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받는 것보다 더 우선이고,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부제: 기복주의와 영지주의를 모두 조심하라)
목회자들로 이루어진 어느 한 인터넷카페에 “믿음의 선포와 행동이 하나님의 치유를 가져온다.”http://cafe.daum.net/gvlove0691/K3zB/363라는 저의 글을 올렸더니, 어느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은 리플을 달아주셨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면 치유에 관해 너무 이야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치유가 중요하지요...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속에 치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치유 받는 것보다 더 우선이고,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이러한 고민부터 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가 치유보다 더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
이상의 리플에 대하여 “엘ㄷ”란 분이 다음과 같은 재리플을 달으셨습니다.
“요즘은 신사도 운동에 매인 일부 목회자들이 문제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물을 도외시하고 보이는 어떤 허탄한 것들만 좇으니....주여~! ”
그런가하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http://cafe.daum.net/gvlove0691/K3h9/358라는 저의 글에 대하여 “엘ㄷ”란 분이 또 다음과 같은 리플을 달아주셨습니다.
“병든 자를 치료함 보다 이단에 빠진 영혼을 건지는 일이 천하보다 귀하도다~!”
이 리플들이 영혼구원사역과 치유사역은 둘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전제하에, 사역의 우선순위에 있어, 영혼구원사역이 순서상 먼저이어야 한다는 입장에서의 지적이라면 저도 충분히 동의할 것입니다. 영혼구원사역은 제쳐놓고 치유사역에만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측면에서라면 저도 충분히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세상 그 어떤 치유사역자가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이 없이 단지 치유사역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치유사역은 영혼구원에 대한 사랑의 열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목회에서도 그러셨지만, 저의 목회에 있어서도 역시 치유사역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많은 영혼구원의 열매들을 수확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저의 목회에 있어서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 치유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난 성도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땅에서의 삶속에 치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물을 도외시하고 보이는 어떤 허탄한 것들만 좇으니....주여~! / 병든 자를 치료함 보다 이단에 빠진 영혼을 건지는 일이 천하보다 귀하도다~!"라는 표현들처럼, 그것이 만일 사역의 가치에 있어서 치유사역보다 영혼구원사역이 더 중요한 것이기에 치유사역은 경시해도 된다는 측면이라면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영혼구원사역이 귀하지만, 저는 그것과 동일하게 치유사역도 귀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둘을 같은 가치, 같은 사역으로 취급하셨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이상과 같은 반응들에 대하여 순간 당혹감과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고, 그러한 점을 성경적으로 점검해 보기 위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저의 입장에 성경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이 있음이 발견된다면 그 즉시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전체의 균형잡힌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할 목회자라고 하시는 분들이, 성경적 치유의 당위성에 관한 지극히 평범한 이상과 같은 저의 글을 보고도, 저를 치유사역에만 몰두하는 편협한 목회자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의 당혹감이, 목회자이면서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전인적 구원이라는 복음진리의 전체적인 면을 균형 있게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영혼구원에만 치우쳐있는 자신들의 불균형적인 사역을, 오히려 성경적으로 절대 옳은 사역이라고 맹신하고 있다는 점에서의 안타까움이 분수의 물기둥처럼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성경전체의 균형 잡힌 진리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가장 잘 완벽하게 펼쳐 보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정확하게 이해하신 분들이라면 결코 이상과 같은 기이한 반응들을 일으킬 수 없겠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성경은 영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하나님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붙드시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히1:1-3).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들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골1:16).
그렇기에 선하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만물은 모두가 다 귀하고 선한 것들입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모두가 다 귀하고 선한 것들이지, 그중에 더 귀하고 덜 귀하거나, 더 선하고 덜 선한 것은 없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유지하고 계신 것들이기에 모두가 다 귀하고 모두 다 선한 것들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영적인 것들은 귀하고 선하지만 물질적인 것들은 덜 귀하고 덜 선하다는 가르침을 베푼다면 그러한 가르침은 성경적이지 않으며, 매우 조심해야 할 인간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임을 알고 매우 조심하셔야 합니다(골2:8).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이요, 복음사역의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딤전 4:1-8)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것이 귀하고 선한 것이듯이 물질적인 것도 동일하게 귀하고 동일하게 선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생이 귀하고 선한 것이듯이 금생도 동일하게 귀하고 동일하게 선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구원과 복을 주시지만 동시에 물질적인 구원과 복도 동일하게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내생의 복을 주시지만 동시에 금생의 복도 동일하게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들에 대하여 물론 내세에서 영생으로 갚아주시지만, 동시에 현세에서도 동일하게 100배로 갚아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막 10:29-30)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모두가 다 동일하게 귀하고 동일하게 선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세와 현세가 모두 다 하나님의 피조세계이기에 내세가 중요한 것처럼, 현세도 동일하게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아버지의 온전하신 뜻을 온전하게 펼쳐 보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둘 다를 동일하게 귀하고 동일하게 선한 것으로 취급하셨고,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둘 다를 동일하게 회복시키셨음을 보게 됩니다. 영적인 것이 귀하고 선하니 물질적인 것은 덜 중요하고 필요 없다거나, 내세가 중요하니 현세는 덜 중요하고 필요 없다거나 하는 식의 말씀이나 사역을 하신 적이 없으셨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현세와 내세,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동일한 가치로 대하시고 동일하게 사역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마 4:23-24)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이 말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사역은 내세와 현세,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둘 다 동일하게 중요한 것이고, 내세와 현세 둘 다 동일하게 중요한 것이지, 어느 한쪽만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에만 치우친다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반대로 영적이고 내세적인 것에만 치우친다면 그것도 역시 동일하게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세나 물질적인 것에 치우치는 사람들(눅12:13)의 위험성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라는 경고의 말씀을 해 주셨지만, 동시에 어려서부터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물질의 탐욕과 함께 내세나 영적인 것, 즉 영생에 치우치는 사람(막10:17)의 위험성에 대하여서도,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가 가진 것은 무엇이든지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있는 보물을 (현세에서/29절참조) 가지게 되리니 그런 후에 와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막10:21, 한글킹)는 경고의 말씀을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내세의 영생은 현세의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지, 내세의 영생이라고 해서 현세의 복된 삶과는 상관없이 별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밝히셨습니다.
(막 10:29-30)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반복하지만, 만일 우리의 신앙이 영적이고 내세적인 것을 무시한 채,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에 치우쳐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신앙이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을 무시한 채, 영적이고 내세적인 것에 치우쳐 있다면 그것도 역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전자는 잘못된 기복주의신앙으로 흐르게 될 것이고, 후자는 잘못된 영지주의신앙으로 흐르게 될 것입니다. 기복주의신앙도 영지주의신앙도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복주의신앙이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이 최고이기에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비성경적인 가르침이고, 영지주의신앙이란 영적인 일이 최고이기에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비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성경적인 건강한 신앙생활이란 기복주의와 영지주의의 양극단을 모두 피하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대 한국기독교의 흐름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기복주의와 영지주의라는 양 극단으로 치우치는 면모들이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해 보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과 삶의 올바른 기준은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기준으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재평가하고 재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사역의 순서가 아닌 가치로 볼 때, 치유 받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치유 받는 것보다 더 우선이고, 더 중요한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거나 사역하신 적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과 내세의 영생이 중요한 것이지만, 육체치유와 현세의 복된 삶도 동일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물이 중요한 것이 맞지만, 그것들 외에 다른 것들은 다 허탄한 것들이라고 함부로 오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유를 강조한다고 해서 영혼구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 영혼구원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치유를 경히 여기거나 무시해야 하는 것도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이단에 빠진 영혼을 건지는 일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는 말은 맞지만, 병든 자를 치료함보다 이단에 빠진 영혼을 건지는 일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이단에 빠진 영혼을 건지는 일이 천하보다 귀한 것처럼, 동일하게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도 천하보다 귀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과 이단에 빠진 영혼을 건지는 일은 둘 다 동일하게 귀하고 동일하게 중요한 것이지 둘 중에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하는 선택사항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둘 다 동일하게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치유사역은 열심히 하지만 영혼구원사역을 등한시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영혼구원사역은 열심히 하지만 치유사역을 등한시 한다면 그것도 역시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서두에 잠깐 밝힌 것처럼, 영혼구원사역과 치유사역을 사역의 우선순위로 보자면 순서상 영혼구원사역이 먼저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가치의 우선순위로 볼 때는 둘 다 중요하기에 그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다는 측면에서 우선순위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이 글의 요지임을 다시 한 번 더 밝힙니다.
(마 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겔 34:1-4)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이상의 말씀들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요 8:30-32, 한글킹) 『[30] 주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니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31] 그때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시더라.』
(요 14:12-14, 킹흠정) 『[12]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행하는 일을 할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마 10:1,7,8)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7](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막 16:15-18)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마지막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맞는 사람"(행13:22)이라는 칭함을 받았던 다윗의 신앙고백을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마칠까 합니다.
(시 103:1-5) 『[1] [다윗의 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아멘!!!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목회자로서, 저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저의 두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신, “종려나무”님의 리플을 소개함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
영혼을 사랑하지 않으면 치유에 대한 관심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 또한 치유에 대한 사모함이 특심하기에 목회자들에게 늘 당연히 나타나야 하는 능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목회자 중의 한사람입니다.
영혼 사랑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속에 흘러넘침이 없이 어찌 치유하고자 하는 사모함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치유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면 구령에 대한 관심이 없다, 목회는 하나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은 얼마나 영혼을 사랑하며, 얼마나 구령에 매달리며
얼마나 이단에 빠진 이들을 건지고 있을까요?
치유는 온전히 성령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언젠가 우리는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날이 옵니다.
성령님을 훼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내 가족 중에 병든 이가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아니면 자기 자신이 병들었다면?
이래도 신유의 역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보게 될까요?
아직도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에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은 심판을 준비하실 겁니다.
우리는 더욱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할 것입니다.
안타까움 때문에 슬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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