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주의 날인가?
- G. Ph.van Popta -
제1부 : 성경적인 배경, 구약
만일 우리가 주의 날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자 한다면, 그때 누구든지 우리가 구약성경으로 시작해서 구약 성경이 안식일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출애굽기 16장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먼저 출애굽기 16장 23절에서 시작하자. 여기에서 우리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첫 번째 의무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당시 광야에 있을 때였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먹이셨다. 하나님께서 여섯 째 날(금요일)에는 충분하게 주셔서 그들이 두 배를 모을 수 있도록 하셨고 그래서 그들은 일곱 째 날에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이 날을 주님께서 안식일이라고 부르셨다. 안식일에는 하늘에서 만나가 전혀 내리지 않았다. 그들이 금요일에 모았던 여분으로 안식일에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이 안식일에 만나를 줍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만나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안식일에 만나를 줍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주님을 대단히 진노하시도록 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안식일에 밖으로 나가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고 명하셨다. 그들은 쉬어야 했고, 안식해야 했다.
출애굽기 20장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언제 어디에서 일을 하지 않고 쉬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공적인 언약의 의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이 느헤미야 9장 13절과 14절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저희와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저희에게 주시고 거룩한 안식일을 저희에게 알려주시며 주의 종 모세로 계명과 율법과 율법을 저희에게 명하시니라.”
비록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시내 산에서 언약적인 의무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안식일 준수는 이스라엘에게 창조에 대한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하나님의] 안식을 기념하였다. 출애굽기 20장에 있는 제4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창조 사역 제7일에 하나님의 안식하심과 묶여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창세기 2장 2절과3절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의 창조주시라며 또 자신들을 돌보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안식일에 쉬라고 요구하셨다.
출애굽기 31장
출애굽기 31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엄격하게 안식일을 준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읽을 수 있다.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형에 처해졌다. 16절에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언약이라고 부르셨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의 표징이었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었다.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안식일을 모독하는 행위였다. 안식일에 일을 함으로 거룩한 날을 모독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언약의 표징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서 짓밟는 것이었다. 또 그러하기에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잘려나갔다, 즉 출교되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출애굽기 35장
이러한 엄격한 제재가 출애굽기 35장 1절에서 반복되었다. 안식일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형에 처해 졌다. 언약 백성들은 심지어 안식일에 집에서 불을 피우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3절).
우리가 출애굽기 31장과 35장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안식일을 어기는 자들과 관련된 법이 성막을 짓는 문맥 안에 배치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주워 모으는 것이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다. 이것을 본 증인들이 모세에게 이 사람을 데려갔다. 모세는 이 사람과 이 사람의 범죄 내용을 알지 못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사람을 반드시 죽여라. 모든 회중이 진 밖에서 그에게 돌을 던졌더라.” 교회가 그를 출교시켜 사형에 처해야 했다.
석의하는 가장 좋은 규칙은 석의해야 할 성경 본문의 문맥을 살피는 일이다. 성령님이 성경의 원저자이시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법과 담화를 두서없이 배치하시지 않았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만일 담화 한 편린이 율법 사이에 끼여 있다면, 그때 우리는 성령님께서 왜 이런 방식으로 성경의 이 부분을 배열하셨는지에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몇 율법에 이어지는 담화의 실례를 본다. 이 경우에 이 문맥은 무엇인가? 이것은 주님께서 의도적인 죄와 의도적이지 않는 죄에 대해 율법을 주시는 문맥에 나온다. 민수기 15장 22절부터 29절에서, 만일 누군가가 “의도적이지 않게” 죄를 지었다면, 드려야 했던 희생 제사들에 대해 주님께서 율법을 주셨다. 반담 박사가 “의도적이 않는”이라는 단어의 번역에 대한 소논문에서 말하듯이,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죄된 인간으로서 그의 약함 때문에, 탈선하는…” 죄를 가리키고 있다. 사람의 연약함 때문에 저지른 여느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여기에 필요한 희생 제사가 있었다. 그러나 대담하게 짓는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희생 제사가 없었다(민 15:30-31). 의도적으로 짓는 죄는 교만한 손으로 짓는 죄이다. 이 죄는 “공개적으로 배도하고 율법에 대해 완고하게 경멸하면서…” 짓는 죄이다.
이것이 죄들 사이에 만들어진 유일한 구분이다. 다시 말해서 한편으로 의도적이지 않는 죄가 사람의 연약함 때문에 저질러지고, 하지만 회개하면 용서받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의적인 죄는 율법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저지른 죄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면서, 하나님을 경멸함으로 짐짓 짓는 죄이다. 후자의 죄를 저지른 사람은 누구든지 출교되어야 했다.
이것이 우리가 민수기 15장 32-36절에서 안식일을 어긴 사람에 대한 담화를 발견할 수 있는 문맥이다. 안식일에 일을 금하고 또 쉬라고 명한 율법을 경멸하고, 즉 언약적인 요구를 경멸하고, 나가서 나무를 주워 모았다. 교회는 이 사람을 출교해야 했고, 돌을 던져 사형에 처해야 했다. 안식일에 나무를 주워 모으는 것은 극단적인 형벌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언약을 바닥에 내팽겨 쳐서 경멸했다.
신명기 5장
신명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언약의 열 가지 말씀 두 번째 판에서, 안식일은 다른 의미심장한 차원을 받았다. 여기에,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안식일을 지키는데 다른 동기가 보태졌다. 그 동기가 이렇게 적혀 있다(신 5:15).
“너는 기억하라. 내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이제 안식일이 창조의 중대성과 마찬가지로 구속의 중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술되었다.
선지서들
선지자들 역시 안식일에 대해서 말했다. 이사야 56장 2절은 안식일을 모독하지 않고 지키는 사람은 복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이사야 58장 13절 이하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 위에 내려질 확대된 축복이 선포되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며 내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에스겔 46장에서, 우리는 동쪽으로 나 있는 성전 내부 문이 어떻게 단지 안식일에만 열려지는지에 대해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의 왕이 어떻게 이 문을 통해서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읽을 수 있다.
왕은 제사장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희생 제사를 드려야 했던 반면에 거기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서 있어야 했다.
우리는 선지서에서 단지 안식일의 복됨과 즐거움에 대한 긍정적인 진술들만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안식일을 어기는 자들에 대한 고소 혹은 기소도 읽을 수 있다. 예레미야 17장 19절 이하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강력한 어조로 금지했다. 안식일에 자기 집에서나 혹은 거리로 짐을 운반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만일 그들이 짐을 운반하거나 아니면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꺼지지 않는 불에 그 도성을 태우실 것이었다.
아모스는 돌아가서 일하고 또 돈을 벌기 위해서 안식일이 빨리 지나나기를 바랐던 사람들을 고소했다. 만일 우리가 구약 역사 맨 마지막으로 가본다면, 우리는 안식일 일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대해서 격노하는 이스라엘의 치리자 느헤미야에 대해서 읽을 수 있다(느 13:15).
만일 우리가 안식일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을 요약한다면, 그때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시내 산에서 받은 언약의 열 가지 계명 중 제4계명 안에서 언약적인 의무가 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창조의 중대한 의의나 구속의 중대한 의의가 있다. 언약의 열 가지 계명이 신명기에서 다시 주어졌을 때에 십계명에 대해서 더 깊은 차원에서 특별한 중대한 의의가 보태졌다.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셔서 주신 안식을 이스라엘이 기념해야 한다는 것은 안식일이 하나님의 구원경륜의 일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식일에 일함으로 안식일을 모독하는 것은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주님과의 특별한 언약적인 관계의 표징이었다. 안식일을 모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아래 내팽겨 쳐서 경멸하는 행위였다. 그러하기에 안식일에 나무를 주워 모으는 것은 교중들의 손에 죽는 것으로 벌을 받았다.
더 위대한 안식 제정
우리는 또한 안식일은 더 위대한 안식일 제정의 일부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레위기 22장부터 25장까지에서, 우리는 구약 절기에 대한 율법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 안식일, 안식년(매 칠년 마다), 희년(안식년 일곱 번째 해당하는 년도)에 대한 율법도 들어 있다. 에스겔 20장 12절이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안식들(이 명사가 복수로 나온다)을 주셨다. 희년과 안식년은 구속에 대한 것이었다. 또 안식일도 있었다. 모든 안식(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 제정은 구원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희년에 안식의 절정에 달했다.
*이 시리즈는 원래 브링턴 개혁 연구 센터에서 전달한 일련의 연설문이다. G.Ph. van Popta 목사님은 온토리오 주에 있는 앙케스트 캐나다 개혁교회 목사이다. 이 시리즈는 Clarion(2004,5.13)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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