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칼럼> 소외계층에 대한 선교의 구상

수호천사1 2012. 12. 21. 19:55

소외계층에 대한 선교의 구상



지난
번의 글에 라오스 소녀의 엉덩이에 있던 징그러운 문신을 이야기하였다. 문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이는 누구에게 남자들의 노리개로 팔려 것이다. 동남아 저개발국에서 자주 접할 있는 일이다. 성직자 분들은 이런 것까지 아십니까 바로 사회 밑바닥에 깔린 숨은 이야기들을 아십니까?


내가
이런 계층에 관심을 가지게 동기는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옛날 부평역전 쪽에 불우여성들의 직업재활교육원이 있었다. 물론 건축 관계로 알게 되었던 곳이지만 그곳은 불우여성들을 가두어 놓고 재활의 직업교육을 시키던 곳으로 설계가 진행되는 동안 그곳을 자연스럽게 많이 방문을 하였고 그곳에서 녀들과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였던 기억도 있다. 이곳의 원장님은 S여대 재단을 운영하던 분으로 나의 부친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녀들의 구제에 많은 노력을 하였던 관계로 설계와 시공에 경험도 많지 않은 나와 직업재활교육원과 연계된 계기가 되었다.


기간 불우여성에 대하여 눈을 떴다. 그리고 전공이 다른 길이지만 봉사하고 싶었고 아마도 시작이 내가 살아 오면서 내내 저변에 깔리었던 것인지 모른다. 녀들이 밤이면 이성을 향한 욕구를 참지 못하고 몸부림 치는 것을 소위 성직자라고 하시는 분들은 보았는지 묻고 싶다. 그곳을 발로 들어 경우는 없었다. 거의 모두가 경찰의 검문에 붙잡히어 그곳에 인계된 경우였고 그곳을 재활기간을 넘기고 나가면 타의에 의하여서 타락의 늪에 빠지었다 다시 들어 오는 경우보다 자의에 의하여 다시 타락의 늪에 빠지었다 다시 들어 오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재활교육원도 종교의 힘으로 그들을 선도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근원적인 치료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그런 타락의 늪에 빠진 여인을 나의 누이로 오랜 기간 사귀었다. 여인의 눈을 통하여 많은 것을 보았었다.

이러한 연유로 라오스 소녀의 이야기를 마마로부터 듣고 나서 나의 저변에 깔리었던 조그마한 싹이 움트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소녀를 품에 안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가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소녀를 대할 때만이라도 진지하였고 소녀를 구제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여기서 접목시키었던 것이 녀를 다시 교회로 보내는 것이었고 불안해하던 녀도 교회를 찾으며 안정을 되찾았다. 라오스는 국교가 불교이다. 소녀를 위하여 교회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루앙프르방에서 찬송가를 배웠을까?


빠뚜싸이
(독립기념탑)앞쪽에 가면 하얀 우산이라는 프랑스이름을 가진 조그마한 단층으로 연결된 호텔( 호텔의 주인은 라오스 재벌의 사람으로 라오스 경제계의 거물이고 며눌아이는 필리핀 여자로 나에게 교회를 가리켜 사람이다.) 있다. 그곳 뒤편으로 돌아 프랑스식 식당을 지나가면 비밀스러운 교회가 있는데 소녀는 지금도 교회를 다닌다. 그곳에 한국교민들도 여러 사람 다니고 있는데 대부분은 이곳에 있는 외국인과 가족을 위한 것인데 같이 교회를 찾아 소녀는 목이 터져라 잊혀가던 찬송가를 불렀다. 솔직히 음만 알지 라오 말을 모르니 그저 찬송이 계속되는 동안 멍하니 단상을 올려다 보았지만 소녀는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소녀 이야기를 하자( 때는 라오 말을 간단한 말은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소녀와 이야기를 나눌 항시 호주 영주권을 가진 라오스 친구가 있었고 지금도 대부분의 메일은 친구가 번역하여 영어로 보내준다. 지금은 친구의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루앙프로방에는 도시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중턱에는 대부분의 빈민들이 산다. 특히 사회로부터 소외된 계층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여기에 프랑스선교사가 세운 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말이 교회이지 실제로는 어디이고 이곳이 교회라는 흔적은 이전부터 찾아 수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 단지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생활하는 터전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공동사업장에서 같이들 노동을 하며 분배를 일한만큼 나눈다. 어떤 지도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주민 스스로가 공동체를 꾸려가는데 어린아이들을 어릴 적에 이곳 마을회관에 모여 글을 배우고 성경이야기를 듣고 찬송가를 배우며 어른들은 가정에서 그들의 아이들과 범사에 감사하며 힘든 일이 닥치면 마을회관을 찾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태국어로 성경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라오 말과 태국어의 관계는 라오 말이 태국의 변방언어 정도로 태국에서도 그리고 라오스에서 받아드려 진다고 한다.


그들이
그런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닌 프랑스선교사의 노력의 결과였다고 한다. 처음 지역은 우범지역으로 농촌에서 특히 아편의 삼각주라는 북쪽 지방에서 도회지로 몰려 빈민들이 모여 살면서 마약, 인신매매 그리고 매매 등을 일삼으며 하루 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선교사가 들어 것은 마을이 형성되고 얼마 지난 후였는데 처음에는 마을 외곽에 프랑스식 식당을 운영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차례 개축을 계속하면서 지금의 방가로 콘도로 성장하였지만 모든 일손을 그곳 주민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생활의 질을 개선하면서 콘도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로 성장시키면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그곳 아이들을 도심지로 보내어 공부를 시키고 커서 돌아 것을 인내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지금 그곳의 모든 운영은 마을 주민들 스스로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소외된
계층에는 이러한 방법도 하나의 선교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인니에 도입 접목한 것이 바로 표본을 이곳에서 빌리어 왔다. 처음 인니교회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많은 헛고생도 하였다. 그러나 방법을 접목시키면서 현재까지는 곳만 바라보며 가고 있다.

 

|출처/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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