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스크랩] 히브리어의 비밀 (57)

수호천사1 2014. 12. 12. 01:20


ק   코프 

 

 


5. 코프(ק)와 절기, 그리고 7

 
하나님 현현의 가장 분명한 표현은 자연의 주기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코프(קוף)라는 이름을
하코프 הקפה (주기/순환하다)와 연결시킵니다.

자연의 주기 - 계절의 변화, 달의 매월 갱신,
28년 태양주기 등은 모두 인간에게 우주의 목적과 패턴을 가르칩니다.
아브라함은 매일 떠오르고 지는 태양과 달을 보며
세상은 창조주에 의해 움직여 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일주일인 칠일의 절정인 샤밧, 7년 주기의 절정인 세미타(안식년),
요벨(희년)로 이어지는 일곱 안식년 주기는
모두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계속해서 그것을 지켜 보고 계시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코프(ק)'란 글자는 절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2절에서 '세말'은 'turn of the year’인데
이 표현이 히브리어로는 '코프(ק)'의 근거가 되는 '테쿠파(תקופה)'입니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תקופה 테쿠파)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출 34:22

 



테쿠파(תקופה)는 절기의 매년의 순환을 의미합니다. 

절기란 말은 히브리어로 모에드(מועד)이며
정하여진 때(appointed time)를 말합니다.
절기는 정해진 때에 있는 거룩한 모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절기는 7의 순환에 근거합니다.   

7은 ’자인(ז)’의 숫자값이고  

'코프(ק)'는 '자인(ז)'과 '카프(כ)'로 쓰여집니다.
'카프(כ)'는 어떤 모습을 따라서 구부러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코프(ק)'는 '7(ז - 자인)을 따라서 구부러진 것'을 의미하고
'카프(כ)’는 문법적으로도  '~와 같이', '~처럼'으로 사용됩니다.
'자인(ז)'과 같이.. '7(ז - 자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인(ז)'은 못박힌 사람(ו - 바브)이 왕관을 쓰고 있는 그림이고
또 '성령의 검'을 상징하기 때문에 '말씀'이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7을 따라서 구부러진 것'은 '예슈아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기는 모두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무교절  : 누룩 없는 빵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입니다.
유월절  : 어린 양 예수님입니다.
초실절  : 부활의 첫 열매 예수님입니다.
오순절  : 희년,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곶간에 들이는 것, 두덩이 떡(유대인과 이방인의 교회)
진리의 영 성령님, 예수님의 영입니다.
나팔절  : 나팔을 불어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는 것
십자가와 진리의 나팔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되게 하시는 것
예수님입니다.
대속죄일 :  두 마리 염소, 이스라엘의 죄를 대속,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입니다.
초막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입니다.

7순환의 기초가 되는 것은 창조의 7일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에 '거룩(קדש 카도쉬)'이란 단어가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2장 3절 인데 창세기 전체에서 단 한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קד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3

안식(샤밧)거룩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완성하신 시간, 영생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아버지께서 이미 완성하신 그 뜻 가운데
그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에서는 그들이 싸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도록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에 들어가는 것(히 3,4장)이고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에  
원무를 그리며 춤추는 행렬인 '하카폿(הקפות)'은
하나님의 거룩함의 표현하는 의식입니다.
특별히 순환의 일곱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하카폿(הקפות)'은 공동체 전체가 고난의 비참함을 겪는 시기에
거룩한 재판관께 법을 어긴 것에 대해서 자비를 구하는 의식입니다.
하카폿(הקפות)은 우리와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모든 장벽을 해체하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상 숭배의 가나안의 요새에서 여리고의 포위 공격에서,
이스라엘의 전사들이 도시의 벽을 돌 동안 제사장들은 쇼파르를 불었습니다.
6일동안 매일의 한번 하카파(한바퀴 도는 것) 후에, 안식일의 일곱 하카폿(하카파의 복수형),
여리고의 벽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땅 아래로 무너져 내렸습니다.(수 6장)

어떤 학자들은 여리고의 기적초막절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배자들이 레위기 23:40의 명령에서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라는 것을 지켜  
성전 제단을 돌 때 하는 것처럼.
6일동안 하루에 한 번씩 도는 것과 초막절의 일곱 번째 날의 일곱 번 도는
호산나 라바와 여리고의 일곱 날은 유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호산나 라바 : '큰 구원의 날' 이란 뜻으로 초막절 마지막 날인 일곱 번째 날,
시편 118편을 읽으면서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침.
요한복음 7장에 예수님께서 생수의 강을 말씀하신 명절 끝날은 초막절의 마지막 날.
느혜미야와 학사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돌아와 거룩한 성회에서 말씀을 낭독한 날은
바로 이 초막절. 율법을 낭독하고 백성들이 울 때 여호와의 성일이니 울지 말라고 한 것은
초막절에는 이레동안 기뻐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느 8:10,18



  

오늘날 성전은 존재하지 않지만
제단을 도는 이 순환의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손에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손에 들고 초막절에 모이는 사람들은
마치 제단이 있는 것처럼 비마(회당에 토라를 읽는 플랫폼/강단)에
높이 들려진 토라 스크롤 주위를 도는 행진을 하면서
호쉬아나(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칩니다.

초막절 명절을 마치고 8일째 되는 날
심카토라(토라의 기쁨)로 불리는 이 날은  
토라 통독 사이클이 끝나는 날로 축제의 날이면서  
또 하나의 통독 싸이클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 날에는 손에 토라 스크롤을 들고 행진하는 심카토라에서
공식적으로 연간 토라 읽기 순환의 마침을 기뻐하며  
토라의 마침(목적/완성)이신 메시아가 오기를 기대하며 기념합니다.  
토라의 마지막 장(신 33:1-34:12)을 읽은 후에는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삼하 10:12)” 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곧 바로 토라의 첫 번째 구절(창 1:1-2:3 - 창조 7일)을 읽는 것으로
새로운 사이클을 다시 시작합니다.
(추가로 우주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절기의 중요성에 대해 학습함).

유대인들은 아직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창조의 7순환이 궁국적으로 계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 '마침' 이라는 헬라어는 텔로스 입니다.
텔로스는 끝(end)이라기 보다 완성, (지향하는) 목적/목표, 최종종착지를 의미합니다.



인간 역사의 시작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시작된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히브리적 관점은 끝이 완성이 아니라
이미 완성에서부터 시작합니다(사46:10).
뜻이 하늘에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완성하신 그 시간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완성입니다.
그 시간속으로 들어가면 온전하여 집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영생을 가르쳐 주십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5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죽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때
그 때에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그것은 언젠가 완성될 먼 미래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다윗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히 4:8-10).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란 말은,
바로 오늘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하여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로
침노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2,18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을 입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에덴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만물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 11:1-10

출처..j..버드나무아래..글쓴이..김동훈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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