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 구체적인 전략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약점
[Sergei 선교칼럼] 러시아 선교 사역을 평가한다
2011년 세모, 한 해를 넘기기 전에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사역을 평가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고민하며 현장 사역의 문제를 공론화 해보고 싶은 것이니 참고하여 더 발전적인 계획과 전략이 나오기를 바란다.
종교다원화와 이단
러시아 모스크바 사역 현장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종교의 다원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단의 대거 출현이나 타종교의 두드러진 약진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단의 출현은 항상 있어왔지만 시대가 어려우니 더욱 대담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방송을 통하여, 각종 문서를 통하여 각 대학이나 지방 깊숙이 침투하여 영혼을 노략질하고 있는 실상인데, 현지 목회자들이 그들을 찬양하며 혹자는 이 사람을 아느냐고 묻는 실정인 것이다. 그들이 이단이라고 대답하면 시기하는가라는 생각을 주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무슬림의 확장
금년 모스크바에서는 무슬림의 인구 증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이 있었다. 라마단 기간 공식적인 행사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10만의 인파가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 거리를 점령하여 엎드려 절을 한다. 거리에서 제사의식을 펼치며 양을 잡는 의식을 행한다.
이것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이제는 그들이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세력으로 사회에 부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슬림 성직자 단체가 모스크바에 공식 구성되어 활동을 하고 있으며, 모스크바에서는 일주일에 1시간씩 방송을 임대하여 종교활동을 하던 것이 금년 4월에는 어엿한 방송국을 개국하여서 운영하고 있다. 그들의 선교전략이 얼마나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오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노령화되어가는 현장
고령화 사회는 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선교 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벌써 10여년 넘게 신임 사역자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출산을 하지 않아 후세를 약속할 수 없는 세대 같은 선교지의 현상이다. 비단 러시아의 문제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
각 지역마다 이러한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지만, 러시아의 경우 한때 유행처럼 몰려오더니 이제는 소식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교회의 짧은 선교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선교는 유행이 아니다. 행사가 아니다. 이것은 교회의 필연적인 사명인 것이다.
선교 전략의 부재
한국선교는 대부분 구체적인 전략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약점이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 개척하고 담임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역일 것이다. 사역의 폭을 넓혀 사회봉사를 겸한 일도 있지만 대동소이한 한국인의 선교이다. 이러한 사역이 10년을 넘기고 20년을 넘긴다면 그것은 파국일 것이다. 투자에 비하여 효과도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 교회는 헌금으로 사역을 감당해서인지, 투자와 결과 혹은 경제적인 논리에 매우 약하다.
교인들의 노동의 대가인데도 투자 효과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사람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사역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 한인 선교사 없이도 사역이 진행되도록 전략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선교사는 그 지역에 파송된 영적 장군이다. 그래서 장군의 전략과 시각과 통찰력을 가지고 사역에 임하여야 한다. 장군이 사병의 일을 한다든지, 거기에 묶여 있다면 그것은 이미 실격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사역은 대부분 이러한 울타리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 오늘의 한계상황이 아닌가? 전략 부재의 문제라고 본다.
신학 사역의 부재
초창기의 러시아는 신학교 홍수시대였다. 너도나도 신학교 시대였다. 2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제대로 운영되는 신학교가 하나도 없다. 명맥만 유지하거나, 아니면 집중강의 형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몇 곳 있는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신학교육이 진행된다는 것은 소망이 있는 일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신학사역이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장이 배제된 사역
이것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이다. 한국교회를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국의 문화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국인의 의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계획과 구원사역을 위한 것이라면 지극히 현장의 필요를 채우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
선교사의 필요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명예나 필요가 아니다. 현장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러시아의 경우 많은 사역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가정이 바르게 세워지도록 지원하는 사역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사역은 현장의 필요가 아니라 선교사를 위한, 그리고 한국교회의 필요를 위한 사역인 것이다.
현장의 필요를 살펴보면 러시아는 가정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독신주의와 깨어진 가정, 그리고 과거 공산주의로 인한 역사의 결과이기도 한다. 이들에게 가정의 소중함을 말씀으로 통하여 교육하고 지도자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현장의 요구이다.
러시아 개신교회는 대체적으로 말씀에 약하다. 그러한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 땅에 선교사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러한 부족함과 현장의 필요를 채우는 일일 것이다. 1년에 한 번 손님으로 와서 강의를 진행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정기적으로 계획적으로 현지 어려운 교회들을 방문하여 말씀으로 지도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세워주는 것, 얼마나 멋진 사역인지 아는가? 현장이 배제된 사역이 주종을 이루었다면 무엇인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 편중화 현상
한국인 선교사는 비교적 사역이 쉽고 문화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지역, 복음 수용지역이라는 곳에 대거 사역하고 있다. 긍정적인 것은 한국교회가 방문하기 쉽고, 값이 저렴하고, 사역의 효과를 쉽게 누릴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달콤한 것만 보고 나가는 것은 한국선교의 전략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선진국은 아니면서 고물가와 높은 아파트 임대료, 사회불안 등으로 인하여 기피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전략적인 면에서 아주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한국선교 훈련원이나 교단은 매 기수마다 지역을 안배하여 훈련생을 모집하고 파송 계획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교회의 요구에 혹은 후보생의 요구에 응하였다면 이제는 아니다. 전략적으로 후보생을 모집하고 훈련하고 파송하여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파송개념 오류
한국교회는 파송의 개념이 부족하다. 일반 협력선교사에 비하여 조금 더 헌금하는 것이 파송의 개념이다. 그러나 파송이라는 것은 내 교회를 현장에 세우는 것이고, 우리 교회의 일을 현장에서 실현하는 일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공유되어야 하고, 공동으로 사역이 진행되어야 한다. 보내놓고 잘 하겠지, 아니면 보고서로 처리한다는 것은 파송에 대한 개념 이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구 파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금년도 살같이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한국교회나 선교지나 또 새해를 맞이하고 많은 계획을 세울 것이다. 사역은 매우 전략적이고 전술적이어야 한다. 깊은 헌신이 필요하다. 또한 끊임없이 준비하여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이것이 새해를 향한 과제가 아닌가?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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