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선교민족의 뿌리와 사명

[스크랩] 제천의식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천(天)’ 혹은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

수호천사1 2014. 2. 27. 13:18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천(天)’ 혹은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 겨레가 섬긴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동일한 하느님이셨다.



  다신숭배가 만연한 고대 세계에서 우리 조상들은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성대히 거행하여 다만 하느님을 섬겼다. 더욱이 한국인은 이 하느님(하나님)을 표상하기 위해 ‘우상’을 만들지도 않았다. 오직 제단을 쌓고 천제(天祭)를 드렸을 뿐이다. 단군 조선 시대에는 제천의식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강화도 마리산 산정(山頂)의 참성단에서 행하여졌다.


  백두산은 단군과 조선족이 제천(祭天)하던 곳이고, 우리 조상이 제일 먼저 정착하여 개척한 곳은 지금의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송화강 연안 요동평야이다. 송화는 고대에 소밀, 속말, 소머리 즉 우수(牛首)라고 하였다. 흰 소를 잡아 제천하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소머리라는 지명은 후일 민족이동과 함께 강원도, 춘천, 경주, 그리고 일본 각지로 전파된다(최태영,「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 서울: 눈빛, 2003, p.125).

 

겨레의 성지 강화도 마리산 제천단

  

  산정에서 거행했던 이 제천의식은 고조선 붕괴 후 열국시대(列國時代)와 삼국시대(三國時代)에 계승되어 한결 같이 국중대회(國中大會)로 성대히 치러졌다. 곧 부여는 매 10월에 제천(祭天)하고 주야가무(晝夜歌舞)하였으니 이른바 영고(迎鼓)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예맥은 매 10월에 제천하고 주야가무하였으니 무천(舞天)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마한은 매 10월에 농사를 마치면 국읍(國邑)이 한 사람을 제주(祭主)로 하여 제천신(祭天神)하니 이른바 천제(天祭)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고구려 매 3월과 10월에 제천(祭天)하니 동맹(東盟)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백제는 매 4월 중월(仲月)에 제천(祭天)하니 교천(郊天)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신라는 매 10월에 제천하니 이른바 답지위절(踏池爲節)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다.

 

  하느님께 제사하기 위해 나라 전체가 움직이고, 흰옷 입은 백의(白衣)의 백성들이 다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워하였다. 이 제천의식이야말로 동이문화의 정수(精髓)이며, 우리 문화의 본성(本性)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천(天)’ 혹은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 피조물인 푸른 하늘인가?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동일한 하느님이셨다. 더욱이 그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셨다. 즉 우리 조상들이 섬긴 하느님은 성경의 하느님(하나님)과 속성과 본질이 같은 신이셨다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유일신 하느님(하나님)을 하늘(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이 하느님을 칭할 때 ‘하늘’(天)이라 한 것은 자연물인 푸른 하늘을 절대자로 생각한 것이 아니고 ‘하늘’(天)을 빌려서 절대자를 표시한 것이다. 유대인들도 하느님(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이라고 하였다(눅 15:18). 창세기 19장 24절도 여호와를 가리켜 ‘하늘’(天)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제 우리 겨레가 섬긴 하느님이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속성과 본질이 같은 신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근거를 살펴보자. 그것은 우리 겨레의 민족경전으로 간주되는 「단군 천범」(壇君天範)과 「삼일신고」(三一神誥) 및 고기류 사서인 「표훈천사」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서 확인된다. 이 경전들은 우리 민족의 정통적 종교와 신앙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경전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고대에 한국인은 성경의 하느님(하나님)과 본질과 속성이 동일한 하느님을 섬겼다는 사실을 익히 알 수 있다.


 1) 천범(天範)


  단군의 천범은 고려 말 이암(李巖)[문정공(文貞公), 1296~1364]이 엮은 책 「단군세기」(壇君世紀)라는 사서(史書)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아사달에 도읍하여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한 단군의 이야기를 싣고 있는데, 1세 단군 ‘왕검’으로부터 47세 단군 ‘고열가’까지 대략 2,100년 동안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는 고려시대에 많이 있었던 「고기」들을 토대로 완성한 것이다. 따라서 「천범」은 밝달나라, 곧 조선을 건국한 단군이 친히 조선 백성들에게 전한 한민족의 경전임을 알 수 있다. 천범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오직 제(帝, 하느님)는 일신(一神)으로 가장 높은 일위(一位)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 세계를 주관하시며 수없는 만물을 지으시니 넓고 넓어 쌓이지 아니하는 물건이 없고 티끌 하나라도 새지 않게 하시었다. 오직 제(帝, 하느님)는 일신(一神)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고 천궁(天宮)을 다스리시며, 만 가지 착함과 만 가지 덕의 원천이 되시는 하느님은 많은 영들이 지키고 모시니, 크게 길하고 가장 빛나는 밝은 곳을 말하여 신향(神鄕·하느님의 나라)이라 한다…(중략)…많은 무리들은 오로지 하늘이 내리신 법을 지켜 만 가지 착한 것을 돕고 악한 것을 감하여 본성에 이르면 하늘나라를 볼 것이다. 천범은 하나일 뿐이니 그 문은 둘이 아니다. 너희들은 오직 순수하게 참다움을 다할 것이니 이로써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보게 되리라….”

 

  단군 천범은 가장 먼저 하느님은 일신(一神)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 뿐만 아니라 천궁, 즉 하늘나라에 대해 밝혔고, 하늘이 주신 천법(天法)을 잘 지키라 하였으며 이를 잘 지키면 조천(朝天), 즉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하늘나라에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천범은 오직 하나라 하였다. 이 하늘법은 진리(true reason, truth)와 같아 그 문이 하나이며 모든 것을 지키면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한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연상하게 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천범은 모든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함을 알 수 있다.


  2) 삼일신고(三一神誥)


  삼일신고는 단군 이전 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의 상고사를 서술하고 있는「태백일사」(太白逸史)라는 사서(史書)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조선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였던 이맥(李陌)이 펴낸 것으로, 그는「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玄孫)이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의 삼일신고는 본래 단군의 훈고(訓誥)로 당시의 사관(史官) 신지(神志)에 의하여 기록 되었으며 이는 그 후 은대(殷代)의 왕수극(王受剋)에 의하여 은문(殷文)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둘 다 없어지고 오늘에 전해지는 것은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현금 삼일신고에는 발해 고조왕(高祖王) 대조영(大祚榮·669년∼719년)의 「찬문」―어제삼일신고찬(御製三一神誥贊)― 일편과 그의 아우인 반안군왕(盤安君王) 대야발(大野勃)의 서문이 실려 있으며, 그 후에 3대왕 문왕(文王) 3년(739년)에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가 쓰여 진 사실들을 보아 알 수 있다.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삼일’(三一)은 단군교 계통에서 말하는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강화도 마리산을 보더라도 단군 자신이 삼일의 하나가 아니라 단군이 마리산 천제단에서 하늘, 곧 삼위일체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삼일신고는 인류 시조의 가르침을 문자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세계훈(世界訓), 진리훈(眞理訓)의 5장으로 되어 있는데, 뒤의 두 장은 후대의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앞의 두 장만 살펴보자.


  제1장 ‘하늘’에 대한 말씀 (天訓 천훈, 36자) 


    1절: 하느님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아 파란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만 것도 하늘이 아니니라.

    2절: 하늘은 모양과 바탕이 없으며, 시작과 끝이 없으며, 위아래와 사방이 없고

    3절: 비고 비어서 어디에나 있지 않은 데가 없고 무엇이나 싸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帝曰 爾五加衆 蒼蒼非天 玄玄非天 天無形質 無端倪

           無上下四方 虛虛空空 無不在 無不容   

         

  제2장 ‘하느님’에 대한 말씀 (神訓 신훈, 51자)  


    1절: 하느님은 위없는 으뜸자리에 계시사,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내시고,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시며

    2절: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리심이 없으며,

         밝고도 신령하시어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

    3절: 소리나 기운으로 원하고 빌면 꼭 친히 만나볼 것이니,

         참된 성품으로 그 씨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 머리 위에 내려 임재하시리라.


           神在無上一位 有大德大慧大力 生天 主無數世界 造甡甡物

           纖塵無漏 昭昭靈靈 不敢名量 聲氣願禱 絶親見 子性求子 降在爾腦


  삼일신고는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삼일신(三一神), 즉 ‘삼위일체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고대 한국인이 섬긴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속성과 본질이 같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셨다(이에 관해서는 아래에 설명했음).


  제1장 ‘천훈’(天訓)은 ‘우주론’인데, 하느님께서 내신 하늘의 원리를 설명했다. 하늘은 파란 것도 검은 것도 아니요, 형질도 없고 시간의 시작과 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공간으로서의 상하사방(上下四方)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공으로 표현되는 존재자로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무소불용(無所不容)한 것이 하늘이라고 교훈한다. 공간적인 우주세계를 곧 천(天)이라 하여 그에 대한 설명을 한 것으로 하늘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제2장 ‘신훈’(神訓)은 ‘신론’(神論)으로 하늘이라는 우주 안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창조주 하느님을 설명했다. 이 제2장을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신훈’이 교훈하고 있는 하느님은 실로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동일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① 지존자이시다(사 33:5; 57:15) - “하느님은 위없는 으뜸 자리에 계시사”

  ② 덕이 있으시다(벧전 2:9, 벧후 1:3) - “큰 덕과”(이 말은 하느님의 성품이 사랑과 정  의로 가득하신 분임을 나타낸다. 이교(異敎)의 신들은 덕이 없으며 다만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③ 지혜와 명철이시다(잠 3:19) - “큰 지혜와”

  ④ 능력과 권능이시다(대상 29:12) - “큰 힘을 지니시어”

  ⑤ 창조주이시다(창 1:1, 사 40:26) - “하늘을 내시고”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리심이 없으며”

  ⑥ 만물의 주재자이시다(롬 11:36) -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시며”

  ⑦ 빛이시다(요일 1:5) - “밝고도”

  ⑧ 영이시다(요 4:24) - “신령하여”

  ⑨ 측량할 수 없다(시 145:3) -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

  ⑩ 음성과 마음으로 기도하면 만날 수 있고 임재 하신다(렘 29:12~13 ; 33:3) - “소리나  기운으로 원하고 빌면 꼭 친히 만나볼 것이니…너희 머리 위에 내려 임재하시리라.”


  분명히 고대 한국인이 섬긴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하나님)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제천의식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던 숭배의 대상, 천(天) 혹은 하느님은 성경의 하느님(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었던 것이다. 결코 정체불명의 막연한 ‘하늘님’이거나, 범신론적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 한국인의 선조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의 신인 절대자가 하늘에 계심을 분명히 알았고, 자기네들은 그 하느님의 백성 곧 ‘천손민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바로 그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려고 하늘에 ‘천제’를 드렸던 것이다.


  기독교의 하느님(하나님)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 한민족은 아득한 옛날부터 그 하느님을 믿고 받들고 섬겼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외래 종교가 아니다. 한민족은 고조선시대부터 기독교의 하느님(하나님)을 섬겨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시대에 들어온 불교를 전통종교로 인식하고 기독교는 외래종교로 간주하는 것은 아주 큰 무지이며 오류이다.


  유일신을 섬겼던 한민족에 대해서는 한국에 왔던 개신교 선교사들의 기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캐나다 선교사인 게일(J. S. Gale)은 그의 저서「전환기의 조선」(Korea in Transition)에서 “한국인의 신이란 ‘하느님’으로서, 즉 유일하게 위대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James S. Gale, 「전환기의 조선」,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7, p.70).


  헐버트(H. E. Hulbert)라는 미국인 선교사는 그의 저서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순수한 개념으로서의 종교관은 외래적인 의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원시적인 자연숭배와도 거리가 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느님이라는 어휘는 ‘하늘’이라는 단어와 ‘주인’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한자의 ‘천주(天主)’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한국인들은 이 하느님이 우주의 ‘최고 지배자’라고 믿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Honer B. Hulbert, 「대한제국 멸망사」,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9, pp.469~470).


  이외에도 장로교 선교사인 H. G. Underwood의 부인인 L. H. Underwood는「Underwood of Korea」에서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 (the Kingdom of Kokurei)에서는 하느님이라 불리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 … 그리고 유일한 신 하느님은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유일신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신과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신 여호와가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왕하 10:15, 요 5:44, 17:3).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사 3:16).


  헐버트 선교사는 이에 대해 “한국인들은 유일신을 믿으며, 이 하느님에게 부여된 속성이나 권능은 외국의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거의 보편적으로 말하는 여호와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로 한국인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하나님)과 일치하는 하느님을 섬겼던 것이다.


  단군이 백성을 교화하기 위하여 썼다는 이 ‘삼일신고’의 시원(始原)은 여러 가지 문헌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단군이 건국한 조선시대는 물론이지만 그 이전 태초 무문자 시대에 구전하던 글(口傳之書)이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것으로서 ‘삼일신고’는 우리 겨레의 형성과 그 시원을 같이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 표훈천사(表訓天詞)


  우리 조상들은 나라 전체의 행사로서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성대하게 치렀는데, 그 제천의식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천(天)’ 혹은 ‘하느님’은 앞서 살펴본 바처럼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동일한 유일신 하느님이셨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숭배했던 하느님은 단일신이 아니라 삼일신(三一神),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셨다는 것이다.


  다음은 「태백일사」 신시본기(神市本紀)에서 발췌한 글로서, 우리 겨레가 제천의식에서 숭배했던 하느님은 단지 ‘한 분이신 하느님’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한 분의 하느님’이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0월의 제천(祭天)은 마침내 천하 만세의 풍습이 되었다. 이는 곧 신(神)의 나라 특유의 성대한 행사로서 외국에서는 이와 견줄만한 것이 없다. 태백산은 홀로 곤륜산의 명성을 누르고도 남는다. 옛날의 삼신산이라 함은 곧 태백산으로서, 역시 지금의 백두산이다. 대저 그 옛날 신시(神市)의 인문교화(人文敎化는 근세에 이르러 건재하게 행해지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천경신고(天經神誥)는 오히려 후세에 전해진 바가 있는 듯 거국적으로 남녀가 역시 모두 말없는 가운데 받들고 있는 바로서, 곧 인간의 생사는 반드시 삼신(三神)이 주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10세 미만일 때에는 목숨의 안전과 위험, 우환, 잘 나고 못남 따위를 모두 삼신(三神)께 의탁한다. 저 삼신(三神)은  곧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만드신 천일신(天一神)이시다….”


  “저 삼신(三神)은 곧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만드신 천일신(天一神)이시다”는 문구를 주목하라. 만물을 창조하신 천일신(天一神), 즉 하느님을 ‘삼신(三神)’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일신(一神) 곧 한 분이시지만, 그 분은 삼신(三神) 즉 “삼위일체이신 한 분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아래는 한국인의 선조들이 ‘삼위일체 하느님’을 섬겼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삼한시대의 향가이다.


정성으로 천단(天壇)을 쌓고 삼신(三神)을 축수(祝壽)하세.

황운(皇運)을 축수함이여 만만세로다.

만민을 돌봄이여 풍년을 즐거워하도다!

-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

 

  이 향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고대 한국인은 단지 막연한 하늘을 숭배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 향가의 가사를 보면 분명히 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린 대상을 ‘삼신(三神)’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고대 한국인이 숭배했던 하느님은 ‘삼신’,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셨다는 사실이다. 위 향가에 언급된 ‘삼신’이란 ‘삼일신(三一神)’, 곧 ‘삼위일체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선조들은 “하느님은 하나이지만 셋으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삼신이신 하느님’(三一神)을 숭배하였다.

  

  실로 이러한 신의 관념은 고대 세계에서 지구상의 어느 민족에게도 발견되지 않는 한국인의 독창적 사상이었다. 하느님의 존재 양식을 표현하더라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지나(china), 북방 퉁구스, 남방 퉁구스, 시베리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오직 코리아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심지어 팔레스틴의 유대민족조차도 삼위일체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더 놀라게 하는 것은 그 ‘삼신’, 즉 ‘삼일신’이라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성부·성자·성령의 개념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제 고대 한국인이 섬겼던 하느님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셨으며, 더욱이 그 ‘삼위’라는 것도 성경에 계시된 성부·성자·성령 하느님(하나님)과 신학적으로 기능이 일치한다는 사실도 문헌을 통해 확인해 보자.


  그 문헌상의 증거 역시 ‘삼일신고’가 실려 있는 「태백일사」라는 책에서 발견된다. 태백일사는 ‘고기(古記)’를 참고하여 저술하였기 때문에 고기류(古記類)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고기는 고려 이전에 쓰인 사서(史書)로서 단군 조선이나 고구려·발해 그리고 삼국시대의 왕계에 관한 이야기나 종교행사에 대한 설화들을 담고 있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고려 이전에 쓰인 이와 같은 사서들을 ‘고기’라고 불렀다. 그런데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보면 「표훈천사」(表訓天詞)라는 고기(古記)에서 인용한 글이 실려 있다.


   이 「표훈천사」는 고기류 중에서도 단군 조선 때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바로 거기에서 수록한 글에 한국인의 선조들이 섬긴 하느님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며, 그 ‘삼위’라는 것도 성경에 계시된 성부·성자·성령 하느님(하나님)과 기능과 속성이 동일한 하느님(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는 보석같이 귀중한 사실이 서술되어 있다.


  「태백일사」는 조선 중종 15년(1520) 때 왕실의 찬수관으로 일하던 이맥(李陌)에 의해 저술된 책이다. 따라서 그는 왕실의 비서(秘書)들을 쉽게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 사장(私藏)되던 고기류도 접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당시 그는 단군 조선 때부터 전승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고기류의 하나였던 「표훈천사」도 읽을 수 있었고, 「태백일사」를 쓰면서 이 「표훈천사」에서도 일부 중요한 글을 발췌 수록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 「표훈천사」에서 인용한 글에 고대 한국인이 섬긴 하느님이 ‘삼신 하느님’ 곧 삼위일체 하느님이셨으며, 그 ‘삼위’도 성경에 계시된 성부·성자·성령 하느님(하나님)과 개념상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서술되어 있다. 이제 그 「표훈천사」의 글을 살펴보자.


“표훈천사(表訓天詞)에서 말한다.


대시(大始)에 위·아래·사방은

일찍이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 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

상계(上界)로부터 또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곧 한 분의 상제(上帝)시라.

주체(主體)는 곧 일신(一神)이요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며,

쓰임은 곧 삼신이시라.

삼신은 만물을 끌어내시고 전 세계를 통치하실

가늠할 수 없는 크나 큰 지혜와 능력을 가지셨더라.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최상의 꼭대기의 하늘에 앉아 계시니

계신 곳은 천만억토(千萬億土)요

항상 크게 광명을 발하시고

크게 신묘함을 나타내시며

크게 길한 상서(祥瑞)를 내리시더라.

숨을 불어 만유(萬有)를 만드시고

열을 뿜어내어 만물의 종자를 키우시며

신묘하게 행하시어 세상일을 다스리시니라

··· 중략 ···

생각컨데 저 삼신(三神)을

천일(天一)이라 하고

지일(地一)이라 하고 

태일(太一)이라 한다.

‘천일’은 조화(造化)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敎化)를 주관하고

‘태일’은 치화(治化)를 주관하느니라.”


表訓天詞云大始上下四方曾未見暗黑古往今來只一光明矣自上界却有三神卽一上帝主體則爲一神非各有神也作用則三神也三神有引出萬物統治全世界之無量智能不見其形體而坐於最上上之天所居千萬億上恒時大放光明大發神妙大降吉祥呵氣於包萬有射熱以滋物種行神以理世務…중략…稽夫三神曰天一日地一日太一天一主造化地一主敎化太一主治化


  이 글은 구약성경 창세기 1장을 연상시킨다. 특히 “대시(大始)에 위·아래·사방은 일찍이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 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는 구절은 창세기 1:1~2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1~2)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이 글의 핵심 내용은 태초에 흑암 중에서 빛을 내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느님은 ‘단일신’이 아닌 ‘삼일신(三一神)’, 곧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본문은 창조주 하느님은 한 분(一神)이시나, 삼신(三神)이 계신다고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곧 한 분의 상제(上帝)시라. 주체는 곧 일신(一神)이요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며 쓰임은 곧 삼신(三神)이시라.”


  창조주 하느님은 한 분(一神)이시지만 ‘삼신(三神’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 신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주체는 일신(一神)이며 작용은 삼신(三神)이라고 한다. 이는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 양식이 “삼위일체 되시는 한 하느님”이시자, “하나 되시는 삼위일체‘라는 뜻이다. 한국인 고유의 이와 같은 삼위일체 하느님 사상은 저 유명한 아다나시우스 신조(The Athanasian Creed)의 삼위일체론과 어휘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은 것이다.


 “…우리는 삼위일체 되시는 한 분이신 하나님(One God in Trinity)을 경배하며, 하나 되시는 삼위일체(Trinity in Unity)를 경배한다. 삼위의 위격 간에는 혼란이 없으며 신적 존재는 나뉘지 않는다. 즉 성부의 한 인격, 성자의 또 한 인격, 성령의 또 다른 한 인격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Godhead)은 모두 하나이니 그들의 영광은 동등하며 그들의 위엄도 공히 영원하다. 성부께서 그러하듯 성자가 그러하며 성령께서도 그러하다. …성부가 하나님이고 성자가 하나님이며 성령이 하나님이시지만 세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역시, 성부가 주이시고 성자가 주이시며 성령이 주이시지만 세 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가 존재하신다. 우리가 기독교 진리에 의해, 각 인격이 따로따로 하나님이자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반면 우리는 보편적 신앙에 의해, 세 하나님, 세 주님이 존재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세 성부가 아닌 한 성부, 세 성자가 아닌 한 성자, 세 성령이 아닌 한 성령이 존재하신다. 그리고 삼위일체 안에는 전이나 후가 없으며 더 큼이나 더 작음이 없다. 세 인격은 모두 각자와 공히 영원하며 공히 동등하다. 그러므로 이미 말하였듯이 모든 일에서 일체이신 삼위일체, 삼위일체이신 일체께 예배하여야 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내용이 「표훈천사」에 기록된 삼위일체 하느님(三一神) 사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이 A. D. 300년경에 와서야 겨우 감을 잡았던 삼위일체론이 한국인에게는 아득한 옛적부터 있었던 것이다.


  조재국(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는 『한국교회의 전통문화 수용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삼신이 하나의 체(體)가 되고 그 기능에서 셋으로 나뉘어지는 점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비슷하다.”


  우리 조상들은 성경의 첫 장도 기록되기 전인 아득한 옛날부터 흑암 중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삼신 하느님’,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라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 「표훈천사」에 기록된 글이 이 놀라운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표훈천사(表訓天詞)가 말하는 삼신(三神)의 이름 및 기능이 성경이 말하는 삼위 하나님(하느님)의 이름 및 기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표훈천사」는 삼신(三神)의 이름도 밝히고 있는데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라고 했다.


  “…저 삼신을 천일(天一)이라 하고 지일(地一)이라 하고 태일(太一)이라 한다.”


  그리고 각 삼신의 기능과 사역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천일’(天一)은 조화를, ‘지일’(地一)은 교화를, ‘태일’(太一)은 치화를 주관한다는 것이다. 곧 ‘천일’은 조화주(造化主)요, ‘지일’은 교화주(敎化主)요, ‘태일’은 치화주(治化主)이시다.


  “천일은 조화(造化)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敎化)를 주관하고 태일은 치화(治化)를 주관하느니라.”


  여기 「표훈천사」가 교훈하고 있는 삼신의 이름 및 각 신의 주관 사역은, 성경이 말하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 및 그 삼위 하나님의 각 사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먼저 삼신의 이름인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천일, 지일, 태일에서 ‘일’(一)이란 하느님을 뜻한다. ‘일’은 홍수 이전 사람들의 하느님(하나님)의 명칭인 ‘알’에서 ‘엘’(EL), ‘얼’과 함께 가지 쳐 나온 말로서 하느님(하나님)을 뜻하는 ‘알’과 동의어이다. 왜냐하면 하느님(한알님 → 하날님 → 하늘님 → 하느님)은 한 알, 즉 ‘하나’(一)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절대자 유일신을 아득한 옛날부터 ‘알’, 즉 ‘한알님’이라 하였다. 이를 동이문자로 ‘일’(一)로 표기했다. 절대자 ‘알’(한알님)은 오직 한 분 즉, ‘하나’(一)이기 때문이다. ‘일’(一)은 유일신 ‘알’(한알님)에 대한 약식 기호로서 고대 동이족의 문어(文語)이다.


  그래서 천일(天一)은 ‘하늘 하느님’이요, 지일(地一)은 ‘땅 하느님’이시다. 태일(太一)은 ‘사람 하느님’을 뜻한다. 태(太)는 사람(人) 대신에 쓰인 글자이다. ‘설문’에 의하면 ‘대자상인형’(大字象人形), 즉 대(大)자는 사람 형상을 본뜬 글자라고 했다. 두 팔을 펴고 두 다리를 펼치면 ‘대’(大)자가 된다. ‘태’(太)자는 사람의 생식기까지 표시하였으니 더욱 사람 형상을 닮은 글자라 할 것이다. 그래서 태일(太一)은 ‘사람 하느님’이시다. 고대 한국인은 이렇게 ‘하늘 하느님’(천일), ‘땅 하느님’(지일), ‘사람 하느님’(태일)이신 ‘삼신’ 하느님을 섬겼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민족 고유의 사상인 ‘천지인 일체’ 사상이 드러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하늘 하느님’(천일)은 ‘조화’(造化)를 주관하시는 신이라고 했다. ‘땅 하느님’(지일)은 ‘교화’(敎化)를 주관하시는 신이라고 했다. ‘사람 하느님’(태일)은 ‘치화’(治化)를 주관하시는 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하늘 하느님’(천일)은 성경에 의하면 기능상 ‘성부 하나님’과 일치한다! 그는 ‘하늘’에 계시며, 만물의 근원이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조화주(造化主)이신 것이다.


  ‘땅 하느님’(지일)은 성경에 의하면 기능상 ‘성령 하나님’과 일치한다! 성령 하나님은 ‘땅’에서 역사하고 계시며, 그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요 14:26 ; 16:13). 그는 교화주(敎化主)이신 것이다.

 

  ‘사람 하느님’(태일)은 성경에 의하면 기능상 ‘성자 예수님’과 일치한다. 성자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시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열방을 ‘다스리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빌 2:5~11, 계 19:16). 그는 참으로 치화주(治化主)이신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겨레가 섬긴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본질과 기능이 같은 유일신 하느님이셨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본래 하느님을 섬기던 거룩한 백성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겨레는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민족본연의 모습을 속히 회복해야 할 것이다. 실로 그것은 한국인의 가장 긴급한 과제다. 대천덕(예수원 설립자 * 사진)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내가 보기엔 한국은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에게 공동의 선(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 만큼 한국으로서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이다… 교회의 우선적 과제가 그리스도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한국의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이 담당할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한 ㅡ다시 말해서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는 한 그런 한국에 그리스도를 소개한다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대천덕,「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 생명의 샘터, 1987, p.70)

  

 추천도서:


  유석근.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예루살렘, 2005.

  임성빈. 『기독교문화와 한국문화』. 예영커뮤니케이션, 2008.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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