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신앙

[스크랩] 은혜파(恩惠派), 진리파(眞理派)(2)

수호천사1 2015. 1. 18. 01:22

은혜파(恩惠派), 진리파(眞理派) (2)

우리 주님의 본성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신데 주님의 제자된 성도들은 은혜파와 진리파가 싸운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리파와 진리파가 싸운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은혜가 충만하면 쉽게 진리를 버리고,  반면 진리를 지키기 위한다며 은혜를 포기하는 일은 더욱 식은 죽먹듯 합니다.

자기 종아리를 때린 스승님

옛날에 제자를 끔찍이 사랑하는 스승님이 계셨습니다.
사랑이 많은 스승님은 제자들이 잘못해도 좋은 말로 타이르기만 하지 체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린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무시하고 말과 행동이 점점 빗나갔습니다.
이를 가슴 아프게 생각한 스승님은 회초리를 한 다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가르쳐도 너희가 바른 언행을 하지 않는 것은 너희 잘못이 아니라 스승인 내가 너희를 잘못 가르친 탓이다. 그래서 오늘은 스승인 내가 종아리를 맞아야 하겠다.”
라고 말씀하시고 종아리를 걷고 매를 들어 자기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때리던 매가 부러지면 또 다른 매를 가지고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종아리에는 피멍이 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어린 제자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스승님 우리가 잘못 했습니다. 다시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빌었습니다. 

그래도 스승님은 “이런 못된 스승은 이 정도의 벌로는 부족하다.”라고 말씀하시며 계속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어린 제자들이 통곡하면서 스승님을 붙들고 매달리며
“스승님 이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스승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매질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스승님과 어린 제자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통곡을 했습니다.
그 후로는 제자들이 스승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가 바로 은혜와 진리를 바로 가르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 은혜와 진리

우리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성경)은 사랑이 한량없으신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에게 그 끔찍한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실 말씀 한 마디로 “내가 이르노니 모든 죄인들은 구원을 받을 지어다.”
라고 선포하시기만 하면 그대로 될 터인데, 왜 죄라고는 전혀 없으신 착한 외아들에게 그 참혹한 십자가를 지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사랑(은혜)과 공의(진리)로 다스릴 것을 확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진리 말씀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이 한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사랑의 하나님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다 멸망한다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으로서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구원해주면 하나님의 공의(公義)가 용납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죄의 삯으로 영 죽을 영혼을 살리시는 데는 하나님의 권능만으로는 안 되다 보니 죄 값인 죽음의 대속물(代贖物)이 반드시 필요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다시피 구약시대의 속죄의 제사는 짐승을 대속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표에 불과할 뿐, 인간의 고귀한 생명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으로도 대속할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미6:7)
그 것은 인간의 생명은 수천 마리의 짐승의 생명보다 더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인간의 생명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자기 죄 값으로 죽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할 죄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롬3:10)
오로지 죄 없는 분의 생명만이 인간의 대속물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려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목숨만이 가능하기에 이가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적 사건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은혜가 충만하면 진리를 버립니다. 
반면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은혜를 포기합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은혜와 진리가 공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혜)과 공의(진리) 둘 다 만족시키는 인간 구원의 방법은 오로지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곧 은혜와 진리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와 진리 이 두 가지를 조화하려면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아직도 은혜가 충만하고 진리도 수준이 높습니다. 문제는 너 나 할 것 없이 십자가를 질 생각이 도무지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살후3:14-15)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명한 이 말씀이 바로 은혜와 진리 두 가지 조화를 이루는 방법임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http://cafe.daum.net/y9144
http://y9144.com.ne.kr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예종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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