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의 민족독립운동과 기독교
용정중학교에 가면 운동장 정면에 용정중학교가 있고 우측에는 윤동주 시비 뒤로 대성중학교의 옛 건물이 있는데 1층은 기념품 판매 등으로 쓰이고 2층은 윤동주 교실 등 역사자료관으로 사용되어 현지 교사의 설명으로 연변 독립운동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 학교 출신들은 근대적 교육과 함께 항일정신을 이어받아 수많은 항일운동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이들의 활동은 1919년 3월 13일 반일시위운동, 1920년 최봉설 등이 주도한 ‘15만원탈취의거’, 1920년 6월 7일 홍범도 장군(대한독립군총사령관)과 안무 장군(대한국민회군사령관)이 이끈 봉오동전투, 1920년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북로군정서총사령관)과 리범석 장군(신흥무관학교, 북로군정서교관), 서일 장군(북로군정서총재)이 이끈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뤄냄으로써 민족 자긍심을 키우는 한편, 연변지역을 항일투쟁의 근거지로 공고히 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연변일대 진보적 인사들이 발행한 <민성보>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연변 지역은 민족의식의 수원지로 발전했다. 특히 1931년 9월 18일 일제가 중국 동북지역을 침략하자 연변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추수투쟁, 춘황투쟁 등 반제반봉건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연길, 화룡, 훈춘, 왕청 등 4개 지역에 항일유격대대를 창설하여 항일유격투쟁을 전개했는데, 일본군과 만주군 수백 명을 섬멸한 안도현 대사하전투, 일본군 마에다 토벌대 120여 명을 전멸시킨 화룡현 홍기하전투 등 항일 무장투쟁의 승리를 이어갔다.
연변출신의 수많은 민족지도자들 중 신흥고등소학과 명동학교에서 수학한 영화 아리랑의 감독 라운규,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 및 대성중학 출신으로 ‘재교토조선인학생민족주의집단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1945년 4월 18일 옥중에서 순국한 윤동주의 사촌형제 송몽규, 은진학교와 광명중학 출신의 민족시인으로서 그 해 3월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한 윤동주, 명동촌 출신으로 은진학교에서 윤동주와 동문수학하고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공동번역 구약의 번역자로서, 통일운동가로서 활동했던 문익환과 그의 동생 문동환 등은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을 가르친 스승들은 명동학교를 세웠고 은진학교의 이사장이었으며, 평양신학교에서 수학하여 목사가 된 후 명동교회를 설립하여 목회했던 간도의 모세라 불리는 김약연목사, 1909년에 상동교회 출신으로 명동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근대교육을 실시한 정재면목사. 명동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후에 한신대학을 창설한)김재준목사 등으로서 연변 민족독립운동의 정신에는 기독교정신이 깊이 스며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연변 지역의 기독교는 항일민족독립운동의 산실이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2013. 9. 3 인터넷기독교연구소, 서울신대 겸임교수 박찬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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