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적 전환의 선교학적 의의에 대한 서평
문상철 (한국선교연구원/kriM)
히버트 박사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의 핵심에 인식론적인 변화가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인식론적인 문제는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이슈이다. 인식론적인 틀 자체가 변한다는 것은 복음 사역의 환경이 크게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히버트 박사의 이번 책은 21세기초 복음 사역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1. 실증주의의 한계
히버트 박사는 먼저 한계 상황에 달한 실증주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실증주의는 상당한 기간 동안 지배적인 인식론적 구조로 작용해 왔다. 사물에 대한 인식을 사진처럼 정확하게 할 수 있다고 보는 이 관점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관점은 상황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타종교에 대해서도 단순한 흑백논리로 배타적으로 대하며, 종교간 이해와 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실증주의는 성경적 인식론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실증주의적 인식론적 입장은 아직도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인식론적 구조는 교리적 차이가 갈등으로 치닫게 하고, 타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가지게 하며, 상황화를 금기시 하는 풍토를 조성할 수 있으며,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인식론적 입장은 포스트모더니티에 들어서면서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인식론적 완고함이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적 인식론적 입장을 추구하면서 실증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신세대를 잃어버리고, 그들에게 의미있게 복음을 전할 기회들을 박탈당하고 말 것이다.
2. 개념도구설의 한계
히버트 박사는 실증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개념도구설의 한계도 지적하고 있다. 개념도구설은 사실상 실증주의보다 더 일관성이 없고, 타당성이 없는 인식론적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념도구설이 인간의 자율적 사고 능력을 의심하고,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을 강조하고, 상대주의로 흐르고, 문화간 패러다임의 이질성을 부각시키며, 로고스중심적인 계층구조를 타파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그 결과로 대두되는 것은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기존 구조의 해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은 상황화의 필요성을 극도로 강조하지만, 지나친 상황화 (excessive contextualization)에 이를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종교적 다원주의와 혼합주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개념도구설은 실증주의 이후의 인식론적 대안이 될 수 없다.
교회 안팍에서 개념도구설은 새로운 인식론적 입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고 있지만, 교회는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교회안에서는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는 기성 세대와 이에 반발해서 개념도구설을 받아들이는 신 세대 사이에 양극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갈등 상황 속에서 우리는 두 인식론적 입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성경적인 인식론적 입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겠다. 신 세대는 실증주의에서 개념도구설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성 세대는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두 인식론적 틀이 모두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둘 사이에서 새로운 방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3. 비판적 실재론의 희망
히버트 박사는 실증주의와 개념도구설의 중간적인 입장인 비판적 실재론의 입장을 보다 성경적인 인식론적 입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진리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인식론적 오류의 가능성을 시인하는 입장이다. 달리 말하면 이 입장은 모더니즘의 객관성 (objectivity)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주관성 (subjectivity) 사이에서 교류주관성 (intersubjectivity)을 제시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오류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존재하고, 인간은 객관적인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적 기능은 사진과 같은 정밀성은 아니지만, 지도와 같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정도의 기능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초월적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하며, 상황화를 하면서도 혼합주의에 빠지지 않고 소위 비판적 상황화 (critical contextualization)를 하게 하며, 종교간 이해와 대화를 하면서도 본래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한다.
비판적 실재론은 실제적으로 교리적 차이로 인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교리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유하는 복음의 진리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실재론은 개념도구설에 빠진 신 세대에 대해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비판적 실재론은 상황화에 대해서도 과도한 상황화에 대한 우려를 덜면서 건전하고 균형있는 상황화를 시도할 용기를 준다. 한국 교회는 이제 신 세대 문화와 외래 문화의 도입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황화의 노력 없이는 복음을 의미있게 전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상황화를 경계하는 기성 세대와 상황화를 겁없이 하는 신 세대 사이에서 우리는 비판적 상황화로 타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판적 실재론은 양극화와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을 준다. 비판적 실재론은 타종교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간 대화와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우리는 타종교에 대한 전투적인 대항 자세로 인해 진정한 성육신적 사역을 하지 못하는 한국 선교의 약점을 보아왔다. 비판적 실재론은 진정한 성육신적 섬김의 선교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4.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역
히버트 박사는 개념도구설에 대한 대안을 서둘러 제시하고 있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개념도구설을 받아들이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히버트 박사는 암묵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오래 갈 수 없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각보다 오래 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모던 실험은 건축학에서는 빨리 지나갔지만, 문학 등에서는 생각보다 오래 가고 있다. 대중 문화에 있어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 점에서 필자는 히버트 박사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다. 만약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각보다 오래 간다면,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어진 환경 (the givens)으로 생각하고 사역해야 할 것이다. 히버트 박사는 이런 관점에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었다.
스탠리 그렌즈 (Stanley Grenz) 박사는 포스토모던 시대에 우리가 강조해야 할 복음의 측면으로서 초개인주의적 복음 (A Post-Individualistic Gospel), 초이성주의적 복음 (A Post-Rationalistic Gospel), 초이원론적 복음 (A Post-Dualistic Gospel), 초지성주의적 복음 (A Post-Noeticentric Gospel)을 강조한 바 있다 (Grenz 1996, 172). 이런 제안에 대해서는 히버트 박사도 상당 부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초개인주의적 복음의 측면은 히버트 박사가 말하는 해석학적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초이성주의 및 초지성주의적 복음은 감성에 호소하고 전인적인 감동을 주는 사역의 필요성, 역시 공동체적 복음의 구현을 통해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초이원론적 복음의 측면 역시 히버트 박사가 말하는 “복층식 기독교” (split-level Christianity)의 한계를 극복해서 보다 온전한 기독교의 모습을 드러내어야 할 필요성을 지적한 것이라고 본다.
이에 더하여 마이클 글로도 (Michael J. Glodo) 박사가 말하는 스테레오적 접근법 (a stereophonic approach)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Glodo 1995). 즉, 로고서 언어와 미쏘스 언어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고 이 모두를 사용하는 접근법을 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본문의 장르와 청중의 성향에 따라서 한편으로 논리적 언어를 쓰고, 다른 한편으로 그림 같은 내러티브와 상징적 표현들을 사용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황에 따라서 변증적인 접근을 하기도 하고, 이야기체적 (story-telling) 접근을 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지나치게 편승해서 미쏘스 언어만 사용하고, 내러티브적 접근만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점을 드러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런 스테레오적 접근법은 필자가 보기에는 히버트 박사의 비판적 실재론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보다 명시적인 제안을 히버트 박사로부터 받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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