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우리의 생활 이광호 목사
1. 머리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워진 그 교회는 세상의 다른 어떤 단체와도 구별이 되며, 여타 종교에서와 같은 소위 종교적 신앙 본산의 의미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성경은 교회를 두고,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것으로 말하고 있는 만큼(행20:28) 그 값지고 존귀함이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 태어난 성도들은 그 교회에 속해 있으며 그와 더불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 관한 구체적 성격을 정리하고 그 거룩한 공동체와 '나'와의 관계를 잘 조망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2. 교회란 무엇인가?
1)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묘사하며 (마9:15, 막2:19, 눅5:35) 교회를 신부로 표현하고 있다(계21:2, 9:22:17참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라고 함으로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성격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있을 거룩한 혼인잔치와 그 때 어린 양을 신랑으로 맞아 연합할 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계19:6-8).
교회는 신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엡5:25). 아울러 그 교회는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해야할 것을 말하면서 "뱀이 그 간계로 이와(하와)를 미혹케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 하노라"(고후11:3)며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정결하고 거룩해야 하는 것은 내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오늘날의 교회가 외적인 치장과 성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내적인 순결한 상태를 중시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신랑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끊임없이 올바른 권징을 시행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자라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드레스에 온갖 패물들을 주렁주렁 달고 보란듯이 자만한 신부보다는, 오히려 순결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는 소박한 눈물 많은 신부를 더욱 사랑하실 것이다.
2)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창구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 나라는 민주적 국가를 의미한다기 보다도 하나님의 왕국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렇게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교회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0절에서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 수 있음'을 증거함으로써 교회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 보여야만 한다. 그에 대한 여부가 교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의 한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풍성하게 잘 나타내 보일수록 교회다운 교회일 것이요, 반대로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 세상의 일만 나타내 보인다면 올바른 교회라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교회라는 창구를 통해 점점 확장되어 가며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히2:12)는 시편의 노래를 인용한 히브리서 기자의 기록에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 찬송 받으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나라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 얼마나 확실하게 표현하며 역사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3)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
교회가 하나님 중심이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말과 동일한 뜻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각처에서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일컫고 있다(고전1:2).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의 가장 중심에는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치하고 계시며 그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연합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 인정되고 교회는 그의 몸으로 인정되는 것이다(엡1:22,23 ; 5:23, 골1:18,24등).
진정한 교회는 지도자 중심이나 특정 인물 중심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제도나 조직, 또는 이념 중심의 공동체도 아니다. 교회의 목적하는 바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사를 소유한 직분자나 조직이 필요할지라도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활동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떤 형태로라도 인간적 계급사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교회는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로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므로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인 것이다. 만일 지상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는 단체로서의 모임이 있다면 이미 참된 교회로서의 기능은 상실당하고 만 것이다. 그 모임을 두고 모든 사람이 교회라 부르고 인간적인 사랑과 동정이 풍부하여 혹 칭찬이 자자하다 할지라도, 그리고 세상적 의미의 정의를 위해 투쟁하므로 사회에 무수한 유익을 끼쳤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 우리의 영생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이 실재로 중심에 모셔져 있지 않다면 이미 참된 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여야 한다.
4) 교회는 경험 중심적 공동체가 아님
원래 인간은 경험적 존재다. 그러므로 자기가 경험한 것은 일단 받아들이게 되고 옳든 그르든 간에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것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의 그러한 경험적 가치 기준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이야기 한다. 이는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므로 그 부패한 존재로 부터 올바른 경험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는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위되는 단체가 아니다. 이것이 교회와 다른 일반 단체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사회의 일반적인 단체들이 인간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그 단체들을 나름대로 이끌어 가지만, 교회는 오히려 이와 반대로 인간적인 경험을 가능한 한 배제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중심이며 그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모든 것을 가늠하고 해석하며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즉, 교회내에서의 모든 경험은 성경과 올바른 조화를 이룰 때라야만 진정한 가치를 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성경에 대한 순종으로 말미암는다.
따라서 교회는 인간적 경험을 모체로 하는 단체가 아니므로 결과에 가치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과정에 그 가치기준을 두는 공동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참된 교회는 유능한 소수 인재의 두뇌와 경험과 지도력으로 말미암아 세워져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그 권위에 순종하는 연약한 성도들을 통해 성장해 가는 것이다.
3. 교회와 성도의 삶
1) 교회생활과 교회중심의 생활
교회생활과 교회중심의 생활은 그 의미가 다르다. 교회생활이란 지교회에서의 하나님과 성도들간의 교제 및 사역을 포함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하며, 교회중심의 생활이란 성도의 전생활 영역을 포함한 그리스도인의 모든 분야에서의 삶 자체는 교회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생활은 다른 단체 활동과는 전혀 다르다. 교회는 하나님을 중심한 비계급사회이므로 특수한 생활질서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 질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가운데 인간들이 만들거나 생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부터의 계명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교회에 밑으로부터 확립된 특별한 계급의식이 존재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의식이 불필요한데도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람들의 이성에 따른 질서유지 노력이나 그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일차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교회생활의 기초는 오로지 확고한 진리 위에 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이어야 한다(요13:1-7참조). 그 기초위에 끊임없는 개혁을 위한 성경적 교훈과 적용들이 생활로서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생활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지체로서의 삶이 적용되어야 하며, 교회중심의 생활은 자신을 위한 원리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2) 교회에서의 성도의 의무
하나님의 성도가 교회생활 가운데서 해야만 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곧 신앙의 도리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게 되므로 신앙생활의 기초를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 해야할 중대한 사명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성도들간의 교제이다. 이 두가지가 제대로 잘 이루어질 때 교회는 복음전파와 구제 및 봉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함으로 세례를 받아 입교인이 되고 성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그 교회의 한 지체가 된다는 선언과 고백이요 약속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의 지체가 된 성도는 그 공동체와 운명을 같이하게 되는 것이다(고전12:26,27).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교회가 목적하는 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교회가 선하게 정한 모든 약속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어야 하고 정성과 노력을 드려야 하며 물질을 바쳐야만 한다. 그러한 자기 헌신은 어떤 강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기쁘게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거룩한 교회의 지체됨을 깨달아 주어진 직임을 잘 감당할 때 교회가 교회다와 지는 것이다.
3) 교회에서의 성도의 권리
교회에서의 성도의 권리란 국가법 차원의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즉 자기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행사할 수 있는 특정한 권한이나 자격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도는 교회의 모든 교제와 선한 일에 참여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도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뿐 아니라 교회 행정이나 정치에도 기도와 관심을 통해서, 그리고 공동의회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권리는 국가정치나 행정에 참정권을 가지므로 얻는 권리와는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가 교회의 일에 동참하는 것은 자기 목적이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세상에서 굳건히 서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는 성도라면 누구나 그 깨달은 대로 교회에 대한 개혁의 음성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개혁의 의지가 성경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성적 생각이나 경험 때문이라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칠 것이라는 추측이나, 하나님은 이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사고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머무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고집되는 권리라면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장되어야 할 참된 권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피차간 성경의 구체적인 교훈에 따라 그 권리들을 누려감으로써 교회적 유익이 되게 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곧 조직이나 제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4)교회를 통한 성도의 사명: 교회에 속한 성도의 사회적 역할
교회는 세상 가운데 존재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세상의 도전을 받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전투적인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사실 그 전투는 교회의 지체를 이루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인 각 성도들이 치루어야 할 세상과의 거룩한 전투인 것이다. 그렇지만 전투라고 해서 힘겨루기나 주도권 쟁탈과 같은 성격은 아니다. 어쩌면 늘 지는 것 같으면서, 연약한 것 같으면서 종국적 승리를 안은 전투일 것이다. 성도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세상의 조직적인 제도나 이념 따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사역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이다. 사탄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온갖 계략을 다쓰고 있으며 세상을 궁극적인 악을 향해 몰아붙이고 있다. 사탄의 그러한 형태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거의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 때로 그것이 선한 것처럼 보일찌라도 분명한 해악일 수 있는데, 이는 사탄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나기 때문이다(고후11:14).
그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빛과 소금의 직분을 도덕적인 성격만으로 규정지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와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교회는 결단코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개혁을 이룩하기 위한 직접적 추구나 투쟁보다는 오히려 그 사건이나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또한 교회를 올바르게 지켜 나감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 유익을 끼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대사회적 역할은 그 쪽에서는 정열적으로 역동하는 복음적 사명이어야 할 것이다.
4. 교회와 '나'와 선교단체와의 관계
우리 주위에 파송 선교단체을 비롯한 학원선교 단체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그 선교단체들 가운데 하나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그 선교단체들이 다 건전하다면, 지향하는 바 성격이야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가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이 그 목적일 것이다. 그래서 그 선교단체들을 통해 많은 성도들이 일정기간 양육을 받기도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회와 선교단체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가장 중심에 두고 있다면, 선교단체는 복음사역이 그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개체교회의 지체로서 속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선교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개체교회에 속해 있지 않는 이들이 혹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선교단체의 존립목적은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돕기 위함이며, 사역의 편의상 독립해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선교단체들의 배경은 교회이어야 하며, 학원선교단체는 회원들을 잘 양육하고 훈련시켜 교회에서 성실히 일하도록 일깨워 줄 임무가 있는 것이다. 선교단체는 일정기간 말씀과 기도로 동역하며 목적하는 바 폭넓은 안목을 갖게 하여 그들이 교회를 섬기는데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즉, 선교단체는 교회가 잘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지 자신을 잘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때로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는 회원들 가운데 보면, 교회에서의 활동은 등한시하거나 거의 무시한 채 선교단체의 일에만 매여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자기가 어느 개체교회의 성도이기 때문에 갖는 의식이나 자부심 보다는 어느 선교단체에 속해 있는 것이 훨씬 큰 비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선교단체의 각종 집회나 모임에는 모든 열의를 다 내면서 (입교인으로)소속되어 있는 교회의 공집회인 주일밤 예배나 수요일 예배는 아무런 생각없이 지속적으로 불참하면서도 거리낌 조차 없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 대학들에 선교단체들이 매우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그러할지라도 각 회원들은 교회와 선교단체와의 관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하며, 그래야만 올바른 신앙적 처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와 선교단체 사이에서의 신앙행위와 활동에 대한 모든 순위는 교회가 우선이며, 선교단체에서의 활동은 마치 특별활동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신 은사는 일차적으로 교회를 통해 활동되어져야 함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이 관계를 균형있게 이해하므로 교회와 그리고 '나자신'과 선교단체에 유익을 끼쳐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우리의 주변에 십자가로 표시된 교회들이 너무 많은가? 사실은 그것도 부족하다고 인정되기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직임을 다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러면서도 그 교회(개체교회)가 흔하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 속에서 덜 귀한 것으로 부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날의 상당수의 많은 교회들이 교회로서의 본질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재구실을 못하고 있는 실정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잘못된 경우나 부분은 실질적인 교회의 일부가 아니다.
우리는 실재적인 교회가 얼마나 값지고 존귀한 공동체인가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거룩한 공동체라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의 머리되심을 신앙적인 삶으로 인정한다면 그 앞에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어느 누구도 그 보배로움을 과소평가하거나 아무렇게나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경험에 따라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움직여 보려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닌 줄 안다. 어쩌면 그들은 나름대로의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직분을 맡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책임있는 일꾼들이 되어야 할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무엇인지 올바르게 깨달아 주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시점에서 부터 올바른 교회관을 가져야 하며, 교회와 나 그리고 선교단체의 관계 속에서 무리함이 없이 주님을 잘 섬기는 교회의 지체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강력하게 표현되고 나타나길 기도한다./창골산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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