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성전에 앉아 있는 불법의 사람

수호천사1 2012. 5. 29. 21:19

666과 적그리스도 [28]


성전에 앉아 있는 불법의 사람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3~4).


  세대주의자들은 불법의 사람의 출현에 대한 바울의 예언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여기에 나오는 ‘성전’이라는 말을 ‘유대인 성전(Jewish Temple)’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이 구절의 의미를 종말에 한 개인적 인물인 적그리스도(단일유럽 대통령)가 나타나 재건된 ‘유대인 성전’에 좌정하여 세계를 호령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가 과연 그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니엘서 2장에서 지적한 바대로 단일유럽 대통령과 같은 인물은 영원히 출현할 수 없다. 또한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성전은 가시적 건물인 유대인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다.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한 바울은 이렇게 썼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 22).


  구약 시대에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성전은 우리들의 몸으로서 성령의 성전인 우리들의 육체이다. 또한 성전된 신자들의 모임, 곧 교회가 성전인 것이다. 이 성전 외엔 신약 시대에는 그 어떤 성전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데살로니가서 강해서에서 오늘날 유대인 성전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여긴다는 것은 엄청나게 시대착오(時代錯誤)적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가? 비록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몇 차례에 걸쳐 그 성전을 모독하는 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예루살렘을 -비록 거기에 신전이 있다 해도- 적그리스도의 전 세계적 운동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은 엄청나게 시대착오적인 듯하다. 그 대신 바울은 몇 번에 걸쳐 교회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묘사했으므로 교회를 언급하고 있는지 모르며, 적그리스도가 기독교계에 침투해서 공략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러한 암시를 깨달았는지는 의심스럽다.”(존 스토트, 「복음․종말․교회」, 정옥배 역, IVP, 1995, p.194).


  실로 예루살렘을 적그리스도의 본거지로 만드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신약 시대는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등장할 것을 암시했던 것이다.


  성경은 스데반을 통해 다음과 같이 교훈한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행 7:48). 스데반은 이어서 이사야 66장 1절을 인용한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내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행 7:49). 성막과 후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시대에 탁월한 위치를 점유했다. 하지만 성전과 성전예배조차도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길 때 하나님은 성전 안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백성이 하나님을 배신하면 성전도 혐오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상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건물이 성전일 수는 없다. 건물은 결코 하나님의 거처가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온 우주를 채우고 계신다. 성령은 특히 신실한 신자 공동체 안에 거주하신다.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엡 2:21)는 말씀은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 성령으로 맺어진 새 언약하에 구약성경의 ‘성전’과 ‘건물’ 언어는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에 관한 묘사로 바뀐다. 그 근거는 예수님 자신이 참 성전으로, 죽음과 부활을 통해 파괴되고 다시 일으킴을 받았다는 사실이다(요 2:29). 그러므로 예수님과 연합하는 자는 참 성전의 부분이 된다.


  만일 누군가 아직도 벽돌로 세운 건물을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이단적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바울은 결코 이단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구원을 완성하신 이후 더 이상 다른 희생이나 제물을 드려야 하는 구약적 성전은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 중의 데살로니가후서의 위치로 봐서, 그 성전은 유대인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라고 결론짓는 것이 온전한 신학적 해석이다. 더구나 데살로니가후서는 교회에 보내어진 편지로서 유대인 성전이 파괴된 AD 70년 이후에 쓰여졌으며, 바울은 새 성전 건물에 대한 언급을 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 2:3~4의 예언은 세대주의자들의 이론처럼 말세에 재생 로마 제국의 단일 대통령으로 등장한 적그리스도가 재건된 유대인 성전에 3년 반 동안 들어가 앉아서 하나님을 모독할 것이라는 교훈이 절대로 아니다. 바울이 의도하는 바는 장차 교회에 배교가 일어날 것이며, 적그리스도가 그 배교 타락교회 가운데 나타나서 하나님을 모독할 것이라는 교훈인 것이다.


  ‘배교’란 말은 그리스어의 apostasia에 해당하며 진실에서 멀어짐을 뜻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에서나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는 ‘배교’가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적그리스도가 흥기할 것이다. 바울은 그 적그리스도를 ‘그 불법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와 같은 결론은 문맥상으로 볼 때도 필연적이다. 문맥을 살펴보라.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바울의 이 예언은 3절 초두의 ‘배교하는 일이 있고’라는 말로 시작된다. 여기서 배교란 성경적 교리의 타락을 말하는 것으로서 타종교나 교회 밖이 아닌 교회 내부에서 발생할 일인 것이다. 배교는 복음을 받은 자들의 배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이교도의 나라에서 출현하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가 알려진 또는 그리스도가 존중된 적이 있는 교회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자리는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다. 그러한 가정은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건축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상충하는 것이며(마 23:28; 24:2; 눅 19:44), 복음에 의해서 이제는 폐지된 레위 지파의 의식이 재시행될 것이라고 하는 성경 구절은 어느 곳에도 없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앉을 것으로 언급된 성전은 영원한 멸망의 저주를 받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교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적그리스도가 침투해 들어가서 그의 가장 성스러운 자리를 만드는 장소는 하나님의 교회인 것이다. 그리고 그 본거지는 바로 ‘로마’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종말론 연구가들이 세대주의자들의 그릇된 이론을 분별없이 수용하여 근일 추진되고 있는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운동을 말세에 3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가 들어가 앉을 처소가 준비되고 있다면서 대단히 큰 종말론적 의미가 있는 현상으로 단정하고 있다.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하든 안하든 그 건물은 결코 신약성경이 의미하는 성전이 아니다. 설혹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한다 해도 하나님은 그 건물을 당신의 지상 거처로 삼지 않으신다. 따라서 그것은 아무리 웅장하게 지어도 전혀 성전이 될 수 없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3-4의 실제적인 뜻은 ‘불법의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성전)에서 주(主)로 자처하고 하나님이 가지실 주권을 참람되이 취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바티칸의 권좌에 앉아 있는 로마 교황이다. 교황은 바울이 예언한 ‘불법의 사람’으로서 보이는 배교의 인간적 머리이다. 로마의 교황권의 직을 대표하는 그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있는 죄의 사람인 것이다. 주석가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불법의 사람에 대한 바울의 예언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해석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는 성전에, 지금은 그의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와 함께 계시면서 경배를 받는 것처럼,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적그리스도는 기독교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하고, 신적 영예를 주장한다. 이런 인물에 해당되는 자로서 로마 카톨릭 교황청의 사제들 말고 누가 더 적당하겠는가?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아주 신성모독적인 호칭들이 부여되어왔다: 우리 주 하나님이신 교황- Dominus Deus noster Papa, 땅에 계시는 또 다른 하나님- Deus alter in terra, 하나님과 교황의 통치는 동등하다- Idem est dominium Dei et Papa” (메튜헨리주석, 데살로니가 후서, 기독교문사, p.584).

 

바티칸 교황청


  적그리스도는 ‘앉아’ 있을 것이다. 이는 어떤 의자에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 언어에서 ‘앉는다(sit)’는 말은 권좌에 있음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하나님의 오른편(권위에) ‘앉아(sits)’ 계신다(막 16:19). 예수님은 우리의 최고 권위자이며 오직 한 분뿐인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이시다(딤전 2:5). 바울에 따르면 적그리스도도 역시 권좌에 ‘앉아’ 기만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앉아 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 권위에 실제로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약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엡 2:20). 배교란 교회가 사도적 교훈에서 이탈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배교는 이미 로마교 안에서 오래 전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아래의 도표가 그것을 입증해 준다.

 


  이교에 기원을 둔 비성경적 교리와 행습들이 로마교 안에 가득하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배교하는 일’은 이교도에 의하여 사도들의 교훈을 부패케 하므로 로마 카톨릭 종교가 생겨나게 된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yn Lloyd Jones)는 이렇게 지적했다.

 

  “나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로마 카톨릭주의로 알려진 이 체제야말로 ‘마귀의 가장 뛰어난 걸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체제는 기독교의 믿음과 성경의 가르침에서 심하게 이탈된 체제이므로 나는 주저하지 않고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과 더불어 이 체제를 ‘배교 체제’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디모데전서 4:1~3에서 바울은 후일에 어떤 이들이 믿음을 떠나서 결혼을 금하고 음식을 삼가라고 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 카톨릭의 배교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예언인 것이다. 로마교의 배교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막는 자’였던 로마 정부


  그러나 ‘불법의 사람’, 교황권은 로마 정부가 멸망하기까지는 출현할 수 없었다. 즉 로마 정부는 사람의 영적인 문제들과 정치적인 권세를 다 통치하려는 권력에 굶주린 로마 감독들의 의도를 수세기 동안 견제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살후 2:6~7).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제지하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6절). 바울은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이 제지하는  능력을  인격으로 구체화시켰다. 이 막는 자가 없어질 때 불법의 사람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막는 자’(the restraining force)란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것인데, 실로 로마 제국이 정치적인 세력을 갖고 있는 동안 ‘불법의 사람’(교황권)의 출현은 제재를 받았던 것이다.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는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제지하고 있는 세력은 로마 제국의 권력이라고 상정되는데, 바울은 당시에 그것이 로마 제국의 권력임을 명백히 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 권력이 지속되는 동안 로마 주교들의 독재권 행사가 저지를 받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쇠퇴와 함께 그들의 권세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메튜 헨리 주석, 데살로니가후서)


  바울 당시는 로마 제국의 시대였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제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자 은어(隱語)로서 ‘막는 자’라고 말했던 것이다. 만약 바울이 “로마 제국이 망하고 나면 불법의 사람이 출현한다”라고 드러내어 말했다면 그는 정치범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의 권력을 ‘막는 자’라는 말로써 암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현자에게는 한 마디면 충분하고 암시로 족하다. 암시 이상이라면 위험할 것이다.”(핀들레이)

 

  추기경 뉴먼(Newman)은 “제국의 힘이 800마일이나 떨어진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갔을 때, 로마의 교황은 독립된 주권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한다(「Historic Essays」, 제2권 p. 152). 그리고 재차 그는 설명하기를 “교황권은 로마 제국이 와해되자마자 곧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이 몰락하자 더욱 발전되었다”고 썼다(「Development」, p.152).

 

  세대주의자들은 ‘막는 자’를 교회가 휴거될 때 세상에서 철수할 성령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데, 바울이 성령을 언급하고자 했다면 그처럼 모호하게 말하지 않고 분명하게 밝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령이 세상에서 떠나실 것이라는 구절은 신약 성경 어디에도 없다. ‘막는 자’가 성령이라는 미래주의자들의 이론에 대해 현대 신약신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죠지 래드(George E. Ladd)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들은 교회가 휴거될 때 성령님도 세상에서 떠나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견해를 뒷받침할만한 자료는 부족하기만 하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이 재림시에 세상을 떠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은 없다.”(G.E. 래드 지음, 이창우 옮김, 「신약신학」, 성광문화사, 1988, p.797) 

 

오순절 성령 강림(행 2:1~4)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제지하는 원리인 ‘막는 자’가 로마 제국이라는 해석은 죠지 래드(George E. Ladd)도 다음과 같이 지지한다: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제지시키는 원리는 로마제국이며 제지시키는 자는 황제라고 한다. 이 견해나 혹은 약간 수정시킨 견해는 바울의 신학과 잘 조화된다. 바울은 로마서 13:4에서 통치권을 가진 자를(비록 로마가 이방나라였을지라도) ‘네게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자’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인간적 권세를 제정하셨다. …바울이 살던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권세를 로마 제국과 그의 우두머리인 황제에게 부여하셨다. 바울은 법적인 통치가 붕괴되고 정치적인 질서가 무너지면 더 이상 불법의 원리를 제지할 수 없을 때가 오리라고 예견한다.”(앞의 책 798쪽)


  참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가 권력을 유지하던 상황이, 바로 그 괴물의 활동을 억제하던 실체였다. 그러나 주후 476년 로마 제국이 무너지면서 그 괴물을 억제하던 실체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제국 로마를 계승하여 하나님께만 속하는 주권들을 참칭하며, 왕과 군주와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로마 교황권이 출현한 것이다. 그가 바울이 예언한 ‘불법의 사람’이요, 다니엘이 일찍이 예언한바 ‘작은 뿔’인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 적그리스도의 정체는 무신론자이거나, 한 개인적 인물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세계적인 배교를 시작한 자이며 그것의 현저한 머리이기 때문에(살후 2:3; 계 13:16), 한 번의 짧은 기간의 한 사람의 활동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여러 사람들의 활동인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로마 제국이 붕괴되면 드러날 것이었고, 그리스도의 오심에 의해서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살후 2:8), 논리적으로 적그리스도는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계승하여 이어지는 여러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바로 배교 교회의 머리인 로마 교황인 것이다.

 

그리스도적그리스도

16세기 개혁교회가 그림으로 나타낸 교황과 예수의 대조적인 모습.

왼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제자의 발을 씻기고 있고,

오른쪽에서는 적그리스도인 교황이 독일 황제에게 자기 발에 입을 맞추게 하고 있다.


   바울 시대에 이미 시작된 불법의 비밀


  타락하여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게 한 불법의 비밀은 바울 시대에도 이미 역사하고 있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살후 2:7). 바울은 이미 하나님을 대항하여 활동하고 있는 반역과 배반의 영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벌써 사도 바울은 교회에 침투한 오류들이 교황권의 출현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불법한 사람의 “나타남”은 새로운 사건이 아닐 것이며, 바울이 살던 시대에도 활동하던 영의 최종적인 출현에 불과한 것이다.

 

  거짓 교리가 이미 발전되어 가고 있는 것과 부여되지 않은 권세를 탈취할 것을 보여주는 많은 참조 구절들이 신약 성경에 있다(유 4; 요삼 9; 행 20:29~30; 벧후 2:1; 골 2:8). 사도들이 아직 살아있을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불법의 비밀은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서 점차 거대한 높이로 솟아올라 가시화된다.

 

 

  불법의 비밀은 처음에는 조용히 은밀하게 조금씩 스며들었으나, 세력이 커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게 되자, 그 기만적이고 불경스런 일을 보다 공개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교의 관습이 슬며시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박해가 그치고 기독교가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자, 교회는 이교 사제들과 관리들의 허세와 교만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지녔던 겸손과 단순성을 제쳐 놓았다. 또한 하나님의 요구 사항들을 인간의 이론과 전통들로 대체했다. 이러한 4세기 기독교의 상황에 대해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의 장로교 신학자 뵈트너(Lorain Boettn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4세기 초 서방을 다스리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고… 324년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인 종교로 만들었다. 결과로 신자가 되면 누릴 수 있는 특전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교회가 미쳐 가르치고 동화(同化)시킬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더 화려한 이교 의식에 익숙한 그들에게 단순한 그리스도교 예배는 만족을 주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이교적(異敎的)인 신조와 행습들을 끌어들였다. 성경을 소홀히 함과 백성들의 무지를 통하여 교회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교회라기보다는 오히려 이교의 교회가 되기에 이르기까지 이교 사상은 더욱 더 소개되었다.… 이러는 동안 교회 안에는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고 제사를 드리는 사제(司祭)와 화려한 의식, 성상(聖像)들, 성수(聖水), 분향, 수사(修士)들과 수녀(修女)들, 연옥의 교리, 구원은 은혜보다는 행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신앙이 일반에게 나타났다. 로마제국 전역의 교회들에서도 그랬지만, 로마에 있는 교회는 더 이상 사도적인  교회가 아니었으며, 하나의 종교적인 기형체가 되었다.”(Lorain Boettner, Roman Catholicism. 11)

 

화려한 복장을 한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릇된 성직제도


  이러한 사실은 로마 카톨릭 추기경 뉴만(John H. Newman)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발전」에서도 다음과 같이 확증되고 있다.


 “성당들, 분향, 등(燈), 봉헌물, 성수(聖水), 성일들과 절기들, 행진(processions), 땅을 축복하는 일, 사제의 복장들, 체발(剃髮), 성상(聖像)들, 이 모든 것들은 이교적인 기원(起源)이다.”(위의 책, 10쪽)

 

  4세기 초 콘스탄틴(275~337, 흉상사진) 황제의 명목상의 개종은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세상이 의(義)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 왔다. 이제 부패의 역사가 급속하게 진전되었다. 이교는 가면을 집어던지고 정복자가 되었다. 마침내 교회는 가라지가 차지했고(마 13:24~30), 이교 정신이 교회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 교리들과 의식들과 미신들이 기독교인들의 믿음과 예배에 흡수되었다.


  이교와 기독교 사이에 이루어진 이러한 타협은 바울이 예고한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높이는 “불법의 사람”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거대한 거짓 종교 조직은 사탄의 세력이 만든 걸작품이다. 이것은 용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보좌에 앉고자 기울인 노력들이 낳은 기념비이다. 교황은 온 세계의 주교들과 사제들에 대한 수장권을 위임받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의 가시적 머리라는 것이 로마 교회의 주요 교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교황은 한 술 더 떠서 신의 칭호를 자기에게 적용했다. 그는 “주 하나님 교황”으로 자처하고, 무오성(無誤性)을 주장해 왔으며, 만민에게 경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그리스도를 광야에서 유혹할 때 내세운 것과 똑같은 요구를 여전히 로마 교회를 통해 역설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모든 교황들이 땅 위에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All the Popes claim to be God Almighty upon the earth!!

 

삼중관을 쓴 적그리스도가 가마로 행렬 속에서 운반되고 있다.

(교황 레오 13세, 1878~1903 재위)

 

“전능하신 하나님”이 시스틴 성당(the Sistine Chapel)에서부터 가마로 운반되고 있다.

 

교황 비오 11세의 즉위식 광경, 가마를 탄 교황을 보라.

 

가마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교황 바오로 6세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는 나귀 새끼를 타셨다(마 21:1~9).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참칭하는 로마 교황은 크고 화려한 가마를 탔다.  


  극악한 배교자는 자신을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는데 성공했다(살후 2:4).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은 그의 명저「두 바빌론(The Two Babylons)」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법의 신비는 교황제도로서 구체화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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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그리스도가 점점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도 바울은 삼, 사백년 동안이 아니라 세상 끝날 때까지 전 세계를 흑암에 처하게 하려고 이제 막 일어난 큰 그림자에 대해 가장 예리한 영적인 통찰력을 나타내 보였다.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인 찰스 스펄전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말씀을 읽으면서, “적그리스도라는 혐의로 교황을 체포하라!”고 외쳤던 것은 정당한 행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속에 어떤 사람을 교회의 머리로 임명하셨다는 암시를 주신 적이 없다. 교황 수장권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교황은 찬탈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어떠한 권세도 가질 수 없다.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 속한 고유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교황주의자들은 교황을 교회의 머리로 삼는다. 하지만 교회는 교황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다만 교회의 영적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전적인 통치를 받을 뿐이다. 교황 숭배자들은 교황의 통치를 거부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참된 교회에서 제멋대로 분리해 나간 이단이라고 정죄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오히려 그들 자신에게 적용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깃발을 내리고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유 3)에서 떠난 자들이다.

 

 

미국의 한 천주교 사이트에서 스크랩한 사진, "땅 위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진정한 기독교 교회는 로마 카톨릭뿐이라는 문서를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개신교는 교황의 존재를 시인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올바른 의미에서의 교회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들고 주인을 나무란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교황이라는 존재가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사칭(詐稱)하며 교회의 머리 노릇을 하는 로마 교회야말로 올바른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세처럼 위대한 인물이라도 당신의 대리자로 세우시지 않는다. 왜?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리스도가 받으셔야 할 영광을 필경 그 대리자가 가로채거나 나누어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러한 일을 절대로 허락하시지 않는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인간은 그 어떤 존재도 감히 주님의 영광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사칭하는 교황은 적그리스도(antichrist)로서 오직 예수님만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죄의 사람이다(살후 2:3~4).

 


  ‘적그리스도(Anti Christ)’라는 헬라어는 그리스도에 ‘안티’(Anti-αντι)가 붙어있을 뿐이다. 헬라어의 안티(αντι)라는 용례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해 반대편에 라는 뜻으로서 대적자(against)라는 의미이며,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적자이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안티’의 용례는 딤후2:25, 마5:22, 눅12:58, 18:3, 벧전5:8, 히12:4, 눅13:17 21:15 갈5:17 행20:15) 등이 있다.


  적그리스도의 안티(Anti-αντι)의 두 번째 용례는 ~대신에 라는 뜻이 들어있어 누구를 ‘대신하다’의 뜻이다. 적그리스도는 자칭 예수님 대리자이다. ‘안티(αντι)’가 ‘대신에’라고 표기된 구절은 눅11:11 고전11:15 약4:15, 마5:38, ! 17:27, 히12:2이고 ‘대속물’이란 용어에도 ‘안티’가 표기되었다(딤전2:6, αντι-μερω).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의 대적자이면서도 예수님의 대리자로 행세하고 다니는 자이다.


             1. 안티, anti, αντί= 대적자, 원수(그의 실체)

                                                                      ↖

                                                                    적그리스도(AntiChrist)

                                                                      ↙

             2. 안티, anti, αντί= 대리자, 가장하는 자(그의 외적 모습)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계실 때만 그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부터 적그리스도는 항상 있어왔는데 콘스탄틴부터 오늘까지 교황권이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예수님은 항상 계시고, 교황은 늘 죽지만 다시 새 교황이 한 시대에 한 명씩 계속된다. 그것이 ‘대적자’요 ‘대리자’인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단순히 대적자에만 해당되는 네로, 히틀러, 유럽 독재자는 결코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대리자, 대적자 모두를 충족시키는 안티(anti)는 역사상 교황권 외에는 없었다.


그리스어인 적(anti-)은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 의미는 ‘~에 대한 반대’라는 의미이다.

둘째는 덜 알려진 의미로서 ‘대리’, 대체’ 또는 ‘~대신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이중성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대리자로서 올 것이나,

그의 행위와 말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반대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일치하는 존재는 로마 교황뿐이다.

 

교황 니콜라스 5세

"나는 모든 신들 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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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7:4절에 보면 인침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 14만4천 중에 단지파가 누락되어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한 기독교계의 통속적 해석 가운데 창세기 49:17을 근거로 적그리스도가 단지파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다(이레니우스, 어거스틴...). 즉 적그리스도는 말세에 등장할 한 개인적 인물인 바, 그는 유대인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은 순전히 선입견으로서 유대인을 나쁘게 평가하려는 이방인들의 반유대적 성향에 의해 창출된 것이다. 다니엘서의 적그리스도에 대한 개념은 명확히 이방인을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 적그리스도에 대한 미래주의자들의 교훈은 거짓이다.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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