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 저자]
"의복·건국신화·언어 비슷 中 먀오(苗)족 뿌리는 고구려인"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 쓴 김인희씨
조선일보 | 2011.01.14
김인희(43) 전북대 쌀·삶·문명 연구원 전임연구원이 쓴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푸른역사)은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중국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으로, 중국 남부에 800만명이, 동남아시아·미국·캐나다·프랑스 등에 20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먀오족의 뿌리가 고구려 유민이라는 것이다.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 연구원은 1999년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한국과 먀오족의 창세신화 비교연구'로 언어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먀오족과 고구려 유민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여름, 중국 광시성(廣西省)의 먀오족 마을에서 먀오족의 바지가 고구려 전통 바지인 '궁고(窮袴)'와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다. 궁고는 가랑이에 큰 천을 덧대 엉덩이 부분을 풍성하게 만든 바지다. "중국 남방 민족들은 대개 무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기 위해 엉덩이와 허벅다리 뒤쪽을 노출한 바지를 입거든요. 그런데 '왜 먀오족은 궁고를 입을까? 혹 고구려 유민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됐죠."
이후로 10여년간 고구려 유민과 먀오족과의 관계를 연구해 온 김 연구원은 책에서 당에 의해 랴오닝성(遼寧省) 일대 차오양(朝陽)과 산둥성(山東省) 라이저우(萊州)에 집결했다가 중국 각지로 보내진 고구려 유민이 각각 서부 먀오족과 동·중부 먀오족의 뿌리가 됐다고 말한다. "서부 먀오족은 자신들의 조상이 각각 흙탕물과 맑은 물로 이루어진 두 개의 강을 건너왔다고 해요. 흙탕물 강은 황하(黃河)이고, 맑은 물 강은 창강(長江)입니다. 이는 차오양에서 이주해 온 고구려 유민들의 이동경로와 유사합니다. 동방의 바닷가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동부 먀오족이 죽은 이를 위해 부르는 노래에는 당나라가 산둥에서 배를 타고 평양을 공격했을 때를 상기시키는 장면이 나오고요."
또 다른 근거들도 있다. "먀오족은 최근까지도 고구려인처럼 형사취수(兄死娶嫂)를 했어요. 먀오족은 남방민족 중 유일하게 난생신화(卵生神話)를 가지고 있는데, '봄꽃 어머니'가 낳은 알을 새가 품었더니 먀오족 조상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유화(柳花·버들꽃)가 낳은 알에서 주몽이 나왔다는 고구려 난생신화와 비슷하기도 하고요." 김 연구원은 이 밖에 우리의 '쌀'에 대응하는 말인 먀오족의 '쎄'와 '세'가 '쌀'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 등을 든다.
김 연구원은 "'고구려 유민의 후예'란 민감한 주제라 다루기가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예전에도 태국 치앙마이의 라후족이 고구려인의 후예라는 설 등이 제기됐지만 사람들이 널리 믿지는 않았죠. '소설을 쓴다'는 비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료를 모으고 연구했어요. 제 가설이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으면 합니다."
곽아람 기자 aram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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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희 전북대 연구원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이 중국 소수민족 먀오(苗族)족의 뿌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인희(43)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최근 출간한 저서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푸른역사 펴냄)에서 먀오족은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돼 현지 민족과 융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고구려가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이듬해인 669년 20만 명에 이르는 고구려 유민이 중국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는데 그 중 10만 명으로 추정되는 고구려 유민이 중국 남방으로 끌려갔으며, 이 사람들이 먀오족을 형성한 중심 세력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먀오족은 중국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은 민족으로, 구이저우(貴州)성 등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에 8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와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도 2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7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고구려 유민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진 사람들)'였다"면서 "(당나라로 끌려간) 일반 고구려 유민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정체성을 갖고 살아 남았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먀오족을 연구해온 김 연구원이 고구려 유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0년 중국 광시좡족(廣西壯族) 자치구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였다.
학술대회 중에 들른 먀오족 마을에서 고구려인의 바지인 '궁고'를 입은 먀오족을 발견한 것.
"중국 남방의 소수민족이 왜 고구려인의 궁고를 입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지난 10년 간 고문헌 연구와 현지답사 등을 통해 고구려 유민과 먀오족의 관계를 추적해온 김 연구원은 중국 송(宋)나라 때 문헌인 노학암필기(老學庵筆記)에서 고구려 유민의 흔적을 발견한다.
노학암필기에 '가뤼'라는 민족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고구려의 국호였던 '고려'가 중국 남방 민족 언어의 영향을 받아 '가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 주변의 다른 소수민족의 경우 모두 송나라 이전 문헌에 나오지만 먀오족만이 유일하게 등장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한 '가뤼'라는 민족이 바로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 때 통제를 받다 산속으로 이동해 먀오족을 형성했고 중국의 한족 문인들이 반란을 일삼는 그들을 야만인이라는 뜻에서 먀오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먀오족 여성들이 입는 치마에 그려진 두 개의 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먀오족에게는 조상이 눈 내리고 얼음이 얼고 밤이 긴 곳에서 전쟁에 패해 두 개의 강을 건너 왔다는 전설이 있는데, 두 강은 중국 황하와 장강(양자강)을 뜻하며 고구려 유민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전설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 밖에 먀오족이 남방 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쌀', '벼'와 같은 도작 용어를 사용하는 점, 고구려 주몽 신화와 마찬가지로 시조가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卵生)신화를 갖고 있는 점, 체질 인류학적 특징이 한국인과 흡사한 것, 조상신의 모습을 나무로 깎아서 동굴에 모시는 것 등 유사한 풍습을 갖고 있는 점 등 19가지 증거를 제시하며 고구려 유민이 먀오족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김 연구원은 "(당나라는)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들만 끌고 갔다"면서 이들은 한족에 융합되지 않고 정체성을 갖고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청나라 초기까지 1천년 동안 자치권을 행사하며 독립된 민족을 이루고 생활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또 "먀오족은 역대 중국 정부의 이민족 정책의 실상을 파악하게 해주는 거울"이라면서 "우리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 중인 중국의 주변 민족에 대한 정책 메커니즘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앞으로 전개될 역사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396쪽. 1만7천800원 -
[연합뉴스] 2011년 01월 09일9일0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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