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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 제국주의의 도전

수호천사1 2013. 12. 28. 13:33

중국 제국주의의 도전


북한 정권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한반도가 중국에 예속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복거일   



  제국주의적 전통을 지닌 중국의 흥기는 민족주의를 이용한 공격적 제국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중국인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은 점점 더 한국에 대한 반한감정으로 나타난다. 중국인들은 중국의 이른바 ‘백년국치’는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싸운 ‘항미원조’로 막을 내린 것으로 본다. 이런 중국에게 있어 도움을 주었던 북한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발전한 한국은 성가신 존재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야 중국의 무조건적 북한 감싸기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강대국인 중국의 흥기와 관련하여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은 한국의 핀란드화와 묵종적 정책이다. 그리고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항력의 함양을 통해 양보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지금 중국은 거의 모든 면들에서 미국 다음으로 크고 중요하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미국을 제치고 가장 강대한 나라가 되리라는 전망도 자주 나온다. 자연히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도 빠르게 커졌다. 중국의 이웃인 우리는 그 점을 특히 절실하게 느낀다.


  중국의 흥기와 미국의 상대적 쇠퇴


  제국(帝國)은 자연스럽게 제국처럼 행동한다. 따라서 중국은 제국주의를 점점 드러내놓고 추구하면서 “중국중심의 질서(Sinocentric order)”를 세우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대립적으로 만든다.


  중국 제국의 흥기는 미국 제국의 상대적 쇠퇴를 뜻한다. 실은 그런 현상은 보다 일반적인 추세의 한 부분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파리드 재커리어가 “나머지 세계의 흥기(the rise of the rest)”라고 부른 이런 추세는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몫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미국은 아직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다. 역사는 미국의 저력이 대단함을 보여준다. 지난 세기 내내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한 몫은 크고 안정적이었다. 앞으로 다른 나라들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미국의 몫은 점점 줄어들 터이지만, 미국이 갑작스럽게 쇠퇴하리라고 볼 근거는 없다. 실은 미국이 앞으로도 활기차리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국이 어느 나라보다 열린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근년에 미국의 국제정치적 힘은 눈에 뜨이게 약해졌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가 건설이 어려움을 겪자, 국제 정치에서 미국이 지닌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중국의 흥기와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세계 전체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 미국은 역사상 제국주의적 특질을 가장 적게 보인 제국이었다. 세계가 ‘미국 중심의 평화 (Pax Americana)’ 속에서 역사상 가장 큰 번영과 발전을 누린 것은 미국의 그런 특질에 크게 힘입었다.


  반면에, 중국은 제국주의를 전통으로 지녀온 나라다. “중심적 나라”라는 뜻을 지닌 중국(中國)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인종중심주의를 드러낸다. 자신을 “천하(天下)”라고 부르는 관행은 중국이 자신을 문명 세계의 전체라고 여겨왔음을 보여준다.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중국의 제국주의


  앞으로 중국은 제국주의를 더욱 공격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중국의 공산당 정권이 민족주의로 자신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민족주의는 궁극적으로 제국주의의 모습을 하게 마련이다. 중국은 1970년대 말엽 덩샤오핑(鄧小平)의 집권 시절에 명령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골랐다. 공산주의의 핵심인 명령경제를 버림으로써 공산당 정권은 전제적 통치의 정당성을 완전히 잃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자신이 잃은 정당성을 민족주의를 통해서 되찾으려 한다. 토머스 크리스텐슨(Thomas Christensen)의 적절한 표현대로, “중국 공산당은 이미 공산주의자가 아니므로, 그것은 더더욱 중국적이어야 한다.”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전제적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공산당 정권의 시도는 대체로 성공했고, 그런 성공은 대중의 민족주의를 한층 거세게 만들었다. 경제가 발전해서 자유에 대한 중국 시민들의 열망이 커지면, 공산당 정권은 민족주의를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북돋우어진 대중의 민족주의적 열정은 중국 정부가 공격적 제국주의를 추구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살펴야 한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품은 생각과 감정을 알아야, 우리는 그들을 움직이는 심리적 힘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보다 현명하게 중국과 교섭할 수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보인 비우호적 태도는 이 점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경기에선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이 펼친 경기마다 중국 사람들은 상대를 응원했다. 걱정스럽게도, 이런 현상은 경기장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두 나라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중국 사회의 전반적 현상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물론 여러 원인들에서 나왔다. 직접적 원인은 한국이 중국의 문화적 유산을 가로채려 한다는 인식이다. 그런 인식은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강릉 단오제’가 중국의 .단오절’과 같다는 오해에서 비롯했고, 여러 문화적 유산들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면서 널리 퍼졌다. 근자엔 인터넷에 터무니없는 얘기들까지 나돌아서 부정적 인식이 깊어졌다.


  자체로는 사소한 그런 일들이 폭발력을 지닌 것은 문화적 유산이 중국의 민족주의적 열정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근대에 중국의 처지가 비참했으므로, 중국 사람들의 정체성과 자존심은 긴 역사와 훌륭한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동양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폄하로 이어진다.


  이 점을 가늠하는 데는 중국 사람들이 일본을 보는 눈길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중국 인권운동가 웨이징성(魏京生)은 영국 역사가(歷史家) 이언 부루머(Ian Buruma)에게 “동양은 중국이다. 일본은 그저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The Orient is China. Japan is just an appendage)”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중국 지식인들의 평균적 인식을 대변한다. 비록 중국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중국 문자를 쓰지만, 일본은 결코 중국과 같을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중국에 복속한 적이 없고 한때는 중국보다 훨씬 우월한 지위를 누렸고 아직도 사회 발전에서 훨씬 앞선 강대국 일본에 대한 인식이 이렇다면, 중국 지식인들이 한반도와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떠하겠는가?

 

  중국의 대한반도 인식과 반한감정


  게다가 지리적․역사적 조건들이 그러하므로,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크든 작든 ‘역사적 권리(historical entitlement)’가 있다고 여긴다. 고대에 고조선이 한에게 멸망한 뒤 그 땅은 한의 영토가 되었다. 그 뒤 역대 왕국들은 대개 중국의 지배적 왕조들에게 칭신(稱臣)하고 조공했다. 고려 중기 원에게 패전한 뒤 원이 중국을 지배한 시기에 고려는 원의 영토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정황이 민족주의 감정이 한껏 높아진 중국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여길 수는 없다. 우리 자신들은 천 몇 백 년 전에 우리 역사에서 떨어져나간 만주를 아직도 ‘발해의 고토’로 여기지 않는가?


  불행하게도, 역사적 정황은 중국 사람들의 민족주의적 열정을 한국에 대한 반감으로 바꾼다. 위대한 문명의 후계자인 중국은 동양에서 줄곧 지배적 위치를 누려왔다. 중화(中華)라는 말이 가리키듯, 중국은 늘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겨왔다. 외족에 정복되면 정복 왕조를 자신의 역사에 편입해서 중심적 지위를 지켰다. 19세기에 유럽 문명과 마주치면서 그런 세계관은 무참히 무너졌다.


  1842년 아편 전쟁에서 져서 홍콩을 영국에 넘긴 뒤부터 1945년 일본이 2차대전에서 져서 중국에서 물러날 때까지, 중국은 서양의 강국들과 서양 문명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에 시달리면서 갖가지 굴욕을 맞보았다. 스스로 “백년국치(百年國恥)”라 부르는 이 경험은 중국이 바깥세상과 교섭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규정했다. 지금 중국이 보이는 거센 민족주의는 그런 역사적 치욕을 씻어내려는 열망의 분출이다.


  “백년국치”는 일본이 물러난 1945년에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일본에 이긴 나라는 미국이지 중국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중국을 대표한 것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이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내세울 만한 일은 한국 전쟁에서 미국과 싸운 일이다. 그래서 공산당 정권은 중국이 한국 전쟁에서 미국에 “승리”한 것을 “백년국치”의 실질적 끝으로 여긴다. 가장 강력한 나라를 공격하고도 휴전으로 끝냄으로써 중국은 실제로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휴전 바로 뒤에 마오쩌뚱 자신이 “3년이 지난 뒤 우리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한국 전쟁에 관한 근년의 중국 저술들은 중국을 “자비로운 승리자”로 그린다. 그 전쟁의 중국 이름인 “항미원조” 전쟁은 승리와 자비를 담았다. 많은 중국 사람들에게 한국 전쟁은 “백년국치”의 끝과 “신중국”의 탄생을 가리킨다. 오늘날 한국 전쟁에서의 “승리”는 이처럼 많은 중국 민족주의자들의 자존에서 중심적이다. [피터 헤이스 그리스 (Peter Hays Gries), <중국의 신민족주의: 자부심, 정치, 그리고 외교 (China’s New Nationalism: Pride, Politics, and Diplomacy>]


  그런 자부심에 비기면, 한국 전쟁에서 중국이 치른 엄청난 비용은 – 15만 명이 넘는 전사자들, 20만 명이 넘는 부상자들, 그리고 엄청난 전비는 – 그리 큰 희생이 아니었다고 중국은 여긴다.


  중국에게 있어 발전된 한국은 성가신 존재


  문제는 자신이 한국전쟁에서 “이겼다”고 주장하는 중국에게 한국은 성가신 존재라는 사실이다. 중국이 “항미원조 전쟁”에서 이겼다면,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어야 논리적이다. 전쟁의 당사자로 인정하지도 않았던 자본주의 한국은 발전하고 공산주의 북한은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해진 상황이 중국으로선 당연히 곤혹스럽다.


  역사적 치욕을 씻어내려는 중국 사람들의 열망을 고려해야, 우리는 중국 사람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줄곧 북한을 감싸온 중국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을 북한이 저질렀다는 것이 명백해져도, 중국이 북한을 비난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이런 역사적 사정을 고려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우리와 중국 사이의 관계에 튼실한 바탕을 마련해주려면 우리 정부는 중국 사람들의 이런 심리적 지형을 고려해서 정책을 세워야 한다.


  중국과 긴 국경을 공유하므로, 한반도는 중국의 공격적 제국주의의 영향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받는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그늘을 벗어난 적이 드물었다. 근년에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빠르게 늘렸다. 이미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북한은 실질적으로 중국의 속국이 되었다. 한국도 이미 중국의 자장(磁場) 안에 들었다.

 

  한국의 핀란드화와 묵종적 정책


  강대한 나라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작은 나라는 늘 강대한 이웃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일들에서 강대한 이웃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런 과정의 끝은 ‘핀란드화(Finlandization)’다. 핀란드화는 본질적으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존재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힘에서 비대칭적이면, 강대국은 ‘지배적 정책(policy of dominance)’을 고르고 약소국은 ‘묵종적 정책(policy of acquiescence)’을 고르게 된다.


  묵종적 정책을 고른 작은 나라는 큰 나라의 영향력에 세 가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나는 아예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 방식은 작은 나라의 역량이 조직화되지 못하는 경우에 나온다.


  둘째 방식은 정예집단(elite)이 큰 나라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신의 가치 체계를 나라 전체에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강요된 지배(imposed domination)’의 경우, 흔히 괴뢰 정권(puppet regime)이 나온다.


  셋째 방식은 정예집단이 큰 나라에 유화적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의 핵심적 가치를, 즉 자기 나라의 독립이나 자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작은 나라의 체제(regime)가 큰 나라의 그것과 정체성이 다를 경우, 이런 방식은 자연스럽게 채택된다. 자기 나라가 큰 나라에 의존한다는 세력 구조를 인정하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을 찾는 태도이므로, 이것은 적응적이다. 그래서 ‘적응적 묵종(adaptive acquiescence)’이라 불린다. 핀란드화는 적응적 묵종의 전형적 모습이다.


  적응적 묵종의 전략적 개념은 ‘양보(concessions)’와 ‘대항력(counterweight)’이다. 힘에서의 비대칭은 필연적으로 관계에서의 비대칭을 부른다. 그래서 모든 문제들에서 약소국은 양보하고 강대국은 이익을 얻는다. 이런 비대칭적 관계에서 약소국이 얻는 것은 최소한의 가치 훼손을 통한 현상의 대체적 유지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약소국의 강대국에 대한 양보는 기본 질서가 된다.


  그러나 그런 양보는 대항력이 있어야 뜻을 지닌다. 대항력이 없다면,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의 합병이 될 것이며, 적응적 묵종은 적응적일 수 없다. 따라서 적응적 묵종을 고른 약소국은 ‘양보 전략(strategy of concessions)’과 ‘대항력 전략(counterweight strategy)’을 동시에 추구하게 된다.


  우리가 중국의 압도적 영향 아래 살아가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지정학적 요인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중국은 한국에게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나라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면들에서 중국의 뜻을 맞추는 유화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유화 정책은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을 받는다. 힘세고 공격적인 외국에 맞서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외교관들, 종교인들, 언론인들, 대학 교수들이 유화 정책에 늘 매력을 느낀다는 점은 잘 알려졌다. 특히 중국 사회와 정권에 쉽게 접근해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한 근본적 편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편향을 가장 뚜렷이 보일 집단은 기업가들일 것이다. 정치적 긴장은 거래와 투자에 해롭기 때문이다.


  웬만한 우리 기업들은 다 중국에 진출했다는 사정이 뜻하는 것은 자명하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 애쓸 터이고, 그들은 자발적으로 한국에서 ‘중국 로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우리에게 한반도의 핀란드화의 가능성은 실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중국의 흥기와 우리의 대응방향


  우리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흥기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해 좋은 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먼저 현실을 정직하게 살피고 우리에게 괴로운 상황을 인정하는 도덕적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되짚어 나올 길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합리적 대응은 대항력의 함양을 통해 양보를 최소화하는 적응적 묵종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대응해왔다.


  우리의 외교적 대항력과 군사적 대항력을 아울러 증대시켜 줄 나라로는 미국과 일본이 있다. 동남아의 국가 연합인 아세안(Asean)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터이다. 비록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는 약하지만, 아세안은 지정학적으로는 상당한 힘이 있다. 아세안도 중국의 위세를 경계하므로 아세안과의 협력은 우리의 대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교적 대항력이나 군사적 대항력은 사회가 응집력을 지니고 외국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때 뜻을 지닐 수 있다. 스스로 돕지 않는 자들은 누구도 도울 수 없다. 즉 대항력의 바탕은 시민적 대항력이다.


  지금 한국의 시민적 대항력은 약하다. 한국 사회는 여러 면에서 분열되었다. 이념적 분열은 특히 심각하다. 근본적 원인은 물론 북한의 존재다. 북한은 처음부터 남한을 합병하려고 시도했고 한국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으로 오히려 실질적으로 패배했고 중국의 개입으로 겨우 연명했다. 그 뒤로도 줄곧 한국을 전복하고 점령하려 애썼다. 덕분에 북한은 지금 남한에 상당한 지지세력을 지녔다. 그들의 능숙한 선동선전을 통해서 북한은 한국의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효과적으로 키운다. 아울러, 한국의 대항력을 줄이기 위해 북한은 한국 안의 지지세력을 통해서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킨다.


  물론 중국은 이런 사정을 어떤 나라보다도 잘 안다. 중국은 한반도가 분열된 상태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늘 인식했다. 그래서 중국은 큰 값을 치르면서도 한반도가 분열된 상태에 머물도록 노력했고 앞으로도 북한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한국 전쟁에서 중국이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면서 미국과 싸운 것은 바로 그런 인식 때문이었다. 근년에 ‘6자 회담’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북한에게 시간을 준 것도 중국의 그런 배려 때문이었다. 중국의 힘이 커질수록 한반도의 통일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이런 사정이 널리 인식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감을 퍼뜨리고 북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반도가 중국에 예속되도록 하리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은 중국의 浮上에 대한 대책의 첫 걸음이다. 북한 정권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한반도가 중국에 예속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 2010-10-25 ] 


 복거일 / 소설가


  저자소개: 소설가 복거일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작가, 경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비명을 찾아서’, ‘진단과 처방’, ‘이념의 힘’, ‘자유주의의 시련’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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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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