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의 능력
- 이다윗 목사
지금껏 당신은 언약궤에 대한 내용을 들었습니까? 언약궤에 대한 당신의 지식은 어느 정도입니까? 언약궤는 어디에 있으며 언약궤가 뜻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사도요한이 천국의 성전을 바라 봤을 때 그곳에 언약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날마다 언약궤에 들어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고 있습니까? 언약궤에서 어떤 능력을 받게 되는지 알고 있나요? 언약궤가 하나님의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고 있나요?
당신은 이 글을 통해 언약궤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궤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언약궤기도는 당신의 삶을 송두리채 바꿔놓을 것입니다.
언약궤기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성막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성막 문을 열 수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이신 하나님으로 모시고 나의 왕이신 하나님으로 영접하며 나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성막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을 묻혀만 합니다.
언약궤는 성막의 가장 끝부분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한 가운데가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언약궤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여러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자아를 죽이는 번제단, 회개의 물두멍, 간구의 진설병, 성령님을 의지하는 정금등대, 천국으로 인도하는 방언기도의 분향단을 통해 비로소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의 휘장을 들출수가 있습니다.
성막문에서 시작하여 번제단을 거쳐 물두멍까지의 과정은 당신의 육적인 죄가 깨끗해지는 정결과정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육적으로 정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진설병과 정금등대, 그리고 분향단을 통해서 당신의 혼적인 죄가 깨끗해질 것입니다. 당신의 육적인 정결과 혼적인 거룩함이 없이는 결코 지성소의 휘장을 들출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지성소에 들어갔다간 오히려 당신이 죽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을 기억하십시오. 아론의 두 아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는 세상의 불을 가져다 번제단의 불로 사용했습니다. 성막에서 사용했던 모든 불은 모두 인간이 만든 불이 아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불로만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벼이 여겼음으로 하나님의 불이 나와 그들을 태워 죽였습니다(레 10:1-2).
성령님은 내게 수없이 “정결과 거룩, 그리고 집중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능력을 받습니까?”라고 여쭸을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은사가 더 강해질 수 있습니까?”라고 여쭸을 때도 똑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성령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도 정결과 거룩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오히려 늦게 가는 법입니다. 스스로 먼저 육적으로 정결해 지십시오. 정결의 시금석은 모든 사람을 당신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새겨 들으십시오. 이 말씀은 성령님께서 내게 주신 해답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남을 나보다 낮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죄로 남게 합니다. 비록 당신의 눈에 별볼일 없는 사람이 보여도 그 사람이 나보다 낫다고 여기십시오. 실제로 당신 마음에 그러한 마음이 생겨야 당신은 비로소 정결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에 대한 시금석은 하나님만 있으면 바랄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다윗의 시편고백이 생각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이것의 영어 표현은 “I shall not want”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나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박국의 신앙표현도 거룩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돈을 바라고 예언할 생각을 마십시오. 명예를 생각하며 은사를 탐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라는 베드로의 꾸지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언약궤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됨
당신의 육적인 욕망과 혼적인 마음이 죽어 없어져서 당신의 영(spirit)이 활동하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이 활성화되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다리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는 영(spirit)으로만 당신과 교제를 나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안에 계십니다. 당신이 언약궤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큰 영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모세가 속죄소 앞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1-22)
모세가 속죄소 앞에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내게서 어떤 사람은 속죄소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사람은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천국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있는 셈입니다.
모세가 성막을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보여주고 설명한대로 지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나님께서 지시한대로 지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만들고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무척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성막을 만들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방주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세가 그리고 성막을 잘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모형을 보여 주시고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노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물건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훌륭한 방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하나님께서 모세에서 성막의 모형을 보여줬을 때 그 모형은 바로 천국의 성막이었습니다. 모세는 성막에 대한 모든 것을 모형으로 보고 설명으로 전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그대로 성막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를 나눴던 것은 그가 언약궤 안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언야궤의 크기는 모세가 들어갈 수 없는 크기였습니다. 언약궤는 가로 2.5규빗과 세로와 높이가 각각 1.5규빗의 작은 상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1 규빗을 보통 남자의 손끝에서부터 팔굼치까지의 거리이니 그것이 요즘으로 환산할 때 45~50cm로 볼 수 있습니다. 50cm로 계산했을 때 언약궤의 크기는 가로 125cm와 세로 75cm, 높이 75cm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는 종종 언약궤의 크기를 사과상자에 비교합니다.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라면 몰라도 성인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상인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언약궤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언약궤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성령님의 말씀은 무엇을 뜻할까요? 키를 낮추고 몸무게를 줄여서 언약궤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일까요?
모세는 정상인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언약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언약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 두껑의 역할인 속죄소 앞에 서 있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언약궤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속죄소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만약에 모세가 언약궤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는 언약궤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언약궤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속죄소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나는 언약궤로 들어가라는 성령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막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뿐이고 지금까지 언약궤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언약궤 안에 들어가서 기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언약궤에 세가지 성물이 들어 있는 신성한 물건임은 알고 있었지만 언약궤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님께서 “언약궤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네?”라고 여쭸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때부터 언약궤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성령님께서 하라는대로 따라 언약궤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내가 언약궤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큰 영광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매일 언약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성령님은 내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루는 하늘의 문이 열리고 그곳으로부터 구름이 내려오는 것을 보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순식간에 그 구름은 나를 덮었습니다. 내가 숨을 쉴 때마다 그 구름은 내 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내 모든 피부조직이 열려 그 구름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은 구름이 나를 감싸고 있을 때 “그 구름이 너를 감쌀 때 사탄마귀가 조금도 너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뒤 곧 바로 하늘의 문에서 레이저 광선같은 빛줄기가 나의 가슴을 강타했습니다. 처음에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그것은 곧 예수님의 빛이니라… 이 빛이 너의 병을 치유하게 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빛은 치유의 광선이고 나의 육적인 병과 혼적인 병을 치유하는데 사용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내게 “그 빛이 네 가슴에 모아지도록 집중하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최대한 빛이 흩으러지지 않도록 모았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 빛 끝부분이 불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돋보기를 사용해서 빛을 집중할 때 종이가 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 가슴 한 부분에서 불이 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은 내게 “그 불을 가지고서 네의 병이 있는 곳에 옮기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불을 아픈 곳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불은 내가 원하는 장소로 아주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픈 곳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빛은 치유의 광선으로 나의 아픈 곳을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러한 방식으로 내 속에 있는 질병이나 더러운 것들을 태워왔습니다. 그랬더니 훨씬 몸이 건강해졌습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맑아지기 시작했으며 집중력이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아픈 곳을 옮겨다니는 불은 갑자기 온 몸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몸에 불덩어리가 뱅뱅 맴돌았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 몸 전체가 불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때 능력이 전이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곧 성령님의 불이었고 그것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었으며 능력의 전이였습니다.
언약궤의 또 다른 비밀
지금까지 나는 언약궤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설명하려는 것에 비하면 그런 증상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세가 속죄소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대화를 나눴을 때 그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성막 바깥으로 나올 때는 수건을 쓰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속죄소에 들어갈 때는 그 수건을 벗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의 빛난 얼굴을 볼 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수건을 가렸던 것이지요. 남주기 아까워서 수건을 가렸던 것은 아닙니다.
모세에게 물어 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성령님은 내게 참으로 많은 언약궤의 비밀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부터 나는 성령님께서 전해 주셨던 것을 자세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블레셋 군사들에게 빼앗겼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도적질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언약궤는 아무런 무기도 없고 단순한 궤짝에 불과했지만 스스로 보호하고 지켰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아스돗에 가져갔을 때 그곳의 사람들이 악한 종기와 재앙으로 심한 고생을 하게 되었고, 가드로 옮겨 갔을 때에도 언약궤는 혼자의 힘으로 그곳 성읍 사람들을 병들게 했습니다. 에그론으로 갔을 때에도 언약궤는 그곳 성읍 사람들을 병들어 죽게 했으며 벳세메스에 이르렀을 때는 언약궤 두껑을 열어 본 사람들로 인해 그 지역의 50,075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어떤 사람은 5만명이 아니라 75명만이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분명히 5만 75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언약궤는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영적인 의미에서만 중요성이 있는 언약궤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언약궤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줬던 성물이었습니다. 그러니 언약궤가 함께 했던 모세가 능력의 능력을 받지 않았겠으며 언약궤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지 않겠습니까?
언약궤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듯이 언약궤 안에 들어가면 마치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그 어떠한 환난이나 어려움도 언약궤 안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그 즉시 해결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언약궤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모세가 속죄소(언약궤 두껑) 앞에서 기도했던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 것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제사장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제사장도 7월 10일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으며 아무 때나 마음대로 들어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특별대제사장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모세는 아무때나 원하는대로 지성소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영적으로 언약궤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특별대제사장의 부름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옳은 것입니다.
속죄소의 그룹을 통과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기 위해서 언약궤에 들어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속죄소입니다. 속죄소는 언약궤 위에 놓여져 있는 두껑입니다. 그 속죄소는 언약궤의 크기와 똑 같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로가 2.5규빗이고 세로가 1.5규빗입니다. 그리고 약간 높이가 올라가 있어서 그곳에 피를 뿌려도 피가 흘러 내리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한 속죄소 양 끝에 두 그룹이 놓여져 있는데 날개를 최대한 활짝 편 상태에서 고개는 속죄소를 향하고 있어 마치 속죄소를 경배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궤는 조각목에다가 금을 씌워 만들었는데 속죄소는 100% 순금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룹은 속죄소와 한 덩어리로 붙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조각목으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은 사뭇 놀라움이 있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가장 흔하고 천한 보잘것없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죄인이 이곳에서 만날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왕이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천한 자를 만나 주시는 장소가 바로 언약궤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속죄소는 정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정금은 불순물이 1%도 없는 금을 말합니다. 1%의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정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속죄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1%도 없으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속죄소는 정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언약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속죄소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이곳에서 예수님의 보혈을 다시한번 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잘 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죄소와 언약궤 사이를 지키고 있는 그룹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내 쫓았을 때 에덴동산에 무엇을 두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맞습니다. 화염검과 그룹이었습니다. 이 그룹은 하나님을 보호하는 천사입니다. 그래서 제일 무섭습니다. 악한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사입니다. 강력한 파워가 있습니다. 죄인에게 두려운 천사입니다. 에덴동산은 곧 천국을 의미했습니다. 천국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룹을 통해 천국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언약궤에 들어간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언약궤에 들어가면 실제로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천국의 세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언약궤의 세가지 성물
고린도전서 13장을 우리는 사랑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배워서 그렇게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과 동행을 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장이 아니라 ‘천국장’이었습니다. 사랑장이라고 하는데는 믿음과 소망이 위축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하지만 믿음과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물론 사랑이 최고입니다. 하지만 믿음도 최고이고 소망도 최고입니다. 그 중에 으뜸이 사랑이라는 것이지 결코 믿음과 소망이 별볼일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내게 “믿음은 천국의 모든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믿음의 진정한 의미를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을 매우 좋아합니다.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하기때문에 12장과 14장은 성령사역자들에게는 필수교본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늘 마음에 꺼리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13장이 12장과 14장 사이에 끼었을까?’였습니다. 물론 바울의 언급처럼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꽈리처럼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하기에는 뭔가 꺼림칙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믿음’은 천국의 모든 것인데… 어째서 사랑이 최고일까?’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소망’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와 내 자녀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내 아들들은 나에게서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을 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빠가 뭘 사준다고 하면 아들은 절대로 그 말이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러면서 아빠로 인해서 ‘소망’을 갖게 됩니다. 반드시 아빠가 약속을 지킬 것임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소망’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아빠의 한없는 ‘사랑’을 체험합니다.
언약궤 내부를 보면 세가지 성물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출애굽기에서는 돌판만 들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솔로몬이 성전을 하나님께 바칠 때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왕상 8:9)라고 말했습니다. 블레셋 군사들이 지팡이와 만나항아리를 가져 갔을까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 금항아리는 언약궤 안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져 언약궤 앞에 놓여졌을 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맞습니다.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크기가 들어갈만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팡이나 항아리가 들어갈만한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9장에 보면 언약궤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왜 성경말씀이 서로 다를까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언급했던 언약궤는 세상의 언약궤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언급했던 언약궤는 바로 천국에 있는 언약궤를 의미했던 것입니다. 사도요한도 천국에 있는 언약궤를 보았습니다. 그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계 11:19)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언약궤는 이 땅의 언약궤가 아니라 바로 천국의 언약궤입니다. 천국의 언약궤에는 히브리서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세가지 성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 세가지 성물은 바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그리고 ‘돌판’이었습니다. 이 세가지 성물은 천국의 요소들입니다. 천국은 이 세가지가 가득한 곳입니다. 천국은 믿음의 장소입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곧 믿음을 의미합니다. 죽은 나무에서도 싹이 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만나 항아리는 사랑을 말합니다. 40년간을 한결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용할 양식으로 자녀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돌판은 언약을 상징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신 모든 내용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으며 말씀하신 대로 모두 이뤄졌습니다. 앞으로 모든 말씀들이 이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언약궤는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뜻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언약궤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언약궤 안에서 믿음이 커질 것입니다. 언약궤 안에서 소망이 자라날 것입니다. 언약궤 안에서 사랑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언약궤 안에서 이뤄지는 역사이며 언약궤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뿐아니라 언약궤 안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감격적인 포옹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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