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과 동역으로 예루살렘까지
편집자주 - 이 내용은 지난해 연말 한국을 방문하였던 시님 연합 대표인 쉬형제의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쉬형제는 시님 연합의 다섯 명의 장로 가운데 한 명으로 서방으로 망명하였다. 현재 세계 각국을 돌면서 중국 교회와의 연합과 중국 가정교회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보안을 요하는 부분과 민감한 사항들은 삭제하였다.
서두
먼저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한국은 이미 선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역할과 지위를 확보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말씀, 사역과 실천,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중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의 영적 부흥을 허락하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같이 핍박과 고난과 역경을 거친 교회들입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교회처럼 사랑을 나누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거듭 받아왔으며 한국인은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인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의 고난을 통하여 그들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민족성이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믿음 안에서 요동치지 않는 굳센 믿음을 갖고 있음도 보았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매진하고 있음도 보았습니다. 세계 각 나라, 어느 민족에게 가든지 한국선교사들이 있었고 선교 사역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한국 기독교인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중국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
한국 기독교인들이 선교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교사가 없는 동안 중국에서 신기하게 역사하셨습니다.
1949년 정치적인 변혁으로 당시의 모든 선교사들은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국내 사역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순교를 당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감옥에 투옥되거나 해외 망명을 떠났으며,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믿음을 버리고 육신의 삶을 좇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당신의 모든 일을 위한 테스트 과정이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믿었던 기독교인들조차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1958년 농촌지역이, 1964년에는 도시지역의 모든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1967년 상해와 북경, 두 곳에 있던 교회도 결국은 핍박 속에서 폐쇄되었습니다.
교회를 모든 폐쇄한 후 장청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위치로 돌아가시오. 중국의 기독교는 이미 역사박물관에 있습니다.”
그 당시 중국의 영적 상태는 창세기 1장의 말씀처럼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에 싸여 있었습니다. 삶의 희망도 목적도 잃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악한 세력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국인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기독교인에게 가하진 핍박 속에서 고통은 더해만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갖고 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희망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마치 어둠 속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불빛과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두 세 사람이 모여서 조용하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의 심령은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보이지 않는 어떤 신이 자신들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은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복음은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기 중국 전 지역에 기독교 열기가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시나 농촌 어디에서든지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단은 중국 정부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사역자들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사단이 방해하려고 했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1980년대 중엽 중국기독교인들은 국경과 국경을 넘나들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사명을 중국인들의 어깨에 강하게 얹어주셨습니다.
1950년까지 시난 전도단은 작은 짐과 양식을 꾸려서 내지로 해서 국경까지 복음을 증거하며 다녔습니다. 그들이 신강의 카스까지 이르렀을 때 중국 대륙을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었고 공산당원들은 기독교인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우고 감옥에 투옥시켰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복음에 대한 사명은 더 강해지고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국 교회의 부흥
언젠가 위엔즈밍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중국 교회가 부흥되었습니까?” 저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5가지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첫째, 중국 교회의 부흥은 전통적인 교회의 행정과는 무관합니다. 정통교회는 이미 파산된 상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중국 교회의 부흥은 삼자교회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는 정치적인 분류로 기독교와 정치권의 교량역할을 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삼자교회는 순수한 기독교를 저지하고 막는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셋째, 중국 교회의 부흥은 중국의 정치와 무관합니다. 세계 기독교 국가를 보면 기독교의 부흥과정은 정치적인 뒷받침에 의해 발전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오히려 핍박과 고난 속에서 부흥, 성장하였습니다.
넷째, 해외 단체의 도움과 직접적인 참여와는 무관합니다. 해외 선교단체들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성장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기도 외에는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째, 영적인 위대한 인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은 이미 투옥되었거나 순교를 당한 후라 그들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분의 개입이었습니다. 중국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여러 차례 기독교가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 선교사들은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중국기독교인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손을 잡으셨습니다. 중국 교회는 교파나 교단이 없었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순수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초대교회와 같은 형태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삼자교회도 없었습니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 순수한 교회가 일부는 가정교회로, 일부는 삼자교회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개혁 개방으로 해외의 많은 선교단체들이 들어 왔고 사역에 참여하였습니다. 많은 단체들은 열정을 가지고 종파와 교단의 색체를 띠고 기능적인 것과 경제적인 힘을 등에 업고 중국 사역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중국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현장과 현실을 바라보며 계획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오직 열정으로만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교회가 분열되는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중국 교회가 부흥되고 안정되어 보이지만 많은 아픔이 있습니다. 종교와 종파간의 반목이 생겼습니다. 서로 비방하고 훼방하며 합력하지 못하는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외국의 종파를 이루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했습니다.
세 가지의 도전
첫째, 농촌경제의 파산으로 사역자들의 생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농업경제가 상업경제로 변화하면서 농업인구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농촌의 순수한 기반들이 삶을 위해서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교회의 장로나 집사, 심지어 복음의 사역자들까지도 도시로 나갑니다. 정부에서는 농촌인구를 도시로 끌어 들여 노동력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농촌의 경제는 파산 위기에 있으며 교육이나 의료혜택은 받을 수 없으며 심지어 사역자들의 사역비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둘째, 무신론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무신론자들입니다. 그것의 기본원리는 실사구시입니다. 삼자교회를 거점으로 사람을 세우고 법률을 세워서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운영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취급하고 탄압할 것입니다. 2004년 1월부터 12월 사이에 각 지역의 사역자들이 투옥되었습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분명한 죄명을 씌워서 사역자들을 체포하였습니다. 정부 관리들은 지도자들에 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잡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개혁개방과 동시에 선교의 전략과 목표가 중국에서 거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 관심자들이 여러 통로와 수단으로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많은 효과가 있었지만 선교열정과 해외 선교사들의 노하우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부합되는지, 얼마나 연구가 되었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분파와 종교의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갈라놓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있어서 무익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중국의 넓은 땅과 인구,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부흥의 기지가 되고 선교의 기지가 된다면,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 모두는 연합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섭리를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과 사역의 목표를 가질 때 아름다운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중국 교회와 해외 선교단체들이 서로 장단점을 보완해서 협력한다면 하나님이 바라는 선교의 촉진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합이 이루어진다면 각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권과 차후에 예루살렘까지 복음이 선포되어질 것을 원하고 계실 것입니다.
동서 교회의 연합
중국과 한국은 동방지역의 대표적인 나라이며 역사적 배경과 환경이 유사한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한국에 부흥의 축복을 주셨고 한국 땅을 들어 당신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의 영적인 우수한 자질들을 발휘하여 중국의 신실한 신자들을 훈련시켜주길 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실크로드와 세 개의 노선으로 나아갈 것이며 우리의 복음은 동방에서 서방까지 전파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먼저 사용하셔서 선교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사용하고 계십니다.
시대적 분별
몇 년 사이 이미 동유럽권의 정세를 바꾸시고 러시아와 중국의 개혁개방, 중앙아시아의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열방들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우리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천기는 분별하면서 이 시대는 왜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 시대를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길 잃은 어린아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중 양국의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더 열심을 내서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 중국을 주께로 편집부
'선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선교중국의 길, 지식인선교 (함태경) (0) | 2012.06.15 |
---|---|
[스크랩] 중국 선교사, 목회자 위한 선교훈련 지원 요청 (0) | 2012.06.15 |
[스크랩]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 Back to Jerusalem Movement (0) | 2012.06.15 |
[스크랩] 재스민혁명과 선교중국 (유전명) (0) | 2012.06.15 |
[스크랩] 아랍선교 중국선교 (하세중) (0) | 2012.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