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11)
▲조덕영 박사. |
가나안 땅에 정착한, 함의 막내아들 가나안(Canaan)
가나안의 후손들
가나안은 함의 마지막 넷째 아들이었다. 가나안은 노아의 16 후손들 가운데 셈의 아들 욕단 다음으로 많은 자녀의 이름을 성경에 남기고 있다. 함의 아들 형제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11명의 자녀를 남겼다. 가나안은 시돈(Sidon)과 헷(Hittites)을 낳고 또 여부스족(Jebusites), 아모리족(Amorites), 기르가스족(Girgasites), 히위족(Hivites), 알가족(Arkites), 신족(Sinites), 아르왓족(Arvadites), 스말족(Zemarites), 하맛족(Hamathites)의 조상이 되었다. 이들은 우리가 가나안이라 부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흩어졌다. 성경은 가나안의 지경(地境)에 대해 시돈(Sidon)에서부터 그날을 지나 가사(Gaza)까지, 그리고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와 아드마(Admah)와 스보임(Zeboiim)을 지나 라사(Lasha)까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0:19). 즉 ‘가나안(Canaan)’은 훗날 로마인들에 의해 팔레스틴(Palestine)이라 불린, 오늘날 이스라엘과 요르단 지역의 히브리식 이름이었다. 이렇게 가나안은 같은 함족인 블레셋 민족과 더불어 팔레스틴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정면으로 접촉한 민족이 되었다.
알
파벳의 발명자 페니키아를 이룬, 가나안의 장남 시돈
가나안의 장자 시돈(Sidon)의 이름은 오늘날 고대 페니키아 사람들의 고대 도시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대상 1:13). 시돈은 오늘날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약 36km 떨어진 ‘사이다’(‘Saida')에 위치하였다. 시돈은 성경 뿐 아니라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과 호머의 저작들에도 그 이름이 남아 있는 고대 유명 도시였다. 예수님과 바울도 이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막 7:31; 행 27:3).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도시들보다 오히려 이방의 도시 두로와 시돈을 더 높게 평가하셨다. 갈릴리 고라신(Korazin)이나 벳새다(Bethsaida)에서 행한 기적과 표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다면 그들은 일찌감치 굵은 삼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을 거라고 갈릴리 지방의 완악함을 책망하셨다(마 11:21-22). 사도 바울은 시돈에 친구가 있었다. 당시 친구가 되려면 신앙은 아주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따라서 이들 친구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지역 아구사도대 백부장(근위대 대장)인 율리오(Julius)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 바울이 친구들에게서 대접받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행 27:1-3). 이렇게 시돈은 이스라엘보다 복음에 먼저 문을 연 지역이었다. 구약은 보통 이 시돈을 페니키아라고 부르고 있다(신 3:9; 삿 10:12; 왕상 5:6). 페니키안이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붉은 피부를 가진 사람>, 히브리어로는 <상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가나안의 장자 시돈은 지금의 레바논 해안가를 따라 두로(지금의 수르), 시돈, 베리투스(지금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비블로스, 아르와드, 우가릿 등의 도시를 구축하면서, 지중해를 넘나든 해상무역국가 페니키아를 이루었다. 이들은 지금의 키프로스 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지역,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와 시칠리아섬, 아프리카와 유럽의 접촉 관문인 지브로울터 해협 양안까지 진출하였다.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를 건설한 것도 이들이었고, 뛰어난 항해술로 홍해와 대서양까지 진출하여 남아라비아와 통상관계를 가진 것도 이들이었다. 주전 7세기경 바닷길로 아프리카를 일주한 것도 페니키아인들이었다.
활발한 지중해 해상 무역 기지를 구축했던 시돈의 공헌은, 무엇보다 주전 15세기 무렵 오늘날 알파벳의 원형이 된 페니키아 문자를 지중해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한 일이었다. 즉 가나안(페니키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최초로 사용한 알파벳을 지중해 전 지역에 나누었다. 22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된 페니키아 문자는 주전 11세기 페니키아인들의 식민지 건설과 해상 무역과 더불어 지중해 연안 지방으로 전파되어, 주전 8세기 무렵 헬라 문자와 에트루리아 문자를 통해 라틴 문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나안 언어는 고대 히브리어에도 상당수 녹아들었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고대 페니키아의 땅에서 페니키아어·헬라어·라틴어 알파벳의 모어(母言)의 원형을 발견했다. 이렇게 오늘날 모든 유럽 국가들의 언어는 함족 가나안의 후손 페니키아인들에게 결정적 빚을 지고 있다. 또한 해마다 우리 한민족이 페니키아어를 원조로 하는 영어 알파벳에 쏟아붓는 정력과 돈은 얼마나 많던가!
대제국 히타이트의 조상이 된, 가나안의 둘째 아들 헷(Heth)
헷(Heth)은 고대 히타이트족(Hittite)의 조상이 되었다. 히타이트족은 주전 2천년 강력한 아나톨리아 제국을 건설한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다가 일찌감치 북동쪽으로 이동하여 대제국을 이루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아브라함은 헷족속에게서 막벨라 굴을 가족 매장지로 구입한다(창 23장).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헷족의 딸들과 혼인하였다.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장자인 에서는 헷족의 두 여자(브에리의 딸 유딧과 엘론의 딸 바스맛)와 결혼하여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을 근심케 하였다(창 26:34; 27:46). 믿음의 여인 리브가는 야곱조차 헷 처녀들과 혼인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남편 이삭을 설득하여 아들 야곱을 외삼촌이 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보내게 된다. 함족 가나안 후손인 헷족속과의 혼인에 대해 셈족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다윗과 솔로몬도 헷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다윗은 수하에 헷사람 아히멜렉(삼상 26:6)과 충성스러운 장수 우리아(삼하 11장)를 두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아들 솔로몬을 낳았다. 하나님은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다윗을 꾸짖으신다. 밧세바의 일을 제외하고는,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행 13:22). 솔로몬도 헷사람과 혼인 동맹을 맺었고(왕상 11:1) 헷의 도시국가들과 무역을 하였다(왕상 10:29).
팔
레스틴 땅에 정착한 가나안의 후손들
시돈과 헷을 제외한 가나안의 아홉 아들들의 이름과 세거지(世居地)는, 창세기 10장 15-19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 가나안의 아홉 아들들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즈음 이미 그 땅에 정착하여 거주하던 가나안 족속들의 조상들이 되어 있었다.
여부스족(Jebusites)은 헷족과 더불어 일찌감치 예루살렘에 정착하였다. 사사 시대에도 여부스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사사기 19:10). 이곳을 점령하여 수도로 정하고 예루살렘으로 개칭한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다(수 18:28; 삿 19:10; 대상 11:4; 삼하 5:6). 하지만 다윗의 정복 이후에도 여부스 사람들은 남아 있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번제단을 위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Araunah)의 타작 마당과 소 값으로 은 50세겔(약 570그램)을 주고 정식 구입하였다(삼하 24: 16-25). 여부스 사람은 솔로몬 시대에도 남아 왕의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왕상 9: 20-21). 그리고 훗날 이곳에는 성전이 세워졌다.
아모리족(Amorites)은 가나안 땅의 가장 유명한 족속 중 하나였다. 때로 아모리족은 가나안족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사용되곤 했다. 팔레스틴의 상황을 묘사한, 주전 14세기 중엽 작성된, 애굽에서 발견된 유명한 토판인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은 이들 팔레스틴의 아모리족을 소개하고 있다. 아모리족의 번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아모리족은 주전 23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이주하여, 수메르의 우르 제3왕조를 붕괴시키고 바벨론 지역의 강자로 등장하였다. 아모리족 출신의 가장 유명했던 통치자가 바로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으로 유명한 함무라비 왕(주전 1792-1750년 경)이었다. 아모리족의 바벨론 통치는 주전 1590년경 같은 가나안 후손인 히타이트족이 바벨론 지역을 침략해 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아모리족은 소왕국 형태로 존속하였다. 그리고 주전 1천 년경 아람 족속이 바벨론에 진출하면서, 그 정치적 영향력이 막을 내리게 된다.
기르가스족(Girgasites)은 성경에서 늘 다른 가나안 후손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음이 확인된다(창 15:21; 대상 1: 14; 느 9:78). 그들은 주로 트랜스 요르단이라 불리는, 요단강 동편 갈릴리 바다 근처에 살았다.
히위족(Hivites)도 주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민족이다.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한, 하몰의 아들 세겜은 히위 족속이었다. 이들 히위 족속의 남자들은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 시므온과 레위에게 몰살당하였다. 기브온에 거주하던 히위인들은 멸망당하는 것이 두려워, 속임수를 써 이스라엘의 종이 된 적이 있다(수 9장). 일부 히위족들은 가나안 북부 여러 족속과 동맹을 맺었다가, 메롬 물가에서 여호수아에게 진멸당하였다(수 11:3-5, 19).
알가족(Arkites)은 시리아의 텔 알카(Tell Arqat) 성읍의 주인이었다. 이들 후손들은 리비아의 트리폴리 북쪽 약 18km 지점에 있는 텔 아르카(Tell Arqah)의 옛 주민들에게서도 확인되고 있다. 같은 가나안족 후손 시돈의 페니키아가 해상으로 진출하면서, 알가족의 일부도 이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보인다. 이 같은 일들은 여호수아 시대보다 한참 지난 이후였을 것이다.
아르왓족(Arvadites)은 페니키아족의 항구 도시인 아르밧에 거주하였다. 이들은 두로 선박의 뱃사공으로 고용되거나 두로 부근에서 용병으로 고용되었다(겔 27:8, 11). 이스라엘과 페니키아의 틈바구니에서 피지배 민족으로 살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지배자들에 동화되었다.
스말(Zemarites)족의 터전은 아르왓 남방 약 6마일에 위치한 오늘날의 숨라(Sumra)로 알려져 있으며, 이 성읍은 앗수르의 문헌들(앗카드어로 Simirra)과 아마르나 서신(Sumur)에서 언급되고 있다.
하맛족(Hamathites)은 가나안 땅 북쪽에 자리하여, 다윗 시대부터 신구약 중간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을 역사에 꾸준히 알린 민족이었다.
중국 민족의 주류는 가나안의 후손 신(Sin)인가?
가나안의 후손 가운데 신족(Sinites)이 있다. 신족은 다른 가나안의 후손들처럼 주로 팔레스틴 북쪽에 자리잡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제롬(Jerome)은 아르카(Arka)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이란 이름을 가진 장소가 있음을 알아냈다. 레바논의 산 위에 남아있는 신나(Sinna)라는 성채를 신족속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1929-1939년 사이에 발굴된 우가릿(Ugarit) 문서들에는 최고의 신 ‘엘’('El')뿐만 아니라 신족에 대한 많은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앗수르의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가 “신”이었음에 주목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렇게 “신”이라는 명칭은 가나안 뿐 아니라 고대 페니키아 지역과 수메르-앗수르 지역 곳곳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우르 지방에서 발견된 비문들에는 신격화된 “신”이 사람들 가운데 “법과 정의”를 확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신”이라는 명칭을 성경의 “시님”(사 49:12)과 관련지으려는 시도와, 중국이 고대부터 “시나”로 불리는 데 착안하여 신족속을 중국 민족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창조과학의 원조 헨리 모리스(H. M. Morris)나 서구 신학자들이 우리 민족을 포함한 동양 민족을 함족으로 보는 견해에는 바로 이런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견해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는 아직 없다. 중국에서 “진”이나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나라들은 하(夏)·상(商)·주(周 ) 이후 성경의 “신”과는 전혀 무관한, 훨씬 후대의 나라들로 보는 것이 옳다.
가나안 저주 문제와 그 후손들의 미래
가나안 저주는 성경의 여러 난제 가운데 하나다. 노아의 가나안 저주 사건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 하루는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기 천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다. 가나안의 아버지인 함이 자기 아버지 노아의 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 사실을 두 형제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쳐서 들어가 아버지 노아의 나체를 덮어 주고, 계속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의 나체를 보지 않았다. 노아는 술이 깬 후에 함이 자기에게 한 일을 알고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자기 형제에게 가장 천한 종이 되리라” 했다(창 9:20-27). 이것이 내용의 전부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인간 노아가 함의 아들 가운데 오직 가나안을 저주하였다. 하나님이 아닌 노아의 자기 손자 저주가 과연 어떤 유효성이 있을까? 조부가 손자를 저주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은 한 것일까? 함이 행한 그 일이 도대체 함의 아들이요 노아의 손자인 가나안 저주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함의 행동 자체가 그렇게 자기 아들 넷 가운데 가나안이 할아버지 노아에게 저주받을 만한 행동이었는가? 그렇다면 아들 함부터 저주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노아와 함께 그 가족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창세기 9장 1절) 하나님의 축복을 어떤 사람도 저주로 바꿀 수 없었으므로 노아는 함부로 자기 아들 함은 저주하지 못했단 말인가(Walter C. Kaiser, Jr.,
이 사건에는 필경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성경은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즉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저주 개념을 함부로 운명에다가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함을 저주하신 적이 없다. 노아가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기 손자 가나안을 저주했을 뿐이다. 그것이 과연 무슨 효력이 있었을까? 그것이 노예 제도나 함의 후손인 흑인의 노예 운명을 합리화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반만년 민족사에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겨우 복음이 들어온 우리 민족만큼 영적 저주를 받은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천한 종이나 저주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모세 율법은 종이 6년을 봉사하면 자유케 하였다. 평생 종이 되는 경우는 주인을 사랑해서 자원할 때 뿐이었다(출 21:2-7). 사도 바울도 종의 제도에 대해 적극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할 수 있으면 자유하라고 권면하였다(고전 7:21). 주인을 탈출한 오네시모를 감싸면서, 전 주인인 빌레몬에게 정중하게 “오네시모를 종이 아니라 종 이상의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 줄 것”을 요청하는 아름다운 절창(絶唱) 빌레몬서를 보라! 어떤 종이든 노예이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저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노아의 술 취함은 분명 그리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한 아들 함도 칭찬받을 행위는 아니었다. 이것은 의인 노아조차 당연히 허물이 있음을 알려주고, 우리 인간의 보편적 타락상을 보여준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특정 민족의 운명적 저주가 마치 진실인 양 언급하는 일은 금해야 한다고 본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인간은 모두 동일한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
가나안의 후손 시돈이 같은 함족인 붓족속과 함께 카르타고를 건설하여 탁월한 초기 기독교 인물들을 배출한 것이나, 갈릴리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시돈 사람들이 훨씬 복음에 더 반응한다는 예수님의 충고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울림이 큰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가나안의 후손들은 역사상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타락한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전혀 차별 없이 동일하게 부르고 계신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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