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종말

[스크랩] 아가보의 예언과 바울의 신앙② - 자기(자아自我 : Ego) 부인

수호천사1 2012. 4. 30. 10:26

아가보의 예언과 바울의 신앙② - 자기(자아自我 : Ego) 부인

아가보는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이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을 두고 제자들과 그곳 사람들의 해석과는 달리 바울의 해석은 정반대였습니다. 
즉 제자들은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행을 말렸으나 바울사도는 고난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해석했습니다.(행21:10-14)

이처럼, 같은 예언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 근본 요인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명백히 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곳 사람들과 똑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해석의 차이가 한 마디로 영성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첫째 : 육에 속한 사람 - 이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고전2:14)
둘째 : 육신에 속한 사람 - 거듭났지만 아직 영적으로 어린 사람입니다.(고전3:1)
셋째 : 신령한 사람 -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고전3:1)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아예 받지 않습니다.(고전2:14)
그리고 육체에 속한 자들은 자기의 안위를 생각하는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자기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신령한 사람, 곧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또 일반적으로 신령한 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말해 보겠습니다.
첫째 : 기도입니다. 우리는 신령해지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령한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한다고 반드시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 믿음입니다. 즉 믿음이 큰 자가 신령한 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러나 믿음이 크다고 다 신령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 선행입니다.
넷째 : 사랑입니다.
다섯째 : 성령의 은사 충만 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가 충만하여 방언, 예언, 영분별, 권능 행함,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면 그런 사람을 일러 신령한 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성령의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고전1: 7) 고린도 교인들이 신령한 자가 아니라 육체에 속한자라고 선언합니다. 
여섯째 : 성령의 감동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는 자는 다 신령한 사람으로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 것으로 아는데, 바울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면서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행21:4) 이는 바울의 깨달음과는 정 반대입니다.
일곱째 : 주님으로부터 큰 소명을 받은 자를 신령한 자라고 생각 합니다. 이것도 착각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교회의 기초를 삼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고, 천국 열쇄를 준다고 하셨습니다.(행16:18-19)
그런데 다음 순간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행16:23)
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가 되는 큰 소명을 받고도 아직 신령한 자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마16:23)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상의 사람들의 편견을 결론적으로 정리해 보면,
성도가 신령한자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요체(要諦)는 결국 기도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고, 이적과 기사도 아니며, 성령의 감동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자기 부인이 안 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로 생각합니다.
그 예가 아가보의 예언에서 잘 나타난 것입니다.

즉 아가보의 예언을 사람의 일로 생각하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은 중지해야 한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하나님의 일을 예언한 것으로 보면 바울은 순교를 각오하고 예루살렘 행을 강행하라는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또 아무리 신령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라도 자기 부인이 안 된 사람이 하면 육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겐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오직 한 가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십자가는 주님께서만 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성도들이 저야 할 필수 과제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원로 Essay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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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예종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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