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선교민족의 뿌리와 사명

[스크랩] 야곱과 에서

수호천사1 2014. 2. 27. 13:20

야곱과 에서

 

우리 겨레가 부여받은 영적 장자의 명분(지위)을

에서처럼 경홀히 여기지 말아야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말 1:2~3)


 

 

  

  에서와 야곱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쌍둥이 형제이다. 성경 이야기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하느님(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성경 구절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이야기에서 형 에서는 무척 단순하고 솔직하고 씩씩한 남자다운 인간으로 인상을 받고 야곱은 꾀바리고 거짓말쟁이고 교활한 인간의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야곱을 하느님이 사랑한다고 성경은 기록했을까? 뒤바뀐 논리가 아닌가? 에서가 언제 하느님이 미워한다고 하는 심한 평가를 받을 만한 나쁜 짓을 한 일이 있었는가? 하느님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여기에 우리의 상식을 넘은 성경적 인간관의 특색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의 에피소드를 다시 한 번 읽을 필요가 있다.


  사냥꾼인 에서가 몹시 시장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동생 야곱은 마침 팥죽을 끓이고 있었다. 형은 입맛을 다시며 “그 붉은 것을 내게 먹게하라”고 부탁한다. 야곱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형이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양도한다면 이 음식을 몽땅 주겠다”고 교환 조건을 내놓는다. 그래서 에서는 배고픈 김에 장자권(長子權)과 팥죽을 바꾸고 말았다. 성경은 이 사건에 대하여 중요한 코멘트를 하고 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34절).


  그 당시 야곱과 에서에게 장자권이란 유산상속권 같은 경제적인 의미를 넘은 종교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족장(族長) 이삭의 아들이다. 족장은 정치 경제의 우두머리뿐이 아니라 종교의 대표자였다. 족장은 다음 족장이 될 아들에게 축복의 권리를 물려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 축복을 했고 이삭이 이제는 늙었으므로 장자인 에서를 축복할 시기이다.

  

  이런 중요한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판 것은 에서의 그릇된 인간상을 지적해 주는 사건이었다. 첫째로 에서는 「현실」을 위하여 「이상(理想)」을 판 사람이다. 배고프다는 현실 문제의 해결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족장으로서 가질 높은 이상과 고귀한 꿈을 경홀히 여긴 인간이었다.

  

  여기에 성경이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한다”고 기록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성구 속에 야곱과 에서라는 고유명사(固有名詞) 대신 이렇게 풀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소 교활하고 거짓된 행동도 하였으나

높은 이상을 품고 신앙적인 이념을 확실히 가지고 사는 인간을 사랑한다.

현실적인 만족을 위해서는 신념까지 내던지고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신앙을 둘째로 밀어내고,

고상한 꿈보다는 현실주의의 종이 되는 인간은 내가 미워한다.”

  

  그 후 야곱은 에서의 칼을 피하여 도망쳤다. 창세기 28장에 그가 광야에서 하룻밤을 자다가 꿈을 꾼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이 열리고 빛나는 사다리가 자기 곁에까지 내려오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찬란한 꿈이었다.

  

  고독의 광야, 불안한 현실, 기약(期約)없는 내일, 빈털털이가 된 극단적인 고통의 수렁 속에서도 종교적인 이상만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 야곱의 인간상이 이 꿈 속에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성경이 행실 면에 실수가 많았으나 신앙적인 동경(憧憬ㅡAspiration)을 가진 야곱을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도덕적으로 잘못한 행동은 별로 없었으나 신앙적인 갈망(渴望ㅡThirst)이 없는 에서를 「미워한다」고 표현한 것은 성경적인 인간상을 포착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이다.

  

  야곱의 후손은 이스라엘이 되고 그 속에서 예수가 탄생하였다. 에서의 후손은 「에돔」족속이 되었고 그 후손에서 헤롯왕이 나왔는데 헤롯은 아기 예수를 잡아 죽이기 위하여 두 살 밑의 남자 아이를 몽땅 죽이는 대학살의 원흉이었다. 결국 에돔 족속은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에돔」이란 히브리말의 뜻은 「빨갛다」는 것이다. 장자의 권리를 팥죽과 바꿀 때 “그 빨간 것을 먹게 해 달라”고 말한 데서 ‘빨갱이(The red)’라는 민족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처럼 창조주 하느님을 부정하는 20세기의 「에돔」인 ‘빨갱이’(공산주의)도 70년 만에 소멸했다. 머지않아 세습독재자 김정일이 폭정으로 다스리는 북한 체제도 0 : 7 북한 축구처럼 한순간 무너질 것이다.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계획 가운데 심판의 그날은 정해져 있다. 인류역사를 통하여 등장했던 가장 사악(邪惡)한 이념인 ‘공산주의’를 숭배하는 국가들은 에돔 족속같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빨간 팥죽이라는 이름과 하느님(하나님)과 심각하게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얼마나 거리의 차이가 있는가! 신앙에 입각한 자와 불신(不信)의 차이가 있다. 빛나는 하늘에 소망을 두는 인생관과 어두운 땅에 목적을 두는 인생관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서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에서는 餓死(아사) 직전의 상황도 아닌데 팥죽 한 그릇에 그 귀한 장자의 권리를 양도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국가적인 이상과 이념은 없고 다만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 성장에만 최상의 가치를 두고 있다면 에서와 무엇이 다른가? 높은 이상과 비전이 없이 먹고 배부르면 만족한 자는 살찐 돼지와 같을 뿐이다. 잠언 29:18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말씀한다. 영어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환상이 없는 곳에서는 백성이 망한다.”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에서가 장자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보다 가볍게 여길 때 그에게 장자의 명분을 허락하신 하느님은 아주 불쾌하셨다. 우리 겨레는 욕단의 직계 후손으로서 하느님이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에 은닉해 두신 제2의 선민이라는 영적 장자의 명분이 있다. 그것은 실로 유대인의 시기심을 자극할만한 한국인의 독특한 지위이다. 이는 아전인수격 주장이 아니다. 기록된 계시인 성경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이다. 그런데 집회를 인도하다 보면 간혹 이렇게 반응함으로서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민족이 또하나의 선민이라구요? 그래서 어쨌다는 것입니까?”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그래서 우리 겨레가 제2의 성민이라는 것은 민족적 특수 사명이 있는 것이라고, 그것은 유대민족이 못다한 인류구원의 대업을 마지막 때에 완수하는 것이라고, 이는 새로운 선민주의가 아닌 말씀의 재발견이라고 성경을 통해 상세히 설명했건만 나중에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는 그렇게 완고한 자들의 심령 속에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에서의 영이 있음을 본다.

 

  오, 형제자매여! 에서의 뒤를 따르지 말라! 한국교회는 우리 겨레를 향하신 하느님의 은밀하신 계획에 공손히 반응해야 한다. 하느님이 그렇다 하시면 우리는 다만 아멘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부여하신 독특한 지위 -이스라엘을 시기케 할 제2의 선민- 를 하찮게 여기는 것, 그것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에서의 행실같이 망령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알이랑 민족 한국인은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끝에 감추어 두신 욕단 계열의 성민이다(창 10:21~25). 바로 이것이 한국인의 성경적 정체성이요 구원사적 사명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 선교의 마지막 주자로 쓰실 제2의 이스라엘, 즉 제사장 민족인 것이다. 이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상실된 진리였으나 때가 차므로 발견되고 교회 안에 회복되었다.

 

  한국교회는 이것이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특별한 사실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목적 가운데 우리 겨레가 차지하고 있는 이 놀라운 지위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신 성민 코리아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도록 격동하는 에서의 영을 파쇄해야 할 것이다. 에서의 길을 가는 자마다 그 대가를 치르리니, 그의 거처와 환경이 열악해지고 산업은 파산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말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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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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