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권 선교전략을 위한 불교의 교리 이해론(2)
1 삼법인(三法印)
불교의 근본 교리의 시작은 인간이 일체의 고통이란 전제하에 고통의 세계에서 해탈 하려는 것에서부터 찾을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인간의 삶에 고통이 없다고 한다면 불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필자는 이해하고자 합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모든 존재의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의 출발점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었다면 불교의 교리의 출발점은 석가모니께서 깨달은 교리인 삼법인(三法印)(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법인은 원시불교 교리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1)제행무상(諸行無常)”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불교의 세계관으로서 일체 모든 생성 발전의 모습을 말한 것이며, 제법무아(諸法無我)는 불교의 인간론으로서 일체 모든 것의 실체(實體)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며, 열반적정(涅槃寂靜)은 불교의 지향점인 본체계(本體界)의 진실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삼법인은 불교의 진리를 세 가지로 함축하여 말한 것입니다. 법인(法印)이란 법의 도장이라는 말로 도장을 찍어 결제를 하듯이 참된 이치를 가리켜 이것은 진리다 하고 결정 확인하여 간주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인(印)자를 둔 이유는 이 세 가지 진리가 거짓된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진실한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일체개고를 더하면 사법인이 됩니다. (1) 제행무상(諸行無常) 불교의 세계관인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만유 정신적 세계이든, 물질적 세계이든” 이 세상의 현존하는 모든 존재를 총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이 세상에 상주불변하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존재는 시간적으로 볼 때 시시각각 변하여 상주(常住)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형상 만물만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며 시간의 지속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이러한 현상세계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명제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에서 행(行)이란 뜻이 “옮기고”, “흐른다”는 뜻입니다. 즉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매 순간마다 생멸성쇠의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항존 불변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그 때문에 인간은 실상(常)을 바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상세계는 제행무상이라는 것입니다. 무상(無常)하다는 것은 어느 한 현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체 모든 것들은 인연(因緣)이 합하여 이루어지고 나타난 것이므로 시시각각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전개되는 자연 현상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화 듯이, 인생들도 어머니의 태중에서 탄생한 후에 유아가 영아가 되고, 소년이 청년이 되고, 장년이 노년이 되는데, 흐르는 시간에 따라 늙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상이라고 합니다. 현상세계는 항존 불변하는 그대로 존재하지 못하고 변화무쌍한 것은, 일체 모든 사물이 본래부터 생멸(生滅)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태어난 것도. 있는 것도, 만난 것도, 모두 시간적 “인연으로 만들어졌고” “인연으로 태어났고”, “인연으로 만나”는 것이므로 천류 유전한다고 말합니다. 이 무상세계에는 일정한 기간 동안 존속하면서 변화하는 일기(一期)무상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찰라 무상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마치 인간이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나서 90년이든 100년이든 일정기간 동안의 삶을 누리다가 필경에는 목숨을 마치고 없어지는 것을 일기무상이라고 하고, 하루 24시간 동안에 64억 9만 9백 8십 찰라가 있다고 합니다. 즉 1초에 74075찰라가 된다는 것이고, 이렇게 짧은 순간에도 쉬지 않고 변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무상(無常)은 “없을 무(無), 항상 상(常)”입니다. 이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으니 그 어떠한 것에 집착할 필요도, 욕심낼 필요도, 미련을 둘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無常)의 엄연한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들은 천년만년 변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 있을 줄 믿고, 아끼고, 욕심내고, 집착함으로 자유 없는 속박의 괴로움이 있게 된다고 불교의 교리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상을 “고(苦)”의 전제로 보았습니다. 불교의 이러한 인생관은 상당히 비관적(悲觀的)이요, 염세적(厭世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諸行)은 끊임없이 변화해 갈 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無常)는 것을 강조하여 이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표현하고 변할 수 없는 진리로 삼았습니다.
(2) 제법무아(諸法無我)
불교의 인생관으로서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의미 하는 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입니다. 즉 현상계의 모든 존재의 공간(空間)성을 말하는 의미로서 시간적으로 관찰할 때 모든 존재는 무상(無常)하고 공간적으로 관찰할 때 모든 존재는 실체(實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법무아는 불교의 인간론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무아(無我)란 이론적으로 자아(自我)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석가모니가 말한 무아는 있는가 없는가의 존재성에 대한 이론이라기보다는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실천적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아(我)”에 대한 형이상학적 존부성에 관한 문제는 석가모니에게 있어서는 무의미한 것 이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석가모니의 무아(無我)의 사상을 제법무아라는 명제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아(我)는 실체를 말하는 것이며, 일체 모든 존재는 모두 인연으로 모였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질 뿐 나(자아)라고 고집하고 내세울 실체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을 빌어서 물질인 색(色)으로 뼈(地)와 피(水)와 채온(火)과 호홉(風)의 4대 원소가 어울려 육체를 구성하고 정신적으로 감각작용(수(受)), 지각작용(상(想)), 의지작용(행(行))) 분별하는 의식작용(식(識))등 오온이 인연에 의하여 가화합(假和合)하여 한 장소에 심신을 다투었다가, 이 화합의 인연이 없어지게 되면 중생으로서의 존재도 없어지는 것에 불과한데 그 무엇을 자아(自我)라고 고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흔히 ‘나’라는 관념을 가지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 몸, 내 마음, 내 재산, 내 지위, 내 생명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 속에 참다운 자아(自我)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 불교의 인간론입니다. 만약에 그 속에 나의 자성(自性)이 있다면 항상 머물러 변화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있어야 할 터인데도 내 몸을 가지고도 자유가 없고, 인간이 원하지 않으면서도 늙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내 몸 내 마음을 자유로 할 수 없는 자기(自己)를 고집하지 말고, 오직 인연(因緣)에 의해 있다가 인연이 다 하면 흔적도 없이 없어진다는 이 무상(無常)의 진리를 잘 알아서 미망의 삶에서 헤엄치는 것을 버리고, 해탈(解脫)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교리입니다.
이 제법무아의 사상은 인도 전통 사상에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인도 전통 사상은 항상 변함이 없이 머물고(상주), 주재(主宰)하는 성품을 가진 실아(實我)의 존재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제법무아에서 실제의 존재를 부정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가아(假我)로서 오온(五蘊)과 화합(假和合)의 ‘나’로서 이것은 무상(無常)한 것이요 그러므로 자아 내가 없는 것이 제법무아(無我)입니다. 가아(假我)를 실아(實我)로 착각에서 오는 고통을 일체개고라고 합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란 인생의 현실 모두가 일체(一體)가 괴로움(苦)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불교 경전을 보면 불교도가 아닌 “쟌부카다카”라는 이교도가 부처의 제자 “사리붓타”를 찾아와 “고”다, “괴로움”이다, 하고들 말하지만 벗이여 어떤 것이 참으로 고(苦)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사라붓타는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이라고 대답했습니다.
① 고고(苦苦) 고고란 고와 고 문자를 둘 연속해서 쓰는 것으로써, 이는 인간자체가 원래부터 괴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② 괴고(壞苦) 괴고란 무엇이 파괴되어 생기는 괴로움을 뜻합니다. 즉 즐거움이 파괴되었을 때, 또한 애지중지하던 귀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을 지칭합니다.
③ 행고(行苦) 행(行)이란 즉 “모든 것은 흘러간다.”, “일체는 옮아간다” 라고 하는 존재와 무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고성이란 무상한 것이 곧 고다는 것입니다. 불교(佛敎)는 인간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은 고(苦)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대서 출발했습니다.
왜 현상세계가 고인가? 불교에서는 이것을 업보(業報)와 윤회(輪廻)의 사고에 연결시킵니다. 절대로 고뇌하지 않는 상태는 윤회를 벗어난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윤회전생(輪廻前生)하는 세계는 쾌락과 행복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절대적인 적정(寂靜)의 즐거움은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며, 범부에게 있어 현상세계는 고(苦)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열반적정(涅槃寂靜)
열반적정은 앞의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 현상계에 대한 불교 철학적인 이지적(理智的) 판단에 의한 진리관 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열반적정은 불교의 종교적 실천이성(實踐理性)의 요청에 따라 마땅히 온갖 번뇌의 결박에서 해방되어 생사(生死)의 고해(苦海)를 뛰어나와 영원히 생사윤회(生死輪廻)가 없고, 항상 고요하고 안온한 절대의 이상 경지를 가리킨 말입니다. 즉 열반(涅槃)적정의 세계의 특징은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세계와 달리 운동도 변화도 없는 오직 적정(寂靜)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현상은 모두가 인연에서 말미암기 때문에 인연은 또 하나의 다른 인연으로 인해 생성변화가 무상하며 그런고로 이러한 가변적(可變的)인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괴로움에 허덕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상한 만물만상을 상주불변한 것으로 여겨 거기에 애착을 가지게 될 때에 “고(苦)”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대가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무상(無常)한 줄을 알고, 그것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그것들의 생멸 변화에 놀라지도 아니하고, 거기에 마음을 쓰지도 아니하면 고(苦)와 괘락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경지를 바로 열반적정의 경지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반(涅槃)이란 뜻은 “불어서 끈다”는 뜻입니다,
백팔번뇌를 비롯한 일체의 그릇된 고집과 갈등에서 오는 “번뇌 망상”의 불을 불어서 끈다는 것입니다. 이 열반을 “없어졌다”, “고요하게 건넜다”, “고요하게 없어졌다”, “원만히 고요하다“는 등으로 뜻을 번역합니다. 불교에서는 현실세계는 무상(無常)하고 모든 존재도 항상 변하고 고정 불변한 것이 없는 모든 존재에 실질적인 내(自我)가 있는 줄 망상을 일으키는 까닭으로 존재하고, 존재는 고통이 동반한다는 것이 일체고 라는 것입니다.
열반(涅槃)은 망상의 불이 꺼진 상태로 불교가 말하는 최고의 이상경지입니다. 열반에는 유여의 열반과 무여의 열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여의 열반(有餘依涅槃)이라는 것은 일체 모든 번뇌를 다 끊어서 미래의 생사의 원이 없어졌다고 할지라도 아직 전생의 과보인 오온(五蘊; 색, 수, 상, 행, 식)으로 이루어진 육체가 남아 있어 의지한다는 의미이고,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란는 것은 이 육체마저 다 없어지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어 의지할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열반적정은 온갖 번뇌의 결박에서 해방되어 생사의 고해를 뛰어나와 영원히 생사윤회가 없는 무생(無生) 무사(無死)의 이상세계를 가리킵니다. 불교의 근본사상으로서 삼법인(三法印)을 일괄적으로 말한다면 현실세계 현상을 시간적으로 유한하다고 본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고, 공간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 있고, 그러므로 불교의 이상세계 본체계를 시간, 공간적으로 없다는 것이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합니다. (계속 연재 됨)
서재생 목사 / 서울대현교회 / 011-334-2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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