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와 평신도전문인 선교 - 21세기 선교상황과 선교사의 소명
최 창 웅 |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 대덕 한빛 교회 시무 장로. GPTI 대전지원 협동원장
1. 21세기 선교상황
복음이 한국 땅에 전래된 이래 비교적 짧은 기간의 복음화를 통해, 1909년에는 평양신학교 1기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선교사로 파송 되는 일을 하게 된다 1907년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을 다녀간 세계 학생 운동의 지도자요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인 존 모트(John R. Mott)는 귀국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민경배 1983,267~68):
한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는 지금 전국적으로 영적인 부흥운동의 불길이 휩쓸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만일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이 만큼의 속도로 계속 성장하게 된다면, 한국은 근대 선교 역사상에서는 완전히 복음화 된 유일한 비기독교국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대 각성과 부흥운동으로 교회가 일치 단결하고, 선교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착수하게 되지만, 그러나 교회의 계속적인 성장과 비례해서 선교가 같은 수준으로 증가하지는 못했음을 교회의 성장과정을 통해서 보게 된다. 이러한 양적 증가 일변도의 현상을 한국 교회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하였으나(옥한흠 1998, 22~33) 그러나 선교에 있어서는 1990년대부터 해외 선교사가 급속도로 증가함으로써 이제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한국의 해외 선교사는 9500여명에 달하고 있다(김성욱 2001,107). 따라서 한국은 선교 대국으로 인정 받게 되었고, 선교 대상 지역의 상황 변화에 따라 이제는 전문성을 지닌 직업적 선교가 선교를 주도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00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선교대회의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에 파송 된 한국인 선교사 가운데 25%이상이 평신도 선교사로 보고 되었다(그러나 한국 전문인 선교협의회가 1999년 5월에 국내의 78개 파송 선교단체와 9개의 교단 선교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된 선교사 5,398명 가운데 평신도 선교사가 3,083명으로서 평신도 선교사가 57%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됨.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 편집 2000, 220~24). 이처럼 평신도 전문인 선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특히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 현지의 상황이 전문인 선교사만의 입국이 가능토록 변화 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선교사보다는 전문인 선교사가 계속적으로 증대 되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이 같은 실제적인 선교사 수요와 선교 대상지역의 복잡한 상황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준비되고 훈련된 전문인 선교사로 구비 되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2. 선교사의 소명
2.1 선교사
선교사라는 단어는 ‘보내다’(라틴어 mitto, 헬라어 apostello)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12제자를 사도(apostle)라고 불렀고, 이 말이 80회 이상 사용되고 있는데, 단 한번 예수님께 대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히3: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므로 최초의 사도이셨고 12사도의 머리이셨다. 12사도는 주님께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았고 사도적 권위를 부여 받았으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도록 보냄을 받았다(마 28:18~20). 그렇다면 오늘날의 선교사는 12사도와 동일한 계층에 속하는 것일까?
허버트 케인은 기독교 선교이해(Understanding Christian Missions)에서 오늘의 선교사는 ‘이류급의 사도(바나바, 디모데, 실라 등)’에 가깝다고 하였다. 이들 이류급의 선교사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으며 성령이 그들에게 지시하는 데로 옮겨 다녔다(행 8:26,29,39; 16:6~7).(허버트 케인 1997, 29~30) 그는 선교사란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전통적 의미에서 선교사란 말씀과 기도 사역을 전임하도록(행 6:4) 하나님에 의해 부름 받은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롬15:20) 지리적 혹은 문화적 경계를 건넌(행22:21)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닐지라도 성경적인 것이라는 장점을 갖는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의미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되는 틀 안에서 보다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임 사역의 개념을 목회자와 복음 전도자 그리고 선교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정의에 의하면 헌신적인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그 들의 직업에 상관 없이 기독교 전임 사역자라는 것이다. 허버트 케인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전임 사역자라면 이제 말할 것은 이것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선교사이다. 그러나 스티븐 닐(Stephen Neill)은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라면 아무도 선교사가 아니다 라고 경고 하였다”(1997, 30).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이라거나 증인이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라는 말은 옳지 않다(1997, 31~32). 우리는 선교사가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때 그가 다른 신앙인들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단순히 그가 색다르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선교사가 고향에 머물고 있는 목사나, 심지어 평신도보다 영적으로 반드시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문화적(Cross-cultural)상황에서 선교사는 자기가 다음과 같은 몇몇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였다: 1)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이다; 2) 그는 진리의 사자이다; 3) 그는 사랑의 사도이다; 4) 그는 평화의 사절이다; 5) 그는 문화의 운반자이다(1997, 33~43).
2.2 선교의 소명
선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1차적으로 점검 대상이 되는 것은 과연 소명을 받았느냐-하는 사실이다. 소명은 받지 못했을지라도 선교에 대한 간절한 열정으로 선교 현지에 나가게 되면 사역하는 기간 중에라도 소명을 받게 된다는 것이 훈련 현장에서 이해되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허버트 케인의 설명을 정리하였다(1997, 44~ 53).
1)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
선교의 소명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내가 소명을 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소명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이 진지하고도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바라는 헌신 된 그리스도인 들에게서 자주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태도가 있는데, 한편의 극단에서는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소위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대개 이 것은 목소리나 환상이나 꿈이나 다른 신비적인 사건들과 관계 있는 것으로서, 이러한 신비적 경험이 없다면 선교 사명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모든 사람은 그러한 경험을 열심히 구하고 그 것을 경험할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편의 극단은 모든 그리스도인 들은 선교사이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소명도 요청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말하길, “만일 당신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비행기에 올라타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당신의 일을 행하시오. 시간, 장소, 소명, 성직 등과 같은 사소한 문제에 초조하지 마시오. 다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라 믿으시오.”
이 두 가지의 극단적 견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첫번째 주장을 옹호하는 자는 집에서 편안히 앉아서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두 번째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은 선교 사역지에서 종종 유익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소명(부르심)이란 신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기독교적 봉사가 아닌 기독교적 삶을 언급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반적 소명이 있는데(롬9:24~26),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명확하게 되었다(눅 5:32).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롬1:7). 그리고 그러한 소명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롬 8:30). 그 외에 2차적 소명(기독교 사역에 대한 소명)이 있음을 케인은 말한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 직업을 버리고 베드로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오직 헌신했던 것처럼 모든 시간을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만 부여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롬 1:7), 모든 사람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다(고전 12:29).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가 진정한 사도였다고 주의 깊게 지적한다(고전 9장). 그는 하나님의 뜻(고전 1;1)과 부르심(롬 1:1)에 따라 사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명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으며(고전 9:16~18),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에게 부여된 것도 아니었다(갈 1:1). 그러므로 소위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은 선교 소명이 전혀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이 있기 수년 전에 이미 선교사였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 소명은 과연 어떠한 성질의 것일까? 그것은 전혀 신적인 소명이 아니었고, 단지 도움을 요청하는 인간적 부름이었다. 그 부름은 하나님이 아닌 마케도니아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간청이었다. 이 사건은 선교 소명과 전혀 상관이 없다. 단지 그 것은 이미 전임의 기독교 사역에 들어선 사람에 대한 인도 하심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마케도니아 소명과 선교 소명이 동일시 되어왔다는 것은 참으로 큰 오해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2) 선교의 소명
사실상 ‘선교의 소명’이라는 용어는 잘못 만들어진 용어로서 성경적이지 못한 것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고자 소망하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일종의 신비로운 ‘선교 소명’을 기다렸지만, 하지만 그러한 소명은 결코 생기지 않았고 결국 얼마 후에는 기다림에 지쳐 버리고 선교지로 가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종류의 소명도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가? 전임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역에 대한 소명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라고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저희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좇으니라”(마 4:22)고 성경에 기록되었다. 누가는 동일한 사건을 이렇게 묘사했다: “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눅 5:11).
이 ‘소명’은 그들의 이전 직업을 확실하게 중단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직업,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직업으로 그들을 나서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들이 동시에 사람을 낚는 어부와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될 수 는 없었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직업이 ‘더욱 고귀하고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전적으로 다른 직업이었다. 현대적 용어로 이것은 ‘전임 기독교 사역’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임적 개념의 소명은 주님에 의해 보다 강화 됨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 주여, 내가 주를 좆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하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1~62).
3) 인도 하심과 소명의 비교
전임 사역에 대한 소명과 인도 하심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사도행전 16장에서 본 ‘마케도니아 소명’이 소명이 아니라 단지 인도 하심 인 것을 살펴 보았다. 소명은 일생에서 한 번 온다. 그리고 일단 소명이 이해되고 순종 되면 번복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도 하심은 일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이방인에게, 베드로를 유대인에게 보내셨다(갈 2:7~8). 또한 윌리암 케리를 인도로,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아프리카로, 허드슨 태일러를 중국으로 향하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에 따라 그의 종들을 배치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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