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불교권 선교전략을 위한 불교의 교리 이해론 (3)

수호천사1 2012. 4. 13. 11:38

불교권 선교전략을 위한 불교의 교리 이해론 (3)

 

사성제

 

1),고성제(苦聖諸)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첫 번째 거룩한 진리로서 인생의 고(苦)에 관한 고성제를 설파했습니다. 인생이란 투카[dukkha]라는 것이며, 그 뜻은 인생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고통(苦痛)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고성제는 사성제의 실제적 이론적 입장에서 고난의 원인에 대한 규명입니다, 석가모니는 고통에는 사고(事故)와 팔고(八苦)가 있다는 것입니다.

 

① 사고(四苦)

사고(四苦)란 “탄생에서 오는 생고(生苦)”, “늙음에서 오는 노고(老苦)” “질병에서 오는 병고(病苦)”, “죽음으로 오는 사고(死苦)”인 생, 노, 병, 사(生老炳死)를 의미합니다.

 

 ② 생고(生苦)

생고(生苦)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의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배에서 나올 때부터 인생은 충격을 받는다는 것으로서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애기의 첫 소리가 울음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탄생자체를 괴로움으로 봅니다. 중생이 윤회하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③ 병고(病苦)

병고(病苦)란 사람은 언제나 건강하게만 살수 없으며, 수시로 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괴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④ 노고(老苦)

노고(老苦)란 “젊은 시절 건강할 때에는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라고 생각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늙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사랑을 받지 못하고 대접을 받지 못하고 남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고 앓고 시달릴까 두렵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고(老苦)라는 것입니다.

 

⑤ 사고(死苦)

사고(死苦)는 죽음에서 오는 공포가 고통이란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죽음을 고통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인생관을 이처럼 괴로움은 고통스러운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사고 (四苦)란 “낳는 것도 고통이요”, “늙는 것도 고통이요”, “병든 것도 고통이요”, “죽는 것도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출발점은 이 사고(四苦)인 <생, 노, 병, 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발했습니다.

 

 ⑥ 팔고(八苦)

팔고(八苦)는 사고(四苦)(생 노 병사)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에서 오는 고통 이별애고(離別愛苦), 미움과 만나야하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소유하고자 해도 소유하지 못하는 고통 구불득고(求不得苦), 오온에서 오는 고통 오음성고(五陰盛苦), 이것을 팔고(八苦)라 하고 있습니다.

 

⑦ 이별애고(離別愛苦)

이별애고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곁을 떠나거나 죽어버렸을 때 오는 고통,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여 아꼈던 물건을 잃었을 때 오는 고통, 높은 권세를 가진 자가 그 권세를 잃었을 때 오는 고통, 이별애고는 모두가 “헤어짐”에서 오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⑧ 원증회고(怨憎會苦)

 원증회고란 헤어지는 것만이 괴로움이 아니라 만나는 것도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만나기가 싫지만 미워하는 자를 만나게 되고 또 미워하는 이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얻어지는 괴로움의 고통, 사상과 관념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야 되는 것도 정신적인 고통이듯 원증 회고는 만남에서 오는 괴로운 고통을 말합니다. 헤어짐에서 오는 고통은 사랑 때문이고, 만남에서 오는 고통은 미움에서 오고, 그러므로 사랑이나 미움은 모두 고통의 근원이 된다고 불교는 봅니다.

 

⑨ 구불득고(求不得苦)

구불득고란 아무리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데서 오는 괴로움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즉 자기가 하고 싶고, 갖고 싶지만 다 가질 수 없는데서 오는 괴로움, 구불득고란 욕구와 충족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데서 오는 괴로움을 의미합니다.

 

⑩ 오음성고(五陰盛苦)

오음성고란 인간의 심신(心身)이 오음에서 생기기 때문에 괴로움이란 것입니다. 오음을 오온(五蘊)이라고도 합니다. 그 뜻은 모아 쌓은 것, 회합하여 모인 것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모여 모든 중생이 삼계육도 윤회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인간이란 색(色),수(受),상(想), 행(行),식(識)의 5가지 요소들의 복합체인 그 자체가 괴로움임을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 합니다. 여기서 인간존재 그 자체가 괴로움이라함은 인간존재를 구성하는 신체적 요소(色;지,수.화,풍), 느낌(受), 생각(想), 의지(行), 인식(識) 등의 물질적, 정신적 요소들이 모두 항시 변하는 무상(無想)한 것들이라는 교리입니다. 그 어느 것도 항구적인 만족을 줄 수 없는 괴로운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고 불교 창시자는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5가지 묶음[오온]들 가운데 어느 것도 나와 불변하는 자아로 취할 것이 못 된다고 하는 사상입니다.

 

석가모니에 의하면 인간이란 다만 수시로 변하는 요소들이 화합하여 하나의 임시적 존재를 산출하고 있을 뿐 인간에게 항구불변의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의 생사(生死)관입니다. 그러므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고통(苦痛)은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깨달아 그가 본 인간존재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으로, 무상한 것을 항구적인 것으로, 영원불변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음성고 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기독교(基督敎)인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과 같이, 불교는 인간 존재 자체가 일체고의 인식에서 해탈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사고(四苦)인 생, 노, 병, 사와 팔고(八苦)인 이별애고, 원증회고, 구불득고, 오음성고에서 오는 고통의 세계에서 해탈하는 종교입니다.

 

(2) 집성제(集聖諸)

 

 집성제는 고통(苦痛)이 발생하는 원인을 밝히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고통 그 원인을 싼스크리트어로 탄하(tanha)라고 하였습니다. 번역하면 욕망(慾望)이라는 것입니다. 욕망이 인생의 모든 비극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불교에서 매우 큰 비중의 교리가 됩니다, 기독교의 죄(罪)의미와 비교 될 주제입니다.

 

인간 존재와 그 삶이 고통인 것은 인간들이 끊임없이 무엇인가 욕구하는 욕망(慾望)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욕망이 계속되는 한 인간은 사후에 또 다른 고통의 존재로 태어나 생사윤회 과정이 또 다시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탄하인 욕망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실상을 모르는 무명(無明)과 이 무지를 조건으로 하여 생긴 전생에 있어서 누적된 업력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이와 같이 고통(苦痛)를 일으키는 복합적 조건들을 분석적으로 설파했으며, 이 같은 고의 조건적 발생을 연기(緣起)라고 불렀습니다. 무지와 욕망으로 인해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세상을 통해 끊임없는 생사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불교 교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3) 멸성제(滅聖諸)

 

멸성제는 인생고(苦)를 고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즉 무지와 욕망이 멸한 상태에 관한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 멸성제입니다. 이는 고통을 멸한 상태가 불교의 이상세계인 열반(涅槃)이라고 부릅니다. 열반은 탐욕, 성냄, 무지의 3독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서 생사의 세계를 초월한 경지를 뜻합니다.

 

열반은 과거 전생에 지은 업의 소산인 현재의 몸을 지닌 채로도 실현 가능하고 사후에 신체를 떠나 실현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후자를 반열반이라고 부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입적시에 실현된 현상입니다. 이런 사후의 열반에 대하여 석가모니(釋迦牟尼)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문제는 인간에게는 영원불멸의 자아(自我)가 없는데, 누가 열반을 체험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현세에서 열반을 실현한 여래(如來)가 사후(死後)에 존재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이에 대하여 가부를 논하지 않았습니다.

 

(4) 도성제(道聖諸)

 

도성제란 고통의 종식인 열반으로 가는 길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극복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팔정도입니다. 석가는 깨달음에 이른 후 가르친 핵심사상이 사성제와 팔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부처의 가르침의 경전과 그 이후 깨달은 자들이 기록한 팔만대장경이 있지만, 그들의 모든 가르침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면 사성제와 팔정도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석가의 모든 가르침은 팔정도와 사성제를 말하는 것인데, 이 말씀은 팔정도의 올바른 삶이 있는 자가 사성제를 깨달아 해탈에 이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이 해탈에 이르려면 반듯이 팔정도의 실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팔정도(八正道)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로는 정견(正見)으로서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을 올바른 눈으로 올바르게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정사유(正思惟)로서 눈으로 보고 자세히 관찰한 것을 올바른 생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고,

셋째로는 정어(正語)로서 올바로 보고 생각한 것을 가감 없이 진실 되게 말하라는 것이고,

넷째로는 정업(正業)으로서 입으로 말한 모든 것은 반드시 말한 그대로 진실 되게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다섯째로는 정명(正命)으로서 인간의 모든 삶을 진리의 가르침에 따라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여섯째로는 정정진(正情進)으로서 정도의 길에서 이탈하지 말며 진리를 따라서 오직 한길로만 정진할 것이고 ,

일곱 번째로는 정념(正念)으로서 생각 속에 번뇌 망상을 제거하고 오직 진리만을 생각할 것이고,

팔 번째로는 정정(正定)으로서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주야로 진리만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이상 요약한 것과 같이 팔정도(八正道)란 결국 현상세계를 정확히 알아서 올바르게 정도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또한 팔정도 실천하는 것을 셋으로 크게 묶으면 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三學)이 됩니다, 도덕적 행위와 삶[계;戒], 흩어진 마음의 통일과 정화[정;定], 사물에 대한 올바른 통찰[혜;慧]을 닦음으로써 열반을 실현 할 수 있다는 교리입니다. 석가모니는 인생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자세하게 진찰을 하여 여러 가지 심상치 않은 증세를 보고 그 증세들의 원인을 찾아낸 후에 치료를 하듯이, 먼저 인생의 심상치 않은 문제들의 증세를 찾아내고 그 원인을 발견한 다음에야 비로소 치료의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리고 처방을 내렸습니다.

 

 먼저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이란 증세를 찾아내고 그리고 난 다음 그 괴로움의 원인은 자아(自我)를 위한 욕망이라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그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마지막으로 고칠 수 있는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처방이 곧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正道)입니다. 팔정도(八正道)는 인생고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타인이 치료해 주는 치료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훈련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8번째의 주제인 “불교의 팔정도(八正道)와 기독교의 팔복의 말씀”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3. 나오는 말

 

기독교(基督敎) 신학은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을 믿는데 있다면, 불교의 교리는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와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구원의 세계인 열반(涅槃)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팔정도(八正道)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에서는 현상세계와 인간의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열반(니르바나)에 도달하는 방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불교(佛敎)의 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열반(涅槃)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불교의 구원의 핵심은 열반(涅槃)입니다. 석가모니는 열반의 개념보다는 열반에 도달하는데 관심을 두었습니다. 열반의 궁극적인 목적은 윤회(輪廻)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존재의 종식을 의미하는 상태입니다.

 

 열반(涅槃)은 “불어 꺼져서 없어진 상태” “멸절된 상태”로 열반(涅槃)이란 부정적 의미로는 존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번뇌(煩惱)의 속박에서 해탈(解脫)되고,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미혹한 생사를 초월해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열반의 법(法)을 체득한 경지를 의미합니다. 불교에는 기독교에서 구원을 받은 자의 마지막 표상인 천국(天國)과는 참으로 다른 세계인 열반(涅槃)이 있습니다.

 

천국(天國)은 실존하는 세계인데 반해 열반(涅槃)의 세계는 존재가 없으면서 존재가 있는 것으로 말하는 점에서 역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진정한 실재성이란 모든 것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유전의 원리에 의하여 모든 현상 세계는 어디로 가나 생사(生死)와 고통으로 충만하다고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생사(生死)가 반복 되는 고해와 같은 사바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의 세계로 구원 받고자 하는 것이 불교의 사상입니다.

 

서재생 목사 / 서울대현교회,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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