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종말

[스크랩] 가짜신앙, 진짜신앙 9

수호천사1 2013. 12. 21. 15:13

"이상한교회" '한심한' 목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건물을 새로 지어야겠다는 굳은 신념과 더불어, 교회의 부흥과 확장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면서, 좀더 많은 신도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교회성장세미나, 혹은 치유목회 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심한' 목사는 TV에서 신동엽씨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던 중 뭔가 새로운 결단을 하게되었다. 당시에 신동엽씨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좁은 공간에서 고통 당하는 가정들을 찾아가 실내인테리어를 다시 꾸며주고 살기 좋은 집으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TV 프로그램은 좁은 공간을 획기적인 방법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었는데, 그 내용을 시청한 사람들은 실내 인테리어 전문가들의 반짝이는 깜짝 아이디어에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던 '한심한' 목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 교회 성전을 새로 건축하게 되면 정말 멋있는 실내 공간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한 눈에 반해 버릴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겠다고 몇 번이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의 마음 속에 이러한 마음을 주시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한심한'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이상한 교회" 재정 담당 '황당한' 장로와 더불어 장안에 이름난 건축물 전시장들을 둘러보기도 하면서 좀더 멋있는 성전을 건축해야겠다고 벼르면서, 예배당 실내공간만은 좀더 우아하게, 그리고 편히 쉴 수 아늑한 공간으로 꾸미기만 하면, 더 많은 신도들이 자기교회를 찾을 것이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그 교회 '황당한' 장노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설계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내 인테리어가 신도들을 모으는데는 제일 중요한 부분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실내 인테리어가 제일 잘되었다고 소문난 "온세계 제일 중심교회"를 찾아가 실내인테리어 장식들을 구경하기도하였다. 과연 "온세계 제일 중심교회"다운 실내장식에 '한심한' 목사는 감탄해 하면서 큰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최소한 "온세계 제일 중심교회" 보다는 더멋있는 실내 인테리어를 꾸며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아마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목회자들 중에서는 상당부분 공감하시리라 봅니다. 좋은 건물에 좋은 인테리어를 장식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때로는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현대 문명이 갖다준 혜택을 아름답게 선용한다는 차원에서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이긴 하지만, 현대 교회가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신도들을 붙잡기 위한 방편으로, 때로는 역사에 길이 남을 교회 건물을 지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건물을 치장하고 실내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장식하면서 까지 해야되는지는 심사숙고 해야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강대상 혹은 강대상 뒤에 있는 의자마저도 크리스탈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제작한다는 광고를 보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현대 교회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혹자는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건물 실내 인테리어를 장식하는데 엄청난 재정이 투자되었음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아름다운교회에서 아름다운 성가대의 찬양을 들으면서 예배를 보면, 정말 예배 보는 맛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운 건물 외모와 실내 장식이 정말 중요한가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양식있는 어떤 신학자는 오늘날의 제도권 교회 안에 있는 현대 교회를 가리켜 극장식 교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극장식 교회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그 의미를 우리가 제대로 파악할 수만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극장식 교회라고 하는 것은, 교회를 선택하는 자유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실현되는 일방적 부름심에 있지 않고 말씀에 눈먼 신도들의 자유에 달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영화 한 편을 보러, 극장에 간다고 할 때, 극장의 아늑한 분위기를 따라 혹은 영화 내용의 오락성에 따라 우리가 선택할 수도 있고 그렇치 않을 수도 있다는 계산적 사고가 그 마음 바탕에 깔린 모습 속에서 영화를 관람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극장 문화를 접하고 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를 이루어 간다고 하는 일부 신도들이 교회 건물이나 아늑한 실내 공간들을 찾아서 교회를 선택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목사의 설교를 추겨 세우면서 자기네 교회가 최고라는 것을 은연중 알려주면서 교회원으로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모습은, 이미 극장식 교회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이 외쳐지는 곳에는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함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 곳이 어떠한 모습을 갖춘 장소이든 간에, 장소성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복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모습을 단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외모에 더 치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이 앞다투어, 앞서가는 실내장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부인하지 아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일부 목회자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교회가 진정으로 말씀 중심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배당 건축이 일생 일대의 꿈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목사들의 입에서 어떠한 말들이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두고 나오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들이 아니라, 자기의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오는 말씀은 극장식 교회에 물들어 있는 신도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기복적인 설교나 윤리적인 설교를 하기 위하여 감동이 될만한 간증거리나 예화를 아름답게 포장하여 설교하기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목회자들이 자신만큼은 말씀 중심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로마 교회가 아름다운 건축문화를 앞세워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예배당 건축을 시도한 결과로 얻어진 것들이 현대에는 역사적인 박물관 노릇이나 하고 있거나 유물로서의 가치만 간직한 채 관광 명소로서의 역할 밖에는 못하고있는 실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건축 문화가 많은 신도들을 끌어 모을 것이라는 기대는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는 쓸쓸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긴 하지만 교회원은 찾아 볼래야 볼 수 없는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그 아름다운 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광 입장료을 받고 있는 구라파의 텅빈 교회당 모습들을 보십시요. 


교회의 중요성은 구성원들의 유기적인 연합에 있는 것이지, 아름다운 건물이나 실내 장식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빠져나가면 건물은 실상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회자들은 껍데기에 불과한 건축물 외모에 더 치중하고 실내 장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들의 영혼 양식을 위하여 좀더 사려 깊은 말씀 연구에 더 힘을 쏟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예배당 건축을 그렇게도 사모하며 시도하는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이 세상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불로써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장차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벧후3:10절 인용)."라고 말하면서 한 편으로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예배당 건물을 세우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그들을 바라보면 앞뒤가 안 맞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에서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목회자나 성도가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예배당 건축물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더 중요하며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보다는 말씀다운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예배당에 설치되어 있는 장의자는 하나님 앞에 무릅을 꿇지 않겠다는 편의주의 산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것은 극장식 교회가 낳은 또 다른 병폐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편안하게 앉아서 듣고 평가해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위험천만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예배당 장의자를 없애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미 교회 문화 속에 자리잡고 침투해온 편의주의를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할 것인가가 우리들의 과제임을 알아야 할 것이기에 이러한 말씀을 드립니다. 


극장은 영화를 마음놓고 편안히 볼 수 있도록 최대한 편의주의를 추구하는 가운데 관객을 어떻게 하면 많이 동원할 수 있는 가에 초점을 모으고 관객이 호응할 수 있는 영화 한편을 보여 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관객의 호주머니만 털면 그만입니다.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 그들의 삶까지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물론 관객은 그 영화를 보고 감동도하고 눈물도 흘리기도 하지만 그 영화를 통해서 결정적인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기는 힘들뿐만 아니라, 그 영화가 자신의 전체적인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단지 그 날 보았던 감성을 몇 일 정도만 유지할 뿐, 단 발 오락성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영화에 중독된 사람은 더 재미있는 영화를 보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극장식 교회 문화에 젖어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에 부복하기보다는 자신의 비위에 맞는 설교를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명령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은 모두가 명령문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명령은 우리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그만 이라는 권면 사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자발적인 행동을 가지고 반응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게 그 말씀에 대한 가치를 깨닫도록 하기 때문에, 깨달은 자로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아름다운 설교 한편을 듣고 한때는 감동도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이내 잊어버리는 사실을 통하여 그들은 극장에서 영화 한편 보고 입장료(헌금)를 내어주고 나오는 삶의 모습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따라서 그들은 아무리 좋은 부흥회를 참석한다고 해도 그 때 귀로들은 가십거리 유머 예화만 생각날 뿐 진정한 말씀의 의미는 깨닫지 못하고 금새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극장식 교회 문화에 젖어있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 너무나 외모를 치장하면서 까지 사치스러운 예배분위기를 띄우면서 까지 신도들을 한명이라도 끌어 모을려고 하는 발상이 너무나 아타까워서 이글을 띄우는 것입니다. 



개혁교회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신앙적 삶은 어떻습니까? 혹시나 극장식 교회에 물들어 즐기는 예배에 친숙해 있다면 말씀 안에서의 자유와 평강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원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에 들은 알맹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 



출처: remnant7000 카페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예수사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