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종말

[스크랩] 이스라엘의 시기심을 일으킬 동방의 코리아②

수호천사1 2014. 3. 17. 06:49

이스라엘의 시기심을 일으킬 동방의 코리아②



  앞서 지적했듯이 바울의 삼각관계의 신학(Triangle theology)이란 첫째,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둘째, 이방인의 구원이 열렸고 셋째,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시기(마치 어린 자녀가 젖을 먹지 않을 때 남의 집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어린아이는 좇아와서 우리 엄마 젖을 왜 네가 먹느냐며 빼앗듯이)와 그 결과로 구원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이스라엘 구원 계획이다. 이스라엘의 시기심!

 


  그리하여 바울은 13~14절에서 자기 동족을 시기케 하여 구원을 얻도록 하기위해 복음을 전한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 11:13~14).


  그런데 바울의 이와 같은 이스라엘 구원론은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었다. 즉, 바울의 이른바 삼각관계의 신학의 배경은 율법서인 신명기와 선지서인 이사야서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하느님의 이스라엘 구원 계획을 자세히 밝힌 로마서 11장은 그가 앞서 로마서 10:19~21에서 인용한 구약성경 신명기 32:21과 이사야 65:1,2에 바탕을 두고 있다. 먼저 로마서 10:19을 살펴보자.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 말씀은 ‘모세의 노래’라고 알려진 말씀의 일부로서 신명기 32:21절 말씀에서 인용한 것이다. 신명기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하느님은 이 말씀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맺은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을 섬김으로서 하느님의 질투를 일으키고 하느님의 진노를 격발시키면, 하느님도 그들을 향하여 두 부류의 백성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즉 “시기나게 할 자”와 “분노를 격발케 할 자”이다.


  “시기나게 할 자”란 누구인가? 그들은 “분노를 격발케 할 자”와는 다른 민족이다. 시기는 나쁜 것에 대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에 대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기나게 할 자’는 하느님의 복을 받은 자들이다. 바로 이 ‘시기나게 할 자’에 대하여 설명한 자가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로마서 기록에서 복음은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았다고 말하고(롬 3:21), 율법서의 신명기 32:21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바울은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롬 11:11). 따라서 ‘시기나게 할 자’란 구원받은 이방 기독교 국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을 시기케 할 자인 것이다.

 

이방 교회는 이스라엘의 시기심을 자극시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와 같은 이유로 모세는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할 자”를 가리키는 데는 단지 “백성 아닌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우준한 민족”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이다. 구원받은 이방 민족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있으므로 더 이상 ‘우준한 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분노를 격발케 할 자”란 누구인가? 분노는 시기심과 달리 자신을 해롭게 하는 자에 대하여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할 민족인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불순종할 때 하느님은 그들을 이방 나라의 침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며, 멸시와 수욕과 학살을 당하게 하셨으니, 곧 앗수르, 바벨론, 애굽, 앗시리아, 헬라, 로마 같은 나라들로서, 이스라엘을 지배, 박해, 학살한 민족들이다.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분노를 격발케 할 자”인 것이다. 하느님은 이와 같은 “우준한 민족”을 불신앙에 빠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스라엘의 “분노를 격발케 할 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할 자”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결코 유대 민족을 박해, 학살하는 일의 주역이 되어져서는 안 된다. 이방인 교회가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할 자”이며,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할 도구로 의도되었다는 사실을 바울은 다시 로마서 10:20, 21에서 선지서인 이사야 65:1,2을 인용하여서 확증하고 있다.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20절),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21절).


  이사야 65:1,2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1절).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2절).


  바울은 로마서 10:20에서 이사야 65:1을 축약하여 인용하였다. 즉,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라고 줄여서 인용하였고,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내가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라고 줄여서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 65:1의 뜻은 장차 하느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이방인을 자기 백성 삼으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런데 그 말씀 바로 뒤에 2절에서는, 하느님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을 불렀나니”


  1절과 2절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왜 하느님은 1절에서는 이방인을 부르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실 것을 말씀하시며, 2절에서는 곧바로 또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다고 말씀하시는가? 그 이유는 이방인을 부르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시는 것이 곧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방인을 구원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여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이방인을 부르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신다는 말씀과(1절)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이스라엘을 부르신다는 말씀(2절)이 곧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바울은 율법서인 신명기와 선지서인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방인 교회는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여 그들을 구원시키는 자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이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배경으로 이스라엘~이방인~이스라엘 순서로 이어지는 하느님의 이스라엘 구원 계획을 자세히 밝힌 로마서 11장을 기록한 것이다.

 

                                                                                                      -계  속

                                                                                                               

성민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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