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종 목사의 평신도신학(116)] 교회의 5대 사명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고 난 후에 구원사역을 교회에 맡겨 주었다. 이론적으로는 교회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교회는 노아시대의 방주처럼 주님의 손이 되어 구원사역을 주로 이루어간다. 물론 교회의 사명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교회든지 크게 5가지의 사명을 다 가지고 있다.
첫째는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식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영광을 찬양하며 기도하게 된다. 예배에는 말씀 기도 찬송 헌금 교제 축도가 있다.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에 회의 때도 예배로 시작하고 하루의 일과도 예배로 시작한다. 예배는 교회의 사명 중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건물)를 예배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이 교육은 주님께서도 직접 실시하였고 또 교회에 위임하였다. 지상명령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고 하셨다.
셋째는 전도이다.
우리가 흔히 간단하게 국내 전도와 국외 전도(선교)로 나누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전도보다 더 폭이 넓은 것이 선교이다. 왜냐하면 전도가 복음화라고 하면 선교는 복음화 더하기 봉사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선교는 돈 많은 교회만의 사명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건물이 있기 전에도,또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되기 전에도 선교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말하자면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다.
넷째는 구제이다.
구제는 간접 전도도 되지만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관계없이 교회는 계속해서 구제를 해야 한다. 집사직이 생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구제를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교제이다.
로마의 카타콤에 가보면 아직도 많은 해골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비밀리에 믿기만 하였다면 구태여 모이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생명의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계속해서 교제를 하였다.
이 코이노니아(Koinonia)는 기독교의 본질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큰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교제가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교회는 이 교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은 모임이 많아 교제를 해야만 봉사와 구제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고 난 후에 구원사역을 교회에 맡겨 주었다. 이론적으로는 교회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교회는 노아시대의 방주처럼 주님의 손이 되어 구원사역을 주로 이루어간다. 물론 교회의 사명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교회든지 크게 5가지의 사명을 다 가지고 있다.
첫째는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식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영광을 찬양하며 기도하게 된다. 예배에는 말씀 기도 찬송 헌금 교제 축도가 있다.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에 회의 때도 예배로 시작하고 하루의 일과도 예배로 시작한다. 예배는 교회의 사명 중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건물)를 예배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이 교육은 주님께서도 직접 실시하였고 또 교회에 위임하였다. 지상명령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고 하셨다.
셋째는 전도이다.
우리가 흔히 간단하게 국내 전도와 국외 전도(선교)로 나누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전도보다 더 폭이 넓은 것이 선교이다. 왜냐하면 전도가 복음화라고 하면 선교는 복음화 더하기 봉사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선교는 돈 많은 교회만의 사명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건물이 있기 전에도,또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되기 전에도 선교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말하자면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다.
넷째는 구제이다.
구제는 간접 전도도 되지만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관계없이 교회는 계속해서 구제를 해야 한다. 집사직이 생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구제를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교제이다.
로마의 카타콤에 가보면 아직도 많은 해골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비밀리에 믿기만 하였다면 구태여 모이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생명의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계속해서 교제를 하였다.
이 코이노니아(Koinonia)는 기독교의 본질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큰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교제가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교회는 이 교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은 모임이 많아 교제를 해야만 봉사와 구제도 할 수 있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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