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야심찬 교회’ ‘허영심’ 목사는 머리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수십억되는 교회당 건물을 짓고 있는데, 은행에서 빌린 대출 이자만 한달에 1,500만원 정도를 교회에서 지출을 해야 하는데, 교회 재정 형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년 열두달 거의 빠짐없이 “심령대부흥회” 강사로 전국 각지를 누비고 있다. 그래서 그가 “부흥회 강사로” 얻어진 수입으로 교회당 건축으로 짊어진 은행 대출 이자를 갚느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오늘도 그는 새해에도 부흥회 강사로 열심을 다 해야겠다는 포부와 결단을 가지고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연하장을 만들어 돌렸다. 물론 연하장의 내용 속에는 새해에도 자기를 부흥회 강사로 초청해 줄 것을 기대하는 글들도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계의 각종 언론에 자신의 부흥회 경력과 앞으로 진행되어질 부흥회 스케줄을, 연말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광고를 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원 밑에 소재하고 있는 “하나마나 기도원” 원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통화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내년 ‘신년축복성회’ 강사로 와 달라는 부탁이었는데 최근에는 기도원을 찾는 신도들이 예전만큼 못하므로 기도원을 운영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강사 사례비를 낮추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말은 들은 ‘허영심’ 목사는 몹시 불쾌했다. 자신의 인기도를 너무나 과소평가하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그래서 ‘허영심’목사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하나마나 기도원’ 원장의 간곡한 부탁에 약간의 사례비를 깎아 주기로 하고 흔쾌히 승낙했다.
‘허영심’목사는 전화를 끊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은행이자를 생각하면 강사비를 깎아 준 것이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많은 고민을 하며 잠을 청하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는데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래서 ‘허영심’목사는 무릎에 손바닥을 탁 치며 얼굴의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었다. ‘허영심’목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하나마나 기도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통화 내역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내년 초에 ‘신년축복성회’를 열기 전에, 금년 마지막 ‘신년대망 축복성회’를 열면 좋겠다고 제의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마나 기도원’ 원장은 의외로 신통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이러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요즘 기도원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내용과 함께 연말에는 각종 행사가 교회들마다 끼어 있고, 성도 개개인 마다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 때문에 기도원을 잘 찾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신년대망 축복성회’를 열어 놓고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 말을 들은 ‘허영심’목사는 사람을 모으는 것은 염려 말라고 했다. 기도원 측에서 홍보만 잘해주면 사람 채우는 것은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약속하기를 집회를 열어, 재정 적자를 보면 강사 사례비를 받지 않기로 하고, 대신에 흑자를 낼 경우에는 기도원측과 ‘허영심’목사와 4:6의 비율로 재정을 나누어 갖도록 합의를 보았다.
이러한 약속을 한 ‘허영심’목사는 ‘신년대망 축복성회’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열심을 내고 있었다. 특히 그가 소속되어 있는 ‘부흥회 강사 협의회’ 회원 목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자기가 강사로 인도하는 ‘하나마나 기도원’ ‘신년대망 축복성회’에 회원교회 성도들을 꼭 참석시켜 달라는 주문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는 갑작스런 일주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금번 성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자기교회가 짊어지고 있는 은행 대출금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의 기도의 내용 속에는 이러한 것도 있다. 은행에서 대출한 이자를 갚지 못해서 계속 연체가 되면, 결국 신축한 교회당 건물이 은행으로 넘어가서 한 푼도 건질 수 없게 되면, 자기는 망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교회가 없어지면 하나님의 구원사역도 끝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손해를 보는 것이니, 꼭 성공적인 성회가 되어지도록 간구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신년대망 축복성회’가 시작되는 첫날 ‘하나마나 기도원’ 원장과 ‘야심찬 교회’ ‘허영심’목사는 가슴을 졸이며, 집회에 참석할 성도들이 얼마나 올 것인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집회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자 ‘허영심’목사의 얼굴에는 안도하는 모습과 더불어 회심의 미소가 가득하였다. 생각보다는 의외로 많은 청중들이 참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내 요란한 전자 악기의 주악에 맞추어 ‘허영심’ 목사가 할렐루야를 외치며 강단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일성이 온 강당에 메아리 쳤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2005년을 대망하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모든 사업위에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신년대망 축복성회를 빛내주시기 위해서 ‘부흥강사 협의회’ 회원교회의 당회장 목사님들께서 많이 참석해 주심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거기에 참석한 목사들 중에는 ‘이상한 교회’ ‘한심한’목사, ‘천하제일 교회’ ‘왕대포’목사도 눈에 띄었다)
“오늘 이 은혜로운 자리에 함께 동참한 성도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함께하여 한분도 빠짐없이 여러분의 소원이 해결 받고 돌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어지길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이 때 영적으로 눈먼 신도들은 아멘! 아멘! 계속 외쳐 댄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의 자리에 초청해도 나오지 않는 성도들은 자기가 받을 복을 자기 발로 차버리는 병신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은 참으로 복되신 분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밤에 물 붓듯이 쏟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해결 받고 치유의 역사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결박하고 있는 사단의 역사가 물러나서 새해에는 여러분의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축원해 드립니다”
각설하고 여기에서 ‘허영심’목사의 설교를 요약해서 들어보기로 하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설교 본문은 역대상 4장 9절로부터 10절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에서 나오는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은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입니다”
“저는 오늘 집회를 준비하면서 일주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집회에 참석해서 하나님의 그 크신 축복을 받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오늘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이 자리를 참석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즉각적으로 응답을 받은 축복인 것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본문에 나오는 야베스 처럼 기도하는 자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는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두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라고 기록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복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린아이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울지 않으면 어미의 젖을 쉽게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어미는 우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늘 창고를 열어 우리에게 물 붓듯이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항상 대기하고 있지만 문제는 성도가 하나님께 매달리지 못하고, 입을 넓게 열어 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복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 보다 존귀한 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 항상 그의 소원을 간구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존귀한 자로 여김을 받을려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매달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존귀한 자로 여김을 받을 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복에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돕지 아니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인 우리를 분명 도와주시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컫는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년에 새 소망을 꿈꾸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여러분의 소원 가지시고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매달려서 야베스처럼 복에 복을 받고 지경을 넓혀 나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겪는 환난과 근심이 모두 사라져서 하나님께만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신년대망 축복성회’라고 일컬어지는 ‘허영심’목사의 집회 설교는 대충 이러한 내용입니다. 언뜻 보면 본문에 충실한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말씀의 본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기도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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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시중에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야베스에 관련된 성경구절은 구약성경 역대상 4장9절~10절 까지의 단, 두구절 밖에 없는 짧은 내용입니다.
역대상 4:9~10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런데 이 두구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방대한 내용의 책을 써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니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생각되어집니다. 아마도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기도에 관한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쓰여 졌으리라 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두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또한 그 의미 속에는 기도하는 성도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마땅히 가져야할 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 기도를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한 모습으로 나간다면 분명, 그것은 기복주의 신앙에서 나오는 잘못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의 기도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라는 기도의 대 명제를 늘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도의 소원은 항상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빌2:13) 속에서 성도의 기도는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 위한 기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야베스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이를 해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야베스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쫒아 기도했다는 증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제 그 의문을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야베스의 기도가 나와 있는 역대상 4장 10절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는 그가 존재하고 있었을 당시의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야베스가 살고 있었던 시대 상황은 성경 속에서 확실하게 언급을 하고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믿을 만한 증거는 있습니다. 그것은 야베스의 기도가 나와 있는 역대상 4장 1절이하의 말씀 속에는 유다 지파의 족보가 나오고 있는데, 그 족보 내용 속에서 유다의 후손들을 써 내려가는 도중에 9절과 10절 사이에 야베스에 관련된 기록과 함께 그 유명한 야베스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 족보에 나와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연대를 측정해 보면 성경학자들은 대체로 야베스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시기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측정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을 주의 깊게 상고해 보면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와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했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는 완전한 정복을 이룬 것이 아니어서, 아직도 정복해야할 땅이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한 것으로 보고, 아홉지파와 반지파 에게 땅을 제비 뽑아 분할하여 각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수14:2).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여호수아는 당시에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가운데서 가나안 땅 전체를 분할하여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제비를 뽑아 미리 나누어 주었을까?......여호수아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근거로 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믿음은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 가나안 땅은 정복되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쉽게 말하면, 오늘날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했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국지전이 남아 있는 모습과도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적인 전쟁은 이미 대세가 기울고 항복한 상태지만, 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어느 한 지역에 남아서 끝까지 저항하는 세력들의 모습을 연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과거 우리나라의 6.25전쟁의 모습 속에도 나타난바 있습니다. 이미 전쟁이 끝나고 휴전선이라는 경계가 그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지리산에서는 여전히 빨치산의 산발적인 전투가 남아있는 형태와 비슷하다고도 할 것입니다.
아무튼 당시의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비를 뽑아 각 지파별로 분할 할 때에 유다 지파에 속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하기를 자기네 지파만금은 제비를 뽑지 않고 자기들이 거할 땅을 지명할테니, 지명한 그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달라고 지명한 땅이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헤브론 땅이었는데(수14:12), 이렇게 갈렙은 자신이 지명한 헤브론 땅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이유를,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을 해석함에 있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머물 때 모세는 가데스바데아에서 12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10명은 그들이 탐지한 땅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 살고 있으며, 또한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과 자기들을 비교하면 자기들은 메뚜기 같아서 도저히 승산이 없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은 패배할 것이고, 그 땅은 결국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시를, 모세와 온 이스라엘에게 보고할 때에, 온 이스라엘 백성은 울부짖으며 모세와 아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민13:32~14:3).
그러나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10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그들이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울 뿐만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서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더불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정탐보고를 하였습니다(민14:6~10).
하나님은 이러한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특히 갈렙에게는 장차 그가 정탐하고 돌아온 땅, 곧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헤브론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민14:24).
때문에 훗날,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요구하기를 자기가 속한 유다 지파만큼은 제비를 뽑지 않고 옛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 곧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는 헤브론 땅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수1412). 그래서 여호수아는 당연히 갈렙에게 헤브론 땅을 허락하였는데, 문제는 이 헤브론 땅이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점령하지 않은 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갈렙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은 꼭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장차 아낙자손들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그는 믿음을 통해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의심 없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을 믿고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땅을 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갈렙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장차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갈렙의 신앙을 염두에 두고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도 갈렙의 신앙과 다를 바 없는 개인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자기의 지경(地境)을 넓혀 달라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야베스가 존재하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하던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야베스의 기도가 실린, 역대상 4장 1절 이하의 내용은 갈렙이 속한 유다 지파의 족보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 야베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야베스는 유다 지파에 소속된 사람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야베스는 자기 지파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헤브론 땅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싸워서 지경을 자꾸 넓혀 나가야하는 중대한 시기에,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기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정당한 기도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다른 지체들과 싸워서 지경을 넓혀가는 과정 속에서 겪는 환난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야베스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여 나가는 과정 속에서 겪는 환난을 제거하기 위한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허락하신 것이지, 야베스가 무조건 자기의 세상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야베스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시기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하리라(수1:3~6)”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성실히 수행해 나가는 과정 속에 나타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 약속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 졌고(왕상4:25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장차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횃불 언약(창15:7~21)의 성취를 통해서도 이미 드러났음을 이해하면서 야베스의 기도가 순전히 개인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베스의 기도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사업이 번창하고 자기의 미래를 보장 받기 위한 성공적인 삶을 살기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기 위한 기도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끝)
추신 : 야베스의 기도 본문을 글로써 쉽게 이해시키기에는, 말로서 설명하는 것보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저로서도 답답함을 느낌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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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예수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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