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이해를 위한 보충
(1) 사도신경의 형성과정과 각 교파의 신앙고백
사도신경이라고 해서 사도들이 만든 신앙고백문이라고 오해하면 안된다. 마지막 사도 요한이 소천한 시기가 1세기였으므로 빨라도 4세기 이전이라고 볼 수 없는 사도신경을 사도들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설령 사도들이 만든 신앙고백이라 할지라도 성서와 일치한 신앙고백이 아니면 수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 초기인 2∼4세기경에는 이단들이 많이 나타났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에 대한 논쟁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대표적인 이단은 성경에서도 언급하고 있는「영지주의」였다. 이들은 헬라 철학에 영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심(요한복음 1:14)을 부인했고(요한일서 4:1∼6, 요한이서 7절), 그의 사망과 부활도 부인하는 무리들이었다. 교회는 이에 하여 정죄하고 성도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곧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이단자들을 정죄하고 결의사항을 요약하게 되었는데 이것들이 후세의 교회 신앙고백의 주요 재료가 되었다.
한편 각 교파마다 자기들의 일치와 신앙을 위한 신앙고백들을 위한 중요 신조들이 있는데, 예를들어 로마 카톨릭 교회는 위의 내용들과 더불어 트렌트 회의결의문(1563년), 바티칸 회의 결의(1870년)등을 가장 권위있는 신앙조항으로 신봉하고, 프로테스탄트 계(개신교회)에서는 약 100여개의 신앙고백이 있지만 그 중에 몇 가지만 살펴 본다면 루터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 신앙고백(1530-31년)과 합의신조(1577년), 개혁교회에서는 칼빈이 제정한 제네바 교리문답(1552년)과 한국의 개신교회들이 선호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년) 등이 있다.
사도신경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의 최초문서는 4세기 말에「루피누스」(Rufinus)라는 사람에 의한 라틴어 기록과, 341년에「마르켈루스」(Marcellus)라는 사람에 의해 씌어진 헬라어 기록이 지금까지 발견된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인데, 어느 것이 먼저인가 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기에 정확히 단정할 수가 없다. 지금의 사도신경은 기원 6세기에서 7세기 말, 혹은 8세기에 와서야 완성되었다 고 생각된다.
예컨대 "거룩한 공회와"로 번역된 우리나라의 사도신경이 실상 원문에는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씌어 있는데, 이 말은 4세기에 처음으로 그 용어가 사용되었고,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The Communion of Saints, 천주교에서는 이 부분을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이라고 번역함(박도식, 천주교 교리, 가톨릭출판사, p.174.")"는 5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그러한 문구가 없었다가 그 이후에 첨가 되었는데, 어떤 학자는 이 문구가 8세기 초에 첨가 되었다고 추측한다. 또한 마지막 부분인 "영원히 사는 것"(And the life everlasting)이라는 부분도 후세에 첨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도신경 암송을 반대하는 교파도 꽤 되는데, 퀘이커 교도, 유니테리안, 이신론자들이며, 그리스도의 교회 회복을 주장한 환원운동가들도 성서 이외에는 그 어떤 신조나 장전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였다.(신조는 성경만)
사도신경은 서방 교회(=천주교)에서만 사용되어 온 신앙에 관한 선언이다. 증거와 설명을 곁들이지 않은 간결한 문체로 되어 있다. 그것이 적극적인 믿음의 확인으로 받아 들여져 개신교에서도 보편화 된 것이다. 개신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도신경의 목적과 그 용도는 다음과 같다.
① 요리 문답으로서 입교 지원자들을 교육 시키기 위한 기본으로 사용되며 세례식에서 개인 신앙의 고백문으로 쓰인다.
② 입교의 증거로서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자격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쓰인다. 사도신경에 대한 의심이나 부인은 있을 수 없다.
③ 교리의 기준으로서 교회의 진리와 성경을 간단하게 표명하는 간결한 진술로서 믿는다. 누구든지 성경은 읽지 아니하고 그가 출석하는 교회의 교리가 어떠하든지 사도신경을 인정하거나 외면 일단 입교 교인으로서 합격한다.
④ 사도신경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때는 교회의 예전으로서의 역할이다.
사도신경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감사와 찬송이 가장 실제적인 요소를 가진 교회의 예배식으로서 구체적으로 푠현된 것으로 믿는다.
⑤ 신앙의 체험으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적인 신앙고백문이다. 그래서 구태여 성례전이나 교회의 예배에서 뿐만 아니라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사도신경이 함축하고 있는 신앙을 견지하기 위하여 항상 외우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것을 부탁받는다.
(3) 사도신경의 내용 분석
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②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③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④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⑤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⑥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⑦ 성령을 믿사오며,
⑧ 거룩한(하고 보편적인) 공회와,
⑨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⑩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⑪ 몸이 다시 사는 것과,
⑫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quick to judge the live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Ghos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사도신경의 내용은 크게 3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이고(=이하 ★로 표기),
둘째는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이하 ◆로 표기),
그리고 거기에 가미하여 천주교의 특수 교리를 가미한 신앙고백(=이하 ▲로 표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표시는 타당한 문구이고, (×)표시는 내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거나 타당하지만, 그 안에 다른 함정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분 임.
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②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
③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성부와 성자 다음에 동정녀를 배열하여 마리아를 하나님의 자리에 동격 부각시킴, 이 위치는 성령이 들어가야 함)▲
④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본디오 빌라도의 죄가 아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⑤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
⑥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⑦ 성령을 믿사오며, (○)(×=순서상 ② 다음에 배열되어야 함, 또한 신구약 성경 66권에는 성령에게 직접 믿음을 고백한 부분이 없음, 그 이유는 솔직히 필자도 모름, 그러나 추측하기는 지금 이 시대에 성령의 역할이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말 때까지만 보류(?)된 것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확실치 않다)★
⑧ 거룩한(하고 보편적인) 공회(교회가 더 정확)와,(×=교회가 거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말하는 공회는 교황과 추기경단을 지칭하는 의미가 짙다. 천주교에서는 그 조직을 공의회라고 부른다)◆▲
⑨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성도들이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 당국에서 시성한 성인들을 말하며 성인들의 통공이란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⑩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천주교의 주장처럼 소위 베드로의 후계자라 하는 교황만이 죄를 사해 줌)▲
⑪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천주교회에 의해)▲
⑫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천주교회에 의해)▲
(4) 성서 상의 신앙고백
ⓛ 마르다의 신앙고백: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인줄 내가 믿나이다. (요한복음 1:27)"
②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태복음 16:16)
③ 도마의 신앙고백: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28)
④ 나다나엘의 신앙고백: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한복음 1:49)
⑤ 내시의 신앙고백: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들인줄 믿노라(사도행전 8:37 난하주)"
(5) 사도신경을 통한 로마 카톨릭(천주교) 교회의 교묘한 함정
천주교는 사도신경을 교묘하게 변형, 오용하여,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요 교리인 "교황권, (성서보다 우위에 두려는)교회의 권위, 마리아 숭배 사상(천주교에서는 1854년에 '성모 마리아 무염시태 교리'를 발표하고, 1950년 8월 15일에는 '성모 마리아 승천 교리' 등을 선포하여, 그 후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천주교인들의 대축일로 지켜오고 있다), 성인 숭배 사상" 등과, 비성서적인 교리를 삽입하여 올바른 신앙을 가로 막고 있다.
사도신경의 기원
[1] 배경
사도 신경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부터 지금보다 훨씬 많은 내용으로 전승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 전승의 정확성은 확인할 수 없고 다만 지금과 거의 같은 형태의 사도 신경이 채택 된 것은 서기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 431년의 에베소회의, 451년의 칼케톤 회의를 거치면서 확정되어 진 것이고 이런 형태의 신앙고백문이 만들어진 것은 당시의 이단성 규명을 위해서였으며 매 회를 거치면서 수정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일컬어 니케아 신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초의 종교회의를 참고하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인 아리우스라는 신앙적으로는 상당히 덕목이 있는 사람과 같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리우스 보다는 몇 년 젊은 아다나시우스라는 두 사람의 논쟁에서 출발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에 관한 것이었고 사실 이 문제는 초대교회 이후로 계속 거론되어 왔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리우스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교에 있어서 많은 신들이 있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계실 뿐 아니라 아들 하나님이 별도로 계시다고 하는 두 하나님을 주장하였고 예수는 모든 피조물의 제일 첫째 되고 가장 높은 그리스도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아버지와 같은 관계이지만 본질이 아니라는 이론이었고 아다나시우스는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 니케아 회의에서는 300명이 넘는 감독들이 참가했고 결국 아리우스를 이단자로 정죄하고 끝냈으나 완전한 논쟁의 종결에는 실패했으며 다시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는 성령의 신성에 관한 신앙적 의결이 첨부되었고 다시 451년의 제 4차 종교회의인 칼케톤 회의에서는 예수의 양성론이 제기되어 정리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암송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A.D. 4세기경 라틴어 [Symbolum Apostolicum] - 사도들의 상징이란 신조가 바탕이 된 [로마교회 구 신조]에서 형성되어 서방 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하여 보급되었지만 동방 교회(희랍 정교회)에서는 한번도 사도 신경을 공식적인 신앙 고백서로 채택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이것과 비슷한 니케아 신조를 그대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2]성경의 가르침을 다르게 가르치는 것과 문제가 되는 표현들
전체보다는 몇몇 성경과 문제되는 부분만을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①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에서 오늘날 '저리로서'라는 표현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을 신앙 고백으로 주문 외우듯이 하는 행위는 로마 카톨릭의 상징주의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저리로서'라는 말은 그곳이라는 옛말에다가 조사 -으로부터에 해당되는 옛 표현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그곳으로부터라는 뜻입니다.
②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빌라도는 역사 속에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준 인물이지만 그는 오히려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를 쓴 흔적을 여러 곳의 성경에서는 읽을 수 있습니다[참고 : 마27:24; 눅23:4, 14~15, 20, 22; 요19:4, 6, 12].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시켰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은 틈만 나면 기회를 노려 예수님을 없애고자 노력하였고 결국 빌라도를 통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의 형법상으로 보아도 빌라도는 종범이며 유대인들은 교사범에 해당합니다. 교사범은 그 형의 주된 범죄자로서 우리 나라의 형법 제 31조 1항에 의하면 타인을 교사하여 형을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라고 되어 있으며 같은 법 제 32조 2항에 의하면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경감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간단한 세속적 관점에서 보아도 교사범이 더욱 파렴치한 지능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범을 정범으로 모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예수님을 처형한 정범이 누구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전히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행3:13)라고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들의 죄, 좀더 구체적으로는 나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므로 올바른 신앙 고백이 되려면 "나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고백하는 것이 옳습니다.
③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사도신경에 그 내용이 찜찜한 대표적인 구절이 바로 "지옥에 내려가셨다가"입니다. 이 구절은 한글 사도신경으로 번역되면서 개운하지 못한 기분을 덜기 위하여 삭제되었지만 영어 사도신경에는 그대로 남아 있어 독자들은 한영 성경의 첫 장에 나와 있는 한영 사도신경을 대조하여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뜻이 됩니다.
④ "거룩한 공회"는 영어의 the Holy Catholic Church (거룩한 공교회)를 번역한 것입니다. Catholic이란 뜻은 보편적 혹은 세계적인, 우주적인 이라는 뜻으로서 한영 사도신경을 보면 어떤 것은 Catholic이라는 단어를 감추기 위하여 이것을 풀어 Universal로 번역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용될 경우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개신교도 catholic church(보편 교회)라고 해서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이 쓰여진 배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보편적인 의미로 쓰여진 것이 아니란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모시고 있던 당시의 카톨릭 교회로서는 땅위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회가 카톨릭 교회라고 주장하고 이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던 터였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이것을 거룩한 공회로 번역하여 난관을 넘기고 있지만 한영 찬송가 등에서는 여전히 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표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공회'란 표현은 애매하기 그지없습니다. 성경에서의 '공회'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로 표현되고 있습니다.[참고 : 마10:17, 마26:59; 눅22:66; 요11:47]
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모든 세상의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교제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성도는 믿는 성도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죽은 카톨릭의 성인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본래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것을 성자숭배와 산자와 죽은자가 교통하는 교리적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카톨릭 교인들은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헌금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경적인 의미의 '성자' 또는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신자들(고전1:2)을 가리키지만, 로마 카톨릭의 '성도'는 죽은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뒤에 특별 심의를 거쳐 서품 되는(복자, 성자) 죽은 자를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책망하고 있는 강신술을 권장하는 것과 같은 미신에 속한 것입니다.[신18:11; 사8:19-20] 트렌트 회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성인들이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실제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날 크리스마스에 싼타 크로스에게 선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비슷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⑥" 이 신앙고백을 반대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 지어다" 원래의 사도신경이 이단분별의 기준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도신경 끝에 이러한 표현이 있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도신경에서 끝 부분에 붙어 있던 이러한 표현을 빼버린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초창기에는 "이 신앙고백을 반대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 지어다" 라는 말로 사도 신경은 끝맺음되어 있습니다.
[3]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도 신경 암송의 부적격성의 이유를 정리해 보면
① 사도들이 기록한 것이 아니며,
② 출처가 분명하지 못하고,
③ 외우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닌 이단의 판별을 위한 것이고,
④ 완전한 신앙의 고백이 되지 못하며,
⑤ 어떤 부분에서 성경과 다르며,
⑥ 미신적인 요소와,
⑦ 성경에 완전한 고백이 있으므로(마16:16), 필요치 않다고 보아집니다.
오늘 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여전히 주일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하지 않는 교회는 이단이라고 정죄 합니다. '과연 사도 신경이 이단 판별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사도들의 신경(the Apostles Creed)은 예수님 당시의 사도들이 만든 신경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로마 카톨릭 신부들이 이단 정죄의 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도들의 신경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을 가지고 사도들의 신경이라 명하고 그것을 이단 규명의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명백히 비 성경적입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사도신경을 가장 옹호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카톨릭 교회입니다.
그들은 사도신경을 반대하는 자는 신앙의 최대의 적, 곧 이단으로 정죄해 버립니다. 결국 현대 교회의 사도 신경 옹호론은 결국 중세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타락한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한 프로테스탄트 정신, "Back to the Bible!" 정신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입니다. 이것 외의 어떤 것을 주장한다면 그것이 곧 이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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