
              거기서 얻은 결론에 순복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개방성(開放性)을 의미한다.     
     
         3) 과학성     
     
              그 대상을 해석(解釋)하는 데 있어서      
              이용 가능한 편리한 방법만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최선의 관련 정보를 수집하여 검증하려는     
              열의와, 최선의 판단을 냉철(冷徹)하게 구분해 내는     
              과학적 자세(姿勢)가 요구된다.      
     
         4) 역사성     
                
              해석자의 현실과 해석 대상인 본문 사이에 있는     
              역사적 관련성을 정확히 규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해석(解釋)된 내용의      
              현실 적용 측면과 관계되는 것으로서,      
              소위 올바른 문화이식을 위한 원리이다.     
     
              쉽게 요약(要約)하면 성경의 어떤 내용(內容)은     
              성경 시대에만 국한된 영향력(影響力)을 갖고 있고     
              또 어떤 내용은 전 시대에 걸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바     
              이를 구분해야 한다는 원리(原理)이다.     
     
              그 정신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2. 신학적 원리     
     
              성경은 외형적으로는 고대의 여타 문자 기록과 같다.  

 

   
              그러나 그 내적 본질에 있어서는 유일한,     
              그리고 매우 특수(特殊)한 책이다.     
     
              성경의 본질적 특수성은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계시로 절대 무오의 책이라는     
              신적 속성(神的屬性)에서 기인한다.     
     
              성경은 그와 같은 종류의 책이 없는 유일한 책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경 해석(聖經 解釋)에 고유한 신학적 원리(原理)가      
              올바를 해석의 필수 전제로서 요구(要求)되는 것이다.     
     
              물론 이 전제(前提)는 순환 논법적 사고에서 우러난     
              폐쇄적 합리화의 수단으로서의 비논리적 전제가 아니라,                    
     
              현재까지  판단 가능한 최대의 정보에 대한     
              최선의 비평적(批評적) 결론에 의한 전제이며.     
              또 새로운 연구 결과에 대하여 수용성을 갖고 있는     
              열린 전제임이 이미 성경 비평학 제1항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또한 인간을 경험 영역을 넘어선 분야에 대한     
              연구(硏究)의 출발점(出發點)과 결론부에 있어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단순한 정보 수집에 의거한     
              과학적 전제 또는 결론 이상의 가치 판단적 전제와     
              결론(結論)을 가질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어쨌든 성경의 특수성에 의거하여 볼 때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한 전제로서 요구되는     
              신학적 원리는 다음 3가지로 응축해 볼 수 있다.   

 

  
         1) 계시 의존의 원리      
     
              인간은 어느 한 책, 또는 한 대상을       
              해석(解釋)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어떤 권위있는 자료를 이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와 같은 종류의       
              책이 없는 유일(唯一)한 책(冊)이다.     
     
              66권의 다양한 책 속에 통일된 주제를 담고 있는     
              영감(靈感)받은 계시(啓示)란 오직 성경 뿐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그 근본 저자이신 유일한 책이다.     
              따라서 성경의 일부(一部)를 해석(解釋)함에 있어서,     
     
              해석자는 필연적으로 성경의 여타 부분을      
              전거(典據)할 수 있는 최종적 절대 권위로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성경은 전체가 유기체(有機體)로서      
              구약(舊約)을 해석할 때 예수님과 사도들도      
              이 계시 의존(依存)의 원리를 충실히 사용하였다     
              (마1:22, 2:15, 23. 26:54, 눅22:37, 44. 요3:18,      
              행13:27-41, 17:2, 3. 28:23. 롬1:2, 4:23,      
              9:17, 15:4. 고전15:3, 4. 딤후3:15-17).     
                   
              소위 성경은 성경으로만 풀어야 한다는      
              원칙은 이 원리의 또 다른 표현(表現)이다.       
         
              이 계시 의존의 원리는 해석학적 원칙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신학 분야(神學 分野)의 원칙(原則)이기도 하다.      
     
         2) 구속사적 원리      
     
              성경 66권에는 매우 다양한 기사가 들어 있다.     

 


              또한 성경이 다루고 있는 시대 태초부터      
              종말까지로, 한마디로 무한(無限)하다.       
     
              반면 성경은 이처럼 광범위한 시대에 대한      
              다양(多樣)한 기사(記事)를 싣고 있으나      
              그 근본 목적과 주제는 동일(同一)하다.     
     
              그것은 죄인(罪人)된 인간에게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역사를 통하여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곧 구속사의      
              전개(展開)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聖經)은 겉으로만 본다면      
              내용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매우 다양(多樣)하지만,      
              사실 내면적으로는 완벽한 통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을 해석(解釋)할 때      
              그 근본 목적(目的)과 주제를 파악함으로써      
              가장 쉽게, 그리고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은 성경의 본래 목적이요 주제(主題)인 구속사의     
              관점(觀點)에서 해석하여야만 한다.     
     
              한편 성경의 각 부분(各 部分)은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 전개의 각 장면,     
              또는 구속사와 관련된 한 원리의 단편적 묘사이다.     
     
              이런 부분(部分)이 함께 모여야만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 가     
              어떻게 전(全) 역사를 통하여 진행되어 왔는지     
              그 총체적 경위와 종합적 원리를 보여 줄 수 있다.     
     
              또한 성경(聖經)의 모든 부분(部分)은      
              어느 한 날 동시에 주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구속사 전개를 증언 하면서      
              그 자체가 구속사 전개(展開)에 따라      
              주요(主要) 시대 마다 계속 주어져 오다가      
              마침내 성경 한 권으로 완성(完成)된 것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어느 한 주제의 성경 말씀을 모아 보면     
              거기에 담긴 계시의 내용이 점진적(漸進的)으로 발전되어      
              나온 것임을 확인(確認)할 수 있다.     
     
              이를 소위 성경 또는 계시의 역사적 점진성이라 한다.     
              그러므로 성경 내용은 결코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해석(解釋) 할 수가 없다.                    
     
              또한 그렇게 해석(解釋) 한다고 해도      
              성경 전체(全體)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왜곡(歪曲)된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부분을       
              올바로 해석(解釋)하고자 한다면     
              먼저 동일한 계통의 말씀을 함께 모아       
              그 점진적 과정을 추적(追跡) 해야 하며      
              성경의 여타(餘他) 다른 계통의 말씀과도      
              유기적으로 연결(連結)시켜 보아야만 한다.     
     
              한마디로 어느 한 부분을 해석(解釋)하여도      
              전(全) 성경 자체에 들어 있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성경 전체와 연결하여 종합적이고도 일관(一貫)되게      
              해석(解釋)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3) 조명의 원리      
     
              조명(illumination)이란 문자(文字) 그대로      
              성령께서 죄로 어두워진 우리의 심령을      
              밝게 비추어 주심을 가리킨다.     
     
              이 조명이 없다면 인간은 성경에 대한      
              지식(知識)을 알 수는 있어도 거기에 담긴      
              진리 자체(自體)를 깨달을 수는 없다.     
     
              아무리 유능한 신학자라도 성령의 조명을 통한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연구(硏究)하지 않는 한,      
              경건한 신앙(信仰)으로 성령의 조명하심을 얻는       
              무식한 범부(凡夫)만큼도 성경의 실체(實體)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66권이 인간 저자를 감동시키사     
              그 초자연적 진리를 인간 언어로 기록케 하신 분이     
              바로 성령(聖靈)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그 놀라운 진리(眞理)에 대한 완전(完全)한 깨달음도      
              성령의 조명(照明)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의 명백한 선언인 동시에      
              성도(聖徒) 만인의 경험(經驗)이기도 하다.     
     
              소위 성경은 믿는 마음으로 해석하여야만      
              참 의미(意味)를 발견 한다는, 얼핏 듣기에는      
              비과학적 또는 순환 논리적 모순처럼 들리는      
              이 명제(命題)가 기실 진리인 이유(理由)는      
              성경의 초자연적 특수성(特殊性)에 있는 것이다     
              (시119:98-100, 사50:4, 마7:7, 고전2:14, 벧전2:2).     
     
              이와 관련하여 성경이 성경을 깨닫기 위한      
              바람직한 마음 자세로 규정(規定)한 내용을       
              함께 모아 보는 것도 좋은 시사를 줄 것이다.      
     
              예배하는 마음(출19:14, 15. 행10:24),     
              묵상하는 마음(시1:2), 온유한 마음(시25:9),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마음(시25:12),     
              순종(順從)하는 마음(시119:98-100),     
              온순한 마음(사50:4), 구하는 마음(마7:7),     
              겸손한 마음(마11:25), 성령의 인도를      
              받는 마음(요16:14-16), 새 마음(고전2:14),      
              갈급한 마음(벧전2:2).     
    

성경의 자명성과 해석학의 필요성   

 

  
     
         1. 성경의 자명성과 해석의 가능성     
     
              성경은 근본적으로 성경 시대의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일상(日常) 언어로 기록된 것이다.     
     
              또 성경 기록(記錄)이 각각 다른       
              문학 양식(樣式)을 취하고 있을 때에도     
              성경 독자는 충분히 그 양식의 유형과      
              관습(慣習)을 이해할 수 있다.     
     
              괴이하고 작위(作爲)스런 암호문으로      
              되어 있는 성경 구절(聖經 句節)은 없다.     
     
              또한 성경(聖經)의 모든 문장(紋章)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누구라도 성령의 조명하심과      
              열린 심정(心情)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 본문을 해석(解釋)할 수 있다.     
                       
              또 성경의 기본 목적, 즉 인간 구원을 위한     
              계시라는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한 최종 단계로서     
              계시의 수신자인 독자가 해석하고 묵상(默想)하여      
              말씀을 받아 들이는 과정은 전문 신학자만이 아닌      
              성도(vAdq) 만인의 특권이고 의무이기도 하다.     
     
              특히 이것은 성경을 고대 교부(古代 敎父)나       
              사도들의 저서, 고대 선조, 교황의 칙령 등의     
              여러 권위 중에서 상대적(相對的)으로 으뜸인     
              소위 신앙의 제일 기준으로 보는 카톨릭과 달리,      
              오직 성령만을 절대 유일의 신앙 기준으로 보는      
              정통 개신교에 있어서 그야말로 결정적 신념이다.     
     
         2. 성경 해석의 필요성     
     
              한편 일반적인 성경의 자명성(自明性)은      
              고도의 엄정한 해석학 연구의 필요성을      
              결코 배제(排除)하지 않는다.     
     
              먼저 우리는 구원의 확신과 생활의 기본 원리와 교훈은     
              일반적 성경 해석을 통하여 충분(充分)히 받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성경 전체를 완전(完全)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現實的)으로는 성경의 어떤 부분은 현재까지도      
              그 어떤 학자도 완전히 권위있게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고전15:29, 벧전3:19).     
     
              심지어 성경 자체(聖經 自體)도 성경 안에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될 구절이 있음을 경고(警告)하고 있다     
              (신17:19, 대하17:9, 사2:3, 히6:1-3, 벧후3:16).     
     
              또한 해석된 성경 본문(聖經 本文)의 교훈을       
              현실 생활(現實 生活)에 적용시키는 데에는      
              건전한 해석학적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誇張)된 것이긴 하지만      
              족장(族長) 시대의 다처제(多妻制),     
              몇몇 왕(王)들의 왕권신수(王權神授),     
     
              특별한 경우 하나님의 저주로 내려지는 질병,      
              농업 경제 체제 하에서의 금융법(金融法) 금지       
              등의 해석(解釋), 적용(適用)하면서 거가 담긴      
              보편적 원칙이 아닌 문자적 내용(文字的 內容)을      
              그대로 전 시대에 영원히 적용될 교훈(敎訓)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해석학(解釋學)을 연구하면      
              그 허구성(虛構性)이 쉽게 발견될 수 있다.      
     
              한편 이상은 모두 특수한 경우들이고      
              이상을 포함한 모든 일반적인 경우에도     
              해석학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필요하다.      
     
         1) 목적론적 필요성     
     
              본질상 초자연적 구원 원리를 다루는      
              성경(聖經)을 해석(解釋)함에 있어서는      
              해석학적 전제(前提)가 필연적이다.     
     
              어떤 전제(前提)를 갖느냐에 따라      
              해석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실제로 다양한 신학 사조상(思潮上)의 차이는      
              결국 성경을 보는 시각 또는 성경 해석의 전제의     
              차이에서 기인(起因)된다.     
     
              따라서 냉철한 비평 과정(批評 過程)을 거친,     
              그리고 수집(收集) 가능한 최대의 정보에 대한      
              최선의 판단에서 나온 해석학의 전제를 수립하고      
              그에 근거한 해석학 체제(體制)를 개발하는 것이      
              올바른 성경 해석(解釋)의 결정적 요소이다.     
     
              이상은 본문해석에 관련된 사항이고,     
              본문의 내용을 현실 생활에 연결시키는      
              적용의 측면에서는 더욱더 객관적이고      
              건전한 기준(基準)이 요구된다.     
     
              사실 본문 자체의 해석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어도      
              그것을 현실 생활(現實生活)에 적용시키는 과정(過程)에서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고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다양(多樣)한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그 안에서는      
              그 적용을 상대성을 인정(人情)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을 넘으면 객관적 본문 해석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무리한 적용으로 규정할 수 있는,     
              기본적(基本的) 범위의 설정(設定)이 요구된다.     
     
              이제 이상을 정리(整理)해 보면      
              건전한 본문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객관적인 적용을 보장(保障)할 수 있는       
              해석 체계(解釋 體系)의 개발을 위하여      
              해석학은 1차적으로 요청 된다는 것이다.     
     
         2) 방법론적 필요성     
     
              한 사건 또 그 사실에 대한 기록의 해석은     
              사실 어린 시절 감각 기관이 활동할 때부터,     
              특히 언어 행위의 시작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즉 해석은 인간의 평생 동안의 일상 생활인 것이다.     
              그리하여 성년이 된 정상인은 그 사회에 통용되는       
              해석학적 구조와 원리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다.     
     
              너무도 자연스런 나머지 해석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이 어떤 해석 원리(解釋 原理)를 수용하는지      
              분간 못할 정도(程度)이다.      
     
              그러나 성경처럼 수 천년의 시대와      
              수 만리의 지리적 상황을 격(隔)한 기록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체계화된      
              방법이 요구(要求)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성경 해석학은      
              주로 다음 측면의 해석 방법론으로      
              개발, 세련(洗練)시키고자 노력한다.     
     
          1. 원어와 해석자의 모국어 차이에 대한 이해     

 


          2. 성경시대의 문화와 해석자 문화의 차이 이해   

 

  
          3. 성경 사건의 공간적 배경인 성경 지리의 이해   

 

  
          4. 성경 시대의 시간적 배경인 성경 역사의 이해     
     
              주로 이상의 관점에서 정보들을 체계화하면     
              정확(正確)한 해석을 할 수 있음은 물론(勿論)      
              불문가지(不問可知)인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 해석(聖經 解釋)은 바로 이런        
              여러 측면의 정보들을 한 구조 안에 체계화 하여      
              보다 효율적(效率的)인 해석 방법을 수행(隨行)하는      
              더 좋은 방법을 개발하고자 시도(試圖)한다.     
     
         3. 해석학적 훈련의 필요성과 한계의 인정     
     
              주지하시다시피 해석은 성경 본문의 의미                   
              또는 성경이 우리 현실에 말하고 있는 것을      
              추적(追跡)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過程)이고,     
     
              해석학은 그 과정에 대한 과학적 연구이다.     
              한편 성도 만인(萬人)은 그 어떤 형태로든     
              성경 해석(聖經 解釋)을 일상 생활 중에      
              수행하고 있으며 또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다 성경 해석 학자(學者)는 아니더라도      
              성경 해석자이기는 하므로 성경 해석학적 원리에 대한 훈련은      
              모든 성도들에게 요청(要請)된다 하겠다.      
     
              한편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사항이 있다.     
              곧 해석에 있어서의 한계(限界)의 인정이다.     
     
              성경 자체는 절대 무오(絶對 無誤)하나     
              그 성경(聖經)에 대한 인간의 해석(解釋)은      
              절대(絶對) 완전치 못하다.     
     
              이는 유한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범사에      
              절대 완전을 기할 수 없다는 일반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며, 동시에 성경 내용 자체가     
              인간의 영역(領域)을 넘어선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사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인간의 성경 해석이 완전할 수 있다면      
              그래서 한 인간이 성경을 완전히 해석해 놓으면      
              그 뒤 사람은 전혀 다시 해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피조물(被造物)인 인간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그 오묘하신 섭리를      
              다 깨달을 수 있겠는가?     
     
              전반적(全般的)으로도 이렇거니와,     
              성경 내용 중 일부는 특히 그 내용이 너무 오묘하며     
              성경 자체 내에 충분한 관련 정보(情報)가 없기 때문에        
              확실(確實)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구절(句節)도 있고,     
     
              그 자체가 어려운 내용이 아닌 역사(歷史) 기록이라 해도      
              현재까지는 거가에 관한 충분한 외적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구절도 있다.      
     
              성경 말씀이 밝히 보여 주신 내용의 해석에서도 이렇거니와      
              성경은 그 목적상(目的상) 계시 내용의 범위(範圍)에 있어서도      
              인간의 구원에 관한 필수(必須) 사항만을 계시해 주고 있다.     
     
              따라서 구원 문제(問題)와 관련 있기는 하나      
              성경 안에 명백(明白)히 주신 내용 이외(以外)의       
              사실을 알고자 할 때는 여타 관련 구절을 보아      
              추론(推論)해 볼 수 밖에 없다.     
     
              그 추론 과정에는 건전한 보수 신학 안에서도      
              많은 견해(見解)의 차이(差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성경의 모든 기사를 종합하여     
              체계적 교리(體系的 敎理)를 세우고자 할 때도      
              그것은 성경의 관련 기사(記事)를 함께 모아 내린      
              최선(最善)의 결론일 뿐이며 지영적 부분에 가서      
              이상의 이유로 미세한 견해 차이(見解 差異)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더욱 명심해야 한다.     
     
              한편 본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할 때에도      
              각 해석자들의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優先的)인지      
              의견의 차이(差異)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본문 해석에 있어서든 적용에 있어서든       
              근본적으로 틀린 해석이야 물론 수용할 수 없으나      
              일정 범위까지는 자신의 해석도 상대적(相對的)으로       
              여러 견해의 하나일 뿐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한계의 인정은 매우 중요하며      
              또한 성경적(聖經적) 이다.     
     
              그러나 물론 해석에 한계가 있다고 해서       
              성경 말씀이 모두 난해하고 상대적이어서     
              객관적이고도 절대적으로 확실(確實)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듯은 아니다.     
     
              성경 말씀 자체가 모두 당 시대 평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평상(平常) 언어로 쓰여졌고,      
              또 현재도 언어(言語)를 이해하는 모든 사람은      
              각 나라말로 성경 말씀을 읽고 구원에 관련된      
              중요(重要)한 모든 근본 진리 만큼은 객관적으로      
              명쾌하게 해석하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     
                  
              성경은 전반적(全般的)으로 그 자체가 이미      
              만인에게 쉽고도 충분히 이해(理解)될 수 있는      
              자명성과 아울러 객관적, 절대적 권위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성경 해석의 기본 임무는       
              이런 성경 해석의 가능성(技能性)과      
              한계성(限界性)을 동시에 고려하여,     
     
              먼저는 이단(異端) 또는 비기독교적 해석과 뚜렷이      
              구분되는 정통 개혁주의 해석학의 체계 수립(樹立)을      
              통하여 정(正)과 오(誤)가 근본적(根本的)으로 나뉘는      
              절대적 범위를 확정(確定) 짓는데 있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는 상대성을 인정하면서     
              최선의 결론을 유도해 낼 수 있는 객관적 원리의      
              체계화를 계속(繼續) 시도하는데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해석에 제한(制限)을 가하지 않고      
              너무 경솔하여 일관성이 없는 무원칙 해석을      
              감행함으로써 이단적 해석조차 수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해석(解釋)의 원칙을 너무 제한(制限)하여      
              사소한 해설상의 이견조차 적대시(敵對視)하는     
              오류가 주변(周邊)에서 많이 발견되는 사실은,     
              해석(解釋)을 원활(圓滑)히 수행(隨行)하면서도      
              그 한계의 설정이 매우 필요함을 보여 준다.     
     

 

 

해석-본문 해석과 적용의 유기적 과정                   
     
              앞에서도 잠시 언급 했듯이 해석이란      
              상당히 광범위한 과정을 지칭한 용어이다.     
     
              이를 크게 나누어 보면 본문 말씀      
              자체(自體)의 의미 해석(interpretation)과(解釋學)     
              그 해석된 내용(內容)을 학자 자신의 현실 생활에      
              대비시켜 보는 적용(application), 즉 본문 해석과      
              적용(適用)의 2단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     
                   
              적용은 본문 해석의 결론적 연장이기도 하고      
              때로는 본문 해석의 동기(動機)가 되기도 한다.     
     
              또한 본문 해석의 기초단계로 요구되는      
              제반 관련 사실에 대한 여러 정보(情報) 수집들,     
              곧 기록 당시(當時)의 상황, 문맥 파악, 단어 분석 등은     
              결국 현실 적용을 위한 객관적 근거로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만큼 양자(兩者)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원칙적(原則的)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해당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이 말하고자 의도하신      
              본래 의도(意圖)는 단 하나 밖에 없다.     
     
              본문 "해석"(解釋)은 이 본래의      
              의도를 밝혀 내려는 작업이다.     
     
              반면 "적용"에는 그 성경 본문의 원래의 뜻이       
              해석자(解釋者)의 현실 생활에 줄 수 있는      
              지침(指針)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때로는 성경 본문(聖經 本文)의 상황과      
              현실 상황 자체의 근본적(根本的) 차이점으로 인해      
              현실 생활에 아무런 구속력을 발휘할 수 없는 본문도 있고,     
              반대로 여러 가지 다양한 적용이 가능한 본문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정확한 적용은 본문 해석시 요구(要求)되는      
              본문 자체(本文 自體)의 상황에 대한 이해 이상의 것,      
              즉 해석자 자신의 시대에 대한 정확한 상황이해도 요구된다.     
     
              따라서 본문 해석(解釋)과 적용은      
              서로 연장선상(延長線上)에 있기는 하지만     
              뚜렷이 구분(區分)해 볼 필요(必要)도 있다.      
     
              실제로 양자의 본질을 곡해하여      
              본문의 문자적(文字的) 해석(解釋)을       
              성경 전체의 문맥(文脈)과 상관 없이      
              그대로 현실 생활에 적용 시킨다든가,     
     
              냉철한 현실 상황에 대한 인식 없이       
              자신의 입장(臨場)을 먼저 세워 두고       
              자신에게 유리한 성경 본문만 열거하는      
              행위가 빚어지는 경우(境遇)가 많다.     
     
              다라서 본문 해석과 적용의 관계를     
              단적으로 규정하자면 다음과 같다.      
     
              "진정한 본문 해석은 적용을 통하여      
              현실 생활에 적용(適用)되어야 하며     
     
              정당한 적용은 성경 전체의 지지를 받는      
              올바른 본문 해석과 정확한 현실 인식의      
              결과(結果) 이어야 한다."     
     
              사실 본문 자체의 뜻은 불변(不變)하는 것이다.   

 

  
              그것의 현실 적용은 현실 상황 자체가 끝없이 변하듯이     
              끝없이 새로운 물음과 새로운 측면의 이해(理解)가 요구된다.      
     
              그리하여 적용(適用)을 위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본문 의미 해석, 즉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인간의 궁극적(窮極的),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답변과 아울러     
              영원히 인간 현실에 적용(適用)될 수 있는     
              실천 원리를 계속 제공해 준다는 의미에서     
              살아 있는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본문 해석(解釋)과 적용(適用)의 구분은      
              말씀 해석 과정의 보다 섬세한 이해를 위한 것이고      
              통칭(通稱)해서 해석이라 하면 본문 해석(解釋)과      
              적용을 동시에 가리킨다.     
     
              그만큼 양자는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는 양자의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하면       
              성경 해석의 관행에서 일어나는 많은 오류(誤謬)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구분해 본 것이다.  

 

 

 

   

 

 

 

 

 

 

 

 

 

성경의 바른 해석을 위한 성도의 자세 

 


 
              본문 말씀 = 벧후3:16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읽는 모든 자들이 말씀을 다   
              명백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열심히 그리고 집중해서 줄을  
              그어 가며 읽는다고 해서 모든 부분이   
              완전히 해석되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이 말씀 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뜻 
              즉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구원의 진리는   
              애매(曖昧)하지 않고 명백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경은 인간의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임을 전제(前提)해야 합니다. 
 
              전 66권의 신, 구약 성경은 1.500여 년에 걸쳐  
              40명 이상의 영감(靈感)받은 사람들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함부로 읽을 수 없고  
              억지로 해석(解釋)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의 말씀을 억지(臆志)로  
              풀려고 하다가 실족한 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처럼 행하지  
              않기를 경계(警戒)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계는 성경을 읽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되 신중하고 바르게  
              해석(解釋)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교사나  
              주석책(註釋冊)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말씀을 대하는 자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특히 엄청난 양의 신학 서적들이 공급되고 
              수많은 "성경 공부" 모임이 생겨나고 있는 
              이 때에 성경을 해석하는 성도의 바른 자세를 
              점검하는 일은 시급한 과제(課題)입니다. 
 
              이제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데  
              전제(前提)되어야 할 바른 자세에 대해  
              3 가지로 생각해 봅시다. 
 
       
  1.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本文)에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警告)합니다. 
 
              여기서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베드로는 여기서 교육(敎育)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적, 도덕적으로 바른 감각이 없이 
              불안정(不安定)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또는 믿음이 굳게 서지 못한 채 상황에 따라   
              요동(搖動)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자신들의 영적(靈的)인 처지를   
              정직(正直)하게 돌아 보지 못한 채 말씀을  
              함부로 해석하려고 덤벼 들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그 말씀을 해석하는 자의 신앙 인격(人格)과   
              믿음의 정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가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경외하고(잠1:7) 
              그 뜻에 자신을 순종시키려는 자가 되지 못한 채  
              말씀을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범죄 행위(犯罪 行爲)입니다. 
 
              그것은 자신(自身) 뿐 아니라 그 해석을  
              듣는 자들 까지도 실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앙(信仰)이 없이는  
              바른 해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바른 인격으로  
              서는 것을 나란히 놓고 있습니다(딤후2:1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理解)하고자 할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과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깨닫기에 합당케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2. 억지로 풀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억지(臆志)로 푼다"는 것은  
              말씀을 고문대위에 올려 놓고 "쥐어 짠다"는  
              문자적(文字的)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전히 감추어져 있거나  
              다른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자들은 말씀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억지로 해석하려고 애를 씁니다.  
 
              특히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자들은  
              이것을 경계(警戒)해야 합니다. 
 
              그들은 때로는 공부에 참여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공명심(功名心)이나 자존심을 앞세워  
              억지로 해석하려는 유혹(誘或)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억지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混雜) 하게 만들 뿐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當時)에도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고후2:17, 4:2). 
 
              그리고 그러한 자들 가운데서              
              이단적인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확실하게 깨달아지지 않는 말씀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까요? 
 
         3.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각각에는 그 짝이 있다고 
              성경은 증거(證據)합니다(사34:16). 
 
              따라서 말씀은 말씀으로 풀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 아무리 연구해도 도무지 그 뜻이  
              뚜렷하게 밝혀 지지 않는 말씀도 만나게 됩니다. 
 
              그 때는 성령의 조명(照明)하심을 의지하며  
              기도(祈禱)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그대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말씀 밖의 다른 지식이나 상식적인 경험으로  
              억지(臆志)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고전4:6). 
 
              왜냐하면 우리는 말씀을 단지 해석하고  
              평가(評價)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順從)하기 위해서 읽고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이 우리 위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며  
              우리를 지배하고 변화(變化) 시키는  
              날카로운 힘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히4:12). 
 
              말씀 앞에 이렇게 순종(順從)하지 않을 채  
              자신들의 경험적인 전제를 말씀 위에 두고  
              해석(解釋)한 결과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혼잡(混雜)해져 있습니다.  
 
              이점에서 종교 개혁자(宗敎 改革者)이며  
              훌륭한 성경의 해석자인 "칼빈"이 말한 바 
              "말씀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서는 곳에 선다"는 
              명언은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해석하려고 성급하게 서둘기 전에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姿勢)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그 계시의 말씀이 풍성하고   
              그 말씀에 대한 관심이 왕성(旺盛)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축복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성도들이 바른 자세없이  
              말씀에 대한 관심(觀心)만 늘어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아니 자칫하면 심각한 위험을 낳을 수도있습니다. 

 


              성경 공부용 성경 책도, 신학 서적들도, 또 주석들도  
              그 종류(種類)와 양이 엄청나게 많은 이때에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말씀을 읽고 이해(理解)하려는   
              우리들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대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펴야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뜻을 자기욕심대로 억지로 풀지 말고  
              그 순수(純粹)한 말씀 앞에 순종하려는 자세(姿勢)로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자세에서 깨달아진 주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 참 능력(能力)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경 해석(聖經 解釋)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짐으로 이러한 귀한 깨달음과   
              말씀의 능력(能力)을 얻는 하나님의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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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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