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

[스크랩] 개혁파 교리문답서의 기원에 대하여

수호천사1 2012. 4. 2. 09:14

개혁파 교리문답서의 기원에 대하여(황대우)



'교리교육', '신앙교육' 혹은 '종교교육' 으로 번역될 수 있는 라틴어 'catechesis'와 'catechismus'는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 상용되었던 코이네 헬라어 동사인, '카테에케오 (katekeo. '소리나게 하다, 가르치다'의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신약성경에 자주 사용되었는데, 예를 든다면 눅1:4절의 '배운'에 해당되는 단어이다. Catechesis와 Catechismus라는 단어는 독어에서는 Katechismus와 Katechese로, 불어에서는 catechisme과 catechese로, 영어에서는 catechism과 catechesis로 각각 사용되고 있다. 이 두 단어는 '구두 신앙(혹은 종교) 교육'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두 단어는 주로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 받기 전에 교인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방법 혹은 과정과 연관된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반적인 종교 교육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16세기 전까지만 해도 '교리교육'이라는 말과 큰 차이 없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어거스틴이 자신의 시대에 개종한 이교도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 받았던 기독교 신앙 교육을 위해 저술한 '교리교육을 위한 지침들에 관하여 (De catechizandis rudibus)'라는 책이나, 종교 개혁 직전의 중세 후기에 살았던 쟝 제르송 (Jean Gerson)의 '고백을 듣는 방법에 관하여 (De arte audiendi confessiones)'와 같은 책이 초대와 중세교회에도 신앙과 교리 교육을 위해 사용되었던 자료들이었다.

중세 시대에도 신앙과 교리교육을 위해 묻고 답하는 문답형식이 존재했으며, 그것을 위해 주로 사용되었던 자료들로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십계명 등 다양했으며, 중세 중말기에는 여기에 성찬에 대한 가르침이 첨가되었던 것이 사실이나, 제르송의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고해성사'를 위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중세의 신앙교육은 고해성사에 거의 전적으로 종속적이었다. 그러나 16세기의 'Catechismus (문답형식의 교리교육서)'은 그것이 교리교육의 자료라는 점에서 중세적 전통과 어느정도 연속선상에 있지만, 그것을 고해성사에서 해방시킴으로써 초대교회의 개념에 보다 더 충실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16세기 이후의 'Catechismus'는 고해성사와 상관없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신앙 교육을 위한 교회의 공적인 '교리문답서'가 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중세의 것과 형식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1528년에 교리문답서에 관한 두 권의 책이 출판되었는데, 하나는 라흐만 (Lachmann)의 저술 혹은 그와 카스파르 그뢰털 (Kaspar Graeter)의 공저로 알려진 '교리교육 혹은 어린이 교육 (Catechesis oder vnderricht der kinder)' 이고, 다른 하나는 알타멀 (A. Althammer)의 저술, '교리문답서. 즉 어떻게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교육시킬 것인지 문답 형식으로 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교육 (Catechismus. Das ist vnterricht zum Christlichen Glauben/ wie man die jugent leren vnd ziehen sol/ in frag weysz vnd antwort gestellt)' 이다. 그러나 이것들 보다 앞서, 루터는 이미 1526년에 자신의 '독일미사 (Deutsche Messe)'에서 교리문답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그러나 교리문답서는 일종의 교육이라 불리우는데, 그것으로 사람들은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할 때, 그들이 기독교에서 무엇을 믿어야하고, 무엇을 행해야하며 행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교육한다. (Catechismus aber heyst eyne vnterricht, damit man die heyden, so Christen werden wollen, leret vnd weyset, was sie gleuben, thun, lassen vnd wissen sollen ym Christenthum... ) ' 16세기의 모든 개신교 'Catechismi (교리문답서들)'은 바로 이와 같은 루터의 정의에 충실한 것들이었다. 루터가 만든 1529년의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만든 소교리문답서나 1년 뒤인 1530년에 성인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만든 대교리문답서는 수 많은 교회의 공식적인 교육지침서 역할을 했으며, '교리문답서'를 보편화시킨 기원이 되었다. 루터의 교리문답서는 단순히 루터교 형성 뿐만 아니라, 개혁파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심지어 트렌트 (Trente) 공회의 결정에 따라 1566년에 공포된 '로마교 교리문답서 (Catechismus Romanus)'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점에서 루터는 확실히 '교리문답서'의 아버지로 불릴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공식 '신앙교육서' 혹은 '교리문답서'의 형태의 기원은 확실히 종교개혁기인 16세기에 발생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혁파의 교리문답서 역시 루터의 교리문답서에 힘 입은 바 크다. 1529년의 외콜람파디우스의 교리문답서를 필두로 마르틴 부써의 1534년, 1537년, 1543년판 교리문답서, 레오 유다가 만든 1534년과 1541년판 교리문답서, 칼빈의 1536년판 교리교육서 (주제별 형식으로 된 것)와 1541년판 교리문답서, 아 라스코의 1546년판 교리문답서, 1563년의 하아델베르크 교리문답서, 불링거의 1566년판 교리문답서, 1647년의 웨스터민스터 교리문답서 등이 작성되었다.


*참고문헌

Christelijke encyclopedie [기독교 백과사전] (1957년 제2판 증보판) 제2권, Catechese/Catechismus 항.
Dictiona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1991년), Catechesis/Catechisms 항.
M.B. van 't Veer, Catechese en catechetische stof bij Calvijn [칼빈에게 있어서 교리교육과 교리교육의 자료], Kampen 1942 (자유대학 박사학위논문).
A.L. Richter, Die evangelischen Kirchenordnungen des sechszehnten Jahrhunderts [16 세기 복음적인 [혹은 복음주의의] 교회법들] 두권 중 제1권, Nieuwkoop 1967 (1846년 초판의 재판).
Martin Bucers Deutsche Schriften 제6/3권. Guetersloh 1987.
C. Palmer 저, E. Moll 화란역, Katechetiek of theolrie van het godsdienstig onderwijs [ 교리교육론 혹은 종교 교육의 이론]3권 중 제1권, Tiel 1856.
A. Troelstra, Stof en methode der catechese in Nederland voor de Reformatie [종교개혁 이전 네덜란드에서의 교리교육의 자료와 방법], Groningen 1903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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